에파타님의 주소는 jiguvy@hanmail.net 입니다. 정성스런, 감상과 독촉. 작가님께 힘이 됩니다.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1 "너 말 많냐?" 고개를 빼꼼히 들고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떠 보니, 거무데데한게 오늘 입학한 우리 고등 학교 교복색의 물체가 흐릿하게 보인다. 눈을 몇 번 깜박여 보니, 좀 낫게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뿌옇게 보이는 것이 잘 분간이 안갔다. 안경을 찾아 껴볼까..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귀찮았다. 생판 모르는 남이 퍼자는데 와서 대뜸 이상한 질문 해대는 녀석의 얼굴따위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인 것을.. 아니, 앞으로 1년은 좋으나 싫으나 보게 되는건가.. 그럼 더더욱 흐릿하게 남아있어 줬음 하는 생각이 든다. 짜증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니, 녀석이 킥 웃는 것 같다. 도로 책상으로 엎어지려는데, 다시 묻는다. "그럼 집은 부자야?" 질문이 좀 경박하다. 돌려서 말할 수도 있을텐데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는건 또 뭔가.. 집이 어느정도 잘 살면, "어, 그냥 그저 그래." 하고 뭉게버리면 되겠지만, 나처럼 넉넉지 못한 집 애가, "어, 그냥 그저 그래." 하고 대답하는 것은.. 평상시 가난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더라도, 왠지 껄끄럽고 부담이 되는 일이다. 그냥 씹고 엎어질까 했지만, 안경쓰던 사람이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게 되면 무의식중에 흔히 하는 그런 생각. 그러니까, 내가 잘 안 보이면, 저쪽도 왠지 내가 흐릿하게 보일 것 같다는 그런 생각에 휩쓸려, 정떨어지게 한마디 내뱉어 놓고 자리에 엎어졌다. "찢어지게 가난해." 그냥 가난한 것도 아니고 찢어지게 가난하다는데, 너도 이제 더 이상 할말 없겠지.. 저렇게 물어보는 걸로 보아, 돈보고 사람 사귀는 그런 빌어먹을 부류중 하나가 분명하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데 가버렸을거라 생각했던 녀석이 거세게 어깨를 흔든다. 왠만하면 가만히 있으려했는데 이거야 원, 책상까지 덜컹덜컹 거리는 걸... 짜증스럽게 고개를 치켜들자, 어디서 손 하나가 눈앞에 불쑥 내밀어 진다. "뭐...뭐야?" "전부다 정답.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처음엔 좀 놀랐지만, 상황이 좀 파악되고 나니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쳇... 이거 한 황당하는 자식이네... 하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은 기분에 다시 책상으로 엎어지면서 녀석의 손을 마주 꼬옥 잡아 주었다. 좀 장난스런 기분이 들길래 계속 손을 안 놓고 잡고 있었더니, 녀석도 손을 안 놓는다. 얼마를 그렇게 녀석은 삐뚜름히 선채로, 나는 책상에 널부러진대로 손을 잡고 있었다. 이거 도무지 먼저 놓을 기색이없다. 기집애도 아니고, 사내자식들끼리 계속 잡고 있기가 우습기도한 반면, 남의 손 쉽게 안 뿌리치는 놈이면, 얼굴정도는 알아둬도 괜찮겠다 싶어서 먼저 손을 놓고 가방을 뒤적여 안경을 꺼내썼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씨발새끼.. 절라 크네.." "쳇...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고 한다는 소리가...." "......" "송지훈이다. " "양재성." 사내 자식이 실실 쪼개기는... 하지만, 그러는 나도 웃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야!! 야!! 너 신입생 과제 다 했냐?" ...... 왜 다들 나 자는 꼴을 못보는 걸까.. 새학년 새학기 첫 자율학습시간, 말이 자율학습이지 서로 아는 놈들하고 얘기하느라 신났다. 아니면 새로 알게 되어서 떠드느라 난리던지.. 확실히 사내새끼들은 첫만남의 어색함..이런거 잘 모르나보다. 여자애들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난리도 아니다. 하.지.만. 시끄러운 것까지는 좋은데.. 대체 왜 나에게 까지 집적 거리냐고... 아까 손 꼭 잡고 안 놓던 앞자리 놈에 이어, 이번엔 뒷자리 놈이 소리지르고 난리다. 이번에도 무시할까 했지만, 이 새끼는 제정신이 아닌건지 의자를 팡팡 차댄다 의자를 한 번 찰대마다, 책상과 밀착되어있던 나의 이마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기에 부스스 일어났다. ".....아이씨.. 왜 의자는 차고 난리야? 너 나 알아?" "과제 했냐니까!!" 말이 안 통할 것 같은 놈이다. 이런 놈들 보통 보면 상습범이 많다. 매일 매일 안해오고, 이거 보여달라, 저거 보여달라... 차리리 하질 말던지. 이런 놈이 뒤에 앉았으니, 앞으로 좀 피곤하게 생겼군. 다시 의자를 차려는 기세길래, 황급히 가방에서 과제를 꺼내 녀석앞에 휙 던졌다. "핫.. 땡큐~. 당케~. 메르시~." 시끄럽다. 아무튼 마저 자려고 다시 디비 누우니, 다시 이마에 낯익은 통증이 온다. 이새끼가 또 의자를 차는 모양이다. 이거 혹시 습관인거 아니야?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순간 욱 해서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다. "이게! 그만차랬지!!" "이거 무슨 글자냐?" "......" 전의상실. 필시 무슨 글자인지 가르쳐 줄 때 까지 의자를 차고도 남을놈일 것이다. 처음 만난 놈만 아니었더라도, 같은 반 놈만 아니었더라도, 아니 하다못해 내 뒷자리만 아니더라도, 한 대 날려줬을텐데.... 녀석이 손가락으로 뭘 가르키기는 가르키나 본데 손가락 끝도 잘 구분이 안가고, 그냥 하얗기만 하다. 씁쓸한 기분에 올려다본 녀석의 얼굴도 뿌옇고... 안경을 또 꺼내써야 돼나? 귀찮은 마음이 더 강했기에 공책에 눈을 바싹 다가댔다. "....완수하기 위해서는..." "흠.. 고마워." 그러고는 다시 숙제에 열중하는 이상한 자식..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러려니하고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그런데.. "이.번.엔.또.뭐.야." 가능하면 위협조로 말했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꼭 막 드러눕자마자 의자를 차대는 것을 보면... 하지만,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다. "이거, 이 수학문제.. 어떻게 푸는 건지 가르쳐줘." "......거기 답 있으니까 그냥 베껴. 급해서 베끼는 놈이 갑자기 무슨.." 다시 돌아 누울려니 의자를 또 차려는 기세다. 확 째려보니 펜으로 공책을 '톡톡' 치면서 문제를 가르킨다. "선생이 시킬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결국 가방을 뒤적여 다시 한번 쓰기 싫은 안경을 찾아 써야 했다. 돗수 높은 안경에, 순간 현기증이 났다. 핑핑도는 눈으로 녀석을 쓱 쳐다보니.. 예상외다. 정말 예상외로 생겨먹었다. 한 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양.아.치. "빨리 안 풀고 뭐해." 뚫은 흔적이 적어도 너댓 개는 있는 귀에, 무스 한통은 쳐바른 것같은 삐죽삐죽한 머리. 첫날인데도 교복은 딱 붙게 줄인데다가 간간히 다른 색으로 염색했던 흔적도 보인다. 대충잡아도 서너색은 될듯했다. 아주 무지개를 만들지 그러냐... 이런 놈이 숙제에 목숨을 걸다니... 속으로 혀를 쯧쯧차면서 열심히 문제를 풀어주고 내친김에 잘 못 알아보겠다는 글자도 다 새로 적어줬다. 이래야 다신 안깨우겠지.. 하지만, 다시 자리로 돌아 앉았을 때는 녀석과 옥신각신 하느라 잠은 전부 달아난 뒤였다. 제길.... 잠을 보충해야 되는데... "다 끝났냐?" 앞의 녀석이 돌아보며 씨익 웃는다. 묵묵히 지쳤다는 투로 안경을 탁 접어서 가방에 던져 넣으니 킬킬 거린다. "...큭큭.. 그래도 쟤 괜찮은 애야. 내 테스트를 통과 했거든. 이렇게 된 바에야 우리 셋이 친하게 지내자고.." "....그럼 우리반 애들한테 다 물어봤단 말이야?" "물론. 친구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고... 너하고 저녀석까지 합쳐서 3명이 만점 통과. 그 외 대다수 합격자가 있지.." "쟤네 집도 가난하대?" "아니. 가난하다는게 정답은 아니었어. 그때 그때 맘에 드는 답을 말하면 그게 정답인거지 뭐..." "결국 니 맘대로라는 거군."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있자니 왠지 맥이 풀려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방법은 아니다. 꽤 자기 스타일이 강한 놈인 것 같긴 하지 만, 보아하니 붙임성도 있는 것 같고 같이 있으면 심심하진 않을 것 같다. 말을 그냥 끊기는 싫 어서 다시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그럼 저 녀석이 뭐라고 했는데..?" "....흠.. 첫 번째 대답은 당당하게 "Yes" 였고, 두 번째는 당장 따귀를 날리던걸. 정통으로 맞았지 뭐.." "킥킥...." 우습지만, 나도 괜찮은 놈이다..라고 생각해버렸다. 이를 테면, 열혈 소년이군. 숙제도 열심히. 불의를 참지 않는다. 내 웃는 얼굴을 보더니 녀석이 자신의 뺨을 쓸면서 아프다는 시늉을 해보인다. "넌 어떻게 된 새끼가 안지 얼마나 됐다고, 남 맞은 얘기듣고 대놓고 웃냐." "초면에 가정환경조사하는 너는 어떻고." "쳇.. 하긴, 그러니 니가 만점이지.." 녀석이 만점이라니까, 순간 아까 만점자가 3명이었단 말이 떠올랐다. 나, 내 뒷자리 양아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누구지? "그럼, 나머지 하난 누구야?" "후후.. 우습게도 네 바로 옆자리. 이렇게 만점자가 모이다니, 여기 무슨 수맥 지나가나봐." 실실 쪼개는 녀석을 외면하고 옆자리를 보니 비어있다. 내가 의아해 하는 걸 송지훈.. 흠.. 그러고 보니 이름도 한 번 못 불러봤군. 아무튼 그 자식이 알아챘는지 대뜸 대답해준다. "걔는 공부 잘하나보더라. 아까 어떤 선생이 일시킨다고 잡아갔어. 흠.. 그럼 넷이서 놀아야 되나?" "난 좀 빼주지 그래?" "웃기지마. 테스트에 응한 이상 절대 못 빠져나가." 단호하게 말하는 녀석.. 어의가 없긴했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그럼 얘는 뭐랬길래 만점이야." "으음.. 나도 한 방 먹었지 뭐야. 말 많냐고 물어보니까.. 홱 야리면서 쌀쌀맞게 '그러는 너는..?' 하는데.... 쳇.. 천하의 송지훈이 다 버벅댔다는거 아니겠냐.." "그래서? 뒤에꺼는 안 물어봤어?" "물어봤지. 그랬더니 이번엔 자기 할꺼 하면서 관심없다는 투 또 이러는 거야. '그러는 너는?' " ".......흠....." "억양이 배배꼬였는데 니가 들어봐야돼. 차라리 한 대 맞는게 낫지... 핫핫핫.... 그래서 이몸의 맘에 들어버렸다는 것 아니겠냐.." "......" 잠자코 어떤 녀석일지 상상을 해봤다. 시커먼 사내놈 얼굴 떠올리는 그런 괴이쩍은 취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꽤 오래 짝이 될 것 같은데 대충 이미지 정도는 파악해야 할 것 아닌가.. 공부 잘한댔으니까 완전 범생 타입이려나? 머릿 속으로 뱅글이 안경에 좀 뻑뻑하게 생긴 사내놈을 떠올려 보며 다시 자리에 디비 누웠 다.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컴컴해 지는 것 같다. "야! 넌 또자냐?" "이 자식 잠귀신 아냐?" 뭐냐? 이번엔 스테레오로 떠들어 대고... 한 사람이 두 사람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닌 듯 싶어 다시 빼꼼 올려다보니. 지훈이 놈이 그 양아치 새끼를 불러들였나보다. 양아치놈, 빈자리가 없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하긴, 사내새끼끼리 의자하나로 나눠앉는 것도 꼴불견이지... 헉...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그 양아치 새끼가 엉덩이를 밀치면서 내 의자에 억지로 끼워 앉 는다. "뭐!!! 뭐야!!!" "쳇... 덩치큰 저자식 자리는 껴 앉을데가 없으니, 여기라도 끼어 앉아야지 뭐... 쪼그리고 앉으면 무릎아프단 말이야.." "나도 비좁단 말이야!!" "박진욱이다. 과제 고마웠어. 앞으로 종종 애용해 주지. " 또 불쑥 내밀어 지는 손. 나 참, 어이가 없어서....우리가 무슨 샐러리맨이냐, 초면엔 무조건 악수게... 더 말해 봤자 피곤 할 것 같아서 그냥 잡아주고 끝낼려고 보니까.... 손 잡기가 좀 뭐 하다. 앞의 상대가 아니라 옆의, 그것도 딱 붙어있는 사람의 손을 잡으려니... 오른손을 내밀자니 팔이 뒤틀릴 것 같고, 그렇다고 왼손을 내밀자니 손등쪽을 잡아야 하고.... 내 고민을 알아차렸는지 녀석이 씨익 웃더니 자기 손을 비틀어서 왼손을 내민다. 필시 불편한 자세 일텐데도 생글생글이다. 눈앞이 뿌연데도, 새하얀 이빨 만큼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쪼개기는... 속으론 무식하게 누가 왼손으로 악수를 하냐... 곤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따라서 씩 웃으면서 왼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물론 뒤틀린 팔을 한껏더 뒤로 꺾어 주는 것도 잊지 않고. "아아악~~" Sweet. so sweeeeet!! 작가님 주소는 jiguvy@hanmail.net입니다. 재성이, 현우, 지훈이, 진욱이, 모두들 너무나 이쁜 아이들입니다.^^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2 Part Ⅲ - 이. 현. 우. - [달그락...달그락...] [깨작..깨작..] 나는 밥 먹으면서 시끄럽게 구는 놈들을 증오한다. 먹을게 앞에 있으면, 거기에나 충실할 것이지, 대체 뭔 사설이 그리 긴 건지. 할 말이 많으면, 먹지나 말던가... 입안가득 음식물을 쑤셔넣고, 고래고래 악을 쓰는 것 까진.. 원체 무신경한 나니까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정면에서 마구 파편을 튀겨댄다면 얘기는 매우 달라질테지. 그런 면에서 현재 나와 같이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점심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는 나의 짝은 꽤 마음에 드는 놈이다.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먹고 있으니까... 아까전 송지훈인가 뭔가하는 사이코 새끼랑, 박진욱인가 뭔가하는 막되먹은 자식이랑 얘기하다 깜박 잠이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었다. 하긴, 별로 많이 잔 건 아니다. 입학식끝난 시간이 10시가 훨씬 넘어서였으니까... 계속 자율만하고 아무도 들어온 선생님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송지훈이 넌지시 일러주었다. 그리고, 언제 왔는지 바로 옆에 떡 하니 자리를 잡은 짝꿍 녀석. 잠이 덜깨서 어리버리 하고 있으니까, 송지훈이랑 박진욱이 자기들은 도시락 안싸와서 매점에서 사먹어야 한다면서, 나랑 내 짝을 붙여주고 가버렸던 것이다. "안녕...?" "안녕..." 우리 사이의 대화는 이제까지 이게 전부였다. 그리고는 각자 자기 도시락 내용물을 정찰, 파괴중.... 남들이 보면 삭막하고 껄끄러운 분위기라고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저 녀석도 불편해 하는 것 같진 않고. 다만, 한가지 불리한 점이 있다면 서로 자기 반찬만 파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도시락 반찬 하나는 그래도 꽤 신경써서 싸가지고 오긴 하지만, 이녀석건 참 다양하고 예쁘다. 뿌옇게 보여서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알수 없는 것이 색색깔로 말려서 예쁜 요지에 끼워져있고, 튀김같은 것 옆에는 파슬리까지 세팅되어있다. 꼭 무슨 선전에 나오는 도시락 마냥.. 뭐, 먹어보고 싶게 생긴게 잔뜩이긴 하지만, '이거 먹어도 돼?' 이렇게 물어보긴 싫고. 그렇다고 그냥 말없이 집어먹었다가, 녀석이 무안 주면, 그건 도 그거대로 창피스럽고.. 그냥 내꺼 먹는 거지 뭐... 장조림, 미니 비엔나 소세지, 오징어채, 김치.... 이정도면 밥한끼 먹는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잡상을 떨치고, 다시 밥그릇에 머리를 박고 먹고 있는데 별안간 내 밥그릇으로 뭔가가 턱하고 떨어진다. "......!!" 자세히 보니, 요란하게 말려있던 녀석의 반찬 중 하나다. 놀라서 녀석을 보니,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 밥만 깨작깨작 집어먹는다. 그래, 너도 아까 '송지훈 테스트 만점자'중 하나였지.... 조용한 놈이길래 방심하고 있긴 했지만, 역시나였다. 송지훈은 유아독존, 박진욱은 동문서답 스타일이더니... 얘는 또 뭐냐? 예측불허? 아무튼 주는 반찬을 마다할 내가 아니다. 그것도 아까부터 먹고 싶어하던 건데... 정갈하게 말린 것을 젓가락으로 집어 한 입 '아삭' 무니, 고소한 기름향과 동시에 훌륭한 맛이 혀를 기쁘게 해준다. 좀 아쉽긴 했지만, 나머지도 한 입에 털어넣었다. 그러자 다시... [툭....] 이번엔 좀 놀라서 나도 모르게 녀석을 빤히 쳐다보고 말았다. 먹기가 무섭게 또 하나 덜어주니 어지간한 나도 좀 당황스러웠다. ..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니, 저도 좀 껄끄러웠는지, 이번엔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게 아니라 나를 빤히 보는 것 같다. 뿌옇게 보여 잘은 모르겠지만.... "왜?..." 녀석이 한 템포 느린 음성으로 물을때쯤은 무신경과 무덤덤이 적절히 작용을해서 다시 원래대로 밥그릇에 얼굴을 묻을 수 있었다. 이봐, 인간 양재성. 그리 쉽게 놀라지 않는다고.... "나한테 반찬 다 주면 너는 먹을게 없잖아." "......" 아무 말이 없길래, 저도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하고 녀석이 준 반찬을 집어먹는데, 녀석의 새카만 플라스틱 젓가락이 자신의 반찬을 천천히 지나쳐, 내쪽까지 넘어온다. 그리고는 장조림을 살짝 집어 그대로 입으로 낼름... "......" 또 다시 벙쪄서 쳐다보니,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마디 한다. "이러면 돼지?" "......." "???" ".................................................................................킥킥....." 참으려고 했는데, 입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녀석이 미친놈 보듯 하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쿡쿡....'하고 앞에서도 웃음이 새어나온다. 녀석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왠지 조금이지만 긴장했던 스스로가 더 우스워져서 '푸하하...'하고 박장대소 하고 말았다. 녀석도 나처럼 크게는 아니지만, 제법 소리를 내면서 키득 거린다. 눈물이 찔끔 날때까지 웃어제끼던 나는 녀석이 아니라 주변의 시선이 나를 미친놈 보듯 한다는 것을 알고, 심호흡까지 해가면서 웃음을 멈췄다. "후아....후아.....이제 먹자." "......킥킥...." 아까처럼 둘다 말은 없었지만, 상황은 좀 달랐다. 녀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니꺼 내꺼 할거 없이 반찬을 마구 집어먹고 있었으니까... 그것 말고도 달라진 거라면, 좀 더 부드러워진 분위기랄까... 아까까지만 해도 딱딱하게 긴장되어있던 녀석의 어깨선이 한층 아래로 쳐져 있다. 나도 저럴지도 모르겠다. [탁..] [탁..] 서로 먹는 속도는 신경 쓰지 않고 먹은 것 같은데, 녀석과 나는 거의 동시에 식사를 마쳤다. 흠... 뭐랄까. 별거 아닌거지만, 좀 기분이 좋다. 좀 상관없는 얘기지만, 나중에 신부감 고를땐 밥먹는 속도도 계산에 넣어야 겠단 생각이 든다. 같이 평생 밥먹을 사람인데... 쓸데없는 공상에 즐거워 하고 있다보니,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에구에구.. 또 혼자 즐거워서 실실 쪼개고 있었나보다. 그래, 바보로 볼테면 보라지... 난 미래의 내 신부감이나 상상해 보련다.. "너....잠깐..." "왜?" 좀 잠긴듯한 목소리로 다시 되물으니, 녀석의 얼굴이 살짝 가까워진다. "음... 이빨 사이에 뭐가 끼었는걸.." "그래?" 나도 녀석도 무미건조한 목소리. 누가 들었으면, 꽤나 친한 사인줄 알았을꺼다. 나야 원래 한 무신경 하는 놈이라 그렇다치 더라도 이녀석도 참 물건이다. 다른 놈같으면 당황해서 어쩔줄 몰랐을걸.. "어디에 끼었는데?" "아랫니 가운데서 두 번째." 자세히도 봤구나. 내가 그리 오래 실실 쪼갠 것도 아니었을텐데.. 아무튼 손톱으로 앞니를 닥닥 긁다가 녀석을 보고 "이..." 해 보였다. "됐냐?" "아니, 전혀. 오른쪽이야.." "그래?" 다시 작업에 열심히 몰두하다, 녀석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됐냐?" "아직." "흠... 그럼 됐어. 그만 둘래. 언젠가는 빠지겠지." 내가 무슨 이미지 관리할 것도 아니고, 사내새끼만 바글바글한 학교에서... 다시 잘 준비하고 엎어지려는데, 뭔가가 턱을 잡고 확 치켜든다. "뭐야...." 큰소리까진 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는 꽤 당황해서 눈앞의 물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흠...... 방금 전까지 같이 식사를 하던 놈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대체 이게 뭐하자는 Play..? 별다른 반응이 없길래, 턱을 잡고 있는 녀석의 손을 뿌리치려 했는데, 이 놈 힘이 장사다. 손은 또 왜 이렇게 큰건지 원.... "뭔데 그래... 졸리다구...." 내 목소리지만, 정말 듣고 있자니 잠이온다. 눈도 슬슬 감기는 것 같고... 뭐라 말을 하던지, 턱을 놔주던지... 태평천하 양재성도 졸린데 건드는 건 딱 질색이란 말이 다. "입 좀 벌려봐.." "왜?" "내가 빼줄게...." "......" 양재성. 패닉상태.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안든다더니 지금 내가 꼭 그 짝난 것 같다. 나랑 십년지기 친구놈도, 아니 우리 어머니도, 할머니도 내 이빨 사이에 낀건 안.빼.준.단.말.이.다. "이힉!! 그만둬." 녀석이 내 표정에 별 변화가 없으니, 수긍의 뜻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입술 사이로 차가운 손가락이 파고 드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제정신을 차리고 저항 할수 있었다. 이봐, 우린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고... 남자, 여자 꼭 이렇게 만나야만 체면 차리는 건 아니잖아!! 내가 이미지 관리 포기했다고 해서 너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건 더더욱 아니잖아!! "난 아무튼 그꼴 못보니까...알아서 하라고. 지금 가만히 있던지, 아님 네가 하던지." 이리저리 버둥대니까, 녀석이 손을 살짝 풀어주면서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내가 졌다 졌어. 정확히 오늘들어 세 번째로. 징그럽게 싫어하는 안경을 찾아써야 했다. 이정도면 정말 양재성 사상 최대의 신기록이란 것을 이 녀석이 알까 몰라. 아무튼 작은 손거울 까지 빌려주는, 녀석의 지극정성으로 내 이빨사이의 문제의 이물질은 제거 될 수 있었다. 끔찍한 새끼... 손톱사이에 끼어있는 그것을 보고있자니, 오한이 다 나는 것 같다. 녀석을 향해 세 번째의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니, 녀석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리고 안경 너머로 선명하게 보이는 마지막 만점자의 얼굴. 아...........얘도 양아치새끼 못지 않게 의외로 생겨먹었다. 나는 사람 외양을 구질구질 묘사하는 섬세한 취미는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녀석의 얼굴을 요약할 만한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기 위해 잠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잠시후 녀석의 얼굴과 매치가 된 고매한 단어는 바로. 기.생.오.라.비.... 좀 순화시켜 말해보자면, 귀공자형. 반짝반짝하는 투명한 무테안경에 얄상한 얼굴, 완벽한 포커페이스까지.... 정말 한 싸가지하게 생겼다. 왼쪽 가슴 한 복판을 보니, 다들 안 달고 있는 명찰까지 깔끔하게 달려있다. 이.현.우. 참 너다운 이름이다. 속으로 '팽,팽' 콧방귀를 뀌며, 안경을 다시 접어 넣고 나니, 두둑한 배가 얼른 자라고 독촉한다. 그래, 안그래도 잘거야. 에휴.. 이젠 나 괴롭힐 사람은 없겠지 뭐.... Chapter 1. 새 친구. 세 친구. End.=================================== Sweet. so sweeeeet!! 오늘 안올리려고 했는데.^^;(에파타님,이 이래저래 바쁘셔서. 비축분이 많치가 않아서요.). 감상방에 첫감상이 올라온거 보고, 기분이 좋아서 올립니다. 에파타님의 이메일주소는 jiguvy@hanmail.net 입니다. 감상,독촉, 격려메일 많이 보내주세요. 감상방에 쓰시면,제가 캡쳐해서 보내드립니다.^^ 그럼,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2) 나의 단잠은 정확히 47분만에 다시 누군가의 방해를 받기 시작했다. 47분이란 것은 이현우라는 좀 괴이쩍은 생물체가 알려준 정보이다. 양아치 자식이 뒤에서 의자를 또 팡팡 차대면서 담임왔다고 얼른 일어나라고 발광을 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부스스 일어난 나에게 대뜸 녀석이 '47분' 이랬던 것이다. "뭐?" "방금 네가 그랬잖아 '얼마나 잤나....?' " "......" 그래, 그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것을 혼.잣.말. 이라고 정의하고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자식한테 어떻게 설명한다지? 체....귀찮다. 정확하고 좋지 뭐. 지 잘난 맛에 살라 그래. "이번에 5반의 담임을 맡은.... 에.... 차태수 라고 합니다. 다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느정도 조용해진 교실에 울려퍼지는 목소리가 꽤 울림이 있고 듣기가 좋다. 젊은 사람인가? "담임을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교사 경력은 2년째입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다들 이해해주길 바래요. 나이 차이도 그렇게 많이 나진 않으니까 다들 형처럼 편히들 여기길. 난 격식 같은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젠 말 놓을게." 역시나, 햇병아리로군. 힘있는 목소리, 넘치는 의욕. 다 좋지만, 과연 얼마나 갈지 생각하니 입안이 씁쓸해진다. 특별히 교사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교사란게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들 쉽게 지치고, 쉽게 포기하고 마는 것일 테지. 언젠가 한번 초임에 내가 있는 반 담임을 맡았던 앳된 여선생은 결국 1학기를 채 못마치고, 매를 손에 들었다. 다정한 미소에 꽤 사람을 진실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학년이 올라갈 즈음엔 잘 웃지도 않았다. 그 아가씨도 많이 지쳐서 그랬겠지. 해도 해도 쌓이는 일, 일.. 사정도 모르고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고지식한 교장, 교감. 거기다가 교사라면 개껌으로 보는 대가리 큰 애새끼들. 나같으면 그짓 안한다. 안해. "너희들 가운데, 저래서 얼마나 갈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필시 있을거 같아서 하는 얘긴데..." 흠.... 좀 찔리는군. 하지만, 당신도 별수 없을걸... 분명히 내가 저 사람보다 훨씬 나이어리고, 경험이 없는 것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저런 선 생들에 한해서는 내가 꼭 머리꼭대기에 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래뵈도, 사람하난 잘 다룬다. 그 증거를 보여주지. 자, 질문 타임. 아무거나 물어봐라." 여선생이면 모를까, 저런 혈기 넘치는 남자 선생을 같은 사내새끼로써 반가워 할 놈이 어딨냐.. 에휴... 교실에는 순식간에 비협조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다들 심드렁하게 자기 할 짓 하거나, 먼산을 본다. 당황했을 선생의 면상을 상상하니, 좀 불쌍해졌다. 기대가 컸을 텐데... "선생님! 애인있으세요!!" "우우~~~!!" "예뻐요?!" "잘 빠졌어요?" 한 녀석의 돌발 질문에 교실 분위기가 다시 역전이다. 어느 개구진 놈이 선생 기죽일라고 일부러 물어보는 것이 틀림없다. 애들은 어느새 놀려먹을 생각에 들떠서 난리였다. 자, 첫 번째 고비입니다. 차선생님... 없다고 한다면, 엄청난 야유와 동시에 재미없는 선생으로 찍혀 인기 하락을 감수해야 할 것이고, 있다고 한다면....... 좀 낯뜨거운 질문이 대기되어있을텐데... "아직 없지만, 탐색 중이야." "에에이!! 시시해요!!" 하하...첫번째 관문 탈락을 축하합니다. 아니 오히려 잘된건가? 적어도 이상한 질문에는 시달리지 않을테니... "탐색중이라니까... " "그게 뭐에요.. 아이씨 짜증나." "지금도 탐색중인걸.. 여기 파릇파릇한 영계들이 널려있으니.... 거기 너! 그렇게 도발적인 표정은 하고 있지 말라고, 잡아먹고 싶어지니까...." 교실 온도 급강하.... 저들끼리 선생이 들릴만한 목소리로 씹어대거나, 웅성웅성 딴 얘기하던 아이들은 전부 입도 못다물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나라고 해서 뭐 예외는 아니고..... 동성취향의 떠벌이 교사라.... 아무래도 쉽게 익숙해질 만한 건 아니지... "다들 왜 그러지? 그게 그렇게 충격인가?" "....서.....선생님... 그럼 호...혹시... 호..." "호모냐고? 하하... 농담이었는데, 다들 순진하게 잘 믿는구나. 귀여운 것들..." 처음에 먼저 질문했던 녀석이 되려 놀라서 버벅거리며 질문하니, 선생이 되려 사람 좋게 웃으면서 살짝 부정한다. 순식간에 '순진한 아이들' 로 전락해 버린 방황하는 청소년 무리는 다행히 짜증내기 보단 '그러면 그렇지' 라는 식으로 웅성대고 있었다. 상황 돌아가는 걸 보고 있자니, 실없이 입가 웃음이 떠오른다. 사람을 잘 다루긴 잘 다루는 것 같다. 상상력 풍부한 청소년기 남학생에겐 충분히 공포스럽고 자극적인 대답이었으니까.... 보기보다 만만한 타입은 아닌거 같다. 꽤 요령도 있어보이고, 배짱도 있어보이고.... 어디 한 번 잘해 보슈.. "자, 그럼 청소 당번부터 정해 볼까? 일단은 내가 번호순대로 대충 짜둘테니, 불만있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와서 얘기하고, 사내놈들끼리 연분나서 꼭 같이 집에 가야겠다 면 그것도 조정해줄테니까 것도 와서 얘기해라." "푸헤... 야, 니네 어떻하냐.. 사귀는거 들통나겠다." "선생님!! 저는 죽어도 돌쇠씨랑은 못떨어져요. 좀 붙여 주세요.." 애들도 나름대로 선생이 재밌었는지, 주거니 받거니 꽤 괜찮은 분위기다. 전달사항 중간중간에 야한 얘기도 제법끼워 넣어서, 여자문제가 아니면 가능한 지각을하지 말라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담임시간은 끝이 났다. "자, 그럼 일단 반장이 없으니까, 인사는 생략. 딴데선 몰라도 매점에선 꼭 아는척 하는 눈치정돈 있겠지... 그럼 오늘은 이만 가봐라. 첫 날인데 수고했다." [우르르르....] 언제들 가방을 싼건지.. 선생 말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벌떡 일어나서 몰려 나간다. 휩쓸리는 것은 딱 질색이라 좀 여유 있게 나갈 생각으로 천천히 책가방을 챙겨들었다. 첫 날이라 수업도 없어서 가방이 널널하다. 막 나가려는데.... [턱....] "뭐야.." 누가 가방 뒷 손잡이를 확 움켜잡는다. 내가 느릿느릿 움직이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뒷통수를 땅에 내리꽂는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을 연출 할 뻔했다. "어딜 가시나, 도발적인 표정의 아.가.씨." "에?" 목소리를 듣자하니 양아치 놈이다. 대체 이게 무슨소리야. 아가씨? "아하하.. 바로 그 표정이로고.. 선생님이 뻑갈만도 하네.." 이번엔 송지훈까지 합세다. 다시 표정을 굳히고 저벅저벅 걸어가니, 왠 무거운 팔뚝하나가 어깨에 떡. 하니 걸쳐진다. 더 이상 싸우고 싶은 맘도 들지 않아서 한숨을 푹푹 쉬면서 녀석에게 상황 설명을 요구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른다? 또 한 시간 내내 퍼잤냐? 아닌데, 고개 빳빳히 들고 잘만 있더니만.." "안잤어. 선생이 호몬줄 알고 나도 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 "너 눈 나쁘지?" 바로 눈앞에 있는 네 녀석의 얼굴이 그저 살색의 고깃덩어리로 보인다...면 눈이 나쁜 거겠 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니, 킥킥대며 웃는다. 뭐가 우습다는 건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양아치 새끼는 그새 어딜 갔는지 안보이고, 수작부리고 있는게 송지훈이 하나라는 거다. 아까 시달려 본 바에 의하면, 둘의 말빨은 나의 말장난에 비할 바가 아니었 다. 잠귀신인 내가 잠을 다 설칠 정도니... "그럼 아까 선생 얼굴도 못봤겠네...크큭..." "그래. 그게 어때서? 혼자 실컷 웃어라, 나 간다." 퉁명 스럽게 쏘아주고 다시 나서니, 녀석이 입을 틀어막고 킥킥대면서 내 팔을 부여잡는다. 가증스럽게 입가리고 킥킥대지 말고, 차라리 그냥 미친 듯이 웃지... 왜 웃냐고 물어봤지, 웃지 말랬냐? 잠시후 어느정도 진정한 녀석이 숨을 고르고 있는데, 교실 뒷문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난다. "에헥..에헥.....송지훈!! 잡아왔어! 이 새끼, 도망을 가긴 어딜가..!!" "......콜록..콜록.." 흘낏 보니, 아까 사라졌던 양아치 놈이 누굴 끌고 왔나보다. 누구지? "..하악..하악.....분명히 집에 가야 된다고 얘기했을텐데..." "야, 너 진짜 빠르다. 내가 중학교 때 육상부였는데~ 100미터 몇초에 뛰냐?" 저 목소리는 분명....................... 이.현.우... 불쌍하다. 저 동문서답한테 걸렸으니.... 네가 아무리 한 냉정 하더라도 박진욱한테 걸린 이상 가슴앓이 좀 해야 할꺼다. 오늘 처음 만나 잠깐 얘기한 나만해도 답답해서 가슴치다 도는줄 알았는데...그나저나 얘는 또 왜 잡혀온거야? 이래 저래 감상에 젖어 있는데, 발버둥 치던 이현우를 송지훈까지 합세해서 내 앞으로 질질 끌고 온다. "자아~ 이렇게 해서 나의 best friends 후보 3분이 다 모였군." "와아~~!!" "난 빼달랬잖아." "......" 순 지멋대로인 송지훈의 발언에 양아치 새끼가 좋아라고 난리친다. 힘빠진 내 목소리는 그저 무시의 대상일 뿐이었다. best friends란 말에 이현우의 발버둥이 더 거세졌지만, 손쉽게 차단 당하고 말았다. 친하게 지낼라면 짝짜꿍 잘 맞는 니들 둘이 놀것이지. 왜 나랑 이현우까지 끌어들이는 건 지. 피곤하다... "이거 안놔? 집에 간댔지?" "자아.. 현우야. 이렇게 모인 것을 기뻐하는 너의 마음은 알겠지만, 잠시 양재성군에게 아까 상황을 설명해주고, 우리의 우정을 불사르도록 하자꾸나!!" "헛소리." "크흐흐.. 기다려 준다니 고맙지 뭐. 그럼 이것 좀 잠깐 빌릴게.." "...야!! 너!!" 이현우의 냉랭한 반격에도 굴하지 않고 느물대던 송지훈은 대담하게도 빌린다는 명목으로 안경까지도 강제로 빼앗아냈다. 그때까진 그래도 침착하게 말하던 이현우도 안경을 뺏기고 나니 악을 쓰면서 난리다. 그래, 황당하기도 황당하겠지. 나같아도 가만히 안 있는 다. 그나저나 안경은 어디에다 쓰려..........핫..... 왜 그걸 들고 나한테 오는데? "무슨짓이지?" 어느상황에나 무덤덤한 내 목소리. 녀석은 들은척도 안하고 어느새 내 얼굴에 걸쳐진 안경을 요리조리 얼굴에 잘 맞게 맞춘다. 어질한 느낌과 함께 눈앞의 살색 고깃덩어리가 송지훈의 그런대로 봐줄만한 면상으로 확 바뀌었다. "잘 보이냐? 돗수가 그래도 맞나본데..... 아까 선생님이 했던거 재현해 준다니까.." "......" 내가 꽤 성깔있는 놈 같았으면 마구 짜증내고 떽떽 거렸겠지만, 내 최고의 미덕은 다름아닌 무신경. 별 해 안 끼칠 거 같은데다 궁금하기도 해서 하는대로 그냥 얌전히 앉아서 보고만 있었다. "아까 선생이 했던 말 기억나?" "대강. 영계...어쩌고 했잖아. 교실에서 애들한테대고 먹어버린다니..... 의외였어." "그때 선생님이 했던 행동은?" "봤을 리가 없잖아.." "푸하하~! 얘 못봤대냐? 크크극..... 그래서 그렇게 얌전했구나.." "......" 떨떠름하게 대답하니 옆에 있던 박진욱도 뭐가 웃긴지 뒤집어지고, 날뛰던 이현우마저 얌전히 입을 손으로 막고 있는게, 꼭 웃는 듯 싶다. 양아치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현우 넌 또 왜그러는건데.... 갑자기 굉장히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중 '거기 너!' 란 대목을 말할 때 담임이 했던 리액션은 말이지, 바로 이거였어. " 하더니 실실 웃으면서 자신의 둘째 손가락을 내밀어 내 이마를 콕 찍는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싱거운 자식.. 피식 웃다가 생각을 해보니...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담임이 했던 말이 분명........ '거기 너! 그렇게 도발적인 표정은 하고 있지 말라고, 잡아먹고 싶어지니까....'였을텐데... 그중에서 '거기 너!' 가 가르키는게 나였다면....... 나였다면...... 크아아아악!!! 이런 변태선생!!!! 사람을 뭘로 보고!!!!! 요령있고 배짱있어보인다는 것도 취소고! 잘해보라는 것도 다 취소야!! 열이 치받쳐서 고개를 홱드니, 이 세 녀석들이 가관이다. 송지훈녀석은 교실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낄낄대다 못해서 "꺽꺽"하면서 요상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고. 박진욱은 도망갈까봐 현우를 놓지도 못한채, 대롱대롱 매달렸다가 기어이는 부둥켜안고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이현우..... 이젠 아주 도망가는 건 포기했는지 매달려 있는 박진욱은 내버려 두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아무 소리도 안낸다. 새끼야, 귀까지 빨개졌어. 차라리 쟤들처럼 웃어라. "그 선생이 나를 지명 했다는 근거도 없잖아." 잠시 일그러졌던 얼굴이 다시 무덤덤해 지는데는 얼마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내 딴에는 꽤 분위기 잡고 말한 건데, 셋은 잠시 웃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보더니 다시 자지러지게 웃는다. 뭐야, 이것들... "끄...끄윽..큭... 새...새꺄.. 너는 사람..키 가까운 당구 큐대로....지명을...잘못한다니 그게 말이......크하하..." "....푸켈켈..... 애들이.....일시에 다..크흑...너만 쳐다봤는데도.....모른다니....모른다 니....." "......양재성. 너 지명한거 맞아."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안경을 다시 벗어서 책상위에 탁 소리가 나게 올려 놓고, 재빨리 교실 문쪽으로 향했다. 솔직히 그렇게 녀석들을 추궁하고 싶진 않았지만, 기분이 안 상했다면 거짓말이었다. 저것들이 과연 오늘 처음 만난 것들이 맞는 것일까..... 내일 또 얼굴 볼 생각을 하니, 한숨이 푹푹 나왔다. "야!! 같이가!!!" "왜 또 나는 끌고 가는 건데.." "이현우!! 가만히 좀 있어!!!" 제길... 이것들은 왜 따라오는 거냐고.... 다시 어깨에 턱하니 얹어진 송지훈의 팔뚝을 보고있자니, 이젠 정말 해맑게 웃어주고 싶은 생각밖에 안든다. 지독한 놈들... "이번엔 또 뭐야." "사내 자식이 쌀쌀 맞기는... 이렇게 넷이 숫자도 딱딱 맞는데, 그냥 헤어져야 쓰겠어?" "그렇쥐~ 그렇쥐~" "이거놔!!!!!!" 쌍쌍이 맞았으니, 미팅이라도 하자구? 남자끼리? 어느새 양아치놈까지 어깨에 팔을 척하니 얹는다. 얘랑은 말할 기분도 안나. 불쌍한 이현우는 한손으로 거의 질질 끌려오고 있다. 양아치놈... 힘 한 번 더럽게 센가보 군. "하아... 그래. 니들 맘대로 해. 맘대로." 만사가 다 귀찮다. 그래, 잡아먹기야 하겠어. 어차피 집에가도 할 일도 없는데... 허락의 표시로 받아들였는지 송지훈은 또 신났다고 떠들어댄다. "좋았어!! 그럼 오늘 한 번 미친 듯이 놀아보자고!!" "크하하하~~!! 니들 둘! 오늘 안에 집에 들어갈 생각은 꿈에도 마!!" "난 아까 집에 간다고 그랬을텐데..." 뛰어가고, 잡아가고, 끌려가고, 따라가고.... 넷이서 쿵탕대는 소리가 복도 가득히 울린다. 뭐... 날 좀 놀려 먹긴했지만, 송지훈의 걸걸한 말투도, 양아치 박진욱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도, 현우 자식의 앵앵거리는 소리도 그다지 듣기 싫진 않다. 하아.... 첫 날부터 이런 요란한 놈들 이라니..... Chapter 2. 담임.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3) 여자들이 모이면 무엇을 할까? 그런거 내가 알고 있을 턱이 없지. 하지만, 사내놈들 여럿 모이면 특히 짝수로 모이면 무슨 짓 하는 지는 잘 알고 있다. 이걸로 날밤 까는 일도 비일비재다. 자고로 남자라면 몸이 부서질 때 까지 이짓이지 뭐.. 송지훈과 박진욱이 끌고 온 곳도 바로 이.것.을 하기 위한 곳이었고, 따라서 꽤 시간이 흐른 지금, 이 몸도 많이 부서져있다. 제길... 힘들어. 여기까지 오니 그 위대한 이현우도 잠잠이었다면 다들 믿으시겠는가. 술집? 하하... 아직 남자를 아직 파악 못하셨군요... 한 밤중에 공원한번 나가보면, 이거에 신들린 놈들 많다. 새벽이고 아침이고 심지어는 해뜨는 것도 모른다. 박카스 CF..절대 거짓말 아니다. 이쯤 되면 다 알았으리라고 보는데... "한 게임 더!" 그렇다. 농구. Basketball. "크하하.. 오늘은 졌지만, 다음엔 절대로지지 않을지어다... 오늘 형님이 몸이 덜 풀려서 너힐 봐준거야. 알아?" "씨발새끼, 너땜에 졌는데 어디서 지랄이야.. 입을 찢어놓는다. 내가 다시 너랑 한편 하면 성을 간다. 성을 갈아." 쳇, 둘다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서 할소리냐 그게... 그것도 진것들이.... 생각같아서는 발아래서 입만 살아 나불대는 박진욱, 송지훈 콤비를 짓뭉개놓고 싶었지만, 이몸도 가까스로 앉아있다 뿐이지 그다지 나은 형편이 못돼서 관두기로했다. 귀찮은건 딱 질색이야. 하긴, 방금전까지 미친 듯이 날뛰던 놈의 입에서 나올말은 아니지만... 하아......해는 애저녁에 대 져버리고, 달도 벌써 중천이다. '한 게임더!!' '야!! 이번 판만' .................해도 해도 뭐 그리 아쉬움이 남았는지, 넷중에 어떤 놈도 쉽사리 공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뛰고 달리고, 밀치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그러다 결국은 진기가 모두 빠져나갔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쓰러져 있다가도 한놈 뛰면 너도나도 비적비적 일어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달려들고 마는 것이다. 결국은 진욱이 자식 다리에 경련이 와서 못 쓸 지경이 되어, 잠시 휴.전.했다. 하하.. 결코 끝난건 아니다. 앞으로 좋으나 싫으나 1년을 한 반인데, 수꼴리면 아무 때나 오늘의 연장전인거지 뭐.....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숨쉴때마다 코와 입의 열기가 주변을 뜨겁게 달구고, 내 몸이 닿는 콩크리트 바닥, 벽, 가로등 밑둥 역시 나의 심장과 같은 고동으로 쿵쾅쿵쾅... 선명한 소리로 조용히 울린다. 이 느낌이 너무 좋다. 미치도록 좋다. 짜릿하다느니, 황홀하다느니 하는 그런 낯간지러운 표현은 해보지도 못한 첫키스에 갖다 붙이기 보단, 이런 때 써먹는게 더 적격이 아니겠어? 흐흐... 혼자 생각이지만 우스워서 입에서 바람빠진 소리가 새어나왔다. "킥킥...저 새끼봐라, 이현우랑 무슨 Feel이 통했는지 같이 신들려서 발광하다 드디어 맛이갔다. 변태냐? '흐흐...' 하고 웃게?" "그러게.?.... 미친새끼들... 인간 박진욱을 제치다니 니네가 인간이냐? " 그러는 너희는 참 인간 답게도 뛰어다녔다. 이봐, 난 고교생이 덩크하는 거 처음 봤어. 송지훈군.. 그러는 양아치 너는 얌전히 뛰어서 다리가 그지경이냐? 속으로는 말이 욱욱 올라왔지만, 하아...진기(眞氣)를 낭비해선 안돼지.... 무신경.무신경. "그럼 어쩌라고, 배까지 땡겨서 크겐 웃지도 못하겠어..." 그나마 줄이고 줄여 말한건데도 말끝이 허물어진다. 세상에나, 집엔 어떻게 들어가냐.. 한숨이 저절로 푹푹 나온다. 킥킥.... 그래도 재미는 있었으니.... 기분좋은 노곤함에 고개를 다리 사이에 묻으니 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땀방울이 또르르 구른다. 꽤 쌀쌀한 밤바람이 다시 쏴아아아... 꼭 콜라로 샤워하는 것 같다. 아아.... 또 졸려..... "으아악!!!!" 막 잠들려는데, 뭔가 차가운 것이 목뒤에 닿는 느낌에 소스라 치게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다리가 풀려서 털썩.... 뭐....뭐냐 갑자기.. ".....놀래기는... 자, 마셔." "......" 이현우... 줄려면 좀 얌전히 줄것이지 왠 심술이냐. 억양없는 목소리긴 했지만, 녀석이 꼭 즐거워 하는 것처럼 보여 좀 찝찝했다. 그래도 마실거 사다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손 끝에 닿는 차가운 느낌..... 그런거 음미할 새가 어딨냐? 목말라 죽겠는데... 빨리 따먹어야지... "킥킥... 자지러지기는...." "기집애냐?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놀랬잖아!!" 니네가 나 소리지르는데 보태준거 있냐? 좀 띠꺼운 기분으로 캔의 뚜껑을 따는데 갑자기 "억.." "으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쟤낸 또 왜저래? "이현우!!! 살인낼일 있냐? 어떤 미친 자식이 사람 머리에다 캔을 던져!!!" "야!!! 아까일 가지고 아직까지 치사하게!! 박깨질 뻔 했잖아." 크흐흐......샘통이다. 니가 모처럼만에 내 맘에 드는 짓을 하는구나. "다들 대가리 단단한가 테스트 해봤다. 음료수 씩이나 사다줬는데 말들이 많아.." 하고 냉철하게 말하더니 녀석들을 흙발로 밟아댄다. 새끼... 기운 다 빠졌는데 웃기지 좀 말아라... 흐억흐억... 한참을 이리저리 버둥대고 피하던 녀석들은 결국은 일어나 앉고 말았다. 멀찍이 낄낄대며 보고 있는데 세녀석 다 주섬주섬 내가 있는 쪽으로 온다. 그나저나, 이현우도 참 신기한 놈이다. 아까 농구 시합의 경위만 생각해 봐도 그렇다.. 집에 간다고 나랑 현우가 끝까지 우기자, 막무가내인 떨거지들이 농구해서 이기면 보내준다고 해서 시작한 거였다. 편을 가를 필요도 없었지 뭐.... 나도 한 농구 한다지만, 현우놈은 거의 미친 듯이 몸을 날리더니.... 연거푸 3판을 이겼는데도 '집' 소린 한 마디도 안한다. 하긴....집에 간댔어도, 저놈들이 저희들 이길때까지 보내줄 놈들이냐.... 아무튼 그러더니, 지금은 음료수까지 사온 것이다. 난 안 보이길래 집에 갔나보다 했지. 뭐... "무슨 생각하냐?" 송지훈은 또 내가 먼산 보는 줄 귀신같이 눈치채고 넌지시 캐묻는다. 다른 녀석들도 그렇지만 특히 이 녀석은 안지 12시간이 채 못됐다는 사실이 좀채로 믿어지지 않는다. 친화력 하나는 정말 수준급... 뭐라 대답하기도 껄쩍지근 해서 그냥 한 번 씩 웃어주고는 손에 들린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근데.... 이게 맛이 어째... 좀 그렇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내 음료수와 나머지 녀석들의 음료수를 비교해 봤다. "야, 이현우.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뭐가..." 나름대로는 꽤 목소리에 힘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별반 변화가 없었나보군. 이현우는 물론이고, 박진욱과 송지훈도 귀찮다는 투로 힐끔 쳐다본다. 이게 곧죽어도 지가 잘났다 이건가? "왜 나 혼자만 2% 고, 니넨 다 게토레이인데?" "키킥....." "푸하하하!!!!!" "크큭!! 이프로...크큭... 푸하하... 야, 이현우 너 정말 근사하다... 큭..." "뭐가 우습다는거야!!!" 내 어눌하게 묻는 어투에 셋다 멍한 표정으로 각자 손에 들린 음료수 캔을 주시하는가 싶더니 이내 온몸을 뒤틀어대며 미친 듯이 웃는다. 소리를 빽 질러봤지만, 내 졸린 듯한 목소리가 녀석들에게 위협이 될리 없겠지... 이현우... 끔찍한 새끼... 아무리 내가 무신경한 놈이라지만 손에 들려있는 '2%부족할 때', 그것도 '복.숭.아.맛'을 보고 있자니 안면근육이 다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다. 에이씨....관두자 관둬. 그냥 어쩌다보니 나한테 왔겠지. 저자식이 일부러 주기야 했겠어. 다시 평소의 무심한 내 얼굴로 돌아가서 자지러지는 놈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한숨만 푹푹 나온다. 참 재밌기도 하겠다. "왜 그걸로 사왔을거 같애?" "......네 녀석 속을 내가 어떻게 아냐." 어느정도 진정한 현우놈이 슬며시 물어온다. 심드렁하게 대답하니까 지들 셋이 '삐졌나봐..삐졌어..크큭..' '야, 진짜 화낸다..' 어쩌구 하면서 궁시렁댄다. 새끼들아, 다들려. "그거...있지. 여.자.애. 들이 좋아한다길래.....크극..." "크그겍겍!!! 커억.. 히히....여자애들...크큭..." "푸헤헤헤..... 야.. 배아파...배아파....끄윽..." 이.현.우 송.지.훈. 박.진.욱. 너희가 가만히 잘 있는 마른장작에 불을 지피다 못해 아주 휘발유를 들이붓는구나, 들이부어... 미친 듯이 웃는 녀석들을 향해, 바보 같이 "헤헤..." 웃어주니 다들 좀 찔리는지 움찔한다. 이미 늦었어, 새끼들아... 형님 빡돌으셨다. ".......야, 양재성.. 갑자기 왜 그래? 충격이 너무 컸냐?" "뚱하던 새끼가 왜 갑자기 쪼개고 난리야..." "우리가 좀 심했나?" 그럼, 심했고 말고... 나 왠만하면 먼저 안나서는 사람인데 말이야. 당황한 두 녀석과는 달리 이젠 아무렴 어떻냐는 투로 게.토.레.이를 홀짝거리는 이현우... 재빨리 몸을 움직여 옆에 있던 농구공을 발로 차서 녀석에게 넘겼다. [탱강...] 녀석이 맞았나 해서 좋아했는데.... 쳇, 반사신경 좋은걸. 게토레이 캔은 훌쩌기 저만치 던져버리고, 벌써 녀석은 자신의 면상을 노렸던 농구공을 손으로 캐치하고 있었다. "뭐야.." "뭐긴 뭐겠어? 도전을 했으면, 한 판 맞짱떠야지.. 왜? 자신 없냐? 여.자.애.를 상대로 혹시 질까봐?" "우우~~ 양재성 파이팅!!" "이현우!! 거절하는 건 아니겠지?" 진.다.는 말이 귀에 거슬렸는지, 녀석이 천천히 공을 튀기며 드리블을 한다. "너야 말로 후회하기 없기다. " "물론. 내가 지면, 여자애 취급해도 좋아. 대신 내가 이기면, 너도 여자애 취급 받을 각오 정돈 해두라고." "......" 녀석이 대답대신 공을 거세게 몰고 온다. 이제까지 뛴 것은 말짱 거짓말인 것처럼, 녀석을 따라가는 내 발걸음도 마냥 가볍다. 키를 따라 높이 점프하고, 공을 쫒아 몸을 날리고.... 나이스 슛! 나이스 디펜드! 옆으로 바운드 하는 척하면서 슬몃 페인트... 어느새 두 녀석도 각각 현우놈과 내편에 한 명씩 붙는다. "크흐흐.. 진쪽은 그걸 자르는 거야. 어때?" "씨발, 너는 없으니까, 애초에 불공정한 경기잖아." "저질새끼들..." "엇!!!" 슬렁슬렁 껴들어서 지들끼리 시비거는 사이에 재빨리 현우놈 편에 붙은 송지훈의 공을 빼앗아냈다. 이현우의 마크에 다시 양아치 놈에게 패스. 공을 넘기고, 잠시나마 한숨 돌리고 있자니 순간이지만, 집생각이 간절하다. 젠장... 이게 대체 내가 홧김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지... "양재성!! 공간다!! 어딜보고 있는거야!!" 모르겠다. 어디 해뜨기 전엔 끝나겠지... 흐흐.... 씨발놈들 어디 죽어봐라.... Chapter 3. Basketball. End ================================================ Sweet. so sweeeeet!! 에파타님의 메일주소는 jiguvy@hanmail.net 입니다.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4) "자.... 재성아, 얼른 따라해봐. '지.훈.아' .." 하아아..... 정말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쉽게, 저 송지훈 놈한테 약점을 잡혀 버리다니.... 그것도 몇 년지기 친구놈도 알아채지 못한, 아니.. 나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약점을 말이다. 나는 이 나이 이때껏 살면서 누군가에게 약점잡혀서 놀림 받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놀림 받을 꺼리 자체도 없거니와 워낙 무신경하고, 무관심한 성격이다보니 누가 놀려도 그저 시큰둥.. 결국은 놀리는 쪽이 지쳐서 떨어져 나가곤 했다. 그런데.... 지금 녀석의 말이 묘하게 내 신경을 긁는다. 양재성.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놀림이라니..... "그냥 한 번 불러주고 끝내는 게 좋지 않을까?" "흐흐.. 그럼 이것도 해봐라. 자, '진욱아~♡' 해봐" 이것들!! 도와주진 못할망정 옆에서 부추겨? 양아치 진욱이 놈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현우! 너는 나한테 큰소리 칠 군번이 아닐텐데... 내 입꼬리가 뒤틀려 올라가는 것을 보더니, 이현우가 순간이지만 움찔한다. 그러게 잘하지 그랬냐? "미.쓰.리. 당신 이름이라면, 몇 번이고 불러줄 수 있는걸?" "......" 앞뒤녀석이 미친 듯이 키득댄다. 뿌옇게나마 녀석의 얼굴이 확 일그러 지는 것을 확인하니 좀 만족스럽군.. 후후... 어젯밤 각자의 '성(性)'을 걸고 이루어졌던 대망의 농구시합은.. 아슬아슬했지만, 어.쨌.든. 나의 승리로 끝났다. 진욱이 녀석의 증언에 의하면 내가 시합이 끝나자 마자 거의 까무라치듯 잠들면서 현우녀석에게 해준 말이 바로 이거였다고 한다. "미.쓰.리." 무의식 세계의 경이로움..... 내가 한 말이지만 정말로 걸작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 호칭이 효력을 발했는지 이현우는 묵묵히 책상위에 올려져있던 정석책에 고개를 박았다. 그래,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그나저나, 이 눈 앞에서 끈질기게 달라붙는 이놈을 어찌하면 좋을지 걱정이다. 그렇다고 화같은건 한 번도 내본 적도 없는 내가 쪼잔하게 이정도 놀린다고 발끈해서 악을 쓸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매우 약이 오른다. 이녀석은...... 특유의 그 느릿한 음성으로 매우 얄밉게 자율학습 시간내내 이죽대는 것이 다. 자.기.이.름.을 불러보라며... 나긋나긋한 여자애도 아니고, 사내놈이 느끼하게시리..... 이른바 '양재성 사회성함양 운동'이라나 뭐라나....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야야!! 거기 지우개 좀 주워줘." "응? 어... 여기." "......" "양재성." "......?" "왜 이름을 안 부르냐?" !!!!!!!!!!!!!!!!!!!!!!!!!!!!!!!!!!! 녀석의 말을 듣고 좀 움찔하긴 했지만, 싱거운 자식... 어쩌구 하면서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송.지.훈... 이 자식이 나에게 이름 불러줄 것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그저 나답게 무신경으로 응수했으나 나중엔 귀찮아서 불러줄려고 보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면.................... 다들 믿어줄까? 생각해 보니, 사람을 이름으로 불러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사실, 내가 이름은 잘 안부르는 편이긴 하지만........ .......이 아니라........아예 안불렀던 것 같군.... 최근의 증거만 해도 아무리 만난지 오늘로 2일 됐다지만, 아직까지 이 세녀석들 중 한 녀석의 이름도 불러 본 기억이 없다. 그나마 오래된 친구들은 어설프게 성까지 붙여서 Full name으로는 몇 번, 정 급할때면 부르기도 했던 것 같지만, 평소 호칭은 "야" "너" "임마" "새끼"......기타 여러 가지 육두문자. 으음..........이젠 이름같은거 못부르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 상황을 보면 말이지.... 왜 그렇게 됐느냐... 고 묻는다면, 별다르게 해 줄 말이 없다. 사내놈들끼리는 이름대신 위에서 얘기했듯 육두문자가 많이 오고가고, 난 그게 좀 심했던 것 뿐이다. 거기다가 그다지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그게 어느 정도 쌓이고 나니, 다시 이름 부르기가 힘들어져버린 거겠지. 그래, 결국 궁극적인 이유는 단지 쑥스러워서다. 바보같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쑥스러워서...라는 것도 나름대로는 저 끈질긴 송.지.훈 놈의 이름을 입밖으로 내지 못할만큼 충분히 타당한 이유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은연중에 많이 무시당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겨져 버리기 일쑤 이긴 하지만... 그건 그거 나름대로 존중해 줘야할 사람의 감정 아닌가...? 사랑, 슬픔, 분노.... 이런 것만 감정이라는 거야.. ? 예전에 어떤 TV 프로에서 어떤 탤런튼지 뭔지하는 사람이 자신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십수년동안 사랑한다는 애정표현을 해본 적이없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쑥스럽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같이 출연한 사람들은 뭐 그런걸 가지고 그랬냐는 투로 말하며 웃었지만.. 그 심정. 난 이상하게도 이해가 가던데... 흠......역시 내가 이상한 건가? "야야.. 송지훈, 이제 그만하자. 슬슬 지겹다. 쳇, 뭐 떽떽대는 맛이 있어야 놀리지.. 이건 뚱..한게 니네는 그래라.. 나는 나대로 잘먹고 잘살테니..하는 식이니 원.." "......" 다행히 별로 얼굴로는 표시가 안 나나보다. 나름대론 꽤 신경쓰고 있는데도 양아치 저 놈이 그런 소릴 하는 걸 보면.. 좀 더 버티면 송지훈 저 놈도 제풀에 떨어지겠지 뭐... "그럼, 한 가지만 대답해 주면 이젠 이름 불러보라고 안 할게." "......" 이게 또 무슨 수작이냐... 생각보다 지훈이 놈이 빨리 물러날 태세인 것 같아서 좀 미심쩍기는 했지만, 자못 얼굴이 진지해 보여 망설여졌다. 허락을 해...? 말아...? "안 그러면 1년 내내 생각날때마다 들춰내면서 놀려대지 뭐... 나야 인내심빼면 시첸데...." "......" 심히 고민되는 과제다. 1년.내.내...... 안지 얼마 안돼는 놈이지만 왠지 저 놈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농구할 때 있었던 양아치 놈의 패스미스 마저도 꼼꼼히 기억해낸 다음 적절한 시기마다 수차례나 들춰내며 써먹었던 놈이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녀석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박진욱 그 놈도 미친놈이지만.... "뭔데... 말이나 해봐." "이름을 왜 못부르는 건데? 타당한 이유라면 그냥 넘어갈께" 아깐 대답만 해주면 안 놀린다더니, 이젠 타당한 이유우우? 그나마 저 질문자체도 내 맘에 안 든다. 하지만, 대답 안하면 1년까진 아니더라도 꽤 오래 시달릴텐데... 그냥, 이름을 불러버려? 잠시동안 녀석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녀석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을지를 생각하느라 머리를 감싸 쥐었다. 머리에 떠오른 두가지 답안. "송지훈." "쑥스러워서." 크으으으.... 둘 다 싫어. "야, 또 자냐? 왜 대답이 없어? 그냥 앞으로 두고두고 놀려먹는다?" "......" 이게 자는 사람의 표정이라고 생각하냐? 너는? 머리를 터질 듯이 굴려대면서도 별다르게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 내 낯짝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감싸쥐었던 머리를 풀고, 녀석을 보니 독촉의 기색이 역력하다. 에잇.. 모르겠다. 계속 버티다가 이제와서 이름 부르는 것도 우습지 뭐... "쑥스러워서." "........아, 그래...? 알았어. 이제 안 놀릴게." "......" 내 목소리가 무덤덤하게 나간것도 놀랍긴 하지만, 이젠 많이 익숙해진 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저....저....저 녀석은 대체!!! 상대의 말을 예의상 받아칠 때하는 억양으로 대꾸하더니, 그대로 자기자리로 홱 돌아가 버린다. 뭐... 시달리지 않게 된 것이 기쁘기는 하지만, 얼떨떨한데다가 수상하고 괘씸하기 짝이 없다. 뭐야, 아침내내 사람을 심란하게 만들더니, 고작 그 대답하나 들을려고 그랬던 거냐? ...................... 에휴.... 생각해봐야 뭘하냐. 쳇.. 잠이나 자야지. ===================================================== "너 오늘 빨간날이냐?" "뭐?" "여자들 그 날이냐고.." 몇교신지 모를 오전 쉬는 시간. 박진욱이 대뜸 물어온 말에 조금이나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기집애 취급받은 것이 기분 나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신경이 곤두서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친놈.. 아무리 그래도 무식하게... "평소에는 죽은 듯이 엎어져서 꼼짝도 안하던 새끼가 계속 뒤치락 대면서 수업을 방해하니까 그렇지. 쳇.... 모처럼 형님이 공부 좀 해볼라시니까.." 거짓말. 뒤치락 거린 기억 따위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왠지 불쾌해져 입에선 어느새 볼멘 소리가 흘러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지훈이 말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내가 그 놈 말에 신경쓰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그냥. 그럴 것 같았어." 뿌옇게 보이는 삐죽머리가 씨익 웃고는 저만치 천천히 멀어진다. 기분이 좀 묘했다. 보기엔 순 둔팅이 같이 보여도 분명히 이놈도 뭔가를 알고 하는 소리 일 것이다. 박진욱.... 은연중에 이녀석은 제멋대로라는 생각이 박혀있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의 손을 뒤틀어서 악수를 청하던 녀석의 행동을.. 내 표정을 읽어낸 걸 보면... , 생각보다 예리하고 속깊은 놈일지도 모른다. 아까전에도 그래서 송지훈을 슬몃 말렸던 거겠지. 어쩐지 좀 혼란스러운 기분이다. =========================================================== "양재성! 일어나봐." "......" 부스스 눈을 뜨니 송지훈이 점심시간이라고 법석이다. 어떻게 밥때에 인간이 잠을 퍼잘 수 있냐고.. 나야 먹는 것보다 자는 것이 먼저지만, 저 녀석에게 이해 시킬 수 있을까? "우린 오늘도 매점이니까, 미쓰리랑 잘해봐.." "송지훈!!" "흐흐... 진욱아! 가자!!" 이현우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울렸지만, 두녀석 다 들은 척도 안하고 우당탕탕 교실을 나섰다. 세 녀석이 서로 불러대는 호칭이 왠지 귀에 거슬려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냥 일상적인 대화인데... 이상하게 이름을 부르는 부분만 또렷하게 울린다. 이게 다 저 바보 같은 송지훈 자식 때문이야!! 이현우도 공범이라는 생각에 녀석을 홱 째려봤지만, 별 반응 없다. 그래, 내 딴에나 째려보는 거지 뭐.... 오늘은 책상을 돌려 놓고 먹을까? "저기..." 핫.. 이현우가 돌아보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굉장히 어지럽고, 답답하다. 이 녀석도 내가 이름을 못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어떤 호칭으로든 부를 수가 없다. 그 간 이름 대신 칭해왔던 각종 대명사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얘는 뭐라고 생각할까? 이름도 못부르는 바보라고? ".......뭘 그렇게 멍하니 생각해? 밥이나 먹자." 억양없는 녀석의 목소리에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내가 괜히 예민한거야. 쳇... 17년 살다보니 별일이 다있군... 예민이라... ================================================= 어색하다. 세 녀석이 주변에서 마구 떠들어대는데, 뭐라 대꾸를 할 수가 없다. 아까부터 송지훈, 박진욱, 이현우.... 이름들만 머릿 속을 빙빙 돈다. 어제까지만해도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던 것이 이제와서 왜 이 난리인건지....... 쿡... 사실은, 정말 사실은 애써 부인하고 있긴 하지만, 이유를 알 것 같긴 하다. 쑥스러워서 이름도 못부르는 바보같은 자식이라고, 그렇게 여겨지는 것이 싫은 것이다. 차라리 아까 쑥스럽다는 얘기도 하지 말 것을.. 그냥 다 무시해 버릴 것을.. 홧김에 말해버린 진심... 덕분에 머리가 새까맣게 썩어들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까지 된 이상은 앞으론 이름을 부르고 싶어도 못부르겠지. 전보다 더더욱 쑥스러울 테니까... 결국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는 거냐? 하하... 이게 다 뭐냐. 필시 저 녀석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을텐데... 지레 짐작하고, 고민하고.... 제길!! 제길!! "재성아, 웃기지 않냐?" "......" 동조를 구하는 말에 벌써 세 번째로 얼굴을 찡그렸다.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없지만, 반사적으로 좁아지는 미간.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뚝 끊는가 싶더니 뿌연 형체가 내 팔목을 채간다. "뭐....뭐야!!" "잠깐 나 좀 보자." 송지훈. 사실, 이녀석이 잘 못한 것은 없다. 사내 놈들끼리 놀려먹고 이죽대는 거... 흔하디 흔한 일이지 뭐.... 그렇지만, 솔직히 원망 스럽다. "왜 그러냐? 아까 내가 놀린 것 때문에 그래?" "......" "임마. 아까는 반응이 없어서 사람 무안하게 만들더니, 이젠 또 그걸로 분위기 잡냐?" "......" "아무 반응 없길래, 괜찮은 줄 알고.. 나도 그만 놀릴려고 물어본 거였어. 쑥스럽다....고 생각할줄은 몰랐다." [퍽....] 녀석의 턱이 홱 돌았다. 씨발새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란 말이다. 사람을 그렇게 병신새끼 취급하지마. 뒤에서 불러대는 녀석의 목소리를 무시한채 휘적휘적 다시 교실로 걸어 들어왔다. 책상에 엎드려 좀 진정을 하고 나니, 내 꼴이 더 우스워 졌다는 것이 비로소 생각난다. 하하... 이제 1년이 같은 반인데, 앞으로 어떻게 저 면상을 보냐? 저 녀석도 이젠 나같은거에 정내미가 뚝 떨어졌을텐데..... 아이가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크게 꾸지람을 받을때는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한다. [이대로 내가 죽어버리면, 이대로 저 창문밖으로 뛰어내리면 엄마는, 아빠는, 혹은 선생님은 죽을때까지 나를 혼낸 것을 후회하며 괴로워하겠지.] 유치하게도 내가 꼭 그짝난 것 같다. 답답하다. =============================================================== 첫 체육시간. 저번 체육 시간에 다른 반에 누가 다쳤다나 어쨌다나해서 체육선생은 오지 않았다. 덕분에 자유체육이다. 축구를 한다느니 농구를 한다느니 아이들은 저들 끼리 구령대에 조밀 조밀 모여서 웅성댄다. "재성아! 너도 농구할꺼지?" "......안해." 어깨에 얹어지는 양아치 놈의 손을 매몰차게 탁 쳐냈다. 의아해 하는 듯 싶더니, 그냥 가버린다. 박진욱도, 이현우도... 대하기 껄끄럽다. 천막 지지대에 어슷하게 기대어 서 있자니, 조금 떨어진 구령대 앞턱에 송지훈이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왠지 위태로운 느낌에 불편한 마음에도 눈이 조금 오래 녀석에게 머물렀다. 그런데 녀석의 손이 난간에서 살짝 떨어지는가 싶더니, 동시에 지나가던 녀석이 송지훈을 살짝 스친다. 그리고 그대로 뒤로 휘청?!!! "송지훈!!! 지훈아!!!!" 씨발새끼. 왜 그런데 앉아서 지랄이야. 재빨리 달려서 난간 아래를 내려다 봤다. 어디 부러진거 아닌가? 돌머리 새끼, 머리같은데는 멀쩡하겠지?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뛴다. "아야야...." "휴....." 아.... 이런, 제길... 송지훈 놈이 두텁께 깔려있던 매트리스 더미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요행히 아까 체육시간에 쓴 것을 그냥 아래 뒀었나 보다. 씨발 새끼, 너 땜에 명이 3년은 줄었을거다. 속으론 욕을 바가지로 해댔지만, 일단은 한숨부터 나왔다. 그런데, 왜 저 녀석... 날 빤히 보는거냐.. 앗....맞다. 순간, 아까 녀석과 껄끄러웠던 상황이 다시 생각 나면서 방금 달려오며 내 입에서 튀어나갔던 말이 떠올랐다. ....Shit! 이 녀석이 이제 어쩔까? 또 놀리려나? 앞으로의 상황을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답답하다. "왜?" ".....?" "양재성.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재촉하는 듯한 녀석의 말투에 그제서야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덤덤한 녀석의 표정에 긴장하고 있던 나 자신이 우스워진다. 그래, 맞다. 까짓거 이름 한 번 불렀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걱정 이었을까? "..........씨발놈. 죽었는 줄 알고 좋아했더니 아주 말짱하구나?" "크큭....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지.." 녀석이 킬킬거리는가 싶더니 난간에 걸쳐져 있던 내 몸이 순간 번쩍 들린다. "뭐!! 뭐하는 거야!!" [털썩...] 콜록...콜록... 젠장. 이 먼지들.. 무식한 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높이에서 사람을 끌어내리냐? 꿈지럭거리면서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송지훈이 그 거구로 덮쳐온다. "으윽.. 무거워. 제길... 뭐하는 거야!!" "흐흐... 어디 놀렸겠다. 아주 으스러뜨려주지.." 굉장히 불길한 예감에 빨리 몸을 빼서 도망가려는데 녀석이 홱 끌어당기더니 아플정도로 꽈악 끌어앉는다. 씨발놈아!! 정말 으스러지겠어!! "대낮부터 학교에서 강간이라니..... 과연 우리 나라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박진욱!!! 보지만 말고, 얼른 이자식 좀 떼어내란 말이야!!" "원래 치정싸움에는 끼지 않는 것이 예의야. 어디 잘해봐라, 양재성." "이현우!!!! " 어느새 샌드위치처럼 나를 깔아뭉개는 세 놈들.. 몸은 눌려서 갑갑하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꽉 막힌 것 같은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다. 쑥스러워서... 애정표현을 못했다던 그 탤런트의 마지막 말이 불연 듯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렇게 얘기 못했던 것을 정말로 후회한다고... 어쩌면, 쑥스럽다는 감정을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은,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정말 죽을 것 같은 기분까지들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하아.... 어쩐지... 조금은 어른이 된 기분이다. Chapter 4. Name. End====================================================== Sweet. so sweeeeet!! 에파타님의 메일주소는 jiguvy@hanmail.net 입니다.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5) [퍽..] [짝..] "이걸 못풀면 어쩌겠다는 거야!! 어? 비싼돈 쳐들어가며 학교는 왜 나오냐? 대학은 어떻게 갈래?" 또 시작이다. 저 미친개. 애를 팰꺼면 회초리라도 들고 다니던가.. 이제는 완전 너덜 너덜해져 버린 출석부를 홱 팽겨치더니, 이젠 쓰레빠를 벗어들고 면상을 후려치기 시작한다. "이 새끼 옷 꼬라지 하며, 머리 꼬라지 하며... 이거 뭐야? 무스 쳐발른거지?" "......" 진욱이 놈 머리채가 이리 저리 휘어잡히는 것을 보니, 괜히 나까지 머릿속이 저릿저릿 한 것 같다. 저 녀석, 첫 날 복장 검사 때 찍힌 이후로 매 수학시간마다 저꼴이다. 수학은 애를 아주 작정하고 미워하기로 한 모양인 듯 진욱이 일이라면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았다. 오늘만 해도 2 문제를 연달아 녀석이 척척 풀어내자, 어디서 교과서에서도 안 나오는 문제를 끌어다가 저리 패고 있는 것이다. 참... 어이가 없어서... 진욱이 저 놈이 얼마나 박터지게 공부하는지 알고나 저러는 건지... 저절로 입안에 쌍소리가 고인다. 하지만, 교사 자체를 내가 우습게 알고 욕한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내가 욕하고 있는 것은 선생이란 직업을 가진 저 빌어먹을 자식 뿐이 다. 어디에나 정말 나쁜 놈들이 하나씩 있듯이 교사란 직업에도 정말 드물긴 하지만 이런 인간말종들이 꼭 하나씩 있는 것이다. 반 애들 모두 입 꽉 다물고 조용하지만, 다들 속으로 욱하는 심정일 거다. [차라리 죽을때까지 맞더라도 내가 잘 못한 일로 정당하게 처벌 받는 것이 낫지, 이런 말도 안돼는 작자의 감정적인 폭력에는 절대 휘둘리고 싶지 않다.] [차라리 몽둥이로 백대를 맞았으면 맞았지, 사람 이름 적으라고 있는 출석부나 발에 신겨지는 쓰레빠짝 따위는 절대 사절이다.] 등등... [짝....짝....짝....] 후려치는 소리는 갈수록 장난이 아닌데, 진욱이놈 신음소리 하나 안낸다. 저러면 더 맞는다는 것을 녀석도 필시 알고 있을텐데.... 말로 안돼니까 몸으로라도 개겨보겠다는 거냐. 무모한 새끼. 뭐, 쪼금 멋있어 보이긴 하다마는... "복도에 나가서 손 들고 서있어!!" 소리도 안내는 놈을 때리기도 이젠 질렸는지 미친개가 씩씩대면서 교실 문짝을 가르킨다. 꾸벅 인사를 하고 녀석이 문을 미는 소리가 교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 상황에선 숨소리라도 잘 못 냈다간 다시 쓰레빠 세례까지는 아니더라도 박진욱과 복도에서 팔근육을 단련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나 저나, 이번엔 또 누굴 걸고 넘어지려나.. 오늘이 12일 이니까... 2번대가 개박살 나겠군. 내 번호는 17번. 수학이 취약 과목인 나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릴 수 밖에 없었다. 미친개는 단순해서 다른 번호대는 안 시키니까 뭐... "야, 반장 나와!" 흐음...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은가? 왜 안 하던 짓을... '끼기긱' 하고 앞자리에서 유난히 크게 의자끄는 소리가 들린다. 잘해봐라, 송지훈. 크흐흐.. 반장인 네가 이정도를 못해서야 쓰겠어? "못 풀겠는데요." "뭐어?" 교탁까지 어기적 어기적 거구를 이끌고 가서 고작 한다는 소리가... 임마, 분필이라도 한 번 잡아야지 그나마 덜 얻어터지지.. 개기는 듯한 녀석의 말투에 친구라기 보단 웬수같은 놈이지만, 나까지 조마조마 하다. "나가서 손들고 있어." 어휴, 놀래라. 또 쓰레빠가 작열하는 줄알고 눈을 꿈쩍꿈쩍하고 있었는데, 미친개도 반장놈까지 줘패기는 좀 그랬는지 못마땅한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교실 문짝을 다시 한 번 가르켰다. 쨔샤 넌 운 좋은 줄 알아. 지금 이 상황에서 깡자랑 하냐? 그럼, 다음 타자는 누구 실까? 반장 시켰으니까, 이번에는 십중 팔구.. "부반장 나와." 이현우. 니가 총대를 지는 구나. 공부 잘하는 네가 아니면 누가 이 문제를 풀어 미친개의 한을 삭여 주겠니.. 녀석이라면 저정도야 껌이겠지 뭐...정석책도 벌써 다 한 번 훑고 입학했다는데. "모르겠습니다." 어랍쇼? 이놈 말투는 송지훈의 개김성 억양을 뛰어넘어 '알아도 안풀어. 새꺄..'라는 느낌이 거의 역력하다. 송지훈놈처럼 교탁까지라도 나가던지.... 제 자리에 삐딱하게 서서 한다는 소리가.... 에휴.. 나도 모르겠다. 선생들 사이에서도 공부 잘하는 범생이라고 공공연하게 소문이 나 있던 놈이라 미친개도 황당했던지 뻐끔뻐끔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밖으로 나갈까요?" "그....그래라.." 선생의 우물쭈물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쌤통이다. 드르륵... 다시 울리는 교실문 소리. 아무리 생각해도 이 놈들 아주 작정하고 수학한테 개기기로 한 모양이다. 둘다 저 문제를 못 풀 놈들이 아닌데... 나만큼 수학은 젬병인 양아치 놈도 처음 접하는 패턴이라서 답을 정리 못했을 뿐이지, 풀이는 칠판 가득 꽤 이끌어 놨다. 내가 보기에도 좀 꼬아놓긴 했지만, 어떻게 풀어보면 풀릴 것도 같은데..... 쳇... 그래, 니들끼리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고... 불의에 맞써 싸우려무나.. 이몸은 귀찮아서... 몸 사리련다. 세 놈이나 교실밖으로 나가고 나니, 가뜩이나 썰렁하던 교실에 완전 얼음집 짓게 생겼다. 하지만 나름대로 애들끼리는 사소하나마 수학이 한 방 먹은 것에 기묘하게 분위기가 들떠있다. 이 번에 걸리는 놈은 또 누구려나.... 이젠 저 문제 풀면 수학한텐 무사해도 애들한테 맞아죽을 분위기 인걸? "거기 혼자 멀뚱히 있는 놈! 너 나와!!" 혼자 멀뚱히? 우리반은 짝수라서 '버림받은 놈의 자리' 같은거 없는데.... 왠지 얼굴이 따가워 둘러보니, 다들 나만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 불길한 느낌에 둘러본 주변... 앞자리, 옆자리, 뒷자리 까지 깡그리 비어있다. 씨발놈들... "안 나오고 뭐해." 쳇... 그래, 이 정신적 지주인 형님이 없이 너희같은 오합지졸이 뭘하겠니... 비척비척 일어나 교실 뒷문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이씨... 피곤한데.... "야!! 야! 너 어디가!!" 문을 빼꼼 여는데, 미친개가 또 짖어댄다. "저기... 그 문제 모르는데요?" 교실 안에서 조그맣게 나마 킥킥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웃긴 왜 웃냐, 씨발놈들아. 하기사, 내 목소리지만, 정말 티미하기 그지 없다. 선생은 위 아래로 나를 한 번 훑더니 울그락 불그락 하면서도 고갯짓으로 나가라는 시늉을 한다. 그래, 내가 선생이라도 나같이 무기력하게 생긴 놈은 때리기 싫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때릴데도 없게 생긴 놈이란 소릴 꽤 들어왔는데 이런 땐 좀 편리하다. 잘 못 때렸다간 큰 탈 날까봐 지레 겁먹고 물러나니까... "키킥...." "크극..." 그게 환영인사냐? 내 얼굴 보자 마자 낄낄대는 녀석들의 면상을 갈겨 주고 싶었지만, 귀찮아.. 쳇... 복도 바닥에 무릎을 꿇으니 돌바닥에서 찬기운이 올라오면서 다리가 시큰시큰 한다. 아아... 내주제에 이런 놈들한테 무슨 지킬 의리 같은게 있다고.... "야, 나야 모르는데다가 찍혀서 여기까지 끌려나왔다지만, 너희 셋은 줄줄이 사탕처럼 왜 또 따라서 끌려나오는 건데.." 박진욱이 자못 화난 척하며 비아냥 댄다. 하지만 눈에는 웃음이 한 가득이다. 반갑기도 하겠다. "흐흐.. 이몸이 원래 의리빼면 시체지 않냐.. 우리 진욱이 추운데 마음고생 심할까봐 몸소 이리 찾아왔지." "송지훈,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라. 문제를 원래 못 푼게 아니고?" "이현우! 그러는 너는 풀줄 아는 놈이 왜 기어 나왔냐?" 에휴우... 서로 그렇게 약점 따먹으면 재밌냐? 손 들고 있으라는 미친개 말은 전부 개무시한채 저들끼리 툭툭 치고 시비다. ".....분필가루 손에 묻는게 싫었을 뿐이야." "크큭... 크게게..." "....부..분필가루?" 써....썰렁한 새끼... 변명을 하려면 좀 제대로나 할 것이지, 기집애 같이... 흐흐.. 뭐 미쓰리는 별 수 없는 건가? "그러는 너는 왜 기어나온 건데?" 흡. 이현우의 음산한 목소리에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의리파잖냐..... 이런 식으론 입이 찢어져도 얘기 못한다. 으으으으... 뭐라고 하지? 에이, 모르겠다. "......차가운 돌바닥이 허리에 좋다길래." "푸...풋...크흐흑...." "끄...끄긱...." "콜록..콜록..." 헤유... 웃어도 할 수 없지. 내가 생각해도 웃긴데.... "이 새끼들 벌서라니까 뭣들하고 있는 거야!!!!" 문이 벌컥 열리면서 미친개가 호통을 친다. 어느새, 묵묵히 손들고 제자리. 벌 잘 서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는 눈초리로 다들 선생을 올려다 본다. "흠흠.. 한 시간 끝날때까지 그러고 있어." 쳇... 눈치없기는.. 방금 손든건데. 무안한 듯 선생의 얼굴이 다시 교실 문안으로 사라지자, 네 명 모두 다시 키득거리기 시작 했다. 생각해 보면 참 유치하기 짝이 없다. 부당한 선생한테 저항한다는 처사가 고작해야 때려도 이 악물고 소리 안내기, 무슨 말을 하든 반응 안 하기, 뭐 시켜도 개기면서 벌서기, 뒤에가서 뒷담화 까기, 거기서 좀 더 열받으면 화장실에 라커로 욕 써놓기....정도라니... 뭐... 그래도 딴에는 우리가 꼭 독립투사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또 왠지 모르겠다. 에휴.. 결국 발버둥 쳐봐도 나는 열일곱 살이다... 이건가? 교실 앞문을 향해서 가운데 손가락을 펴보이는 송지훈의 쪼잔한 행동에 어느새 나도 동참하고 있었다. Chapter 5. Resist. End============================================ Sweet. so sweeeeet!! 에파타님의 메일주소는 jiguvy@hanmail.net 입니다.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1) "자, 이거 보이냐?" 지훈이 자랑스럽게 들어올린 물체에 그의 Best friend를 포함한 반 아이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야!! 그게 뭐야! 냄새나는 쓰레빠짝을 왜 들고 난린데!!" "지저분한 새끼. 꺼져라!!!" 거의 흥분상태에 몰입한 진욱과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무심하게 쏘아붙이는 재성을 가볍게 무시한 지훈은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흠흠... 자, 다들 조용히 하고 내 얘기 좀 들어보라고.. 이 신발로 말할 것 같으면...에.. 내가 1년동안 신을 쓰레빠...라는 거다. 만약에 나를 반장으로 밀어준다면, 다른 거창한 약속 같은건 할 수 없지만, 이 쓰레빠 하나 닳아 없어질 만큼 열심히 뛰어다닐 자신은 있다. 이상!" ----------송지훈 제적 46명중 25표 득표. 반장 당선.----------------- 현우군. 지친 표정으로 긴 한숨을 쉬더니, 정말 짧게 한 마디. "하아..... 저 쓰레빠가 영 못 미더웁거든 날 찍던지..." ----------이현우 제적 46명중 12표 득표. 부반장 당선.---------------- 참고 사항. 후보 4명. 2명 기권. Episode 1.반장선거.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6)-1 [딱딱...] "안녕하십니까? 大의성고 방송반 YBS입니다!!" 아이씨...뭐야.. 한참 잘 자고 있는데 깨우는 저 놈들은.. 쩌렁쩌렁 교실을 울리는 한 두 사람도 아닌 여러놈의 목소리에 어지간한 나도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실 전체가 갑자기 난입한 무리에 어리둥절 하면서도 색다른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기대에 순식간에 조용해 졌다. "다들 잠시만 자리에 앉아 주시겠습니까?" 깍듯히 경어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뿌옇게 보이는 명찰 색깔로 보아 선배임이 분명하다. 애들도 그정도 살펴볼 머리는 있는지 다들 자리에 기어가 앉았다. 으음... 다들 키도 크고 컴컴하게 생겨서는 일렬로 쫘악 칠판 아래 서 있으니 꽤 분위기가 사는 것이 좀 그럴 듯해 보인다. 방송반이라고? "아, 감사합니다. 시간 많이 뺏지 않겠습니다. 다른게 아니라, 저희 YBS방송반에서는 이번 2001학년도 신입생을 맞아 새로운 신입 부원을 뽑습니다." 방송반이라서 그런지 나서서 주도하고 말하는 놈..아니 선배인가? 아무튼.. 목소리가 약간 하이톤으로 울리는 것이 듣기가 나쁘지 않다. 써클 PR이라... 그리고 보니 고등학교에는 써클활동이란게 있었지?. 음.... 왠지 중학교와는 사뭇 다른 신선한 분위기에 별로 관심있는 써클은 아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참가 자격은 이번 신입생은 누구나 할수 있고요. 1차로 자기 소개서를 받습니다. 3월 17일까지 2학년 7반 신기석에게 내주시면 됩니다." "아, 이 사람이 저희 방송반 회장입니다. 잘 쏘기로 유명하죠.." "와하하하~!!!!" 중간에 누가 끊고 들어간 말에 아이들 모두 즐거워하며 난리다. 그래, 잘 쏘는 선배. 조오치...다좋지만.... 이젠 다시 잠이 슬슬 몰려 오는 것 같다. 결국은 조금 더 이야기를 듣다가 다시 책상에 고개를 박았다. 그 뒤론 뭐 6차까지(;;;) 시험이 있다든가, 방송반이 하는 일이라든가.. 혜택이라든가를 계속 얘기 하는 것 같은데.. 으음......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야! 또 자냐? 어휴.. 이걸 확 죽여버릴 수도 없고, 지겹다. 지겨워.." "그냥 자게 냅두지. 피곤한가보다." "피곤? 웃기지 말라그래. 이 놈 농구할 때 날뛰는 거 못봤냐? 야!! 일어나!! 밥 먹어야지! 니가 돼지냐? 밥처먹고 잠만 자게?" 시끄러워... 그래, 나 돼지 아니니까 밥 안 먹고 그냥 퍼질러 잘란다. 다들 저리 좀 가... 옆에서 양아치놈과 송지훈이 떼덱대는 바람에 골이 지끈지끈 울린다. 나랑 같이 먹는 현우놈은 냅두라는데 왜 니네가 난리냐고!! "으아악!!!" 가만히 버티고 있을라니까 목뒤로 뭔가 찬게 화악 닿는다. 그리고 그대로 와이셔츠 안으로 쑤욱?! "미...미친 새끼.. 뭐 집어 넣은거야?" "지우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말하는 현우놈을 보고 있자니, 화내는 것은 에너지 낭비밖에 안 될 것 같다. "어휴.. 일어나셨냐? 대단한 일 하셨습니다. 참 대단하셔요.." "평소엔 무뚝뚝한 새끼가 꼭 이런 것만 닿으면 자지러진다니까..." "오늘은 또 누가 집어넣었냐?" 한 두번도 아니고... 이젠 신경을 좀 굳히기로 하고 녀석들을 둘러보니 지훈이 놈이랑 진욱이 놈이 슬몃슬몃 현우 자식을 쳐다보며 꽁무니를 뺀다. 참.. 어이가 없어서.. 그냥 자게 두자고 할땐 언제고 지우개를 또 집어넣냐.. 한숨 밖에 안나온다. "그럼 우린 이만! 밥 좀 많이 남겨둬라!!" "이따 보자!" 시끄러운 녀석들이 사라지고 나니, 주변이 조용해 진다. 하긴 나도 이현우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니... 본의 아니게 저놈들에게 말대꾸를 해주다보니 요사이 떠벌이가 된 듯 하지만 말이다. "밥 먹자." "어." 이 말 이후로 또 다시 대화 단절이 이어졌다. 녀석이 싸온 김말이를 오물오물 씹고 있자니 아까 써클 PR이 떠올랐다. 방송반이랬던가? 잘은 못 들었지만 뭐 설명 내용을 떠올려 보면 괜찮을지 싶다. 나도 써클같은거 해야 하나? 솔직히 안해보고 싶다면야 거짓말이겠지만,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굳이 들고 싶은 부가 있는 것도 아니니 뭐라 딱히 말하기가 곤란하다. 이래저래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바로 눈앞에서 깨작거리고 있는 이현우가 눈에 들어왔다. 얘도 써클같은거 할까? "너도 써클 들꺼야?" "어." 바로 나오는 대답에 좀 의외긴 했지만 뭐 꽤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이 놈 정도면 왠만한 써클 회장직도 꽤 모양새 있어 보일텐데.. 그럼 무슨 써클을 들려나.... 좀처럼 관심사나 사적인 얘기는 잘 안하는 놈이라 궁금하다. "무슨 써클?" "방송부." 으음.. 그런 쪽으로 흥미가 있는 놈이었나? 나도 모르는 새에 이상한 눈길로 녀석을 빤히 보고 있었나보다. 녀석이 밥을 먹다말고 물어온다. "왜?" "방송일을 좋아하는가 싶어서." "그런건 아닌데.." "그럼..?" "주번이 면제더라고." "..........혹시 그게 이유의 전부야?" "선배가 잘 쏜다니 그것도 좋고." ".........그래서 그게 다냐고..." "어." "......" 다시 대화단절. 하아.. 정말 알 수 없는 놈이다. 생긴건 복잡 미묘하게 생겨가지고, 생각하는건 이럴때보면 완전 단순빵이라니까... ..... 뭐, 한 두 번 겪는 일도 아니고 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다시 밥그릇으로 고개를 박았다. ========================================================= [탁.] [탁.] 또 오늘도 거의 동시에 식사가 끝났다. 쳇.. 이 놈은 이거 하나만 마음에 든다. 아무튼 난 식후의 단잠이나 즐겨야지.. 어휴 졸려.. "양재성." "......" 왜 그러냐는 눈초리로 쳐다보니 녀석이 물끄러미 내 등판을 가르킨다. "왜? 뭔데 그래?" "내 지우개." "......" 잊고 있었던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집요하게 그걸 꼭 지금 가져야 겠냐? 나름대로는 꽤나 큰 항의의 뜻을 담아 쳐다봐 주었지만.. 그래, 뭐 내 얼굴에 무슨.... 졸린 얼굴로나 안 보면 다행이지. 뚱하니 서있는게 저번 '이물질 사건'(?) 때처럼 막무가내다. 차라리 빨리 주고 말자. [철컥.철컥.] 쳇.....이놈의 벨트는 오늘따라 유난히 안 풀린다. 스르륵 구르는 지우개의 느낌에 몸을 움찔움찔하면서도 간신히 잡아 녀석의 손에 쥐어줬다. 옷을 추스르면서 현우놈을 흘깃 보니 지우개를 꼬옥 잡고 꼭 기집애마냥 해사하게 씨익 웃고 있다. 뭐야.... "뭘 쪼개는건데... 미쓰리.." "아니. 그냥. 지우개가 따뜻해서." "......" 아까 단순빵이라고 한거 취소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자식은 이빨 사이에 낀 거 빼준댈 때도 그렇고, 2%때도 그렇고,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행동패턴을 가진 놈이다. 참..나...내가 그럼 돌덩이냐? 엄연히 체온이란게 있는데....! 뭐, 쏘아주고 싶긴 하지만 일단은 잠부터 자고.... "야!! 현우야!! 재성아!!! 빅뉴스! 빅뉴스!" 아아.. 제발 밥 좀 천천히 먹어.. 부탁이니.. 니넨 간식 같은것도 안먹냐? 모른체하고 죽은 듯 엎어져 있자니 진욱이 이놈이 '지우개 어딨냐?' '그냥 손을 넣을까?'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나 일어났어. "뭐야." "크하하하!! 밴드부 포스터 붙었다아!! 이 학교에도 밴드부가 있었다니.. 역시 여길 오기 잘 한 것 같아.." "으음. 여기 말고 다른 학교도 다 있지 않나?" "아무튼!! 나 보컬시험 볼꺼다!! 자, 다들 뭐해? 이 형님 응원 안 하고." "보컬은 하고싶다면 개나 소도 받아준대?" "기쁘지들 않냐? 우리학교 축제는 이제 다 내가 책임지는 거야!!" 진욱이놈.. 밴드부라고? 송지훈이랑 이현우랑 옆에서 신나게 초치는 소리들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굴하지 않고.. 아니 인식하지 못하는 건가? 아무튼 그런 상태로 거의 발광 수준이다. 그게 그렇게 좋을까? "넌 밴드부 왜 들려고?" "노래하는게 좋아. 너무 좋아." 별 생각없이 물어봤는데, 흥분하던 녀석의 말투가 살짝 가라앉으면서 진지해진다. 이 녀석은 다른 의미로 알 수 없는 놈이다. 이현우랑 좀 반대타입이라고 해야하나? 생긴건 단순빵인데 속 구조는 좀 복잡 미묘한... 아아.. 내 교우관계는 왜 이따위인 것일까? "오디션이 언제라는데?" "2일 뒤... 여기서 지정해준 노래 하나랑, 자유곡 하나란다. 오늘부터 당장 연습해야 할텐데... 니네 도와 줄꺼지?" "그래. 뭐. 나야 괜찮지." "역시!! 너밖에 없다!!" 쉽게 허락해 버리는 송지훈을 와락 껴안고 감격스러워 하던 놈은 뚱하니 쳐다보던 나와 이현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봐, 그런 눈으로 쳐다본다고 해서 없는 시간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 "재성아, 현우야... 우린 친구지?" "글..쎄...." "별로..." 우리의 시큰둥한 반응에 놈은 잠시 풀이 죽는가 싶더니, 곧 송지훈 놈하고 쑥떡거리면서 킬킬댄다. 저 두 놈.... 수상하고 불길하기 짝이 없지만... 뭐 내가 뭘 미리 알아채 봤자 어차피 지들 맘대로 될 거.. 냅두련다. 하아....... 이젠 누구의 방해도 없고하니, 잠이나 보충하려고 다시 책상에 디비 누웠는데, 정신이 말똥말똥한게 영 글러먹은 듯 싶다. 써클이란거... 조금 기대가 된다. 들어가게 되면 선배들 눈치도 슬슬 보고 이것 저것 어깨 넘어로 배우기도하고, 축제때는 크게 일 벌여서 준비도 하고 밤새우고..... 흐흐.. 어쩌면 술도 취하도록 모여서 마셔볼지도 모르지.. 뭐 아직 얘기 들어본 써클은 두 개 뿐이지만, 왠지 기분이 들뜬다. 방송부.. 밴드부라.. 그러고보니 양아치 저 놈 노래하는 거 한 번도 못들어봤는데... 쪼까 궁금하기도 한걸.. 이따가 막 붙잡을 때 그냥 못 이기는 척 따라가 줄까? Chapter 6. Circle . PartⅠ.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남학생의 평범한 일상 (6)-2 "에....어 그래서 .. 우리 요리부에서도 신입을.. 모집합니다..." "와아아아아!!!!" 아아악!! 제발 그만 좀 하란 말이야!! 3학년 선배들 까지 동원했는지 20여명의 대 인원으로 교실 앞 뒤를 점거한 요리부는 자신들이 이야기하고 자기들끼리 마구 고함을 지르며 좋아하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은 전부 지겨워하는 눈치다. 써클 PR이 어디 한 두 군데 들어와야지 좋게 들어주지.... 이건 대체.... 쉬는시간=수면시간 인 나로써는 정말 미칠 노릇이다. PUMF동호회, 대학탐방부, 토론부, 만화부, 문예부, 봉사활동부, 난타, 여행부, 적십자단체(R.C.Y), 연극부, 댄스 동아리, 교지 편집부, 중창단............................. ......쳇... 뭔 놈의 것이 이렇게 많은건지.... "야!! 니들 박수 안치고 뭐해?" 애들 반응이 시큰둥 하니, 한 인상 험악한 선배가 윽박 지른다. 하기사, 그 선배가 아니더라도 완전히 깍두기만 골라 뽑았는지 다들 인상이나 등빨이 장난이 아니다.. 요리부 맞는거야? 아무튼 거기에 대들만큼 용감한 학생은 없었던터라, 아이들은 어설프나마 조그맣게 손을 맞부딫혔다.. 이래가지고서야, 언제쯤 두 다리 쭉 뻗고 잘수 있을지 걱정이 다. 흘깃 쳐다본 게시판도 각 써클의 홍보 포스터로 난장판이다. 다들 좀 성의 있게나 만들던지... 확실히 남학교인만큼 대충 워드로 날려서 덕지덕지 원래있던 거 띠고 자기네꺼 붙이는 식으로 붙여놓았다. 하품을 해대면서 턱을 괴고 멍하니 앉아 있자니, 이번엔 또 뒤쪽에서 [쿵짝 쿵짝..]하면서 박자맞춰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런..제길...아침부터 내가 몇 번이나 주의를 줬는데도 끝까지 이러기냐? 슬며시 돌아보니 진욱이 놈이 귀에 이어폰을 끼고 눈까지 감은채, 거의 노래에 취해있다. '자기가 부를 노래라면 몇 시간이고 몇 일이고... 하다 못해 잘때까지 들어야 되는게 아니냐'는 놈의 말에 '설마....' 하면서 우리 셋 모두 코웃음 쳤지만 정말로 이놈은 오늘 하루 종일 그 좋아하는 수업도 안 듣고, 목숨걸던 숙제도 안 해오고 계속 음악만 듣는 것이다. 사실 보기에만 좀 노는 놈처럼 보여서 그렇지 우리중에 가장 학교 생활 열심히 하는 놈인데 말이다. 오늘 수학이 안들었기에 망정이지, 그렇게 당해놓고도 또 피볼려고 환장했냐? 내가 열심히 째려 보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박자맞춰 흥얼대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기보단 이젠 어이가 없어서 한숨이 푹푹나온다. "야!! 거기 너희 둘! 뭐하는 거야? 한 눈 팔면서!" 저건 필시 나와 녀석을 두고 하는 말이렷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쳐다보니 뿌옇게 잘은 보이지 않지만 그다지 보기 좋게는 안 생겼을 얼굴이 바로 위에서 내려다 본다. "얘는 음악듣고, 저는 그거 구경하는데요?" 내 딴에는 꽤 겁먹은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말한건데, 선배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아차 싶었다. 아아... 내 이 빌어먹을 면상하고 목소리 좀 어떻게 했음 좋겠어.... 내 얼굴쪽으로 그늘이 지는가 싶어 빤히 올려다 봤더니, 뭔가가 목께를 덥석 잡아서 그대로 끌어올린다. 아이..썅.. "이게 어디라고 말을 함부로...." "아니, 잠깐만요. 얘가 원래 말을 그렇게 해서 그렇지 선배님을 우습게 봐서 그런건 아닐 겁니다.. 그러니 이 손부터..." "넌 또 뭐야?" 선배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치만 송지훈. 넌 또 왜 나서냐? 일이 아무래도 꼬여 가는 것 같아서 내 옷깃을 세게 틀어쥐고 있는 선배의 우악스런 큰 손을 털어보려 애를 썼지만, 몸이 번쩍 더 들렸을 뿐이었다. 힘 좋아서 좋겠수다. 그나저나 나나 송지훈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여전히 사태파악 못 하고 저렇게 흥얼대는 진욱이 놈은 어쩐다냐.... 살벌한 분위기에 교실의 이목이 전부 이쪽으로 집중 되었다. 진욱이의 짝꿍놈이 보다 못했는지, 녀석의 이어폰줄을 홱 잡아채서 녀석의 귀를 틔여 주었다. "아이씨... 방해하지 마.." 이 상황이 니가 짜증 부릴 상황이냐? 이어폰을 다시 줍던 녀석은 그제서야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향했다. 그리고는 나의 멱살을 잡고 있는 선배를 바라보곤 얼굴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자... 어떤 상황인지 잘 알겠지? 너라도 빨리 알아서 기어라. 너는 나보다 인상이 더러워서 개박살 날지도 모른다구.. [퍽....] "재성이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 맙소사.. 미친새끼.. 알아서 기어도 모자랄 판에.. 선배를 쳐? 맞은 사람을 비롯한 같은 써클 선배들도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 빠따 쓰리 쿠션으로 우린 반 애들도 다 얼어붙었고... 그래, 잘났다. 잘났어. 난 이제 몰라..... 니가 다 알아서 해. "지금 쳤냐?" "재성이 안 내려놔? 어디서 깡패새끼가 교실까지 와서 시비야!!" "이게 대답은 안하고... 보자보자 하니까 선배한테 웃기지도 않네.." "빨리 내려 놓으랬지!!" 이런... 빌어먹을 동문서답 새끼... 아아.. 선배님 얘는 원래 이런 놈이랍니다.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도 필시 모를거에요. 속으로는 말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교실이 워낙 냉기류인데다가 내가 말해봤자 역효과만 낼 것 같아 그냥 입 꾹 다물고 있었다. 선배의 얼굴을 빤히 보고있자니 아무말이 없는 가운데 얼굴만 울그락 붉그락 하다. 필시 화를 꾸욱 눌러참고 있음이 분명한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쫘악 끼쳤다. 이제 어떻게 하냐.... 이거 찍혀도 단단히 찍힌 것 같은데... 1년 내내 끌려다니면서 돌림빵 당하는거 아닌가....? 헤유우우우....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목이 헐거워지는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멱살을 놓은 선배는 무슨 말을 꺼낼 새도 없이 진욱이 놈을 향해 주먹을 치켜 든다. 안돼요!!! [퍽......] [콰당...] 아아... 디게 아프겠다. 소리가 어마어마 한 걸? 비명소리도 못 내는 것이 이 자식 기절한거 아니야? 나도 모르게 질끈 감았던 눈을 살짝 떠보니, 정말 말 그대로 황당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쓰러져 있는 선배... 그리고 주먹을 회수하고 있는 이현우. "야!! 뭐해!! 빨리 튀자!!" 송지훈이 재빨리 손을 잡아끄는 통에 겨우 상황이 파악이 갔다. 이현우... 너도 미쳤구나. 너는 아주 선배를 골로 보내셨어... 그때까지 멍하니 보고있던 요리부 부원들도 선배가 쓰러진데다 우리가 도망치려는 것을 그제야 깨닫고 우리를 쫓기 시작했다. "야!! 문 막아!! 저 새끼들 빨리 잡아!!" [쿠당탕탕....] [와르르.....] 교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이리저리 책상이 날라 다니고, 떡대들이 뒤쫓고... 반 아이들은 주춤하는 가운데서도 이 소동이 즐거운지 책상, 의자 할 것 없이 던져대며 난리다. 그나저나 문도 막혔는데.... 어떻게 도망가냐고... 아이씨... 난 나쁜 일 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일에 휘말리는 거야? [쨍그랑.....]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해서 보니 송지훈 놈이 교실 창문을 때려부수고 있다. 야!! 너도 미쳤구나!!! "자.. 이리로 나가자.." 창문턱에 올라서서 손을 내미는 녀석을 보니, 이젠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피식피식 나온다. 그래.... 따라가 주마. 녀석의 손을 살짝 잡으니 그대로 확 나를 끌어올려 복도에 살포시 내려 놓는다. 임마.... 니가 무슨 동화속의 왕자님이라고 무슨... "야!! 이현우!! 박진욱!! 니네도 빨리 나와!!!!" 지훈이놈. 저도 복도로 펄쩍 내리뛰더니 이내 교실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지른다. 아이씨... 그래, 나도 이제 몰라. "파이팅!! 박진욱! 이현우!! 출구를 사수하라!! " 뭐야... 사람 소리지르는 거 첨봐? 송지훈이 놀랐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길래 마주 멀뚱히 쳐다봐줬더니 녀석이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교실에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교실이 왠지 근사해 보이는 것을 보면.. 아까 나가떨어진 선배한테 미안한 마음보다 쌤통이란 생각이 먼저드는 것을 보면.. 고함소리에 괜히 가슴히 후련해 지는 것을 보면, 나도 미쳐가나보다.. 킥킥... 뭐 아무렴 어떻겠어? Chapter 6. Circle . Part Ⅱ. End.========================= Sweet. so sweeeeet!! 흐흐, 박수무당님, 무서워요.ㅠ.ㅠ 지금 비축분이 얼마 안남았단 말입니다. 에파타님께 초강력어택한번 해보시지요.-_-; ^^ 에파타님의 메일주소는 jiguvy@hanmail.net 입니다.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Episode 5) "야!! 네 놈 때문에 우리 요리부가 인식이 나빠져서 올해 신입들이 안 들어오잖아!!" "그래서요?" "..ㄱ...그래서긴!! 니가 책임을 지라는 거지!!" "어.떻.게.요?" "그...그러니까!! 으음.......................................................... 니가 요리부에 들어!!!" "에에?" "그래. 그게 좋겠다!! 하하핫!! 너 이제 요리부해!" "싫어요!!!!" ------------------------양재성. 요리부 가입.--------------------- Episode. 요리부 기장 허상수.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6)-3 남은 수업이 끝날때까지 벌을 서던 우리는 팔이 저릿저릿하다 못해 마비가 올 지경에 이르자 겨우 교무실 안으로 호출되어서 사건 경위를 이야기 할 수 있었 다. 다행히 정학이나 학교 봉사같은 징계는 먹지 않고, 화장실 청소 정도로 마무리 되었다. 유리창 깨진 거 빼면 그다지 큰 사고도 없었고, 다친 사람도 없었고.... 거기다 정말 의외였지만, 요리부 선배들이 변호를 해준 모양이다. 반장, 부반장 모두 끼어있는 것도 무시 못할 상황이었을테지..... 아무튼 운이 좋았다. 그리고 지금 현재 상황은.... "야!! 한 번만 더 반주해달라니까!" "싫어." "해주지마.. 해주지마.." "한 번만 더 부르면 죽여버린다." 화장실 청소가 끝나고 음악실에 끌려와 있는 중이다. 왜긴 왜겠어... 그 잘난 보컬시험 때문이지. 어젠 멋모르고 연습한다는데 따라갔다가 미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오늘은 죽어도 안 따라올려고 했는데.... 언제 내맘대로 된 적 있었냐... 그냥 끌려왔지 뭐. 그리고 현재 셋 모두 완강하게 진욱이 놈이 더 이상의 연습을 못하도록 뜯어 말리고 있는 중이다. 어제의 연습 역시 송지훈과 내가 달려들어 녀석의 입을 틀어막은 가운데 이현우가 계속 그대로 나온다면 피아노를 부숴버리겠다는.... 다소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협박을 해대면서 종결 되었었다. 왜 그렇게 말리냐고? 당신 같으면 2일 만에 200번은 채우고 오디션 본다는 놈을 그냥 내버려 두겠어? 이대로 가다간 목이 쉬어서 오디션 못본다느니 어쩌느니 말려도 이 막되먹은 새끼는 도무지 들어먹질 않는다. 말이 200번이지..... 난 노래방가서 1시간만 불러도 각혈할 것 같은데... 이 빌어먹을 새끼는 벌써 몇시간째 죽어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본디 학교 공부도 그렇고 한 번 시작하면 죽어라고 파는 놈이긴 하지만, 이정도로 무모한 놈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만하면 됐다니까! 잘만 부르면서 연습은 무슨 연습이야!" "반주 안해주면 누가 못 부를줄 알아? 내일이 오디션이란 말이야!!" "어휴.. 저 짜증나는 새끼..." 말이 안 통해도 어떻게 이 놈같이 안 통할 수 있는 건지... 차라리 외국인하고 body language 로 대화하는 것이 훨 낫겠다. 하지만 녀석이 다시 Endless Rain의 첫 소절을 불러 제끼기 시작하니, 못 이긴척 피아노 반주가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런 패턴이 벌써 몇차례나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녀석이 노래를 시작하면 나나 송지훈 둘 중 어느 누구도 뜯어 말리질 못하고, 현우놈은 마지 못해 반주를 넣고. 왜냐구? 쳇.... 듣기 좋으니까... 인정하긴 싫지만.... 이 녀석은 목소리가 좋다. 별다른 기교도 없고, 테크닉도 없이 그저 느낌으로만 토해낼 듯 내지르는 것이 음악에 대해서는 개뿔도 모르는 나가 생각해도 잘 부른다고만 표현하기는 너무 아깝다. 낮으면서 적당히 허스키한 목소리가 시원시원하게 고음 파트의 절정부분을 노래할때면 셋 모두 할 말을 잊고 마는 것이다. 벌써 저 노래 수십번도 더 들었는데 지겹지 않은 걸 보면... 어휴... 그나저나 오늘도 날 샜네... 어제도 늦게 들어가서 어머니한테 박살날 뻔 했구만 은.... 이 번 것만 끝나봐라.. 내가 저 주둥아리를 꼬매 버리든지 해서라도 멈추게 해야지.. =============================================== "미안하지만 안돼겠다. 그 미친개가 하도 지랄을 해 놔서. 우리도 평소에 학교쪽에서 달갑게 여겨지지 않던 터라 그냥 우겼다가는 정말로 강제로 해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정말 미안하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이 새끼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이제와서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그 선생이 무슨 권리로 여기다가 이래라 저래란데!!!" "송지훈, 좀 참아봐." 마구 악을 쓰면서 밴드부 기장에게 윽박지르는 지훈이를 저지하긴 했지만, 내 심정도 별반 다를바 없었다. 하...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진욱이 놈은 신청서도 못받아주고, 오디션도 못본다니..... 오늘 아침 미친개가 아침 자율 학습시간부터 교실에 찾아와서 또 정신없이 음악 듣던 진욱이 놈을 끌어 갈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박살난 CD Player.... 그리고 잔뜩 굳어진 얼굴로 돌아와서는 오늘 하루 종일 말없이 엎어져만 있던 진욱이 놈. 녀석이 아무리 물어도 말이 없길래, 뭔가 이상해서 밴드부 기장을 찾은 나와 지훈이 놈이 들은 얘기는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어제 선배들과 있었던 트러블을 미친개가 뒤늦게 알고, 오늘 아침 찾아와 그렇게 닦달을 했던 것이었다. 아니, 끌고 갈꺼면 넷을 다 끌고 갈 것이지.... 너무 어이가 없으려니까 욕도 안 나온다. 그렇게 끌고가서 쥐어박어가며 이래 저래 묻는 말에 진욱이 놈 또 순순히 오디션 본다느니 하는 얘길 했나보다. 그랬더니 싸대기 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밴드부에까지 와서 지랄하고 갔다는 것이다. 우린 몰랐던 사실이었지만 꽤나 명문이고 공부 잘하는 학교라고 소문이 나있던 우리 학교였던지라, 밴드부는 항상 눈총의 대상이 되어왔던 터였단다. 작년에도 몇 번인가 해체하라느니 하는 은근한 압력을 받아왔는데, 올해는 진욱이 같은 놈 받을 거면 폭력써클이랑 뭐가 다르냐면서 아얘 노골적으로 질타를 한 것이다. "미안하게 됐다. 좀 잘 전해줘." "이게 미안하다고 될 말입니까? " "......" "송지훈, 그만 가자." "아니...그래도 따질건 마저 따져야!!" "여기서 따져봤자 무슨 소용이야. 빨리 가자." 마지 못해 따라 나오는 지훈이 놈을 끌고 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빌어먹을... ================================================== "진욱아, 좀 일어나봐. 수업 끝났어." "......" "야!! 죽었냐? 아침부터 내내 고개 처박고 꼼짝도 안하는 건데?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보란 말이야!!" 답답했던지 송지훈이 윽박 지르는데도 들은 척도 안한다. 저렇게 고개 박고 있으면 목 안 아프려나..... 쳇.... 난 애써 딴 생각을 하면서 가능하면 녀석에겐 시선을 안 주려고 하고 있다. 현우 놈은 녀석 특유의 무표정으로 걱정 안한다는 듯이 앉아있지만, 속으로 아마 쩔쩔 끓을 꺼다. 오늘은 누가 잡지도 않았는데 저 목석같은 놈이 자청해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뭐.... 나도 별로 사정이 다르진 않은 건가? [.........................................................................................................] 지훈이의 호통을 끝으로 한 동안 텅 빈 교실에 고요만이 감돌았다. 어딘지 어색하고, 좀 서늘한 느낌이 드는 침묵. 네 명이 넓은 교실 띄엄띄엄 서있거나 앉아 있거나 기대어있는 구도가 황량감을 더해주는 것 같다. 아아... 이걸 어찌 해야 하나. 말수가 많이 않은 나로서도 이런 상황은 절대 사양이다. 할 말이 없어서 안 하는 상황과... 할 말이 있는데 못하는 상황은 분명히 다르니까... 이대로 가다간 끝이 안 날 것 같아서 좀 망설여지긴 했지만, 느릿느릿 진욱이 놈에게 다가 가서 앞에 섰다. "진욱아." "......" 인기척에 잠시 몸을 움찔하고는 그저 묵묵부답이다. 쳇.... 내가 뭐처럼 '성'띠고 이름만 다정히 불러줬는데 무시했다 이거냐? 엉켜있는 녀석의 팔을 풀고 천천히 상체를 끌어올리니 얼굴이 엉망이다. 그래....... 이렇게 엎어져 있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테지... 여자애들만 울 때 이렇게 고개 파묻는 거 아니다. 남자라고 해서 뭐 별 수 있겠어? "씨발....보지마. 뭐 볼꺼 있다고 다들 몰려 들어서 난리야!! 사내새끼 우는거 보니까 어떻냐? 저 새끼 저런걸로 찔찔 짠다...고 비웃지 그러냐? 내 꼴이 다들 우습잖아!! 안 그래???" 악을 쓰던 박진욱은 갑자기 흠칫 놀라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몸이 그 나불대는 주둥아리가 붙어있는 얼굴을 포옥 감싸 안았으니까.. 별다른 말은 없지만 이현우와 송지훈의 놀란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씨발... 쑥쓰러워.... "울어." "??" 녀석이 놀랐는지 내 팔을 살짝 풀고, 나를 빤히 올려다 본다. 어휴... 얼굴은 다 큰 어른 같은게.... 녀석의 얼굴을 다시 꽉 감싸 안았다. "울라니까.... 하나도 안 웃겨!!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새끼가 어떤 자식인지 알아? 울음 참는 놈이야. 죽을꺼 같이 빌빌 대면서도 참고 앉아있는 놈 보면 나까지 다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애.... 차라리 엉엉 울어.. 너 지금 안 울면 이거 가슴에 두고두고 쌓인단 말이야.." ".....흐..으.." "울어도 돼. 임마, 넌 충분히 대성통곡할 자격 있어. 사내새끼가 쪼잔하게 숨어서 울고....... 니가 순정만화 주인공이야? 나도 쑥쓰러우니까 빨리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울고 끝내." "흐윽... 흐으... 흐어엉...." 조금씩 흐느끼던 녀석이 나를 부여 잡고 목놓아서 운다. 셔츠 앞섶이 축축해 지는 느낌에, 나도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긴장이 화악 풀린다. 남자는 태어나서 2번 운다느니 어쩌느니 하는데.... 제길..... 그게 어디 말이나 됨직한 얘기냐? 부모님 돌아가시는 것 말고도 눈물나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때마다 참고 참아서 결국 뭐가 남는 건데... 자존심? 우는 사람은 붙잡고 다들 달래준다며 한다는 얘기들이 기껏해야 "왜 우냐?" "울지마.."라 니.. 허 참.... 차라리 홧병나서 뒤져버려라... 그러지 그러냐.. "내...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흐...윽.. 어어엉..." "그래.. 너 정말 정신나간 새끼처럼 열심히 했어." ".....내..내가.. 얼마나 그..쿨럭... 그게..하고 싶었는데...." "어. 그래." "....빌어먹을 미..친개." "그래, 다 그 자식이 잘 못한거야. " 녀석이 천천히 호흡을 가르면서 고개를 든다. "이제 다 울었냐?" "어." "야... 이현우, 송지훈... 이제 집에 가자." "에이씨.. 오늘은 PC방이나 가볼려고 했는데.. 이게 다 누구 때문이지?" "난 학원 시간 늦었어." 가만히 있던 녀석들도 가방을 집어 들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제서야 진욱이 녀석도 웅얼대면서 눈높이 선생님 오시는데....어쩌구 한다.. "눈높이? 어휴... 고등학생 씩이나 된게 무슨 눈높이냐? " "쳇.. 남이사. 난 초등학교 때부터 해오던 거란 말이야!" "그럼 너 매일 2장 책상 앞에 앉아서 풀고 엄마한테 검사 받는 거야?" "당연하..... 에이씨.. 이 자식이...!!!" 실랑이 하던 지훈이 놈과 진욱이 놈이 우당탕탕하면서 뛰어나가고... 나와 현우가 그 뒤를 천천히 따랐다. 시끄러운 두 사람과. 조용한 두 사람. 평소와 거의 다르지 않는 분위기로 그렇게 집까지 돌아가는 내내.. 진욱이 녀석이 운 얘기를 꺼내는 놈은 아무도 없었다. Chapter 6. Circle Part Ⅲ.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3) "누구 피아노 칠 줄 아는 사람!!" "학교 종이 땡땡땡 정도는...." - 송지훈 탈락.. "그냥 막 두드리면 되는 거야?" - 양재성 실격.. "하아아아..." -이현우 반주자 발탁.- Episode 3. 반주.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4) "에이취!!!" 빌어먹을... 오늘따라 또 왜이리 추운거야.. 요새 한동안 따뜻하더니만... 몸을 바싹바싹 죄여드는 차가운 기운에 옷깃을 한 껏 여며 봤지만, 그나마 온기가 조금이나 마 있을때나 소용있는 짓이지, 지금같아서는 차가운 옷자락에 되려 소름이 끼쳐 다시 몸을 잔뜩 움츠리는 꼴 밖에 되지 않았다. 쳇... 정말 이러기까진 싫었지만, 결국은 시린 담벼락에 기대서 쪼그린 자세로 주저 앉았다. 앞에 깡통 하나만 두면 진짜 누가 돈 던져주고 갈지도 모르겠군. 키킥... 뭐 깡통까지도 필요 없으려나? 내가 봐도 내 꼴이 우스워서 낄낄대니, 덜덜떨리던 턱에 이젠 경련이 온다. 왜 이러고 있냐고? 글쎄... 왜 이러고 있을까.... 왜 이러냐고, 추워 죽겠다고 나도 생각은 하고 있긴 하지만 빌어먹을 이 막되먹은 몸뚱아리는 집안으로 들어가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면 그게 조금이나마 이유가 되려나? 그래... 뭐 딱 까놓고 근본적인 원인부터 이야기 해보자면... 오늘은 우리 아버지가 술드시고 돌아온 날이라는 거다. 술마시면 집에 들어와 마구 때리고 행패 부리시냐고? 하하... 그런거라면 차라리 낫게? 마구 미워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죽일놈 살릴놈 어쩌구 하면서 막 욕해버리고. 그래도 정 못 참겠으면 아버지고 뭐고간에 그냥 날려버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런데, 우리 아버지란 사람은 왜 때리는 것 보다 더 지독한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제길할, 왜 술 처먹었으면 곱게 잠이나 주무실 것이지. 왜 사람을 붙잡고 우냔 말이야. 씨발, 미안하긴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매일 뼈빠지게 일한거 생색한번 내지 않고, 대가리 큰 자식새끼한테 전부다 써대면서도 뭘 그리 못해줬다는 건지... 정말 웃기지도 않아. 덕분에 난 술취한 사람은 딱 질색이다. 술취한 사람은 지나치게 솔직해서 내가 듣기 싫은 말까지 전부 해버리니까.. 그게 정말 사람 신경을 엄청 긁어 놓거든... 평소에는 말도 몇마디 안 하고 그저 무뚝뚝한 우리 아버지. 그렇게 강인하고 흔들림 없던 우리 아버지가.. 내 앞에서 그렇게 눈물 흘리면서 나약해 지는 모습을 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정말 신경줄이 툭툭 불거져 나오는 느낌이 든다. 결국은 당신도 사람인데 이렇게 울줄 알고 마음 아파하는 나약한 사람인데.. 항상 힘들어도 안 힘든체 꾹꾹 참다가.. 몇 번이나 울고 싶을 때가 있어도 꾹꾹 눌러 참다가.. 술이나 취해야 비로소 한 번 울어본다는 거잖아....... 하하.... 이거 정말 기분 나쁘네. 그리고 보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기도 한건가? 울음 참는 사람..... 하기사, 그 꼴 못보고 이렇게 기어나온 나 역시 결국은 지독히도 이기적인 놈이지만... 하아.. 새까만 밤하늘을 올려 보니, 오늘따라 꽉 찬 보름달이 평소보다도 더 휭..하니 밝다. 제길... 제길... Episode 4. 아버지. End=============================================== Sweet. so sweeeeet!! 에파타님의 메일주소는 jiguvy@hanmail.net 입니다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7) "야.. 이 반 16번!! 17번!! 빨리 기어나와!!" 자율학습 시간... 한참 달게 자고 있는데, 교실 앞문쪽에서 누가 시끄럽게 소리지르고 난리다. 부르면 당장 달려들 나갈 것이지, 시끄럽게 왜 이리 다들 꾸물대는 거야... 짜증 스럽게 다시 고개를 파묻으니, 뒤에서 진욱이 놈이 의자를 팡팡 차댄다. 아이씨... 뭔데.... "야.. 너 17번이잖아. 지금 저기 선생님이 불러." "......" 그래... 내 번호였군. 어쩐지 좀 익숙하더라니... 졸린눈을 부비 부비 하면서 복도로 기어나가니 훌쩍하니 키가 큰 체육 선생이 출석부 같은 걸 하나 들고 기다리고 있다. 무슨 일이지? "이 것들은 아침에 주번 조회도 안 나오더니, 뭘 그렇게 꾸물럭 거리는 거야!!" 아... 내가 주번이었나? 옆을 흘깃 보니, 내 바로 옆 분단에 앉은 그런대로 이름정도는 알만한 녀석이 서있다. 뭐... 입학한 후 시간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지만 반 애들 전부하고 꽤 친해진 편이다. 아이들 하고 가까워 지는 것이 이상스럽게도 중학교때 보다 별 스스럼이 없었다고나 할까.. 뭐, 별로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긴 하지만 세 놈들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이리 저리... 정말 지겹도록 많이도 끌려 다녔으니... 뭐... 나처럼 무신경한 놈들이 반 애들 이름도 전부 알고 있을 정도면 얘기 끝난거 아닌가? [퍽...] "아야!!" "넌 또 뭘 멍하니 있는건데? 누가 16 번이야? 빨리 얘기해." 에이씨.. 내가 딴 생각을 하긴 얼마나 했다고 갑자기 머리를 때리는 겁니까!! 맞은게 기분나쁘기도 하지만, 번호를 묻는 선생의 목소리가 왠지 오늘따라 귀에 거슬린다. 확인할 거면 이름을 확인 할 것이지.... 꼭 번호. 여기가 무슨 감방도 아니고.. 뭐, 번호 붙이는 것이 편리한 제도이긴 하지만 어쩔땐 정말 갑갑하고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뭐 딱히 내가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건 아니지만 말이다. 기껏해야 얼굴 한 번 찡그리고 끝나는 거지. "제가 16번입니다." "음.. 그럼 니가 17번?" "네." 옆의 놈이 재빨리 나선다. 이름이 뭐였더라.... 나름대론 다 외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자놈들은 원체 이름이 비슷비슷하고 밋밋하다보니 헷갈린다. 무슨...현 어쩌구 했었지..아마? 쳇.... 모르겠다. 어차피 나야 이름은 잘 안 부르는데... 뭐... "야, 17번 너는 오늘 왜 늦었어?" "......" 뭐.. 이유를 따지고 들어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겠죠... 오밤중에 밖에서 덜덜 떨다가 새벽녘에야 집에 들어갔답니다. 덕분에 어머니께 꽤 두들겨 맞고, 다른 이러저러한 일들로 이래 저래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밤에 잠 못 이루다가... .............기타등등.... "왜 늦었냐니까!!" "...늦잠 잤는데요." 딴에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고, 사정이 있었는데도 궁극적으로 내가 할 말은 이 것 뿐이다. 이 말만 듣고, 선생은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느니, 글러먹은 놈이니 어쩌니 하면서 혀를 끌끌 차겠지. 더 이상의 설명은 선생님도 듣기 싫으실 것이고 나도 하기 싫지만, 조금쯤은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뿌옇게 보이는 선생님 얼굴이 확 이지러지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좀 씁쓸하다. 뭐... 몸이 아팠다...라든가 거짓말을 하면 상황이 좀 유리해 지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행동은 내 쪽에서 딱 질색이거든. "너는?" 선생님의 시선이 내 옆의 녀석을 향한다. 말하는 투나, 자세나... 흘깃 보기에도 선생들에게 꽤나 이쁨 받을 것 같은 놈이다. 뭐... 나랑은 좀 반대의 타입이라고나 할까? "죄송합니다. 아는 친구가 몸이 아파서 병원까지 좀 바래다 주느라..." "....그래? 친구는 어디가 아픈데..." "그냥 가벼운 감기인 모양인데, 갑자기 열이 끓어서요." "그럼, 넌 들어가봐라. 17번! 너는 이따 내가 그만하라고 할때까지 여기 엎드려 뻗쳐있어!!" 아직도 잠이 덜깨서 흐물흐물 서있는 나에게 호통을 치고는 선생님은 재빨리 계단으로 올라가 버렸다. 하아.... 이거 아침부터 기운 빼게 생겼군.. 차가운 복도 바닥을 집고 자세를 취하니 머리로 갑자기 피가 몰리면서 어질하다. 으음... 역시 난 저혈압인가.. "키킥.. 요령없는 놈. 하란다고 진짜로 하고 있냐?"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홱 올려다보니, 저기 까마득한 곳에 교실에 들어간줄 알았던 16번 놈의 머리통이 보인다. 확실히 내가 저자세여서 놈이 높아보이는 것도 있긴 하지만 지금 녀석의 말투로 볼 때, 실제로도 꽤나 거만한 놈인 것 같다. 뭐...어차피 너같은 부류는 내 관심 밖인걸.. 그래, 니 맘대로 생각해라. "너 바보 아니냐? 왜 늦었냐는데 진짜 이유를 말하게? ..." 아아... 그래? 그럼 네가 했던 말은 거짓말이란 얘기구나.. 아주 자알~ 알았으니, 이제 그만 좀 꺼져 주겠니? 선생님께서 착하신 당신은 아.까.전.에 들어가라고 하셨을텐데? 뭐...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역시 이런 녀석은 상대해 봤자 피곤할 뿐이다. 귀찮아. 귀찮아. 이봐, 당신 놀리려거든 상대 잘 못 골랐어. 그저 다 무시하고 묵묵히 후들거리는 팔을 고쳐 짚었다. "쳇... 고집은.. 그래, 어디 죽어라 고생이나 해봐라." 괜히 얼쩡거리며 비웃던 녀석은 내가 아무말 없이 있으니까 재미없다는 듯이 투덜대면서 교실로 사라졌다. 그러기에 어따대고 이게 시비야... 누가 너한테 뭐랬냐? 이상한 놈. ================================================= "주번이 지우개도 안 털어다 놓고 뭐하는 거야!! 선생 오기전에 대강 슬슬 문질러 놓고 던져 놓으면 끝이라 이거냐? 당장 가서 털어와!!" "......" 얼굴로 뭔가가 퍽 하고 부딫치는 느낌에 몸이 순간 휘청했다. 균형을 간신히 잡고 서니 분필가루가 얼굴이니 옷이니 주변에 한 가득이다. "콜록....콜록..." "빨리 안 갔다오고 뭐해!!" 미친개의 불호령에 재빨리 땅에 떨어진 지우개를 집어들고 교실을 나섰다. 하아... 상황이 좀 웃기게 되어버렸다. 16번... 아니, 신기현.. 그놈은 아침나절부터 주번활동은 하나도 안 하고 계속 뺀질대더니 이번에도 발뺌이다. 신기현 가라사대. "지금 바빠." "이따가 할게...." "뭘 그렇게 서두르냐?" "대충대충 하자구.." 나도 뭐 책임감 같은게 투철한 놈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 앞의 할 일 정도는 대강이나마 바로바로 해나가려는 타입이다. 말해봤자 시끄럽기만 할 것 같아서 별수 없이 녀석은 그냥 내버려 두고 나 혼자서 매 시간마다 칠판 지우고, 지우개 털어오고, 교실도 쓸고 닦고 해왔다. 좀 껄끄러운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럭저럭 하고 있었는데 4교시, 미친개 시간에 드디어 일이 터진 것이다. 지우개를 분명히 털어다 놓긴 했는데, 그새 개구진 몇 놈들이서 칠판에 낙서하고 지우고 하느라 난장판이 된 듯 싶다. 뭐, 여기까진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 뭐, 주번이 이런일로 선생한테 깨지는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그저 녀석이랑 나랑 둘이 나가서 혼나면 끝이겠거니 했지. 하하.. 하지만 길길히 날뛰며 주번 나오라는 미친개의 말에 대한 신기현의 대답엔 어지간한 나도 입이 딱 벌어지더군. "계속 제가 지웠는데요. 이번에는 쟤가 지울 차례에요." 녀석의 손 끝이 가리키고 있던 포인트는 바로 나. 그 뒤론 뭐라 말할새도 없이 없이 불려나가고, 분필 세례받고... 이 지경인 거지. 뭐... 지난 번 개긴 이후로 날 그다지 곱게 보지 않던 터였는데, 미친개로써는 뭐 두 번 생각할 거 있었겠어? 좋다꾸나 하고 깨는거지. 신기현... 뭐, 별로 좋은 놈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이리 저리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자기 편한대로만 행동하는 놈. 기분 나쁘기는 하지만..... 으음..... 상대하기 귀찮다. 그냥 무시해 버리지 뭐.... 1주일만 참으면 되는데.... 덜컹거리면서 돌아가는 지우개 털이개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꼴이 조금 우스워 보이기는 하다만... 쳇... 모르겠다. =============================== "이리 좀 따라와봐." "......" 얼굴과 옷에 묻은 분필가루를 열심히 털어주던 이현우는 기어이 내 손을 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뭐라 말해봤자 어차피 안 먹힐 거 아니까 나도 이젠 그냥 말 없이 따라간다. 이 녀석이 쓸데없는데 집착해서 고집부리는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귀찮아. 귀찮아. "앗 차거.." "가만히 좀 있어봐. " 물에 적신 새하얀 뭔가가 바로 눈앞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다. 이 녀석 손수건 같은 것도 가지고 다니나? 칫... 사내자식이 무슨.... "자, 됐다." 녀석이 손을 떼자 하얗게 보이던 시야가 환하게 트였다. 그래봤자 어차피 눈이 나빠서 흐릿하게 보이긴 하지만.... 그런데... 저 자식 와이셔츠 소맷자락이 단추가 풀어진데다가 젖어 있는 것이...서...설마... "...............................너.... 그걸로 닦았냐?" "어." 오.. 하느님.. 제가 당신을 다 찾는군요. 그간의 행동도 그렇고 원래 이상한 녀석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암만 그래도 그렇지, 자기 소맷자락을 적셔서 남의 얼굴 닦아주는 미련한 짓을 대체 누가 맨정신으로 한단 말이야!! 뭐라고 말이 욱하고 올라오다가 녀석이 내 손을 잡아끄는 바람에 막히고 말았다. "가서 밥먹자." "......" 손에 슬쩍 닿은 녀석의 소맷부리가 축축하고 차갑다. 뭐... 그래, 어차피 해버린 일.... 내가 이번 한 번만 그냥 넘어간다. 절대 이딴 짓거리가 고맙거나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그저 귀찮아서 참아주는거지. ============================================== "이봐, 청소 안 해?" "아아... 이것만 하고... 킥킥... 이거 재밌지 않냐?" 제길, 오늘도 또다. 내가 뭐처럼 피곤함을 무릅쓰고 물어본건데.... 녀석은 슬쩍보고 건성으로 대꾸하더니 곧 자기 친구놈들과 어울렸다. 이봐.... 그 '이거'가 대체 뭐길래.. 며칠동안 계속 하는거냐? 좀 짜증이 나긴했지만, 주번도 이젠 사흘밖에 안남았는데 괜히 학기초부터 시끄럽게 굴고 싶지 않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하아... 그나 저나 교실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를 보니 한숨이 푹푹 나온다. 이제 겨우 점심시간인데... 여기서 수업받는 놈들이 과연 남고생인지 돼지인지 조금 의심스럽군. 청소라는게 확실히 1명이 하는거랑 2명이 하는거랑 달라서 절반 정도라면 어찌 치워보겠지만 교실 하나를 혼자 쓸기는 좀 힘들다. 제길....제길.... 솔직히 나도 괜히 저녀석 몫까지 떠맡아서 청소하는 것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다. 특히 점심시간 같아서는 선생한테 맞아죽던 말던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한쪽에선 쓸고, 한쪽에선 어지르는 상황이니..... 하지만 자기 할 일은 떡 하니 앞에 두고 남이 안 한다고 나도 안 하는 그런 안일한 인간이 되는 것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기에 징그러운 빗자루를 다시 집어들었다.. "어라? 잠팅이가 어째 안 자고 있냐?" "시끄러. 양아치." "......" 퉁명스럽게 쏘아주고 비질을 하려고 하니 진욱이놈..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저 표정.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지어보일 때가 있다. .. 왠지 가벼워 보이지만은 않은.. 이상한 기분이 들게하는 웃음.... 저렇게 웃을 때면 꼭 평소의 녀석과는 좀 다른 분위기에 놀라곤 한다. 어른스럽게 보인다고 해야하나? 으음.... 어쩔 때 보면 정말 애기 같은데 말이다. 이번에도 느껴지는 그 묘한 이질감에 그냥 그리 멍하니 보고 있으니, 녀석 쪽에서 갑자기 뭔가가 휙 날아온다. "으아.. 뭐.." "기운내라." 딸기우유. 내가 당황한 틈을 타 녀석의 손이 불쑥 다가오더니 머리를 마구 헤집어 놓았다. 정신을 차리곤 돌아보니 어느새 축지법이라도 썼는지 저만치 가 버린 뒤다. 쳇... 또 표정을 읽힌건가? ==================================== "어라? 양재성 아냐?" 누군가 아는척을 하길래 돌아보니 낯익은 녀석이 날 보고 씩 웃는다. 신기현?. 뭐... 그다지 나로선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인사정돈 해둬야 할 성 싶어, 얼굴만 까딱 하고는 녀석의 앞을 지나쳤다. 뒤에서 잠시 어이없어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싶더니 녀석이 갑자기 내 앞을 떡하고 가로막는다. 음... 뭐하자는 거지? "......" "야.. 같은 반인데다, 주번도 오늘로 나흘째 같이 하면서 달랑 눈짓만 하고 그냥 가 버리기냐? 좀 섭섭하다. 지금 어디가?" 니가 무슨 주번이냐? 나흘내내 나 혼자 다 했구만... 섭섭하긴 개풀뜯어먹는 소리 하고있네. 그 많은 교실쓰레기 내가 3번에 가져다 나를때도 구경만 한 주제에... 손이 부르트도록 걸레 빨아서 날라대도 쳐다도 안보던 주제에... 어디서 감히 이게...!! 그 며칠간의 일을 되새기니 꽤 화나는 일이 많았지만 꾹꾹 삭히면서 턱으로 슈퍼를 가르켰다. 다 귀찮아. 특히 너같은 놈은... "그 입은 생전 열 줄 모르는 거냐?" "......??" 아는척 씩이나 해줬잖아. 임마. 뭐가 불만인데.... 뚱하니 서서 있자니, 녀석이 입매를 살짝 뒤틀어 보인다. 뭐야.....? 그 비웃는 것 같은 표정은.. 다시 욱하는 마음에 그냥 지나치려는데 녀석의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 그러고 보니 사복입은 거는 오늘 처음 본다. 원래 이렇게 입고 다녀?" 사복? 후줄근한 아버지 츄리닝. 싸구려 체크무늬 남방. 맨발에 목욕탕 쓰레빠. 듣기에 따라서는 아무렇지 않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녀석이 말하는 억양을 듣고 있자면 중간에 생략된 말이 무엇인지 잘 알 것 같다. 원래 '그딴 식으로' 입고 다녀?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절로 녀석의 옷으로 눈길이 간다. 나야 가격도 잘 모르지만, 아무튼 비싸다고 소문난 유명 스포츠 웨어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벽 세팅이다. 내가 갖고 싶어하던 농구화까지.... 난 잘못한게 없는데... 전혀 부끄러울 것 없는 상황인데... 왠지 얼굴이 화끈 거렸다. 양재성..... 너 결국 이정도 였냐? 녀석의 말이 수치스럽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런 것에 또 억매이고 마는 스스로에게 더욱 화가 난다. 이놈의 무신경은 이상하게 경제적인 면에서 찔러 들어오는 것에는 그다지 좋은 방어를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잘 가라." 이대로 있다간 정말 내 꼴이 우스워 질 것 같아서,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고 신기현을 지나쳐갔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해 버린채, 발걸음만 더욱 빨리 했다. 한 걸음씩 내 딛고, 내 딛고, 내 딛고.... 어느덧 집 문 앞에 다다를 쯤 되니,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뛰고 있다. "하아...하아...ㅎ......" 하하... 뭐에서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을까? 터져나온 웃음과 호흡이 서로 엉키면서 [컥컥..] 하는 소리가 났다. 우습지... 그래, 우스워.... 씁쓸한 기분으로 현관문 손잡이를 반쯤 돌렸을 때 였다. 순간, 안에서 너무도 익숙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실갱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또 술 마시고 들어오시면 어떻게 해요...] [재성이....우리 재성이...어디갔어?] [심부름 갔어요.. 이제 올꺼에요..] [.........................] 제길... 오늘도 밖에서 날밤새는건가? 그제보다 훨씬 옷도 얇은데..... ================================================= "야... 거기 너. 여기와서 이거 좀 치워라." "....네." 선생이 가르키는 손 끝은 다 쓴 페인트 통 수십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으으.. 보기만 해도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여기서 쓰레기장까지 나르려면 또 죽어나겠군. 혹시 '주번의 날'이라고 비밀리에 선생님들끼리 짜고 정한게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로 오늘은 일이 많았다. 아침부터 복도 바닥 내내 껌떼고, 밀대로 밀고, 교실 커튼떼고, 쓰레기통 닦고... 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며칠째 혼자 내내 일을 해오다보니 좀 심하게 피로감이 몰려온다. 거기다 어제밤엔 추운데서 떨다가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약간 어질어질 한 것이 감기기운도 있는듯도 싶다. 지훈이 놈이 약먹어라 어쩌라 했지만 그랬다간 졸려서 쓰러질 것 같아서 관뒀다. 뭐... 솔직히 귀찮기도 했고... "으어어?....." 이거 도저히 안돼겠다. 한 번에 4개 이상은 도저히 못 나르겠는걸? 무거운 것도 무거운 거지만, 일단은 잡을 곳이 없어,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어느 세월에 다나르냐... 어휴... 신기현이 문득 떠오르긴 했지만, 어젯밤 일로 이젠 쳐다보기도 껄끄럽다. 후후.....어제 내 꼴을 보고, 얼마나 혼자 웃기고 재밌어 했을까? 하긴, 이제까지도 얘기할때마다 나만 항상 바보 됐는데 뭐...... 내 의도야 그게 아니었지만, 등신같이 혼자 죽어라 일한다고 항상 고소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꼬봉하나 생긴 기분이었으려나? 오늘은 아얘 얘기도 안하고 그냥 혼자 실외청소 하러 나왔다. 다음에 이 녀석과 또 주번이 되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꾸고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새삼든다. 쪼잔해 보여도 할 수 없지. 나도 힘들다구.. [타당...탕탕....] 쓰레기장 쇠바닥에 페인트 통 구르는 소리가 영 귀에 거슬린다. 그치만 무거운 걸 사뿐히 내려놓을 만큼의 고상한 취미가 나에게는 없거든... 다시 발걸음을 돌려 페인트 통을 가지러 가는데, 뭔가가 차가운게 이마에 톡 떨어진다. 이어서 교복 타이에, 셔츠에 작은 물방울이 톡톡 떨어져 번지면서 작은 얼룩들이 생겼다. 제길... 아까부터 하늘이 꾸물꾸물 하더니, 이젠 비냐? 딴에는 서둘러 한다고 뛰어가서 재빨리 페인트 통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슬부슬.. 소나기 처럼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날리는 빗방울에 어깨죽지니 하는 부분은 완전히 젖어 찝찝하다. 가뜩이나 안 보이던 눈도 더 답답하고.... "여어.... 수고한다..." "......" 누구지? 뿌옇게 안개처럼 날리는 빗줄기에 가려서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다. 낯익은 목소리 같긴 한데... 비비 꼬는 것이 설마? "또 묵묵부답이냐? 이거 전부 혼자 나르는거야?" "......" 신기현. 왠일로 기어나왔냐.. 하고 쏘아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은 내가 아쉬운 마당이니 반갑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뭐.... 그간 좀 맘에 안들긴 했지만, 도와 준다면야... "어젠 왜 불러도 그냥 가버렸어?" "......" 이봐, 이거나 나를 것이지.. 왜 쓸데없는건 들춰내고 난리야.. 나름대로는 그 일에 대해선 민감해져 있던 터라, 다시 신경이 곤두섰다. 현관께에 느긋하게 들어가 앉아서 비를 피하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별로 도와줄 생각같은건 없는 듯 하다. 니가 그러면 그렇지... "비켜. 이거 날라야 돼." 도와주지 않을꺼면 방해나 하지 말라는 투로 쌀쌀맞게 말해주고는 녀석을 지나쳤다. 이제 갔겠지 생각하고 느릿느릿 다시 돌아와 보니 그 자리에 그 자세로 앉아있다. 이젠 나도 슬슬 짜증이 난다. 아무 말 없지만 지금 녀석의 의도는 너무 뻔한거 아닌가... '지금 매우 한가하고 할 일 없지만, 너같은거 도와줄 생각없다. 그렇다고 여기 떠날 생각도 없으니 계속 보면서 약올라 해라.' 단순히 자기 편한대로만 하는 놈인줄 알았는데 이젠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어쩐건지 대놓고 신경을 거스른다. 흥... 놀려 먹을 거라면 사람 잘 못 보셨어. 그런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아둔하진 않다고... 보란 듯이 페인트 통을 다시 짊어지긴 했지만, 이제 기운은 빠질 대로 빠져버려 어깨가 구부정하게 휘고 말았다. 어젯밤 일도 그렇고, 그리 몸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닌데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얼굴과 몸이 화끈화끈하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쓰레기장 앞에쯤 왔을 때는 몸이 한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느낌에 휘청거리면서 주저 앉고 말았다. [텅...그렁..텅텅...] 페인트통 구르는 소리가 저어기 까마득한 데서 들리는 것 같고, 눈 앞도 새하얗다. 등을 적시는 빗방울이 차가운 것이 아니라 뜨거운 것이... 하하... 이제 봄비가 오는 건가? 아아.. 아니지... 내가 이젠 무슨 쓸데 없는 생각을 하는거야? 정신 차려!! 페인트 통이 이제 몇 개가 남았더라? 4개씩 3번 날랐으니까... 12개에다가.... 처음에 있던게 32개...... 32에서 12개를 빼면... 32....에서.. 1....2.. .. 면...... 어.....지럽다... 땅이... 땅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 "신기현이 널 업어다가 데려다 줬어." "에에?.." 눈을 몇 번 깜박여 아직 꿈 속인가를 확인해 보았지만, 눈 앞의 흐릿한 물체의 고유 명사는 송지훈이 맞다. 나 역시 맨정신이고.... 이 녀석이 또 나를 놀리려는 건가? 녀석도 대충은 나와 신기현이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란 것을 알고 있을텐데.. 추궁하는 듯 다시 캐물었지만 장난치는 말투 같지는 않다. 신기현..... 내가 쓰러져있으면 그 자리에 무덤파고 비석 세워줄 놈으로 봤는데, 손수 업어다가 양호실까지 데려다 주다니.... 이게 대체 무슨 수상하기 짝이없는 행동이지? "왜? 안 믿어지냐?" "......" "뭐... 안 믿어도 할 수 없지만, 아까 나한테 미친 듯이 달려와서 너 쓰러졌다고 얘기해 주더라. 현우는 방송반 면접가고 없어서 못 왔고, 진욱이는 기현이 붙잡고 난리치다가 교무실에 끌려갔어. 담임이 끌고 간거니 별일은 없을테지만..." "......" "양재성. 뭘 또 그렇게 뚱하니 있냐? 무슨 생각해?" "어? 아니. 별로." "더 잘래?" "아니. 뭐 어디 다친 것도 아니고 사지 멀쩡한데... 쳇... 창피하게 기절이라니..." "그래, 내가 다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니겠다!!" 투덜 대면서 비척비척 일어나는데 갑자기 지훈이 놈이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우악스럽게 침대 시트를 마구 덮어 씌운다. 어쭈? 덤빈다 이거냐?... 바둥바둥 대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베개니 쿠션이니 휴지니 하는 것을 던져 대니 [으윽.. 이게 쓰러졌던 놈 맞냐...] 어쩌구 하면서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녀석도 옆의 이불까지 동원해서 뒤집어 씌우며 공격이다. "이게.. 어디 형님한테!!!" "흥.. 쪼끄만게 어디서 맨날 지가 형님이란 거야!!!" "야!!!! 니네들 그만 안 해!!!!!" 으힉... 양호 선생님. 침대를 뱅 둘러친 커튼이 우악스럽게 젖혀지면서 히스테리 대마왕이 그 당당한 자태를 드러냈다. ..........정말 무섭게 생겼구나. 실제로 보긴 처음인데.. 소문으로만 듣던 그녀의 모습에 나도 녀석도 엉켜있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라고 변명하기엔 너무나도 어질러진 침대. 날카로운 눈매로 마구 살기를 뿌려대는데, 차라리 미친개에게 이쁨(?)받는 편이 나을 듯 싶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선생님은 혀만 몇 번 쯧쯧 차더니 다시 커튼을 닫았다. 어라? 왠일이지? 봐주는거 없다고 그러던데... "크..크큭..." "프흐....." 일단 선생님이 사라지고 나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리저리 둘둘 말려있는 휴지.. 전부 무너져 내린 침대 시트와 이불터미.. 젖어서 엉망이 되어버린 교복. 에잇.. 이렇게 된 바에야!! 반 정도가 풀려버린 두루마리 휴지를 지훈이 놈 머리에 살포시 올려놔 주었다. "크극...큭....... 에? 이게 뭐 하는.." "휴지 왕자님." "..........." ".... 보기 좋은데?" '양재성.. 니가 지금 날 놀린거냐....' 라는 표정으로, 너무 경악한 나머지 휴지는 내릴 생각도 못 하고 굳어있는 송지훈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유쾌해진다. 이봐.. 나라고 해서 장난같은 거 생전 안 치는건 아니라고... 자주 즐기지 않아서 그렇지. ========================================= [1학년 4반 주번 학생들은 지금 즉시 중앙 현관 앞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 으음.. 왜 또 부르고 난리야... 졸린눈을 부비대며 몸을 일으켰다. [끼기긱...]하는 책상과 바닥의 마찰음이 오늘따라 귀에 거슬린다. 바로 옆분단 옆자리인 기현이 놈은 어느새 나가 버린 모양이다. 밉살스러운 놈이긴 했지만, 일단은 나도 도움을 받고 보니 녀석에게 신경이 쓰인다. 왜 도와줬는지 좀 궁금하기도 하고...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날 무지 싫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아니면 단순히 시체 치우긴 싫다는 심정으로 양호실에 실어 나른걸지도 모르겠다. 그간 뺀질댄걸 보면 그리 하고도 남을 놈이지.. 암 그렇고 말고... "......으아아!" 문을 열자마자 불쑥 튀어나오는 생물체에 어지간한 나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휴.... 놀래라... 무슨 인기척이라도 내고 있던지.. 하마터면 부딫힐 뻔 했군. 상대도 깜짝 놀란 모양이다. 으음.. 뭐 내가 나타나서 라기보단, 내가 놀란 것에 경악한 듯한 표정이지만..... 그러기에 신기현, 왜 그런데 서있는 거냐!!! ......................혹시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같이 가자." "......" 머뭇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말없이 녀석의 앞을 지나치니, 이 밥팅같은 놈은 제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한다. 아아.. 피곤한 놈. 이렇게 움직이면 그냥 같이 가는거지, 뭘 그렇게 또 축 늘어지는 거야!! 아까까지만 해도 거만하기 짝이 없던 신기현이 저자세로 나오니 이번엔 내가 적응이 잘 안된다. "뭐해? 안 따라오고..." "어?" "같이 가자며.." 신기현은 잠시 당황한 듯 싶더니 서둘러 내 옆에 따라 섰다. 꼭 이렇게 말을 해 줘야 알아듣는 건가? 약삭 빠른 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귀머거리 아냐? [타박..타박..타박..] 조용한 복도에 녀석과 나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녀석은 그게 어색해서인지, 아님 무슨 할 말이 있는건지 연신 헛기침을 해대거나 머리를 긁적이는 등.. 좀 법석이다. 나? 나야 뭐 조용한 걸 숭배하는 사람이니까... "저기...." "......" 으음... 역시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거였나? 걸음을 멈추고 빤히 쳐다보니 무안한 듯 고개를 푹 숙인다. 이봐... 답지않게 그게 무슨 낯간지러운 짓이야!! "........................미안하게 됐다. 나도 그렇게 까지 하려는건 아니었는데..." "......" "사실 처음 봤을 때 난 장난이라고 말 걸었던 거였어. 너는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무안하고 화가 나서... 그래서 일부러 청소도 안하고 뺀질거렸는데, 니가 화도 안 내더라고..." "......" "....정말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네가 아무말도 안 하고 화도 안 내는게 날 꼭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빴다. 하지만, 너 혼자 청소하는 거 볼때마다 나도 마음이 불편 했다고... 하... 지금 생각하니까 정말 내가 쪼잔 했던 것 같다. 미안하다." "......" ".........화 많이 났냐? 정말 미안해... 다음에 주번 같이 하게 되면, 내가 전부 다할게..!! 그러니까 화 좀 풀어라. 야!! 뭐라고 말 좀 해봐..." 하하하하.... 그러니까 결국 그까짓 이유로 나를 그리 괴롭혀 왔다는 거냐? 거만한 척도, 미친개 앞에서의 뻔뻔함도 전부 나 화내는 꼴 볼려고 그랬다는 거야? 이제까지 참아왔던 분노가 한꺼번에 전부 타오르는 느낌에 나를 붙잡고 흔들면서 애원하던 녀석을 정면으로 홱 쏘아보았다. 흠칫 놀라면서도 내 옷깃을 잡은 손을 놓지 못 하고 안절부절이다. 흥.. 이 몸을 화나게 한 이상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 가능하면 쌀쌀맞은 표정을 유지해서 녀석을 시선을 땅바닥으로 분산시키려 노력하면서 녀석의 귓가로 살금살금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쫘악!!! "으아아아악!! 이게 무슨 짓이야!!!" "제길.. 이런 썩을 놈의 새끼!! 그렇다고 그렇게 땡땡이 치면서 사람을 약올리냐!!! 너 오늘 죽어봐라!! 이 폼만 있는 귀때기... 내가 다 찢어 놓을 줄 알아!!!" "아파!! 아파!! 이거 놓고 얘기해!!" "웃기지마! 내가 말 없는거 가지고 왜 네 녀석이 난리냐고!!!" "이씨.. 이게!!" 녀석이 화가 났다는 듯이 나를 탁 밀어젖혔다. 으음.. 이거 좀 센데... [털썩...] "아앗... 미안!!" 내가 힘없이 나가떨어지니, 좀전에 자기가 빌던 상황을 떠올려 내곤 또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법석이다. 양손으로는 내가 방금 전까지 잡아늘리던 귀를 잡은채.. 쳇... 이거 별거 아닌 놈이었잖아. "이제 됐지?" "???" "이만하면 이제 비긴거 아니냐고... 어휴.. 너 진짜 못 알아 듣는다.." 어리둥절 해 있던 녀석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한 쪽 입술을 틀어보이며 웃는다. 아아... 저거 습관이었구나. 비웃는게 아니라. 멀찍이서나 대충 보곤 비웃는거라 지레 짐작하고 기분나빠 했던걸 생각하니 이젠 놈이 좀 이뻐보인다. 뭐.. 내 잘 못이 아주 없는건 아니었나보다. 뼛속부터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으니.. 하하... 진짜 비긴거 맞네 뭐. 좀 미안한 마음에 내딴에도 응답한다고 환하게 씩 웃어주니... 제길.. 아까 송지훈처럼 신기현도 못 볼거 봤다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이봐들... 나도 사람인데 대체 왜 그러는 거지? ============================== "이 녀석들!! 불렀으면 얼른 얼른 올것이지 왜 자꾸 꾸물럭 거리는 거야!!" 으음... 체육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도 그럴것이 기현이놈이랑 투닥대고 낄낄 거리느라 좀 늦게 나왔거든. 아직 남아있는 페인트 통을 가르키면서 갈갈히 뛰고 난리다. 내가 아파서 그랬다고 신기현이 설명을 하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쓱 훑어본다. 으... 기분나빠. "너희 둘!!! .....집합도 자주 늦은데다 안한 건 안 한거니까 일주일 더 해!! 알았어? " "..............키..킥...큭큭...." 이런... 웃음을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신기현... 잠시 얼빵한 표정으로 킥킥대는 나를 보더니 뭔가가 생각난 듯.. 허탈하게 [허...허...] 하고 웃는다. "이 놈들!! 일주일 더 하라는게 뭐가 좋다고 실실 쪼개고 난리야!! 제정신이냐? " "아얏!!" "크..큭.. 아!!" 체육이 별 미친놈 다보겠다는 투로 우리 둘의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았다. 하하.... 그럼요. 아주 좋아죽죠. 다음에는 누가 혼자 주번 활동 다 한댔으니까.... 안 그래? Chapter 7. 주번.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Episode 5) "야!! 네 놈 때문에 우리 요리부가 인식이 나빠져서 올해 신입들이 안 들어오잖아!!" "그래서요?" "..ㄱ...그래서긴!! 니가 책임을 지라는 거지!!" "어.떻.게.요?" "그...그러니까!! 으음.......................................................... 니가 요리부에 들어!!!" "에에?" "그래. 그게 좋겠다!! 하하핫!! 너 이제 요리부해!" "싫어요!!!!" ------------------------양재성. 요리부 가입.--------------------- Episode. 요리부 기장 허상수.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8) "아.. 재성아, 이리 잠깐 따라와 볼래?" "네?" 아아.. 이거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지각하고 담타다가 미친개한테 걸리는 바람에 운동장 2배로 죽어라 뛰고 쓰레빠로 맞고, 욕 디지게 먹고.... 아무튼 아침부터 추욱 늘어져서 교실문을 마악 밀어 젖히려는데 이번에는 누군가가 뒷덜미를 화악 잡는 통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늦게 들어왔다고 또 깨지는 건가? "잠깐이면 되니까.." "......" 예상밖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천천히 돌아보니 담임이 사람 좋게 씩 웃고 있다. 예전의 일도 있고 해서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긴 하지만, 미적거려봤자 나같은게 어차피 완벽하게 개기지도 못할거... 그냥 순순히 따라 나섰다. 설마 날 어쩌기야 하겠어? "하하.. 많이 긴장했냐? 사내놈이 뻣뻣해서는.... 빨리 들어와." 사내놈이 그럼 뻣뻣하지.. 기집애처럼 나긋나긋 합니까? 속으로 투덜대면서 담임을 따라 교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나에게로 머물렀다 흩어지는 다른 선생님들의 시선이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은은히 풍겨오는 커피향과 아늑한 분위기가 싫지는 않다. 그나저나 무슨 용건이지? 할 얘기가 있으면 아까 복도에서 했어도 좋았을텐데. "그렇게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지 말라고....뭐 줄게 있어서 따라오라고 한거니까.. 아니면 혹시 뭐 잘못한거 있어서 찔리는 거냐?" "......" 흐음.. 저같이 무난한 놈이 무슨 눈에 띄이는 짓을 하겠습니까.. 기껏해야 지각 정돈데 오늘 한 건 그나마 벌써 죄값을 치렀고..... 뚱한 얼굴로 쳐다보니까 다시 "하하.."하고 뭐가 즐거운지 웃더니만 서랍안에서 자그마한 봉지를 하나 꺼냈다. "이거 줄려고 불렀지. 뭐.. 많진 않으니까 알아서 안 뺏기게 잘 먹어라." 그러곤 봉지에서 바스락 거리는 새하얀 뭔가를 한 웅큼 가득 집어서는 내 손에 쥐어준다. 이.......이게 뭐지? ============================================= "어라? 양재성, 그게 뭐야?" "어? 진짜? 뭘 그렇게 양 손 가득 들고 오냐?" "......." 손이 모두 부자연스러운 관계로 발로 열었던 문을 다시 발로 힘겹게 닫으면서 대답 대신 입안에서 우물거리고 있던 것 하나를 슬몃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사탕이잖아.." "나도 하나만..." 어쩌구 하면서 소란스럽게들 집어가기 시작했다. 사탕이 순식간에 없어지길래 재빨리 3개를 빼어 따로 손에 쥐어냈다. 얄밉긴 하지만 세 놈들 입에도 처박아야지 좀 조용하지 않겠어? 역시 난 너무 자비로워서 탈이라니까... "아침부터 왠 사탕? 니가 사왔냐? 칫.. 사올려면 좀 맛난거 사오지... 왜 하필이면 박하사탕이야?" 진욱이 놈의 책상으로 하나 떼구르르 굴려주니 녀석이 낼름 받아 까먹으면서 궁시렁 거린다. 이 놈은 먹으면서도 말이많아!! "나도 남한테 받은거니까 입다물고 처잡수시기나해.." 쓱 노려봐주니 뭐 자기가 뭐랬냐는 투로 학업에 정진하는 척 한다. 얄밉다. 으음... 뭐.. 신경써봤자 어차피 나만 바보되는거지만.. 현우놈하고 지훈이놈 한테도 하나씩 굴려주니 반응이 제각각이다. 지훈이 놈은 킥킥대고, 현우놈은 의심스러운 듯이 보고... 뭐야.. 내가 또 뭘 어쨌다고.. "양재성.. 내가 여자냐?" "뭐?" 음산하게 깔리는 현우놈의 목소리에 송지훈은 이젠 아주 좋아 죽을려고 한다. 이 것들이 지들끼리 알 수 없는 일로 쑥덕대고 킬킬대는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따져봤자 힘만빠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냥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아... 요샌 한숨만 부쩍 느는 것 같아.. "웬 헛소리야? 나도 받은 거라고 방금 얘기 했잖아. 좀전에 담임이 준거야." "......" "크...하..헤...헤...크큭.. 뭐? 담임이? 하하하.." 이 것들 또 시작이다. 아까부터 대놓고 웃던 송지훈은 아얘 뒤집어졌고, 이현우는 방금전까지의 그 냉정함은 어딜갔는지, 입을 틀어막은채 귀만 빨갛게 변하는 기행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최대한으로 '나 지금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려 노력 하니 어느덧 조금 진정한 송지훈 놈이 숨을 가다듬으며 어렵사리 말문을 연다. "재..재성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날은 무슨.. 이렇게 학교에 버젓이 와있는 걸로 봐서 절대 국경일도 아니요, 한글날이나 군인의 날도 아닌 것 같고...... 으음.. 애국조회가 없는걸로 봐서 학생의 날도 아닐테지?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머릿속으로 가만히 날 수를 헤아려봤다. "...3월 14일." "...크..프.ㅎ.. 아직도 모르겠어?" "뭐가?" "푸하하하.. 크프..큭........" "화이트 데이." 차마 말을 못 끝마치고는 나가 떨어지는 송지훈을 대신해, 언제 그랬냐는 듯 완벽하게 평정을 되찾은 이현우가 내뱉은 마지막 말에 순간적으로 사고회로가 정지해 버리는 듯 했다. 제길... 뭐? 화이트 데이? 남자가 여자한테 사탕주는 날? 어느정도 머리를 굴리고 나니, 눈이 뒤집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받아버렸단 말이지... 담임한테.... "내..가 이 변태 선생을 그냥.." 저절로 입에서 갈린 소리가 흘러나간다. 분위기가 좀 험악해 지니까 두 놈이서 심각하게 진욱이 까지 불러서는 '진짜 화났나보다.' '좀 심했나?' 하면서 궁시렁 거리는가 싶더니 ...........................결국은 키득댄다. 가증스러운 것들.. 이게 대체 뭐가 재밌다는 거야!! 처음에는 송지훈이랑 박진욱만 짝짜꿍이 맞아서 난리인가 싶더니만 요새는 이현우까지 자연스레 합세해 날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다. 지훈이 놈과는 그렇다치더라도 완전히 상극일 것 같던 박진욱과 잘 어울리는 걸 보면 이현우의 뇌구조는 과연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때때로 뜯어보고픈 충동을 느끼곤 한다. 아아... 나는 입학전까지만 해도 무.신.경. 그 자체였던 놈이었다고!!! 그나저나........ 이것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변태 담임... 제길.. 역시 따라가는게 아니었다. 사탕 받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애써 잊으려 했던 좀 전의 일까지 다시 생각 나면서 머리가 다시 지끈지끈 아파온다. [자....'아...' 해봐.] ....................................................................................................제길..젠장 ..!!!! 아까 교무실에서 담임이 한 손으로 집어준 사탕을 두 손으로도 아슬아슬하게 받아서 멍하니 서있자니 귓가에 들려온 말.이.다. 지금 생각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까집어졌으면 까집어 졌지 절대 그 명령에 복종 하지 않았을테지만, 당시의 나는 넋이 나가있었는지 어쨌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반사적으로 담임 손에 들린 사탕을 받아 먹 어버린 뒤였다. 그 뒤론 거의 패닉 상태에서 교실로 흐물흐물 직행... 솔직히 교실문 열기전까지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아아... 오늘이 화이트 데이인 줄 알았으면 박하사탕을 주던 나프탈렌을주던 그걸 다 담임 면상에 팽개쳐 버리는 건데!! 내가 미쳤지.. 그걸 받아먹긴 또 왜 받아먹은거야!! [툭....]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 뭔가를 내 책상위에 놓으면서 물어오는 지훈이 놈의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무슨생각 하냐고? 내가 그걸 얘기해 줄 것 같냐? 입을 찢어 놓는대도 말 못하지.. 암... 약간은 항의조로 녀석을 쏘아보다가 책상으로 시선을 떨궜다. 바스락 거리는 반투명한 재질로 포장되어 분홍색 리본까지 달려있는 아주 작은 꾸러미... ..............이.게.뭐.지? "뭐야?" "박하사탕." "......" 하아아아아아..... 그래, 염장마왕 송지훈. 날 괴롭히겠다는 일념하나로 이렇게 정성들여 이걸 포장씩이나 해오셨단 말이지? 담임도 모자라서 이젠 너까지!!! "...야..너!!" "어? 왜?" 욱하는 심정에 터져나오려던 욕설이 녀석의 표정에 그대로 막히고 말았다. 항상 그래왔듯 장난 스럽게 놀리듯 웃고 있을줄 알았던 녀석의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이건 또 뭐지? "너...." "하하.. 야, 임마. 너 말고 딴 녀석들도 줬다고 삐진거야? 걱정마!! 난 너 밖에 없다니까!!! " "......" 왠지 미심쩍은 눈으로 녀석을 주시하니, 지훈이놈.... 뭔가 자기도 어색했는지. 예의 그 다운 커다란 웃음 소리를 내며 얼버무린다. 뭐... 별일이야 아니겠지만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내가 알기론 송지훈이 우리 중에 가장 표정관리 잘 하는 놈인데 말이다. 진욱이야 원래 생각하는대로 얼굴에 다 드러나는 편이고, 현우는 안 드러내는 척 하지만 빤히 들여다 보이는 타입. 하지만 이 놈은 항상 느물느물, 싱글싱글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좀체로 감정이 격양되는 법이없다. 이거 생각할수록 수상한걸? "어어? 네 놈이 왠일이냐? 이런걸 다주고...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은 잘 알겠지만.. 보시다시피 이 몸은 한 곳에는 안주 할 수 없는 몸이라.. 후후.. 10년뒤에 다시 한 번 찾아오면 그 때 한 번.." "진욱아.. 줄 때 얌전히 먹어라. 도로 뺏긴 다음에 울지 말고.." "하하... 쑥쓰러워하기는.. 그래, 이 형님이 다 이해한다. " "찌.끄.레.기..가 좀 남았길래 대충 뭉쳐서 줬더니만 이게 말이 많네. 이리 도로 줘!!" "아핫핫핫.. 뭐 그럴 것까지야. 충치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네 마음인데 먹어 줘야지. 너무 미안해 하지마." 진욱이놈... 또 지 멋대로 하고싶은 말만 해가면서 시끄럽게 난리다. 머리 구조가 대체 어찌 생겨먹었길래 듣기 싫은 말은 하나도 안 듣는 척 할 수 있는걸까? 아니, 정말 안 들리는 걸지도 모르겠군. 언젠가 이현우 다음으로 이 녀석 머릿속도 한 번 뜯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 요샌 생각하는게 다 삭막한 쪽으로만 흘러간다니까... "송지훈, 이게 찌.끄.레.기 라고?" "어?" 현우놈이 사탕봉지를 살짝 들어 흔들어 보이며, 냉랭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왠지 따지는 듯한 기색이 역력한 말투에 갑자기 넷 모두--정확히는 둘이지만..--조용해 졌다. 얘는 또 왜 이렇게 분위기 잡는 거지?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남자놈들끼리 주고받는 사탕에 의미가 있는 거라면 그거야 말로 호러 아닌가? "왜? 뭐 잘 못 됐어?" 역시나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지훈이놈. 현우의 말투가 듣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아니꼬울 수도 있겠지만, 전혀 상관않는 눈치다. 이에 놀랍게도 이현우는 입꼬리를 살짝 일그러뜨리며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아.. 니 얼굴도 이런 표정이 가능하구나. 으음.. 오히려 더 효과가 큰 것 같은데... 싸가지 까지 없어 보이고... 그나저나 분위기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괜히 나까지 섬찟한 걸... "이게 찌.끄.레.기..라면.. 진.짜.도 있었다는 얘길텐데, 대체 누구한테 줬지?" "!!!!" 하하.. 나이스!! 미쓰리!! 예리한걸... 그리고 보니 미처 거기까지 생각 못했군. 역시 머리 좋은 놈들은 놀릴때도 좀 더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는건가? 당황한 듯한 송지훈의 표정을 보니 기분이 다 상쾌해 지는 것 같다. 후후.. 이제 꼬투리를 잡았으니 그간 쌓여왔던 원한들을 슬슬 풀어보실까나... "으아앗.. 지훈아.. 날 버리고 대체 어떤 년이야!! 설마 벌써 그렇고 그런 사이인건 아니겠 지?" 으음... 뭐 내가 나설 것 까지도 없겠군. 인신공격의 황제 진욱군이 있으니.... 송지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는가 싶더니, 이내 녀석 답게 껄껄 웃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그냥 여동생 줬는데?" ".................." ".................." ".................." "....송지훈... 그런 거짓말에는 양재성도 안 넘어가지 않을까?" "맞아...가 아니라.. 뭐? 이현우!! 말이면 단줄알아? 왜 내가 거기 들어가는 건데!!" "그래, 재성이도 거기엔 안 속겠다." "정말 여동생 주는거 맞다니까. 그러는 이현우... 너야 말로 수상한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중학교때 꽤나 날렸다며? 진욱이는 말할 것도 없을테고..... 안 그래?" "뭐가 안 그래긴 안 그래야!! 괜히 찔리니까 말돌리지 말고 빨리 불어!!" "하하... 역시 진욱이 넌 벌써 줬나 보구나!!" "주기는 뭘!! 벌써 일주일 전에 깨졌..." 양아치놈.. 재빨리 입을 틀어막기는 했지만 핵심내용은 이미 다 들어버린 뒤다. 으음.. 그래 일주일 전까지는 있.었.다.는 얘기네. 이 형님껜 한 마디도 뻥끗 안 해 놓고...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으면 이현우처럼 아주 입을 꾹 다물어버리던지... 말로써 흥한자 말로써 망하나니... 니가 꼭 그짝이구나.. 세 사람의 시선이 바로 내리 꽂히자, 박진욱은 슬금슬금 뒷걸음치듯 자기 자리로 가서 문제집에 고개를 박았다. 이런 비겁한 새끼... 그나저나 송지훈의 공격력에는 정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진욱이가 단순빵이여서 넘어간 거긴 하지만 일단은 입을 꾹 다물게 했으니까... 능력있는 두 분이야 물러섰지만, 나야 화려한 싱글이니 캐물을 자격은 충분한 거겠지? 녀석을 직시하고 슬슬 약을 올리니 끝까지 시치미를 뚝 뗀다. "아무튼 동생준거 맞다니까!! 사내놈들이 쪼잔하게 캐묻고 들어가기는... 내가 하느님 앞에서 맹세한다." "너 불교잖아." "쳇... 그래, 까짓거 부처님 앞에서 맹세한다." "절에 정말 나가기는 하는거냐?" "......이 새끼.... 무슨 의심이 그렇게 많냐? 정말 맞다니까. 있으면 내 성격에 떵떵거리고 자랑하지 왜 숨기고 난리겠어. 안 그래?" "......으음..." 아아.. 정말 재미없는 놈.. 뭔가 쩔쩔매는 구석이 있어야지 놀려먹던지 어쩌던지 하지... 이거야 원.. 실실대면서 구렁이 담넘어가듯 슬쩍슬쩍 넘기는게 내가 다 피곤해지는 것 같 다. 옆을 힐끔 돌아보니 현우놈도 좀 김샜다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아있다. 나도 이제 슬슬 좀 자볼까? 자율시간에는 항상 퍼자다가 맨정신으로 있으려니 돌아버릴 것 같은데.. "송지훈! 그럼 니가 여동생이 있다는 거야?" 어휴 깜짝이야... 갑자기 내 의자로 끼어 앉으면서 달려드는 진욱이 놈 때문에 또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이 자식은 짱박혀있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 기어나와서 난리인 건지... 송지훈도 놀랐는지 얼떨떨한 투로 대답했다. "어? 어.." "이쁘냐?" 그래, 박진욱.. 니가 그러면 그렇지.. 일주일을 혼자 보내려니 아주 많이 외로웠겠구나.. 하하.. 17년을 솔로로 지내는 누구는 이제 슬슬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기도라도 해야하는건가? "어... 그래. 이뻐. 아주 많이." "정말? 정말이지? 니가 방금 이쁘다고 한 거다!!" 나도 모르게 눈이 크게 떠졌다. 송지훈이 이쁘다고 하다니... 정말 진욱이 놈이 발광할만하다. 무심히 있던 현우녀석까지도 흘깃 돌아봤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이 무슨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에 달렸는지, 암만 예쁜 여 자.. 일반인은 물론 연예인들까지도 "뭐... 봐줄만하네...." 이상의 표현을 절대 쓰지 않던 놈이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못한 건지... 보는 눈이 없는건지.. 아니면 너무 뛰어난 심미안 을 가진건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녀석이 예쁘다고 하니 나도 귀가 솔깃해 지는 것 같다. 흠..흠.. 하지만.................... 그것보다도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 말을 할때 잠시 스쳐간 녀석의 표정이었다. 어딘지 애틋해 보이는 부드러운 얼굴... 거기에다 미묘하게 평소와는 다른 애정어린 목소리.. 녀석이 사탕을 동생에게 줬는지, 딴 여자한테 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엄청나게 아끼는 모양이다. 오늘따라 녀석의 표정이 꽤나 풍부해진 것 같다. 학교에선 어떨지 몰라도, 집에서는 꽤나 듬직한 오빠...라는건가? "남자 친구 있냐?" "없어. " "후후후.. 지훈아.. 아니, 처남.." "시끄러!! 어디서 니까짓게 지혜를 넘봐!!" "흐흐.... 지혜라.. 이쁜이름이네.." "뭐!! 뭣!!" 그래, 싸워라..싸워. 싸우면서 크는 거지.. 근데, 싸움을 하던, 살인을 하던.. 전부 다 좋은데.... 이것들은 왜 하필 내 책상에서 싸우는 거야? 으으으.. 지겨워어... ============================================ "응? 왜?" "....뭐가?" "뭐 물어보려던거 아니었어?" "............아니. 별로." 어휴.. 깜짝이야... 십년 감수했네. 애써 태연한척 했지만 속으론 뜨끔했다. 진욱이놈.. 요새들어 부쩍 느끼는건데, 눈치가 빠른건지 그냥 넘겨짚는 건진 몰라도 꼭 사람 속을 빤히 들여다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곤한다. 사실은 녀석이 아까 실수로 폭로하고 말았던 그 여자친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뭐... 어느 날이든 1년에 한 번 있기는 마찬가진데... 이렇게 '화이트 데이'라고 떡 하니 이름 하나 붙여놨다고 해서 휩쓸리는 것은 썩 내키지 않지만..... 주변 분위기라는게 있는 만큼 나도 좀 마음이 뒤숭숭하다. 중학교까지는 남녀공학을 다니긴 했지만, 사귀는 사이...라고 말할 정도까지 간적은 한 번도 없었던 나로써는 솔직히 진욱이 얘기가 꽤나 충격이었다. 웬지 녀석이 갑자기 내가 알고 있던 것이랑은 생판 달라보인다고 해야하나..? 때때로 주변에서 사귄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녀석들을 꽤 보긴 했지만, 대체로 나랑은 좀 거 리가 있는 꽤 논다..하는 녀석들이라서 그냥 그러나부다...하고 넘겼는데, 막상 전혀 생각 못했던 녀석이 깨졌다느니 어쩌니 하고 있으니까 기분이 어째 묘하다. 조금은 부러운 마음 도 들고... 하긴.. 내가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을 뿐이지, 진욱이 정도면 여자친구가 있다는게 이상할 것도 없는 것 같다. 워낙 바른생활 사나이인 녀석이라 요즘들어 잊고 있긴 했지만, 그 머리모양이나, 교복 꼴을 보고 내가 받은 첫인상도 양아치였는데 뭐... 거기다가 얼굴도 그만하면 꽤 멀쩡하게 생겼겠다. 키 크겠다. 붙임성도 있고...노래도 잘하 고. 곰곰이 뜯어보니 좀 괜찮은 놈인 것 같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외.관.상.으.로.는..... 속까지 파헤쳐보면 그저 말많고, 귀머거리에다가, 고약한 장난을 즐겨하는 미친놈 정도지 뭐.... "양재성.... 뭘 그렇게 혼자 실실 쪼개고 있냐? 내 생각해?" "......."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녀석 독심술을 쓰는게 아닐까 의심스럽단말이야.. ================================================== "송지훈!! 야!! 야!! 어디가는 거야!! " "이거 안놔? 계속 이딴식으로 나오면 물어뜯어버린다!" "흐흐.. 그러니까 빨리 지혜 소개시켜준다고 약속해." "죽어도 못해! 이게 어디서 감히!!" "야.. 얼굴이라도 한 번만 보자. 응?" "웃기지마! 너 같은 성격파탄자한테 왜 멀쩡한 내 동생을 보여주냐? " "그런다고 내가 안 보고 넘어갈 것 같아? 그러지 말고.. 친구 좋다는게 뭐냐?" "이 새끼가.. 죽을라고!!" "그래, 죽여라 죽여!!" "시끄러!!!!!!!! 둘다 죽어버려!!" 내 고함소리에 두 녀석 다 놀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 아아악!! 이게 대체 몇시간째 이러고들 있는거야!! 아침 자율학습시간부터 시작한 박진욱의 집요한 요구와 송지훈의 절대 정중하지 않은 거절 은 점심시간이 다다르자 거의 피크에 이르러서, 내가 디비자고 있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둘이 이리저리 엉키기에 이르렀다. 둘이 뒹굴려면 저기 널찍한 교실 뒤편으로 가던지.. 왜 하필 여기서 투닥대면서 잘 자고 있는 평범한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건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제발 잠 좀 자자구... "거봐!! 니가 시끄럽게 하니까 얘가 이 난리잖아!!!" "새꺄!! 니 목소리가 훨 커!!" "......"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내 말같은건 개껌으로 씹는다 이거냐? 하아... 이젠 더 이상 따져봤자 나만 기운 빠질 것 같아서 베고있던 국어책을 주섬주섬 챙 겨서 앞자리의 빈 책상으로 이동했다. 내가 움직이던 말던 또 둘이 붙어서 아웅다웅이다. 꽉 막힌 놈들.... 길거리 나가면 절반이 여잔데 진욱이 놈은 대체 왜 저러는 건지.... 지훈이만 해도 그렇다. 지 동생은 무슨 금테 둘렀다냐? 나같으면 한 번 보여주고 끝낸다. 시끄러운 녀석들의 목소리에 눈가를 찌그려가면서 잠을 막 청하려는데... 갑자기 녀석들이 조용해졌다. 뭐....뭐지? 방금 현우가 뭐라고 한 것 같기는 한데... "뭐....뭐라고?" "귀먹었냐? 나한테 소개시켜 주는건 어떻냐고.." "......." "박진욱은 성격파탄자에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느니 어쩌니 해서 안된다며.. 난 최소한 이제까지 그런 소리 들어본적 없어." "......" "나도 안된다는 거야?" 혀...현우녀석... 이게 무슨 헛소리야? 녀석이 여자애를, 그것도 지훈이 동생을 소개시켜 달라니..... 어지간한 나지만 벌린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왠지 이.현.우. 하면 여자랑은 약간 거리감 이 있는 이미지 였는데 상당히 의외였다. 진욱이랑 지훈이도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더 나은 상태는 아닌 듯 싶다. 그....그그..래.... 하긴..... 뭐... , 이러니 저러니 해도 녀석도 대한의 건장한 17세 남아. 예쁘다는데 구미가 안 당긴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 다 이해한다. 이해해. 그나저나 ..지훈이 녀석이 뭐라 대답하려나?. 진욱이 놈이야 같다붙이는 족족 다 흠이지만.. 현우야 사정이 좀 다르니까.. 꽤 궁금한 생각이 들어 낮잠이고 뭐고 다 내팽겨치고 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어....라? 내가 잘 못 본게 아니라면.... 지훈이 녀석.... 지금 표정이 꽤나 어.두.워 보였는데..... 방금까지 투닥거리면서 잘만 있던 놈이 왜 갑자기? [..........................................................................................] "하하하.. 안돼. 너도 안돼. 너같이 무뚝뚝한 놈은 내동생이 엄청나게 싫어할걸?" 한참의 어색한 정적 뒤에.. 아까처럼 크게 웃으면서 표정을 감추려는 녀석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찌그러진다. 지훈이가 오늘따라 많이 이상한 것 같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것도 전부 동생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올 때 마다 얼굴빛이 바뀌는 것이다. "누가 소개시켜 달래? 나한테 소개시켜주는건 어떻냐고 했지? 시끄러운 놈들... 이제 좀 조용해서 살 것 같다." "뭐이!! 이 놈이!!" "거봐!! 이런 믿지 못할 놈은 그냥 내버려 두고 나한테 소개해 달라니까!! 이현우!! 이게 어디서 감히 가로챌려고..." 그래.. 니가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오늘따라 좀 정상적인 인간의 행동패턴을 보인다 했어.. 사람 바보만드는 듯한 녀석의 한숨섞인 말투에 다시 진욱이와 지훈이 놈이 왁자지껄 떠들어 대기 시작한다. 에이씨... 모르겠다. 이러다 조용해 지겠지 뭐... ================================================= "아이씨... 나는 안 간다니까.. 현우나 데려가!!" "안돼!! 그 놈은 라이벌이란 말이야!! 잔말말고 따라와. 너도 궁금하잖아." "난 그다지...." "자자.. 빨리 가자." 있는 힘껏 발버둥쳐 봤지만, 우악스럽게 내 손목을 잡아끄는 진욱이의 손을 뿌리치 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거 운동이라도 좀 하던지 해야지.... 어디 서러워서 살겠냐... 에휴우.... 내 처지가 한심스럽고 딱하기 그지없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거의 납치당하다시피 끌려와서 결국은 이꼴이라니... 쳇... 어디가냐고? 그거야 뻔한거 아니겠어? 독불장군 박진욱군이 오늘 꼭 송지혜양의 얼굴을 봐야만 하겠다는데... 당연히 송지훈군의 집으로 가는거지 뭐.... "아아... 아파.." "그러니까..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내려서..." 주소는 어디서 어떻게 알아냈는지, 답지않게 늘 챙겨가지고 다니는 다이어리를 열심히 들여다 보면서 지하철 역쪽으로 또 우악스럽게 마구 잡아당긴다. 이게 여자에 눈이 멀어서 는 친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이거야? 쩝... 뭐.... 친구치곤 좀 험악한 사이이긴 하지 만.. 지하철 타는 계단을 내려가서 플랫폼 앞에까지 서서야 녀석은 거칠게 잡고 있던 팔을 슬며시 놓아 주었다. 어휴... 이 손자국 좀 봐. 이러고도 니가 사람 새끼냐? 손으로 붉게 물든 곳을 쓸어주면서 후후 불고 있자니, 또 녀석이 호들갑 떠는 소리가 들린 다. "앗!! 전철 왔다." 방송으로 아까부터 시끄럽게 떠들어댔는데 새삼스럽게 시리.... 뚱하니 서서 전철이 천천히 서는 것을보고, 승강구로 다가가고 있자니 뭔가 따뜻한 것이 손을 포옥하고 감싼다. 시선을 떨구니 내손위에 포개진 진욱이 놈의 커다 란 손이 보였다. 사내새끼들끼리 손잡고... 참 잘하는 짓이다.. 아주 잘하는 짓이야.....!! [이게 대체 뭐하자는 짓거리냐? 당장 손 놓지 못해!!!] 라는 나름대로는 강렬한 눈빛으로 녀석의 옆얼굴을 쏘아봤지만............ 으음..... 그냥 쏘아보고 끝난거지 뭐.... 이 손 뿌리친뒤면 필시 역 승강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녀석이 내 손 잡고 있던 걸 알게될거다... 이런 극성스러운 놈을 상대로 싸우느니 차라리 입다무는게 상책이다. 으음..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인간이 된건지..... [끼이이익......] 전철문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열리자, 진욱이 놈이 먼저 올라탔다. 그리고는...... "자, 조심해서 넘어와. 발 안 빠지게..." 아아.. 세상에.... 전철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내쪽으로 쏠리는 것이..............그..그냥 느낌 탓이겠지? 이 상황을 보긴 몇사람이나 봤겠어. 가능하면 태연한 척하려 노력하면서 녀석의 손을 뿌리치곤 재빨리 전철 안 가장 구석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친새끼... 내가 애기냐? 거기 발이 빠지게.... 다 큰 사내새끼한테 한다는 소리가!!! 한 뻔뻔한다는 나지만 얼마나 꼴이 우스웠을지를 생각하니 얼굴이 다 화끈거리는 것 같다. 이 새끼는 대체 행동패턴이 왜 이따위인 거야!! "재성아, 여기 와서 앉아라....!! 여기 자리났다." "......." 아앗.. 안돼!!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무슨 헛소리란 말이야!!! 저기 멀찌감치에서 진욱이 놈이 자리를 맡아두고 큰소리로 불러제낀다. 속으로 마구 비명을 질러대면서 [나 재성이 아니에요..] 란 표정으로 눈앞의 기둥을 묵묵히 부여잡았다. 녀석은 몇 번 더 부르더니, 고개를 갸웃하곤 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씨발놈아.. 오지 말란 말이야!!! 오지마앗!! "귀먹었냐? 사람이 부르면 [예...]하고 달려와야지.." "으아아..." 가능하면 녀석과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보이려는 내 노력은 녀석이 내 뒷덜미를 채서 질질 끌고 감으로서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자리에도 안 앉으려고 뻐팅기려 했으 나, 진욱이 하는 꼴이 강제로라도 끌어다 앉혀놓을 것 같아서 주춤거리면서 끼어 앉았다. 주변에서 흘깃흘깃 보는 시선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든다. 어휴.. 이거 진짜 가시방석이 따 로 없군. 다들 구경났어? 뭘 그렇게 보고 난리야!! "어머.. 학생 형인가봐?" "네..넷?" 혀엉? 갑자기 옆자리에서 튀어나온 말에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지금 저 아주머니가 지하철 창문을 열고 나를 밖에다 내던져 졌다고 해도 지금만큼은 놀라 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부정의 표현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채, 계속해서 아주머니 는 자신의 주장을 펴나가기 시작했다. 이보세요!! 저는 외아들이랍말입니다!! 외아들!! "둘이 몇 살 차이야? 4살? " "아니..저기 저...." "어쩜 그렇게 자상도 할까? 남동생한테 그러기 쉽지 않을텐데.... 우리 큰 애는 지 동생 맨날 못 잡아서 안달이거든... 학생은 참 좋겠네.. 저렇게 좋은 형을 둬서.." "......." 뻐금..뻐금.. 뭐라고 분명히 해명을 해야할텐데 너무 당황하니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상? 진욱이 놈을 올려다 보니, 싱글싱글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 재빨리 눈짓과 입모양으로 뭐라고 설명 좀 해보라고 난리를 쳤더니 그제서야 알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하하... 제 동생 이쁘죠?" [쓱쓱.....] 이...이..이뻐? 천인공로할 발언을 한 것만 해도 용서 못할테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녀석의 손이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놓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놈!!!! 생각같아서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녀석의 손모가지를 뎅강 분질러버린다음 저 얄미운 주둥 아리를 꿰메 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또 무슨 오해를 살까싶어 이를 악물었다. 둘이 교복까지 똑같은 걸 입었는데, 대체 어디서 그런 발상이 떠올라서 계속 진행중인 것인 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없다. 씨발....내리기만 해봐라... 내리기만 해봐라... "그래, 남동생이 여자애처럼 이쁘장하게 생겼다. 얼굴도 뽀얀하니..." [움찔.....] "그렇죠? 얌전히 말도 잘들어요.." [움찔..움찔...] "어머.. 그나저나 형도 참 잘생겼다. 그런 소리 많이 듣지?" "하하..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크아아아악...] 이거 정말 미쳐버리겠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이 새끼 내 형 아니야!!]라고 해버릴 수도 없 고...... 저 얼굴이 잘생기긴 대체 뭐가 개뿔이 잘생겼다는 거야!! 어휴.. 보는눈이 있으시군 요? 잘들 놀고 있네. 나보곤 예쁘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재수없는 소리를 해대면서 저 놈보 곤 잘 생겼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대체 이 얼굴이 어디가 어때서!! [이번 정차할 곳은....] "앗.. 재성아, 내려야 겠다. 아주머니 안녕히 계세요." "학생도 잘가. 동생 잘 돌보고.. 요새 애들 답지 않게 기특하네.." ============================= [덜컹덜컹덜컹....] 우리를 역에 내려놓고 전철이 다시 출발했다. 출발... 후후.... 그래 떠났단 말이지... "박진욱!!! 이 개새끼.. 너 이리 안 와?" [탁탁탁탁......] "어쭈? 형님한테 개기냐? 그래 어디 한 번 잡아봐라. 참고로 현우 이외의 인간한텐 아직 한 번도 안 잡혀 봤어." [.....................................................................................................] 전의 상실. 이전에 이현우와 녀석의 추격전을 떠올리니 쫓아갈 마음이 싹 가셨다. 아마 거의 교실이 쑥대밭이 됐었었지..... 엄청난 속도로 뛰어다니는 두 녀석들 때문에 우리반 하마터면 단체 기합받을 뻔 했었다. 물론 현우가 진욱이를 잡아서 국사숙제를 되찾음으로써 일단락 되긴했지만...... 아아악.. 그때는 생각하기도 싫어! "자, 알았으면 조용히 따라와. 안 그러면 두고가 버릴꺼야!" 생각 같아서는 두고가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혼자서는 도저히 돌아갈 처지가 못된다. 지하철도 못 타고 다니냐고? 쳇... 지금 땡전 한 푼 없단 말이다. 차비가 없는데 무슨수로 내가 집에 간단 말이야!! 결국은 투덜대면서 녀석의 뒤를 따라가는 수 밖에 없었 다. "으음.. 역에서 내려서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랬는데... 아, 저깄다." 아아.. 갓뎀... ======================================== [띵동.. 띵동...] "누구세요?" "저기 지훈이 친구 진욱이라고 하는데요.." "어? 잠시만..." 하아... 결국은 여기까지 끌려와버리고 말았다. 밖에서 기다릴테니 혼자 보고 오라고 해버릴 까 싶기도 했지만, 솔직히 나라고 해서 하나도 안 궁금하다면 거짓말이겠지? 기왕 온거 나도 보고 가잔 심정으로 순순히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막상 안에서 인기척이 나니까 굉장히 쑥스러웠다. [덜컹..] "어머? 지훈이는 오늘 아무말 없던데... 친구들이 왠일이니?" 문을 활짝 열리면서 아주머니 한 분이 반갑게 문을 열어주셨다. 입매며, 코며 분위기며 완 전히 지훈이를 빼다박은 것이 지훈이 어머님이신 모양이다. 잠시 당황해서 어물쩡어물쩡 거 리고 있자니, 진욱이 놈이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진욱이 놈이 인사하길래 얼떨결에 따라 인사 하니, 어머님께서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 어보이셨다. 으음.. 역시 이렇게 찾아오면 안 돼는 거였나? "이거 어쩌지? 지훈이가 학원가고 없는데... 이 바보같은 놈이 약속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일단은 들어와서 좀 쉬다가라도 가렴. 응?" "아니..저희는..." "자... 빨리...빨리.." 지훈이가 없다면서 어머님이 너무 미안해 하시니, 불순한 목적으로 온 것이 꽤나 무안해졌 다. 나서서 거절해보려고 했지만, 벌써 손목이 잡혀서 반쯤은 현관 안으로 끌려들어온 뒤였 다. "자, 다들 좀 놀다가요. 지훈이랑 아빠 나가고 나면 이 집에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는데 이렇게들 찾아오니 반갑네." "아..네.." "거실보다는 지훈이 방이 편하겠지? 저 방이니까 다들 편하게들 앉아있어요. 얘가 청소는 제대로 해놨는지 모르겠네...."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님께서는 뭔가를 준비하시려는 듯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꽤 너른 집안에 깔끔한 인테리어..... 우리집과는 전혀 다른 약간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주눅이 들었다. 하긴... 뭐 일반 가정집은 다 이정도겠지.. "재성아, 뭐해? 들어가자." "어? 어.." 진욱이 놈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방문을 여니 예상외로 정말 깔끔한 방이 보였다. 옷장. 책상. 침대. 컴퓨터.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4가지가 달랑이다. 정말 삭막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방인걸? 뭐.. 아무것도 없다라기보단 정리가 완벽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은데.... 내가 아직도 주눅이 들어서 적응 못하고 있는 반면, 진욱이 놈은 이리 저리 기웃 거리고 만지작 거리다가, 그나마 좀 장식품 같이 책상위에 놓 여있는 이상하게 화려한 꾸러미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안경을 안 써서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희뿌옇게 액자 같은 것도 보이는 것 같고.... [........................................................................................................] 어라? 뭔가가 이상하다. 진욱이 놈이 이렇게 말이 없다니.... 뭔가 특별한 것을 보거나 건드리는 것 같지는 않은데 멀뚱히 서서는 꼴에 분위기를 잡고 서 있다. 뭐...입 다물고 좀 심각한 체 하니까 그럴듯해보이기는 하다만 방안에 감도는 이상한 정적에 괜히 무안해 졌다. 그렇다고 뭐라 내가 말을 걸기도 뭐하고 해서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고 있자니 진욱이 놈이 한숨을 푹 쉬면서 말을 툭 뱉는다. "집에 가자." "......뭐?" "집에 가자고..." "......"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송지혜양 얼굴 본다고 길길히 날뛰던 놈이 갑자기 여기까지 와서 는 왜이리 소심한척 하는거지? 이제와서 뭐 맘이 바뀌었다거나 이런건가? 의문을 가득 담아서 녀석을 쳐다보니 녀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이 자식 갑자기 왜 이래? "여기 지훈이 여동생 없어." "......그..게 무슨 헛소리야? 어디 갔다는 얘기야?" "아니, 이 집에 여자애는 안 산다고..." "......" 여자애는 안 살아? 그럼 송지훈이 거짓말을 했단 얘기야?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노려 보았지만, 진욱이 놈은 묵묵히 내 팔을 잡 고 현관으로 저벅저벅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님... 저희들 갑니다!!" "아니, 왜... 벌써가고 그래? 간식 좀 준비했는데 먹고 가지?" "아닙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지훈이한테는 잘 좀 말해주세요." "그래? 그럼 다음에 또 놀러오렴.." "감사합니다.." [쾅...] 문이 닫기자 마자 녀석의 손을 홱 뿌리쳤다. 이거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거야? 사람을 제 맘대로 이리 저리 끌고 다니질 않 나, 갑자기 맘을 바꿔서 집에 간다질 않나.... "빨리 설명해봐. 진짜 열받아서 돌아버리기 전에.. 키득대면서 니맘대로 할땐 언제고 이번엔 또 왜 이 지랄인데....?" "......" "야.. 니까짓게 그렇게 분위기 잡아도 하나도 안 무서워.." "...................." 이쯤되면 자기의 카리스마를 무시하는거네.. 뭐 이래뵈도 눈빛만으로 사람을 제압하네 어쩌 네 하면서 지 자랑을 떠벌떠벌 늘어놀 듯 싶은데, 한 번 굳어버린 녀석의 표정은 도무지 풀 어질줄 모른다. 일자로 굳은 녀석의 입매를 보고 있자니, 이렇게 진욱이 얼굴이 저렇게 어 른스러웠었나 하는 생각이 새삼들었다. 어쩐지 진욱이 같지가 않아서 싫다. [끼이이익.......] 엘리베이터 안에 올라타서도 녀석은 도무지 말이 없다. 아까 여기 오늘 길에만 해도 이리 저리 장난치던걸 떠올리니 기분이 착찹하다. 여동생 얘기는 대체 무슨 얘기며...... 궁금한 걸로 치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그저 알아서 얘기하려니 하고 나도 입을 다물었다. 아이씨..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녀석이 가는데로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따라온 공원 벤치. 내가 따라오든 말든 성큼성큼 가버리는 녀석의 발걸음에 계속 차오르던 숨을 천천히 진정 시켰다. '털썩' 소리를 내며 벤치에 앉은 녀석은 어디에선가 담배 한 가치 꺼내서 물더니 익 숙한 동작으로 불을 붙이기 시작헀다. 곧이어 새하얀 담배 연기가 이제는 꽤나 어두워진 시 야로 퍼져나간다. "너는 안 놀라냐?" "뭐가..." 퉁명스레 맞받아치긴 했지만, 한참만에 흘러나온 녀석의 목소리가 평상시의 억양이어서 조 금 안심이 되었다. 물끄러미 쳐다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씨익 웃는다. 어휴.. 그래 잘났 다.... "이거..." 장난스럽게 손에든 담배를 흔들어 보이는 녀석의 제스처에 픽 웃음이 나온다. 아이씨... 담뱃재 날리잖아.... "평소에도 아저씨처럼 담배 냄새 풀풀 풍기고 다니는 주제에.... 내가 모를 줄 알았냐?" ".........그런가?" "어." "............지훈이 여동생 말이지...."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눈을 크게 뜨니 녀석이 하하 거리고 웃는다. 재미도 있겠다... 분위기 잡을때는 언제고 이 새끼가..... "........................................아마.... 어릴 때 죽은 것 같더라..." "......" "오늘.... 아무리 생각해도 미심쩍어서 찾아와 본건데.... 쳇.. .. 난 혹시나 했지....." "......" "그... 새끼.. 혼자 갖은 청승을 다 떨어 놨더라.. 책상위에 지 동생 사진이랑 사탕 포장한거 떡하니 올려논거 보니까... 씨발, 속이 뒤틀려서 말이지...." "......" "무슨생각하면서 그걸 포장했을까 생각하니까..... 제길..." 진욱이 놈이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옷소매로 거칠게 눈가를 훔쳤다. 그래.... 그랬구나.. 오늘 하루 조금 이상했던 지훈이 녀석의 표정과, 굳이 영 앞뒤가 안 맞던 진욱이의 행동이 맞아 떨어지면서 나까지 눈가가 풀어지는 것 같았다. 하하... 다 큰 사내새끼 둘이 다 저녁때 어두침침한 공원 벤치에 앉아서 훌쩍대는 꼴이라 니... 이거 완전 집안 망신인데..... [..........................................................................................................] "지훈이는 괜찮을꺼야.." "........?" 놀란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진욱이의 시선이 못내 부담스럽다.. 쳇... 나는 무슨 말을 못한다니까... "우리야 오늘 처음 안 사실이니까 뭐 이렇게 꿀꿀하게 앉아서 이 지랄이지만... 그 자식한테는 다 지나간 일이잖아. 벌써 슬퍼할꺼 다 슬퍼하고, 울만큼 다 울었겠지.. 안 그래?" "......" "그 새끼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아무튼 쓸데없는 짓을 해가지고는..... 에휴.. 오랜만에 이쁜 여자애나 좀 볼까 했더니만.... 이제 집에 가자.." "........................................................ 그래. 그러자................. 참나... 이쁜 기지배가 일찍 죽기는 또 왜 그렇게 일찍 죽었다냐.." "몰라.... 미인박명이라잖아..." "키...크큭......" 공허한 웃음이라더니... 이런 때 쓰는 말인가 보다. 화이트 데이에... 이게 왠 청승이다냐... 어이구... 내 팔자야... [삐비빅!! 휘익!!!] "이봐.. 거기 너희들!!! 학생 아니야!!!" 갑자기 저 편에서 들려온 호각 소리에 녀석과 나 모두 놀라서 그 쪽을 향했다. 공원 수위 아저씨인 듯 제복을 입은 험상 궃은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성큼 성큼 걸어온다. 뭐... 학생은 이 시간에 공원에 있는게 어디가 어때서 그러.... 앗차... 박진욱!!! 진욱이 녀석은 진작에 눈치를 챘는지 재빨리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끄고는 내 팔을 잡아챘다. 아아.. 씨발... 이 새끼 따라뛸라면 죽어날텐데..... 그러길래 교복입은 주제에 담배 피고 지랄이야!!!! Chapter 8. 어느 화이트 데이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6) "그럼 애초에 지혜 얼굴 볼려고 여기 올려던건 거짓말이었단 말이야?" "뭐... 그런 셈이지.... 엄연히 따지면... 오늘 지훈이 놈 하는 꼴이 수상해서 와봤던 거니 까.. 말투가 꼭 오늘 아침에 보고 나온 사람을 설명하는게 아니라, 오래 전에 본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더라고..... 애초에 소개시켜 달라는 것도 솔직히 좀 떠본거였어." "흐음...." "왜? 뭐가 이상해? 내가 암만 여자를 좋아하기로 서니, 설마 깨진지 일주일 밖에 안됐는데 그 난리겠냐..." "그럼 현우는 왜 안 데리고 왔어? " "크흐흐흐..... 그 자식은 내가 라이벌이라고 그랬잖아.." "?????" "못 알아 들었으면 됐어. 집에나 가자." Episode 라이벌.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9) 세상에 공부 안 하고도 시험 잘 보는 놈이 있다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정말로 신이 내린 천재이거나.....................거짓말쟁이. 참고적으로 내가 이제까지 봐왔던 인간들은 대부분 후자에 속했다. 세상에 노력 없이 얻어지는게 과연 무엇이 있으랴... 말로는 맨날 논다느니 컴퓨터 했다느니 어쩌느니 해도 알고보면 1시간 놀고, 1시간 컴퓨터 하고, 새벽 2시까지 나머지 시간은 피터지게 공부한 놈들 굉장히 많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하하.. 나도 약간은 그런 케이스거든...... 여기 같은 비 평준화 지역.. 그 중에서도 우리 학교같이 좀 명문으로 평가 되는 곳이라면, 한 반에서 일등과 꼴찌의 평균차이가 약 20~30점 정도 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1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서는 이 정도 훼이크는 필수다. 정말이지 유치하고, 치사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긴 하지만, 비난 받을 이유 또한 없지 않냐 는게 내 생각이다. .. '학교'라는 곳 다니면서 '인간'취급 좀 받아 보려면 '성적' 올리는 거 이외의 방법이 어디 있어야 말이지.... 하아.... 나야 뭐... 죽어라 공부하는 타입이라기 보단, 요령껏 해나가는 타입이라서 그래도 스트레스 덜 받고 살아간다지만, 시험이 가까워져 오면 거의 미쳐가는 놈들이 꽤나 있다. 예를 들면.... [투둑...뚝....] "야.... 왜 그래? 아앗!!! 이거 뭐야? 피잖아..!!!" 이.현.우.....!!! 이 새끼!! 아침부터 비실비실 하더니만... 재빨리 손을 뻗어 녀석을 턱을 치켜들긴 했지만, 피는 멈추지 않고 계속 뚝뚝 떨어지며 녀 석의 셔츠와 공책따위를 적셔 대기 시작했다. 휴지!! 휴지가 어딨지? 목을타고 피가 주르륵 흐르길래 당황해서 녀석을 일으켜 세운 것 까지는 좋았는데, 제길... 왜 이렇게 키가 큰거야!!! 이거 화장실까지 데려가는 것은커녕,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다. 어지러워서 휘청 거리는 녀석을 부둥켜안고 어쩔줄 몰라하고 있으니, 어느새 다가온 지훈이 놈이 재빨리 현우를 부축했다. "그렇게 잡으면 피가 역류해서 위험해." "어? 어.." 침착하게 현우의 고개를 바로 잡고 손수건으로 막아주는 지훈이의 행동에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이 웅성웅성 난리도 아니다. '괜찮냐..'고 묻는 호의성 발언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현우를 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으이구.. 그러게 잠이나 자면서 공부하지.. 이런때 몸 망가지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진욱이 놈도 어느새 다가와서는 장난치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현우의 머리를 꾸욱꾸욱 쥐어박았다. 평상시 같으면 현우 녀석이 당장에 달려들어서, 두 놈이 교실 전체를 난장판으 로 만들었겠지만... 오늘은 도저히 정신을 못차리겠는지 손수건만 감싸쥐고 휘청거리기만 한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코피 질질 흘리면서 뛰는 현우는 그다 지 보고 싶지 않거든.. 으음.. 무슨소린가 하면...... 실은 요새 현우놈과 진욱이가 하는 짓이 정말 유치 찬란이다. 현우 지우개나 공책같은거 뺏어서 달아나는 진욱이야, 원래 그리 생겨 먹은 놈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또 그걸 기를 쓰고 쫓아가서 되찾아오는 현우놈은 대체 뭔가.. 전에도 얘기 했지만, 두 녀석 다 장난 아니게 빨라서 교실 개판되는건 정말 순식간이다. 현우 자식.. 이런거에 욱하는 성격은 아닌 줄 알았는데....... 뛸때보니까.. 정말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따로 없더군....;; 맘에 안 들어서 쫓아가는 거면 화라도 좀 내던지, 아님 그러지 말라고 진욱이 놈한테 얘기 를 하던지... 그저 묵묵히 달려서 빼앗긴 물건만 찾아오는 것이 어찌보면 즐기고 있다는 느 낌이 들기도 한다. 쳇.. 왠지 기분 나쁜걸... 요샌 시험기간이라 좀 덜하긴 했지만, 절대 같이 안 놀게 생긴 이 두 녀석 때문에 우리반 애들 쉬는 시간 마다 초긴장이었다. 언제 어디서 날뛸지 모르니까... 그렇게 뛰고 싶거들랑 그냥 나가서 운동장이나 돌것이지... "재성아, 아무래도 이 자식 양호실 데려가야 겠다. 같이 갈래?" "......" 그럼 가만히 여기 앉아있냐? 현우를 부축해 일어서는 지훈이를 조용히 따라 나섰다. 뭐.. 대충 일어는 섰지만, 비척비척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현우놈을 보니, 조금이지만 안쓰 러운 생각이 들어서 녀석의 나머지 팔을 내 어깨에 걸쳤다. 녀석의 팔이 흠칫하길래 올려다 보니 녀석의 눈동자만 놀란 듯이 크게 떠졌다가 기분나쁘게 가늘어진다. 뭐...뭐야.. 그 이상한 웃음은.. =============================== "어제 몇시간이나 잤어?" "......" "혹시 한 숨도 안잤다는건 아니지?" "......" 거의 따지듯이 물어오는 양호선생님의 말을 현우는 자연스럽게 씹어댔다. 어휴.. 간 큰 새끼.. 난 미친개보다 저 여자가 더 무섭더구만... 지훈이와 어느순간 보니 따라와 있던 진욱이도 쫄아있었다. 뭐... 얼굴 자체가 무시무시한 괴물같이 생긴 것은 아닌데... 삐쳐올라간 눈썹이나 새빨간 루즈.. 따위가 큼직한 이목구비 와 어울려서 사나운 느낌을 준다. 거기다가 목소리도 삑삑거리는 하이톤. 듣고 있자니 등에 소름이 쫙쫙 돋았다. 그나저나.... 현우 저 놈 설마 진짜로 날밤 샌건 아니겠지? 대답이 없는 녀석의 행동이 긍정을 뜻하는 것 같아 기분이 찝찝하다. 이제 고등학교 갓 입학한 새끼가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한참 잘 먹고, 잘 자고 해도 모자랄 시기에... 찬찬히 뜯어보니 며칠새에 더 마른 것 같기도 하고... 얼굴도 초췌한 것이 퍽 안쓰러웠다. "어휴.. 등신아.. 입이 붙었냐? 이런 바보같은 새끼들이 해마다 꼭 하나씩 있다니까... 짜증 나니까 저기 침대에 처박혀서 자던지 죽던 지 니 맘대로 해!" "......" 들리는 소문으론 사관학교를 나왔다던데... 역시 양호선생의 입은 거칠었다. 선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우는 아무말 없이 일어서 더니 양호실 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야! 야! 이봐! 침대는 그 쪽이 아니잖아!! [탁.......] "이거 안 놔?" "어디 도망갈려면 도망가보시지.. 딴 때는 내가 계속 잡혔는지 몰라도, 오늘 만큼은 내가 너보다 훨씬 빠를 껄?" 진욱이 놈의 이죽거리는 소리에 현우는 굉장히 못마땅하단 표정을 지어보이긴했지만, 다행 히 진욱이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나가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새끼가..... 현우가 별 말이 없으니 진욱이 놈은 또 신나라고 침대로 질질 끌고가기 시작했다. "이거 놔. 내가 할테니까.." 한숨섞인 현우의 대꾸가 있고나서야 진욱이는 손을 풀어주었다. 으음.. 이럴 때 보면 둘이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건지 좀체로 알 수 가 없단 말이야.... 힘없는 손놀림으로 하얀 침대 시트를 덮고 누운 현우는 피곤한 듯 안경을 벗어 탁자에 올려 놓더니 나를 향해 살짝 손짓을 해보였다. 불쌍한 놈... 이젠 말 할 힘도 없다 이거냐? 왠지 창백한 녀석의 얼굴과 힘없는 몸놀림이 환자같아보여, 머뭇머뭇 하며 다가가니 현우의 오른 손이 갑자기 내 오른손을 '탁..' 하고 낚아 챈다. "앗!!!!!!!" "......" 이 새끼 아픈거 맞아? 축 늘어져 있던 녀석이 잽싸게 움직이는 바람에 또 바보같이 허둥대고 말았다. 요새는 아방하게 놀라고, 당황하는게 거의 일상화 된 것 같다. 이번엔 또 뭔가 싶어 현우녀석을 빤히 쳐다보니 뒤적뒤적 자켓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다. 어라? 그건 볼펜 아냐? 근데 그건 왜? "키..키긱.. 아아아앗!! 야!! 간지러워.. 그만해!! 그만!!" 갑자기 손바닥이 간질간질 하는 느낌에 참지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뒤에서 '큭..' '푸하하하' 하면서 뒹구는 소리가 나는게 필시 지훈이와 진욱이 두놈이서 또 발광하고 있을 것이 뻔하다. 아아.. 씨발.. 쑥쓰러워 죽을 것 같다. 이래가지고서는 기집애 라고 놀려도 정말 할 말이 없는데... 살의를 싣어서 현우놈을 노려보았지만, 내쪽으론 눈길 조차 주지 않은채 손바닥 가득 뭔가 를 깨알같이 적어놓고는 마무리로 마침표까지 '탁' 소리가 나게 찍었다. "아야야.." 씨발놈.. 아프잖아!! 열받아서 뭐라 한 마디 해주려고 하니까 현우 녀석, 무표정한 얼굴로 휙 돌아 눕더니 침대 시트를 뒤집에 썼다. 내가 장담하건데 분명히 웃고있을거다. 이 자식 꼭 웃을때면 얼굴 가 리는 습관이 있거든.. 불쾌한 기분에 낄낄대는 두녀석을 제치고는 그대로 양호실을 빠져나 왔다. 어휴.. 저거 비실비실하다 쓰러진 새끼만 아니라도 아주 아작을 내놓는건데.... 대체 웃긴 뭘 웃는거야!! "야야.. 양재성. 네까짓게 그렇게 발을 굴러봤자, 우리학교 복도 안 무너진다.. 좀 살살 걸어라.." "......." "이 새끼는 무슨놈의 인간이 붙임성이란게 없냐? 이래도 뚱.. 저래도 뚱.." "맞아. 재미없게 시리.." 내가 네 녀석들 재밌으라고 일일이 대꾸해주고 앙앙 거려야 된다는 거냐? 어느새 바짝 따라붙어서 쫑알 대는 두 녀석... 정말 피곤하다. 평상시처럼 가볍게 무시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니... 뒤에서 뭔가 수군수군하는게 아무래도 뭔가가 굉장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덥썩...] "앗.." "후후.. 이현우 군이 우리 재성양한테 뭐라고 써줬는지 한 번 볼까? 아아.. 러브레터 치곤 너무 위험하게 전해 주는거 아닌지 몰라...." "그래. 우리 재성양.. 손도 못 씻겠네. 어휴.. 불쌍해라." "이... 이것들이!!" 그러고 보니, 현우가 뭐라고 썼는지를 확인 안 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말로 안하고 손바닥에다 써준거지? 저 두 녀석들 귀에 들어가면 안 돼는 말인가? 뭐.... 저 터무니 없는 예상이 들어맞을리는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현우의 그 괴팍한 성격을 떠올려보니 다시 엄청나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 몰래보고 지워버리는 편이 좋을 듯 싶다. "양재성.. 그만 좀 바둥대라.. 같지도 않는 놈이." "아앗!! 안 돼!" "걱정마, 우리가 보고 난뒤 검열해서 읽어줄테니까.."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잡혀버린 손목을 풀기에는 내 힘이 너무 딸린다. 어휴... 진짜 무식한 것들이 힘만 세다더니... 그냥 보여줄까 하는 생각도 좀 들긴 했지만, 고분고분 보여주기에는 녀석들이 너무 얄밉다 는 생각이 들어서 모질게 주먹을 꽈악 쥐었다. 이렇게 하면야 니들도 별 수 없겠지 뭐.. "야! 야! 주먹 좀 풀어봐.." "......" "키킥.. 이 자식 악쓰는 것 좀 보게.. 지훈아.. 할 수 없다. 치사하지만 이 방법을 쓰는 수 밖에.." "으음.. 좀 심한거 아닌가?" "할 수 없잖아." "그러지 뭐..." 괴...굉장히 불길하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빤히 올려다보니.. 두 녀석들의 손이 스윽 하고 다가 온다. 그리고는 그 대로.. "끄아악! 꺅! 하지마!! 하지마!!" "하하핫.. 풀렸다!!" 치...치사한.. 으으.. 새끼들.. 비겁하게 간지럼을 태우다니... 얼마안돼는 시간이나마 버텨왔던 나의 주먹은 간지럼 5초만에 그대로 풀어지고 말았다. 차라리 때려라, 때려. 추하게 간지럼이 다 뭐냐고!! 이젠 될테면 되라는 식으로 녀석들에게 주먹을 펴 보이고 있었는데, 글씨를 쭉 따라읽던 두 놈 모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어라? 대체 뭐라고 써있길래..... 재빨리 석상이 되어있는 녀석들을 제치고 손을 수거해서 현우의 깔끔한 글씨체로 쓰여있는 내용들을 훑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자식.." [개념원리 공통수학 국어 자습서 정석 공통과학 교과서편 사회 프린트 파일 이번시간 끝나면 가져다줘.] "허...허..." 기가 막히면 웃음이 다 나오더니.. 이거 정말 못쓸 녀석이네. 공부하다가 쓰러져서 실려간 새끼가... 뭐? 문제집 좀 가져다줘? 그나마도 내가 하나라도 빼먹을 새라 적어까지 주시니... 시험이 애 하나 아주 버려놨군.. 이걸 진짜 확 묻어버릴 수도 없고... ============================================= [똑똑....] [............................................................................................................] 어휴... 다행히 양호선생님은 안 계시는 모양이다. 다시 그 얼굴을 마주할 것을 생각하며 여기까지 오는데 꽤나 걱정했거든. 문을 살포시 열고 들여다보니, 조용한게 인기척이 전혀 없다. 현우녀석... 자는 건가? 잔뜩 싸 짊어지고 온 문제집 더미를 한 구석에 살며시 내려 놓고는 조용히 칸막이가 쳐진 침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거 왜 가져다 주냐는 진욱이의 항의와 문제집을 앞에 잔뜩 늘어놓고, 손을 묶어버려 공부를 못하게 하는 고문을 해보는게 어떻냐 는 지훈이 놈의 매력적인 의견을 묵살하고 혼자 온 것은... 뭐... 피곤한 놈 잠 좀 자게 냅두자는 생각이었다. 안 자고 있으면 가져온 문제집으로 두들 려 패서라도 억지로 재울려고 했는데, 잘 된 것 같다. 이렇게 기회가 딱 올때가 아니면 시 험기간에 맘 놓고 자는 건 정말 힘들거든. 공부를 해도 불안, 안 해도 불안.. 놀아도 논 것 같지도 않고, 먹어도 먹은 것 같지도 않고...... 선생님들이야.. 좀 신경쓰라는 의미에서 하 는 말인지는 몰라도, 고등학교 들어와서 첫 시험 성적이 3년을 간다느니하는 소리라도 할라 치면 그저께 먹은 것까지 도로 언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나 시험 바로 전 날쯤 되면 누구나 '시간을 되돌렸으면 좋겠다'는 다소 유치한 발상에 잠겨 봤을 것이다. 하하...아이러니 한 것은 한 편으론 빨리 시험이 끝나버렸으면 하는 생각 도 동시에 든다는 것이다. [하루만 시간이 더있었으면... 빨리 시간이 흘러가 버렸으면...] 이 사이에서 갈팡질팡 머리 쥐어뜯으며 고민하다보면 중간고사 끝나고, 기말고사 끝나고, 또 중간고사, 기말고사..... 1년이 정말 뚝딱이다. 정말 어릴때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시험을 잘 본다'.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은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 해야 한다'로.. 바뀐 것 같다. 씁쓸하다. 시험이란 것 때문에 현우 녀석 힘들어하는 것도 그렇고, 또 이 녀석 쓰러졌다고 좋아할만한 놈들도 분명 있으리란 것도 그렇고.... 그 자식들 역시 좋아하는 한 편으론 더러 운 기분 느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잠깐 사이에 또 기분이 잔뜩 다운되어 힘없이 칸막이를 젖히니 곤히 자고 있는 현우가 눈 에 들어왔다. 하핫... 참.... 이거.... 그 자식 잠 한 번 정말 달게도 자네. 입도 반쯤 벌리고 정말 죽은 듯이 평온한 표정으로 자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피식피식 웃음 이 나왔다. 평상시엔 무뚝뚝한 새끼라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완전히 애네. 애야... 누가 누구 보고 기집애 같다고? 미쓰리.. 당신이야 말로 이렇게 보니까 참 어여쁘구만.... 뭐.. 사내놈들 얼굴 빤히 보는 고약한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안경도 안쓴 녀석의 맨얼굴이 왠지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져 계속 눈길이 갔다. 안경 썼을 때도 꽤나 곱상한게.. 말그대로 기생 오라비 같은 놈이긴 했지만 날카로운 이미 지가 훨씬 강했었었는데, 오늘 보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 인기 있었다는 말도 뭐.. 꽤 수긍이 간다. 현우가 잘 생기긴 잘 생겼구나...... "으으음..." 깜짝이야.. 녀석이 눈가를 찡그리면서 몸을 뒤척이는 바람에 죄지은 사람인양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아무래도 햇빛이 너무 강한가 싶어 커튼을 살며시 끌어당겨 그늘을 만들 어 주었다. 반쯤은 그늘지고, 반쯤은 햇살이 들이치는 조용한 양호실 분위기가 굉장히 아늑 해서 나까지 졸음이 몰려 온다. 아직 종 치려면 시간도 꽤나 있고 해서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가 앉으려는데 발밑에서 뭐가 또르르 구르는 소리가 났다. 뭐지? 어?.....이건...................... 하하하하..... 크큭... 이거면 오늘하루 좀 활기차게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 [드르륵.....]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어 그래... 몸은 좀 괜찮고? 자리에 가서 앉아라...." 아이들과 선생님의 시선이 잠시 현우에게 머물렀다가 다시 흩어졌다.. 그리곤 "푸...푸푸흡........." "키..키킥......" "크...하하핫.. 핫..." "야!! 야!! 너!!!!" 놀란 듯이 다시 현우를 향해 집중되는 시선.. 그리고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웃음.. 진욱이놈은 벌써부터 대놓고 구르고 있고, 국어선생님도 웃음을 억누르려는 기색이 역력했 다. 크하하하하!! 나도 뒹굴고 싶긴 했지만, 일단은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니까... 현우 녀석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지만, 그 어느 누구도 아랑 곳 하지 않고 그저 웃어 대기 바빴다. 크....크흐흐... 그런 얼굴을 하고 일그러뜨리니 효과가 더 가중되는 것 같군.. "혀....현우야.. 가서 거울 좀 보고 오렴.." 교사로서의 책임감이 남을 놀려먹는 즐거움보다 더 강했던 모양이다. 괴로운 듯 말하는 선 생님의 지적에 현우 녀석이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거울에 다가섰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두 궁금하긴 마찬가지 였는지,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현우 쪽으 로 집중된다. 이거 진짜 기대 되는데? [.....................................................................................................] 이..이..이......... 이....자식..... 무뚝뚝한 놈인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세상에 그 어느 누가 45명이란 인원앞에서 양 뺨에 "바.보"라고 커다랗게 쓰고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을까? 아니, 이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게 아니라, 정말 아무렇 지 않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마치 무슨 전봇대 보듯이 자신의 낙서된 얼굴을 주시하는 녀석을 보고있자니 내가 다 질려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화내거나 길길이 뛰진 않더라도, 최소한 당황 정도는 할 줄 알았는 데...... 아무 감흥없어 보이는 그 태도에 교실 분위기도 찬바람이 불듯한 정적이 감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인간을 한꺼번에 무안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현우 밖에 없을거란 생 각이 새삼 들었다. 아이씨.. 아까 내가 얼마나 글씨를 공들여 썼는데..... "병신같이 그 얼굴로 여기까지 왔냐?" 그냥 가만히 있기가 뭐해서 던진 말이었는데 현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괜히 했다는 후회 감이 밀려왔다. 이봐, 청년.... 내가 맘에 안 드는 건 잘 알겠는데... 그렇게 얼굴 구길 것 까지는 없잖아. 어지간한 나였지만, 정면에다 대고 저런 표정을 지으니 굉장히 무안하다. "아까 내 볼펜 좀 돌려 줄래?" 녀석이 대뜸 던진 말에 혼자 당황해서 쳐다보니 녀석은 묵묵히 날 쳐다보면서 뺨의 볼펜 자 국을 지워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볼펜이 잘 지워진다는 다소 현실 도피적인 생각을 하면 서 뒤적뒤적 손으로는 자켓 주머니의 볼펜을 찾기 시작했다. "여깄어." 현우에게 볼펜을 디밀어주곤 이젠 꽤 진행중인 수업에 막 집중 하려고 하는데.... 문득 뭔가 실수 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볼펜....은 아까 현우가 양호실에 뒀던 건데...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곧...... "양재성.." "......" 이힉.... 역시 눈치 챘어!! 제길할... 이 새끼 유도심문에 걸려들다니... 낮게 깔리는 녀석의 목소리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교과서로 시선을 떨구긴 했지만... 솔직히 굉장히 겁이났다. 이런 새끼가 화나면 정말 장난 아닐텐데.... 아까도 너무 화가 나서 아무말도 못한게 아닐까... "양재성.. 사람이 부르는데 들은 체, 만 체냐?" 그래.. 뭐.. 사나이 양재성,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어? 현우 자식 화나면 좀.....아니 꽤 많이 무서울 것 같긴 하지만, 설마 지까짓게 그래 봤자지 뭐.. 그 놈의 반반한 얼굴 낙서 좀 했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생각을 애써 긍정적인 쪽으로 돌려 보려고 했지만, 역시 현우와 눈을 마주 칠만한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자라처럼 목을 잔뜩 움츠리고 고개를 움찔 움찔 돌리긴 했지만, 시선은 땅에 떨군채 끌어올릴 수가 없다. 어휴.... 이거 내가 괜한 짓을 해가지고.... "야!!" 힉.... 갑자기 녀석이 큰소리를 내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어...라? 저.... 저기..... 너..... 표정이..... 세상에.................. 분명히 차갑게 굳은 얼굴로 나를 쏘아보고 있어야할 현우가... 어이가 없다는 투라지만 아무튼 피식피식 웃고 있다. 내가 잠이 덜깼나 싶어 눈을 부비고 다시 쳐다보니, 뭔가 더 재밌는걸 봤다는 듯 입가의 곡 선이 한층 더 완만해진다. 평소에 말도 별로 없고, 무뚝뚝 하고 차갑기 그지 없는데다가, 정말 어쩌다가 웃을 때도 얼굴을 잔뜩 가린채 소리도 안 내는 놈이었는데.... .............................................................................................................. 맙소사.... 엄청난걸 발견해 버렸다. 왜 그동안 웃을 땐 그렇게 죽어라고 얼굴을 돌리고 이리저리 피했는지, 그 이유를 이젠 알 것 같다. 착해보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양뺨에 폭하고 패이는 보.조.개..... "양재성... 내 얼굴이 낙서장이냐? 이딴 쓸데없는 짓거리 한 번만 더 하.." ".....푸...푸흐흡....... 쿠쿡...." 입을 틀어막았지만, 웃음이 잇사이로 새어나왔다. 아아... 진짜 별거 아닌 새끼라니까..... Chapter 9. 낙서.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7) "어라? 현우야... 너 팔뚝에 뭐 묻었다." "......" "뭘 그렇게 빤히 봐? 누나 말은 못 믿겠다는 거야?" "......" "그...으래.. 공부하는데 시끄러워서 방해가 된단 말이지? 알았수다. 니가 그런 싸가지로 나중에 과연 얼마나 성공하나 두고보자.." "......" 현우는 다시 연습장 가득 펼쳐져 있는 공식에 집중하려했지만, 한 번 흐름이 끊겨서 인지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 살 터울인 누나.. 공부할 때 쯤은 좀 나가있어도 좋으련만, 꼭 저렇게 문지방에 걸터앉아서 내내 말을 걸며 방해를 해댄다.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시선을 옮기려던 현우의 눈에 자신의 팔을 감싸고 있 는 반팔티 소매가 들어왔다. '이런데 묻긴 뭐가 묻었다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소리를 듣고 나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쿠......큭......." [미쓰리... 보기에 짜증나니까 아프지 말고, 잠 좀 자가면서 공부해.] 꽤나 거친 동작으로 소매를 걷어붙인 현우의 입가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깨에서부터 삐뚤 빼뚤 이어져 내려온 글씨... 무뚝뚝한 놈이 딴에는 생각해준다고 뭐라 적어논 게 우습기도 했지만, 여기다가 글씨를 어떻게 썼을까를 생각하니까 웃음이 좀체로 사그라 들지를 않았다. 누나의 미친 놈 보듯한 시선과, 비웃는 듯한 목소리에 그나마 정신이 든 현우는 머뭇거리는 동작으로 스탠드 스위치를 껐다. "어라? 거실에서 공부할려고? 쳇.... 그래... 치사해서 내가 나간다.. 나가." "...... 됐어. 잘거니까 있을거면 그냥 있어." "뭐?" "잘거라고.." ".......허..참...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벌써 주무신다냐? 억지로 수면제 멕여놔도 송곳으로 허벅지 뚫어가며 공부하실 양반이...." "......" 누나의 비야냥 거리는 소리가 계속 뒷전에서 들려왔지만, 현우는 묵묵히 침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포근한 베개의 느낌과 이불의 느낌이 오늘따라 꽤 살갑게 느껴졌다. Episode. 낙서. End============================================= Sweet. so sweeeeet!! 크흑, 유에님. 저도 퍼오고 싶습니다.ㅠ.ㅠ 에파타님이 안주시는 걸 어쩝니까? ㅜ__ㅜ 다음 편 나오면 10편 올리려고 했는데, 열화(?)와 같은 독촉에, 마저 올리고. 다음편 기다려야겠습니다. 감상,독촉 많이 써주시면, 에파타님이 빨리 주실까요? ㅠ.ㅠ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0)-1 아아... 어지러워... 안 쓰던 안경을 꽤 오랜 시간 쓰고 있었더니, 눈 앞이 핑핑 돌았다. 평소 같았으면 잠깐을 못 참고 벗어버렸을 테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이기에 할 수없이 꾹 참고 관자놀이만을 지긋이 눌러 주었다. 내일은 중간 고사. 유유부단에다 무신경하기 짝이없는 나긴 하지만, 시험 하루 전날 까지 태평할 정도로 위대 한 인간은 되지 못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진심으로 시험 망치고 싶다는 놈이 대한민국 어디에 있을까? "재성아, 이거 어떻게 해석하냐?" "어? 뭐..." 정신을 좀 차리고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민성이 놈이 문제집 한 구석의 영어 문장을 손으로 짚어 보였다. 그나마 영어는 좀 나은 편이기 때문에 가끔씩 물어오는 놈들이 있을 때도 있다. 이런 시험기간에는 서로 묻고, 대답해주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좀 피곤하긴 했지만, 문장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The daily use of these words all over the world is a result of the great might of English as a world language.... 글쎄... is 앞까지가 주어니까.... 이 단어들의 전세계에서의 일상적인 사용은.....음.... result? 이봐.. 이게 뭐지?" "뭐... 그거? 결과잖아." "으음.. 그래.. 결과이다.... 영어의 위대한 힘.... 세계적인 언어로써의... 아이씨.. 이거 대충 밖에 모르겠는데? 그냥 현우한테 물어봐라...." "그래, 알았어. 고맙다." 어휴... 영어는 마지막 날에 보는거인데다가 어느정도 자신있는 과목이어서 공부를 꽤나 미 루고 있었는데.. 새삼 걱정이 되었다. 민성이놈.. 내일 시험보는 건 벌써 다 끝낸 건가? 영어를 공부하고 있게? 민성이가 왠지 곱게만은 안 보이는 것이, 생각은 저절로 안좋은 방 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아.... 빌어먹을 중간고사... "양재성, 잘 모르겠으면 같이 와서 봐라." "......" 옆에서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현우가 민성이 것을 해석해 주고 있다. 쳇.... 이런때 남까지 공부시켜주는 멍청한 놈이 어딨냐? "됐어. 난 이거 해야 돼." 평상시 같으면 그냥 끼어들어서 같이 봤겠지만, 아무래도 때가 때이다 보니 속이 꼴려서 쌀쌀맞게 받아치고 말았다. 웬지 이건 아니다 싶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애써 무시하곤 다시 문제집으로 고개를 돌렸 다. 아아...머리가 더욱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 같다. ========================================================= "으음.... 이번 시험 시간표가..." "첫 날이 과학, 음악.. 둘째 날이 국어, 미술 셋째 날이 수학, 사회 마지막 날이 영어, 국사......"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중얼거린 말에 대답이 들려오자, 내심 깜짝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진욱이 놈이 이죽거리고 있다. 새끼... 아주 줄줄 외우는구나.. 필시 적잖이 공부했을 녀석.. 수업에 충실한 놈이니, 그래도 걱정은 덜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뭐... 맨날 자는게 일이다보니 시험은 항상 2주전부터 벼락치기다... 뭐.. 2주전이 벼락치기냐고 묻는다면야 할 말 없지만... "재성아, 너는 과목 뭐뭐 끝냈냐?" 낯익은 목소리에 돌아보니 옆분단의 기현이 놈이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서 있다. ".....음악이야... 그냥 외우는거니까... 어제랑 오늘 아침까지 해서 거의 끝났고.. 과학은 화학하고, 지학.... 나머지는 손도 못댔어." 기현이 놈과, 더불어 옆에 있던 현규 녀석까지 얼굴이 어렴풋하나마 환히 개였다. 그래.... 안심하실만도 하겠지. 내일 할 것도 아직이라니..... 그말을 믿고 앉아있냐? 내 거짓말에 깜빡 속은 두 녀석을 보고 있자니 꽤나 고소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나.. 진짜 갈수록 나쁜놈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하긴....... 기현이같은 경우엔 요사이 꽤 친해졌던 것을 감안하면 가슴 한 구석이 좀 쑤시는 것 같기도 하지만... 솔직히 이런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놈들이 어디있겠어? 안심시킬려고 공부한 것 보다 적게 말하거나, 부담주려고 공부한 것 보다 많이 말하거나, 대부분 둘 중 하나 인걸로 알고 있는데..... 최소한 하나도 안 했다고 엄살떠는 재수 없는 새끼들 보다는 낫지 뭐... 어느새 머릿속이 또 시험생각으로 꽉차, 뒤숭숭하다.. 눈 앞에 떡하니 있는 도시락을 보면서도 도무지 반갑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이 오늘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가 않다. 참.. 별일이군. "밥먹자." "......" 이현우... 우리가 암만 돌도 씹어 삼킨다는 나이라지만... 시험전날, 이 흰 쌀 익힌 것을 과연 밥이라고 칭하며 아무렇지 않게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 로 신경이 무딘 인간들은 아니라는게 내 생각인걸? 나야 어떻든 간에 말을 끝내자 마자 기계적으로 음식물들을 거침없이 씹어 삼키는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자니, 한숨이 푹푹 나왔다. 아아... 좀 맛있게 먹는 놈들이 옆에 있어야 하는 건데... 이 새끼 먹는 걸 보고 있으면 밥맛이 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단 말이야... "왜 안 먹냐?" "......" 으음... 이럴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적당히 대꾸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무슨 상관이냐...는 딴에는 항의조로 녀석의 얼굴 을 쏘아주었더니 특유의 무심한 얼굴로 내쪽을 쓱 훑어보곤 다시 자신의 밥그릇으로 고개를 박았다. "너 그런 식으로 안 먹다가 시험날 쓰러지면, 괜히 남 좋은 일 해주는거 알지?" ................................ 녀석이 지나가는 말로 슬쩍 흘린 소리에 나도 모르게 몸이 흠칫 했다. 별 시덥지 않은 소리를 다한다고 생각하려 하긴 했지만, 시험이란 말에 결국은 밥숫가락을 집어들고 말았다. 아아.. 진짜... 이거 완전 병이다. 병.. [깨작깨작...] [탁.....] 막 두숫갈이나 먹었을까.... 새우튀김 하나가 또 내 밥그릇에 떡 하니 떨어졌다. 쳇... 내가 집어 먹을 수 있다고 분명히 얘기했을 텐데.. 또 애기 취급이냐? 이젠 얘기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집어먹고 오물거리 고 있자니, 저기 교실 뒷문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새끼들 벌써 밥 다 처먹었구나. "아앗! 야.. 임마.. 아직도 다 못먹었냐?" "이것봐라, 이 새끼 또 젓가락으로 밥 부수면서 먹는다. 너 그렇게 먹으면 여자애들이 재수없다 그래." 이봐... 아직도 다 못먹었냐니.. 밥먹으러 간지 15분만에 돌아오는 네 녀석들이 이상하단 생각은 한 번도 안해봤냐? 여기서 식당까지 그냥 왕복해도 10분은 걸릴 것 같은데.. 그리고, 대체 어떤 기집애가 재수 없다고 그러냐? 당장 데리고 와봐!! 현우 놈도 젓가락으로 먹는데, 맨날 나만가지고... 쳇... [탁......] 현우 너도 벌써 다 먹은거냐? 녀석의 도시락 뚜껑 덮는 소리에 내가 늦기는 늦었구나 싶었다. 이젠 좀 서둘러 먹어야 겠다는 생각에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꾸역꾸역 입안에 쑤셔넣고 있 는데 두 녀석들이 이번에는 옆에서 찝쩍거리면서 잔소리다. 아무래도 오늘하루 기분이 꽤나 꿀꿀했었던 만큼 녀석들의 말이 그다지 곱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여기 이거 시금치 먹어. 눈에 좋대." "......" "야야... 파같은거 남기면 못써. 빨리 먹어!! 이게 다 농부 아저씨의 정성이야.." "....." "어쭈? 밥을 흘렸겠다? 어서 줏어먹지 못해!! 난 먹을 거 버리는 놈들은 절대 용서 못해." "......" "물도 좀 마셔가면서 먹어라. 그렇게 꾸역꾸역 먹다가는 체하겠다." "......" "맛있게 퍽퍽 좀 퍼먹어!! 밥알 좀 그만세고...." "......" "그렇게 골라내고 털어내지 말란 말이야. 그거 남들이 보면 흉본다." "......" [탁....] 씨발.. 드러워서 안 먹어. 장난치는 것인줄 뻔히 알면서도 왠지 욱하는 느낌에 밥뚜껑을 닫아버렸다. 녀석들의 별거 아닌 말에 그저 앞뒤 가릴 것 없이 마구 짜증부터 내고 싶어지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가끔 씩 발병하곤 하는 그 신경질 병이 또 도진 모양이이다. 뭐...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가 끔씩 평상시엔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것들이 신경을 박박 긁어와서 미쳐버릴 것 같은 때가 있다. 펜을 빼앗아가서 안돌려 준다거나, 별명을 계속해서 부른다거나...하는등.. 의 행동에 어느순간 주먹까지 올라가곤 하는 것이다. 보통 엄청 스트레스 받으면 가끔씩 이런 상태가 되곤 하는데, 역시 중간고사의 파급 효과가 컸던 모양이다. 사실, 나는 시험때 만큼은 꽤 예민해지는 편이다. 현우처럼 죽어라 공부하거나, 열심히 노 력하는 타입이라기 보단 전에 이야기 했다 시피 쉽게쉽게하려는 성향이 강하지만 그게 오히 려 심적으로는 부담이 훨씬 크다. 많이 공부한 놈들이야 공부하는게 힘들어 몸이 지치긴 해 도 마음은 좀 편하겠지만, 나처럼 요령껏 하자는 주의는 공부는 공부대로 하기 싫은 반면, 시험은 시험대로 걱정되고..... 덕분에 시험 전날 쯤 되면 컨디션이 정말 엉망이다. 제작년 언제인가는 아마 치고박고 싸웠 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 거의 울기직전에서 좀 정신을 차려서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하아... 아무튼 이제까지 내가 경험해론 바로는 이렇게 기분 더러울 때 최선의 방법은 그냥 혼자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런때 듣는 '위로의 말' 만큼 끔찍한 것도 없는 것 같다. 휘발 유에 거의 불을 당기는것에 비유해야 할까? "야? 삐졌냐?" "......" 제발 부탁인데... 말시키지 말아라. 속에서 마구 올라오는 육두문자를 꾸욱 꾸욱 삭히면서 지훈이 놈을 향해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보였다. 이렇게라도 해줘야 더이상 말이 없겠지? "그럼 왜 밥을 안 먹어? 어디 아프냐? " "......" 씨발... 아프긴 뭐가 아파, 제발 닥치고 좀 꺼져줘.. 두 번 참았다. 더 이상 말 시키면 책임 못져. 방금부터 짜증이 갑자기 치밀어오르기 시작해서, 이제부터는 엄청 쪼잔하고 치사하고 앞뒤 안 맞는 짓만 할 예정이니까.... 제발 좀 내비두란 말이야. "아프면 같이 양호실이라도 가볼래? 아니면 약이라도 받아다 주고.." ".........시끄러워." "뭐?" "한국말 모르냐? 시끄럽다고... 신경 끄고 가서 너 할 거나 해."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어느새 입은 제 멋대로 지껄이고 있다. 아마 지금 내 표정도 참 가관이겠지? 도도하게 마치 지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세 녀석 얼굴이 확 바뀌는 것을 보고 있으니 후회스러운 기분이 드는 반면, 왠지모르게 통 쾌하기도 했다. 그래, 당황도스럽겠지, 니들보기엔 멀쩡하게 잘 있던 놈이 갑자기 신경질이 니...... 몇마디 더 쏘아붙여주고 싶은 유혹에 입이 근질 거렸지만, 이 이상 제어가 안 되면 나중에 진짜 추한 꼴 보이게 될 것 같아서 재빨리 책상에 엎드려 팔에다 고개를 묻었다. 이러고 꿀 꿀하게 몇 시간이나 온 만가지 잡상을 하면서 괴로워해야 좀 기분이 나아질까를 계산하고 있자니 웃음이 피식피식 나왔다. 비웃음이란건 이런 걸 이야기 하는 거겠지? "양재성..." "......" "양재성.. 임마! 좀 일어나봐.." 지훈이 녀석이 마구 어깨를 흔들었지만 그대로 책상에 눌러 붙은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욱이 까지 몇번을 합세해서 부르는가 싶더니만 이번엔 또 잠잠해진다. 조용해져서 좋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으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왜 일까? 설마.... 나... 저 녀석들이 나한테 관심보여주는 것을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테지? 왠지 스스로가 굉장히 치졸하게 생각되면서 창피해졌다. 아아.. 정말 공부도 해야 되는데..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쿠탕탕탕......] "으아앗... 이게 무슨 짓이야!!!!" 방금전까지 앉아있던 의자가 땅으로 나뒹굴면서 상체가 위로 번쩍 들렸다.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해서 발버둥 쳐봤지만, 지훈이 놈에게 꽉 잡힌 팔목은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이거 안놔!!! 좀 내버려두란 말이야!!" 짜증이 거의 최고조에 달해서 바락바락 악을 써봤지만, 지훈이 놈은 한 번 피식 웃고는 내 양팔을 머리위로 끌어올렸다. 마치 벌 받는 자세처럼 되어서 옴짝 달싹 할 수가 없다. 기분이 불쾌해질대로 불쾌해져 으르렁거리고 있자니 진욱이 놈의 이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 다. "어이구.... 화 많이 났네. " "닥치고 이 팔부터 어떻게 좀 해봐!" "에에... 가만히 좀 있으라고.. 내가 신경질에 정말 직빵으로 듣는 특효약을 가지고 왔으니 까..." "시끄러!! 야!! 이현우!! 너라도 와서 좀 어떻게 해봐." "지훈아, 내가 좀 도와줄까?" "아냐, 됐어. 현우야. 설마 내가 재성이 정도도 혼자 진압을 못하겠니.." "하기야.." "이것들이!!!! 이 팔 놓는 순간 니들 다 죽을 줄 알아." "그럼 안 놓으면 되겠군.." "그래, 우리 셋이 번갈아 가면서 잡고 있으면 되겠다." ".... 그걸 말이라고.." 너무 녀석들이 어이 없게 구니까 이젠 웃음이 피식피식 나왔다. 이것들 바보인척 하는거야, 아님 진짜 바보인거야... "야.야.. 웃었다. 웃었어." "......" "쳇... 또 그새 무게 잡는 건 또 뭐냐? 아무튼 정말 붙임성이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 다니까.." "......" "자자... 그럼 우리 재성이 약 먹여야지. 이거 먹으면 성격이 굉장히 좋아진다더라. 너같이 엄청 더러운 성격은 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 봐야겠지?" 에에? 그게 무슨 헛소리야? 진욱이 놈의 뜬금없는 소리에 놀라서 쳐다봤을 때는 이미 양 뺨이 꾸욱 눌려 입을 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아악.. 대체 뭘 먹일려고... 다소 지저분한 진욱이 놈의 성격을 보건데, 어디서 땅에 떨어진 유리조각이나 먹이려들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리저리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이봐, 억지로 먹이는게 얼 마나 큰 죄악인지 알기는 하는 거야!! "우우우읍... 우으..." "이야.. 재성이가 이렇게 귀여운 소리를 낼때도 있구나. " "역시, 말만 안하면 꽤 봐줄만해." "우!!!!!!!!!!!!!!!!" "크큭.....진짜 귀엽다." 하....하..... 귀여워?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방심한 틈을 타서 입안으로 뭔가가 들어왔다. 다급한 마음 에 팔을 붙잡고 있는 지훈이 놈을 발로 냅다 차버리고 빨리 뱉으려는데.... "어? 달아?" "...............크...크큭... 바보새끼. 그럼 설마 내가 못 먹을 걸 먹이겠냐?" 다시 뒤를 돌아보니 세 녀석이 웃고 뒹굴고 난리가 났다. 그래..... 재미들도 있으시겠다. 어휴.... 내가 참아야지.... 저 새끼들 하나하나 상대해주다간 분명히 하루도 못하서 머리가 새하얗게 세어버릴꺼야. "나도 좀 줘." "이현우. 니 돈으로 좀 사먹어봐라. 인간이 그렇게 게을러서야 쓰겠냐? 매점이 바로 코앞인데...." "니 콧대는 길이가 100M 가 넘나 보지?" "누가 그렇..." "하핫... 진욱아!! 맛있게 먹을게~!!" "얌마!! 송지훈!!!!! 얍삽하게 그걸 또 가로채냐? 빨리 내놔." 어휴... 보고 있자니 너무너무 유치해서 눈물이 다 날려고 한다. 어느 새 나란 존재는 저만치 잊혀져 있고, 덩치는 산 만한 것들이 은박지에 싸인 조그만 초콜렛 하나 가지고 티격태격이라니... 짜증나는 놈들.....이라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입안에 퍼지는 단맛에 왠지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으음.... 설마 진욱이놈 말처럼 약간의 효력이 있는 걸지도.... 아니, 아니야.. 이건 기분이 좋아진게 아니라,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생각자체가 무뎌진 걸 꺼야. 저런 놈들이 내 인생에 도움되는 일을 해줄 리가 없지 뭐... 그나저나.... 이 빌어먹을 초콜렛 꽤 맛있는걸... 점점 사라지는 달콤한 맛이 아쉬워서 이리저리 진욱이 손을 피해 초콜릿을 빼돌리고 있는 지훈이놈의 소매를 슬쩍 잡았다. "나 조금만 더 먹게 해줘." "......" 뭐......뭐야? 내가 뭘 잘 못 말한 거야? 왜 세 녀석 다 뻣뻣하게 굳어서는 얼굴이 빨개지는 건데..... Chapter 10. 중간고사. Part Ⅰ.End ===================================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0)-2 [따르르릉.... 따르르릉.....] 젠장!! 이 밤 중에 대체 왠 전화야... 다급한 마음에 수화기를 이리 저리 찾긴 했지만, 당황을 해서인지 몇번이나 떨어뜨리고 말 았다. 이 시간까지 안 자고 깨어 있는 거 부모님이 아시면 거의 맞아죽기 직전까지 가기 때 문에 두근두근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수화기를 잡고 가만히 숨을 죽였다. 다행히 두 분 모 두 피곤하셨는지 안방에서는 인기척이 나지 않는다. 어휴.... 무슨 급한 일이길래. 이 시간 에.... 언듯 시계를 보니 밤 12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다. "여보세요?" "키...키키킥... 야... 전화 한 번 정말 요란하게 받는다. 혹시 지금 깬거야?" "......박진욱.. 지금 12시거든..?." "어.. 나도 알아. 왜?" "씨발놈아.. 우리집에서 12시에 깨있는 놈은 능지처참 이야.." "헤.... 웃기는 집이네. 고등학생씩이나 된 녀석이 12시 전에 잔단 말이야? 거기다 내일은 시험이잖아.. 혹시 취침 시간이 9시?" [그러는 네 놈은 한 밤중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는 왜 이 지랄인데? 그래... 나 9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난다. 이 말도 안돼는 우리집의 교육 방침에 니가 뭐 보태준거 있냐?] 입에서는 말이 치밀어 꾸역꾸역 올랐지만, 이딴 소리까지 했다가는 분명히 엄청난 놀림감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그냥 삼켜버렸다. 약간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우습게도 우리집에서 밤 늦게까지 뭔가를 하는 것은 금지사항 이다. 덕분에 시험때면 항상 숨을 죽이고, 어두침침한곳에서 숨어 공부하는 것은 일상이 되 어버렸다. 솔직히 지금도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고....... 나도 전혀 손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어머니는 코웃음만 치실뿐 좀체로 들어먹히 질 않으니 별수 없다. 뭐..... 어머니가 그러시는 이유를 생각하면 원망보다는 씁쓸한 마음 이 먼저 앞서지만 말이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용건만 얘기해. 이 시간에 대체 무슨일인데?" "지금 빨리 좀 나와라. 애들 다 모였어." "......" "일단 나와봐. 같이 놀자." "......" 이봐, 박진욱.... 분명 아까 당신 입으로도 시험 전 날이라고 말했을 텐데.. 지금 오늘 날 밤 새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얘기가 나와도 모자랄 판에 대체 이게 무슨 헛소 리야!!!! "......깨어있는 것만으로도 능지처참인데... 지금 밖에 나갔다간 아마 믹서에 넣고 갈릴지도 몰라." "니네 집이 어디랬지? 지금 내가 데리러 갈께." "안간다니까!!! 시험 전 날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야야.. 지훈이한테 니네집 주소도 있대. 지금 갈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절.대.안.돼." "으음... 버스 끊겼으니까, 택시타고 한 5분이면 되겠다. 현우야, 빨리 택시 좀 잡아봐." "......" 무서운 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더니... 딱 이 녀석을 두고 한 말 같다. 이 새끼 대갈통은 대체 어떻 게 생겨먹었길래 자신이 수용하기 싫은 남의 의견은 조금도 먹혀들지 않는 걸까? 정말이지 대화라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놈이다. 아아.... 진짜 피곤해.... ".........................지금 니들 어딘데?" "어? 안 데리러 가도 되겠어? " "......" 네 녀석이 쳐들어 올까봐 나가는 거다. 제길...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밤 늦은 시간, 그것도 시험 전날에 이렇게 뛰쳐나가는 미친 짓은 절 대 생각조차 못했을 테지만, 녀석들과 있다보니 속된 말로 간이 배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으음... 그렇다기 보단 어차피 녀석들 뜻대로 될 거, 그냥 기력 낭비하지 말고 순순히 따르 는 것에 가깝지만 서도... 그나저나 이 밤중에 모여서 대체 뭘하겠다는 거지? "근데 대체 뭐할려고 모이..." "앗... 이거 지훈이 핸드폰인데 너무 시간 끌었다. 여기 공원이거든? 입구에 있는 벤치로 나 와. 지금 당장..!!!." [뚜...뚜....뚜....] 조용한 가운데 울려퍼지고 있는 전화기 소리를 듣고 있자니, 새삼 왜 내가 나간다고 했나 하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아..... ====================================== "앗.. 양재성!!!" "임마, 왜 이제와!! 중간에 어디 잡혀갔는 줄 알았잖아." ".....하악..하악....." 잡혀가긴 내가 왜 잡혀가냐? 시커먼 사내놈 어디다가 쓴다고.... 우리집에서 공원까지 좀 빨리 걸어서 30분 거리. 그나마도 또 집에 전화할까봐 열심히 뛰 었는데도 늦었느니 어쨌느니 하는 놈들을 보고 있으니 한숨만 푹푹 나왔다. 무슨 사내놈들 이 기다릴줄도 모르냐. 방금 뛰고난 터라 몸이 꽤 나른해서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녀석들을 저만치로 밀치고는 벤치 에 걸터 앉았다. 아아... 역시 움직이는 건 정말 싫어. "혹시 여기까지 걸어왔냐?" "......" 이현우... 너 목소리가 물어보는 투가 아니라 시비거는 투다? 뭐 잘 못 한 것도 없는데 띠겁게 구는 녀석의 태도가 거슬려서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걸어왔냐니까?" "......" 쳇.... 그럼 이정도 거리를 걸어오지.. 또 무슨 방법이 있냐?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가볍게 까딱거리니 녀석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진다. 이번엔 또 뭘로 트집을 잡을려고!! 이 녀석이 사소한 걸로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게 정말 하루 이틀이 아니긴 하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하긴.. 이런거에 적응하면 그게 인간이냐... "앞으론 택시타고 다녀." "싫어. " "택시타고 다녀." "......" "......" "싫어." "타고다녀." "......" 쳇... 그렇게 천년 만년 지껄여 봐라. 내가 타고다니나... 대답하기도 짜증나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이젠 별걸 다 가지고 트집이다. 이 새끼는 돈 이 땅을 파면 나오는 물건인 줄 아는 모양이다. 뛰어다니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 지만, 택시비가 얼마나 비싼데, 미쳤다고 이정도 거리를 타고 다니냐? 이 녀석 말투를 듣 자하니 오늘 뿐만이 아니라, 가까운 거리는 무조건 택시를 이용하라는 건데.....버스비도 아 까워서 빌빌대는 나한테는 그저 헛소리 이상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양재성, 사람 똑바로 보고 얘기해. 앞으로 타고 다녀." "......야아... 현우야, 그만해. 앞으론 재성이도 조심하겠지." 지훈이 놈이 보다못해 끼어들어 한 마디 했다. 그런데....... 이봐.... 앞으로 조심하라는 건 또 뭐야? 내 맘대로 하라는게 아니라, 앞으로 는 현우녀석 말대로 하고 다니라는 뜻이야?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군.... 사소한 일에 더 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아, 아주 벤치에 돌아 누워버렸다. 슬슬 졸음이 밀려 오는 것 같아서 눈을 꼭 감고 있는데 순간 등뒤로 인기척과 함께 침침한 그림자가 느껴지는 것다같은 느낌에 몸이 흠칫했다. [쭈욱....] "야앗....." "양재성.. 이번엔 네 놈이 잘 못한 거야.. 현우 말이 맞아. 이런 시간에는 택시타고 다녀야 지!! 아까 찾아갈껄 그랬다고 우리가 얼마나 난리쳤는 줄 알아?" 씨발놈아. 그런 얘기는 꼭 내 볼을 쭉쭉 늘려가면서 해야 되는 거냐? 재빨리 진욱이 놈의 손을 탁 쳐내긴 했지만, 양 볼이 얼얼했다. 쳇... 난리는 무슨 난리... 새끼들이 쪼잔해가지고는.... 그거 조금 기다리게 했다고 지금 삐진건가보다. 다들 괜히 나 한테만 심통부리는 꼴이 정말 유치하고 꼴사나워서 정말 눈 뜨고는 못 봐주겠는걸. "야, 다음부턴 밤 늦게는 꼭 택시타고 다닌다고 빨리 약속해." "..... 알았어. 앞으로는 피를 토하던 말던 미친 듯이 달려서 절대로 기다리게 하지 않을테 니까 염려들 놓으라고.. 그거 조금 기다렸다고 치사하게....." [............................................................................................................] 뭐....뭐야... 이것들.. 저 허탈한 표정들은.... 내 말이 어디가 잘 못 된거야? 어리둥절해서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그나마 그중 제일 빨리 경직이 풀린 지훈이 놈이 한숨을 푸욱 쉬고는 짐짓 과장된 동작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양재성을 상대로 이딴 소리를 하고 있는 우리가 바보지.." "......전적으로 동감이다." "아이씨.... 힘 빠져.." ".....네 녀석들이 뭐라고 중얼거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지만,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녀석들의 시선이 한 꺼번에 집중되는 것이 느낌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으음... 내가 말을 잘 안 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 마디 할 때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볼 것 까지는 없잖아.. 사람 무안하게 시리.. "우리 여기 왜 모였어?" "......" "......" "......히히..." 어이... 내 한 마디에 다들 얼굴들 확 피면서 기분좋아보이고, 활기차 보이는 것 까지는 좋 은데 말이야, 영문을 모르는 내 입장에선 상당히 불쾌하다는 것 까지는 고려를 좀 해줘야 지. 실실 능글맞은 표정으로 쪼개면서 다가오는 지훈이 녀석을 보니 굉장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이 새끼들 시험 스트레스로 완전히 돌아버려서 무슨 나쁜짓이라도 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좀 터무니 없는 생각도 들고..... 하기사.. 지들이 나쁜짓이래봐야 뭐 별거 하겠어? 술이나 좀 마시고 담배나 좀 피우고... 문제가 있다면 내가 그런데는 잘 끼지 못하는 거겠지. 뭐... 꼭 그런 것을 하려고 모인 것은 아니더라도 별로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험 전 날.... 무슨 짓을 한 들 그게 재미있을까? 만화책 보고 싶다. 음악 듣고 싶다. 노래방 가고 싶다. 잠자고 싶다....등등...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은 무수히 떠오르고, 어쩔땐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고 하 지만, 안타깝게도 저 모든 일들은 시험이 끝.난.뒤. 에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금만 해도 내일 시험과목인 과학이나 음악이 계속 생각 나는 것이 마음이 도무지 편해지 질 않는다. 머릿속을 이상한 화학식들과 작곡가 이름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이상한 기 분.. 애초에 녀석들 얼굴만 보고, 대충 타이른 뒤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 다. "나 간다. 니들끼리 잘 놀아봐." [텅...텅...텅.....구르르르....] 녀석들을 등지고 몇 발짝이나 걸었을까... 뭔가가 굴러서 옆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었다. 이건...? "갈 땐 가더라도, 한 판 정돈 뛰어야지?" "......" 갈색빛의 매끄러운 농구공... 이.......거.......조금 곤란한데? 골대에 볼이 빨려들어가는 그 아찔한 느낌을 떠올리니, 발걸음이 좀체 떨어지질 않는다. 애초에 이현우가 나와 있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던건가? 결국, 한숨을 푸욱 내쉬긴 했지만, 어느새 몸은 멋대로 공을 집어든채 녀석들 쪽으로 발걸 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젠 나도 몰라... ================================================= "아아악!!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왜 저런 새끼가 농구를 잘 하는 거지?" "......" 박진욱... 네가 못한다는 생각은 안 해본거냐? 바닥에 완전히 축 늘어져 있다가 갑자기 사지를 발광하며 날뛰는 녀석의 모습에 나도 모르 게 입에서 피식하는 웃음이 나왔다.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이번엔 몸을 발딱 일으켜 앉더니만 내 쪽으론 슬금슬금 다가와선 억지로 일으킨다. 이 새끼가 힘들어 죽겠는데 왜 또 이 지랄이야... 발버둥 쳐봤자 별 효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엉거주춤 일어서긴 했지 만 굉장히 불쾌했다. "야... 니들 둘.. 잘 봐봐.." "그래, 보고 있어." "......" 히죽거리면서 쳐다보는 지훈이 놈의 시선과 음료수를 홀짝이면서 말 없이 응시하는 현우놈 의 시선이 못내 어색하다. 이번엔 또 뭘할려고 그러는데... 아아.. 피곤해. "내가 이 녀석 보다 분명히 크지?" "....그렇지." "딱 보기에 내가 훨씬 힘도 세잖아...." " 물론.." "솔직히 너희들 이 새끼 제대로 움직이는 거 본 적 있냐?" "......글쎄.. 거의 없는 것 같은데.." "나도." "그럼 평상시에 혹시라도 양재성이 재빠르게 반응하는 거 본적 있어?" "절대 없지." "반응이나 하면 다행이게? 뭐... 예민은 하지만...크큭..." "그.런.데.... 대체 왜!!! 농구는 잘하는 거냔 말이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내가 이 녀석 보다 꿀리는게 대체 뭐가있다고!!" [퍽.........] "으윽...." 정강이를 차이곤 펄쩍펄쩍 뛰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후련해 지는 것 같다. 물론 녀석을 차주곤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 앉긴 했지만.... 주저 앉은 김에 아까처럼 아주 바닥에 누워 버렸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은근히 왕자병 기질이 있는걸? 뭐든지 자기보다 잘 하는 건 말이 안된다니... 그래, 나 키작고, 비리비리하고, 움직이는 거 죽도록 싫어하는데다가 엄청 굼뜨다. 그렇다고해서 농구까지 못하란 법은 없잖아. 꼭 지고 나서 말이 많다니까... 하아..... 오늘은 지훈이와 나, 현우와 진욱이 이렇게 편을 갈라서 시합했다. 편을 짜는 것은 매우 간단했다. 지훈이는 잘나가다가 꼭 멍청하게 공흘리는 바보같은 새 끼.. 즉 진욱이와 한 편이 되는 것을 거부했고.... 현우놈은 기어이 나를 꺾겠다면서 나와 한 편이 되는 것을 거부했고.... 사실 편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후후... 어차피 내가 들어가는 편이 이기기 마련이니까.. 으음... 나도 진욱이 놈을 닮아가는 건가.. 뭐지? 이런 헛소리는....;; 뭐... 그리고 보면 정말 져 본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군. 왠지 흡족한 기분이 들어 뭐가 묻었을지도 모르는 시멘트 바닥에서 한 번 데굴.. 굴렀다. 오늘은 정말 쳐죽인다고 해도 못 일어날 것 같다. 아아.. 차가운 바닥이 뺨에 닿으니까 너 무너무 기분좋다. 나머지 녀석들도 바닥에 뻗었는지 저기 발께쯤에도 뭔가 채이고.. 손끝에도 뭔가가 스치운다. [깡......] 몸을 다시 크게 틀었더니 뭔가 발에 채이면서 음료수캔 하나가 눈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간 다. 제길... 이건 아까 현우놈이 사들고온 그 빌어먹을 2% 캔이로군.. 이번에도 내 몫으론 2%를 골라온 녀석의 행동을 다시 되새기니 새삼 이가 빠득빠득 갈리는 것 같다. 정말 입안에서 모래를 토할 것 같이 목이 마르지만 않았다면 정말 그 캔으로 대가 리를 박살내어 놨을지도 모르겠다. 또 지들끼리 히히덕 대는 꼴이라니.... 아아...정말 내가 늙는다. 늙어.. "아아.... 달 한 번 드럽게 밝다.." "푸...푸흡...." "키키긱...." "하핫......" 후..훕...방금 그 노인네 같은 말 대체 누가 한 거냐? 다들 누워서 낄낄대느라 몸이 들썩 들썩한다. 나도 별반 형편 다르지 않고... 크크큭.... "쳇... 새끼들 밝은거 보고 밝다고 하는데 뭘 그렇게 웃냐?" "...얌마.. 그럼 그냥 밝구나... 혼자 속으로 생각하지 꼭 그걸 입밖으로 꺼내야 겠냐? 그리고, 밝으면 밝은거지 드럽게는 또 뭐야?" "밝잖아. 밝고 좋은데 뭐... 양재성. 그렇게 생각 안하냐?" 지훈이 놈이 발을 툭 차오면서 묻는다. 너였구나? 이런 애늙은이같은 소리를 하는게.. "재수없어." "......아무튼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냅둬. 쟤가 뭐 하루이틀 저랬냐?" "얌마. 이현우!! 넌 왜 말이 없어." "남이사 말을 하던 말던.. 머리 좀 차지마." "앗.. 이거 머리였냐? 하도 조용하길래 발인줄 알았는데..." "푸쿡....." "......송지훈.. 시끄러우니까 닥치고 달이나 봐." "예예..." 현우의 말에 마치 내관인양 공손히 대답하는 지훈이의 어조에 다시 한 번 어깨가 들썩 거렸 다. 아아.. 좀 그만 웃겨.. 시멘트 바닥이라서 아프단 말이야.. "야.. 우리 달도 밝은데 하고 싶은 말이나 한 마디씩 해보자." "아이씨... 뭐야.. 송지훈.. 짜증나.. 닥치고 달이나 계속봐." "너나 실컷해." "우리가 애냐?" "그럼 우리가 어른이냐? 못 할 건 또 뭐야." "아이씨.. 아무튼 별 유치한 짓은 혼자 다한다니까... 내가 입학식날 이상한거 꼬치꼬치 캐물을 때 부터 알아봐야 했어." "재수없어." "양재성.. 그 소리 좀 그만 못해? 새끼가 꼭 정떨어지게 뚝뚝 끊어서는..." "그냥 냅두라니까.. 저렇게 살다 죽게. 우리가 고치랜다고 고칠 놈도 아니고.." "그럼 한다.." "미친놈.. 하란다고 진짜로 하냐?" "뭐.. 어때? 내맘이지. 왜? 현우 너도 하고 싶어?" "헛소리." "그렇게 하고 싶은 그냥 얘기하지 뭘 그렇게 꾸물럭 대냐? 니 입가지고 니가 말하는데, 우리가 상관해서 될 일이야? 맞아죽어도 할 말이 있다면야 일단 하고 보는거지. 사내새끼가 쪼잔하게..." "쳇.. 박진욱.. 누가 눈치봤다고 그래? 할꺼야!! 하지 말래도 얘기 할꺼야!!" "그래, 어디 실컷 떠들어 봐라. 얼마나 꼴같잖은 소리를 하나.." "아이씨.. 둘 다 시끄러.. " "......." "......" "......" "....뭐야.. 송지훈.. 할 말 한다면서.." "막상 할려니까 쑥스럽다." "어휴.. 가지가지 해요." "야..야.. 듣지마.. 다 일어서.. 그냥 집에나 가자." "아앗.. 알았어. 빨리 하면 되잖아." "......" "..왜 안해?" ".....정말 한다니까.. 잠깐 정리 좀 하고.." "......" "......" "......" "......" "......" "......" "......" ".....아이....썅!!! 빌어먹을 중간고사!!!! 사람 하나 평가하는데 그까짓 너저분한 시험지 한 장이 대수냐!!! 씨발,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처박혀가지고 이게 대체 뭔 지랄이야!!! 이제 열 일곱살 처먹은 새끼들 입에서 인생살기 힘들다는 소리 나오는게 가당키나 하냐고!! 제길... 10년만 기다려라!! 다 갈아엎을꺼다!!!" [............................................................................................................] "....크...크푸후훕....." "킥킥....."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새끼들아!! 왜 웃어!!" "크흐.. 하고 싶다는 얘기가 그거였냐?" "그래. 뭐 잘 못 됐냐?" "아니, 너무 잘 돼서. 니말마따라 진짜 썅이다.." "야.. 근데 무슨수로 갈아엎는다는거야?" "몰라. 말로라도 한 번 갈아둘려고..." "나도 껴주라.." "그래.. 진욱아.. 우리가 이 나라의 교육을 개혁시키는 거야!!" "교육청부터 불도저로 다 갈아 엎으면 되는 거냐?" "글쎄... 교육부 장관부터 암살해야 되는거 아니야?" "그렇게 치자면 대통령이 우선 아닌가?" "앗.. 맞다. 고마워, 현우야... 하마터면 잊을 뻔 했다." "이봐..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라고 한 소리였어." "무식한 놈들." "양재성! 말 끊어서 하지 말랬지!!" "냅둬!! 냅둬!! 저 새끼 고치길 바라느니 내가 성을 간다.." ".............. 그러고 보니 내일이 시험이군." "현우야... 그런건 입밖으로 안 꺼내도 아까부터 자알 알고 있다. 꼭 이런때 초치는 소리를 해야겠냐?" "갈아엎을 땐 갈아엎더라도 일단 맞춰주는데까지는 다들 맞춰둬라." "그게 무슨 헛소리야?" "시험 잘 보라고..." "쳇....." "아얏.. 임마.. 머리차지 말랬잖아. 아깐 조용하다고 차더니 이번엔 뭔데?" "시끄러워서.." "푸히힛........." 네 명 모두 어깨가 요란하게 들썩였다. 내일 시험이 이젠 별로 가슴에 와닿지 않는 걸 보면 나도 좀 맛이 가버린 건가? 에이씨.... 달 한 번 드럽게 밝네. Chapter 10. 중간고사. Part Ⅱ.End =================================== Sweet. so sweeeeet!! 휴우~ 이제, 더이상 비축분 없습니다.-_-;; 에파타님이. 다음편 빨리 주시길. 다같이 독촉합시다.:) (제독촉으론, 약발이 안먹혀요.ㅠ.ㅠ 우에..)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등교길.. 자주는 아니지만 지훈이와 현우는 우연히 만나서 같이 학교를 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오늘같이...... 여자들이야 서로 기다려서 같이가기도 할 정도로 서로 이야기 할 것도 많고, 같이 가는 것 이 자연스럽지만... 두 남학생이 어느정도 떨어져서 묵묵히 걸음에만 열중하는 장면은 장면 은 왠지 보는 이로 하여금 상당한 어색함을 느끼게 했다. 물론 본인들은 별로 신경쓰고 있 는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후아아아아암..." "집에 들어가니까 몇 시였냐?" "4시." "......" "......" 한참만에 오고간 짧은 대화. 극히 명료한 패턴이었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 약간이나마 장난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두 사람 사이에 뭔가 크게 겉으로 드러나는 교류는 없어도, 꽤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 는 '친.구.'임에는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그냥 듣기에는 별 의미없는 몇마디를 끝으로 학교 언덕길을 올라가는 내내 두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어느덧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 많은 수의 학생들이 여기서 내리기 때문에 항상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 기는 두 사람의 바로 옆으로 버스가 한대 서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현우의 얼굴은 단박에 찌푸려졌고, 지훈이는 어디서 또 아는 사람이 라도 만난 모양인듯 인사를 해대기에 바빴다. 그러던 두 사람의 시선이 유리창으로 훤히 보 이는 버스 맨 뒷자석에 닿은 것은 정말 우연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우야.. 저거... 양재성 아니냐?" ".....아마도....." "근데 왜 안 내리고 저기서 저렇게 퍼자고 있어?" "......뛰어." "씨발..." 이미 어느정도 출발한 버스를 쫒는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가 아니었지 만, 두 사람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지훈이의 고함소리가 주변으로 쩌렁쩌렁 울렸 지만, 안타깝게도 기사 아저씨나 재성이가 듣기까지는 역부족이었다. "야!!! 양재성!!! 임마!!! 정신차려!!!! 학교란 말이야, 오늘 중간고사야!!!!!! 아저씨 !! 좀 세워주세요!!!" [끼이이이이익......] "야!! 이현우!! 너 미쳤어?????" "이봐, 학생. 죽을려고 환장했어? 왜 차앞에 뛰어드는거야!! 죽을려면 딴데 가서 알아보지, 누구 팔자를 망치려고 여기 와서 이러는 건데!" 지훈이와 기사 아저씨... 두 사람이 경악한 듯 마구 외쳐댔지만, 막상 달리는 버스 앞을 가로 막아선 현우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듯 이마의 땀방울만 한 번 셔츠로 쓰윽 훔쳤다. "아저씨.. 여기 저희 학교 학생 아직 안 내린 애 있어요. 잠깐 문 좀 열어주세요." "......" "......" 너무 침착하게 말을 잇는 현우의 모습에 기사 아저씨는 질려버린 듯 혀를 쯧쯧 차며 순순히 앞문을 열어 주었다. "임마, 이현우.. 너 진짜.." "애나 빨리 깨워서 가자." 지훈이의 말을 그냥 끊어버린 현우는 서둘러 맨 뒷자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리창에 얼굴을 기댄채, 상황도 모르고 곤히 자고 있는 재성.. 현우가 거칠게 잡고 흔들었지만, 기다란 눈꺼풀만 몇 번 파르르 떨렸을 뿐 도무지 반응이 없다. "야..임마.. 양재성!! 안 일어나?" ".......어..ㅁ..마... 조금만 더....자게 해주세요.." [....................................................................................................] 이현우, 송지훈....패닉상태... 두 사람 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채 넋을 놓았다. 무뚝뚝한데다가 붙임성이라곤 없는 인간이.. [해주세요..]라니.. "이봐, 학생들 빨리 안 내리고 뭐해!!" "....하...하핫...하.... 네.. 금새 내리겠습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지훈은 서둘러 재성이를 들쳐업고, 아직도 멍하니 벙쪄있는 현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세 사람이 내리자 마자 바로 출발해버리는 버스.... 등에 업혀있는 놈이나, 손 잡고 있는 놈이나 정말 보통 아닌 것들이란 생각에 지훈의 입에서는 한 숨만 계속 푹푹 새어 나왔다. Episode. Bus. End===================================== Sweet. so sweeeeet!! 쿨럭, 드디어 11편이..ㅠ.ㅠ 앞으로 더욱더 많은 독촉, 감상을 epata님께.^^; 그래야, 12편을 빨리 보지요.ㅠ.ㅠ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1) 아아...여기는 대체 어떻게 빠져나가냔 말이야!!! 답답한 마음에 눈앞의 거울을 있는 힘껏 내리쳐봤지만... 제길, 방탄 거울인가보다. 괜히 손 만 병신될뻔 했군. 대체 이런 말도 안돼는 이상한 구조물을 "놀이기구"라고 만든 작자가 누 구인지 정말 궁금하다. 방향 감각없는 나같은 새끼들이 이런데서 낙오하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나보지? 하아아아... 하기사.. 그 세 놈들이 재밌겠다고 수군댈 때부터 뭔가를 눈치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녀석들따라다니면서 언제라도 평안한 나날이 있었는가를 돌이켜보니 새삼 착찹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이지 일생에 도움은 커녕 엄청난 방해와 악운만을 끼치는 놈들이라니까......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서울랜드 "착각의 집" 봄소풍이니 어쩌니 해서 9시까지 부랴부랴 코끼리 열차타고 매표소 앞에까지 왔을때만 해 도 기분이 꽤나 괜찮았었고... 머리는 완전히 올빽에다가 딱붙는 바지에 빨간 티셔츠, 거기다가 희안한 귀고리를 하고온 진욱이 놈이 담임에게 귀여움 받는 장면을 감상했을 때도 꽤 즐거웠었다. 현우놈이 내 반바지를 보고 뭐라고 씨부렁 거려서 기분이 아주 조금 더러워지긴 했지만, 그 자식이 바이킹 한 방에 완전히 맛이가서 헤롱거리는 것을 보곤 다시 굉장히 기분이 좋아 졌었던 걸로 기억한다. 최소한 이런 괴기스러운 시설을 지훈이 놈이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지... 또 지들끼리 키득대는 꼴이 좀 불안하긴 했지만.. 솔직히 "착각의 집"이란 이름만 듣고는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기에 그냥 순순히 따라 들어왔던 거였다. 하지만 운나쁘게도 때마 침 잔뜩 몰려온 사람들하고 휩쓸려서 세 녀석들하고는 헤어지고, 이런 빌어먹을 거울만으로 계속 이어져있는 이상한 미로에 혼자 "낙오"되고 만 것이다. 아아... 정말 돌아버리겠다. 우 리가 들어올때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갑자기 또 개미새끼 한 마리 안 지나가는 것은 무슨 이유인거야!!! 그 빌어먹을 연반산가 뭔가 하는 현상 덕택에 어디가 어디인지를 도무지 종 잡을 수가없다. 원래 길 찾는 것이 완전히 젬병이기도 하지만, 나쁜 시력도 한 몫을 해서 벌써 10여분 가 량을 빌빌대면서 헤메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이 까짓거 쯤이야 그냥 걷다보면 빠 져나가겠지 했는데, 시간이 꽤 흐른 지금에 와서는 "이러다가 정말 여기서 영원히 발견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발견 못되면 필시 굶어죽을 테지.. 굶어죽기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 릴까" 등의 주책스러운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고 말았다. 제길!! 제길!! 제발 아무나 좀 지나 가간 말이다. "에에? 여긴 뭐냐? 이런 시시한게 아직도 있어?" "것봐. 내가 졸라 재미없다고 들어오지 말랬잖아. 꼭 우겨서 들어와 놓고 지랄이야." "그래.. 미안하게 됐다. 쳇.. 뭐야 이건.. 어린애도 이런건 우습게 나가겠네." "얌마.. 둘 다 시끄러워. 빨리 나가서 재밌는거 타자." ................................................................... 그래.. 나 졸라 멍청하고 등신같아서 이런데서 계속 헤메고, 아직도 못 빠져 나가고 있다. 거기에 뭐 보태준거 있냐? 이런 잘난 양반들아.... 10여분 만에 들려온 인기척이었지만, 반가운 생각이 싹 가셨다. 필시 뭐라고 소리는 질러야 겠지만, 막상 소리쳐서 저 사람들이 온다고 해도 완전히 병신 취급 받을 것 같고... 그냥 가 만히 있다가 저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거든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나가는 방법도 있긴하지 만.. 이제까지 상황을 보건데 내가 소리치지 않는 한 아마도 저쪽에서는 나를 발견하지 못 할 것 같고..... 아아.. 정말 이거 고민되네... 이 사람들은 그냥 보내고, 그냥 다른 누가 오기를 기다려 볼까? 정말 혹시지만, 세 녀석들이 올지도 모르는데.... 하긴.. 뭐 나 같은 거 하나 빠진다고 해서 놀거 못 놀 놈들도 아니지만서도.. 에라... 모르겠다. 이런 어두침침한데 계속 처박혀 있느니 좀 쪽팔리고 마는게 낫겠지 뭐... 언제는 내가 남 눈치 보고 살았나.. "저기요!!" "예? 야.. 방금 누가 부르지 않았냐?" "어.. 나도 들은 것 같은데.. 에이.. 설마 우리 부르는 거겠어?" 씨발놈들아... 니네 부르는거 맞아. 지금에라도 그냥 입을 꾹 다물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긴헀지만.. 즐거운 소풍날. 이런 장소에서 계속 썩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낭비다. 제길... 시험 끝나고 얼마 놀아보지도 못했는데.. 성적표 나오기 전까지 해볼건 다 해봐야 될 거 아 니야!! "....그 쪽 부르는거 맞는데요." "얌마... 맞다잖아. 누구시죠? 무슨일이세요?" "..........." "무슨 일이시냐니까요?" "야.. 대답 안 한다. 장난한건가 보네. 그냥 가자. 여기 짜증나." "가만히 좀 있어봐. 방금 목소리가 좀 낯이 익었단 말이야." 에...? 목소리가 낯이 익어? 서...설마.. 우리반 놈은 아니겠지? 당황스런 마음에 상대방의 목소리를 내가 아는 인물들과 매치시켜보았지만, 변성기이거나 변성기 거친 사내놈들 목소리를 구분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어느놈이나 전부 허스 키하고 걸걸한데 뭐.. 아는 놈이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나랑 친분이 있는 놈이면 큰 일이란 생각에 몸이 저절로 얼어붙었다. 제길..."유치원생도 우습게 지나가는 착각에 집"에 갖혀버린 병신 새끼 소린 별로 듣고 싶지 않는데... "이봐.. 누구신데요? 무슨일이세요?" [저벅... 저벅... 저벅....] 다급한 내 마음과는 달리, 상대방의 발자국 소리는 내쪽으로 점차 가까워져왔다. 그냥 좀 더 기다릴걸 하는 후회가 막심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도망이라도 쳐볼 까 해서 쪼그려 앉아있던 몸을 급히 일으키려했을땐 어느새 코너쪽에서 낯선 사람의 형상이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어.... 양재성? 목소리 듣고 혹시나 했는데, 너였구나? 혼자 왜 이러고 있어?" "......" 역시나 아는 새끼였어... 대체 어떤 놈이길래, 목소리 한 번듣고 나 인줄 아는 거지? 아직은 어느정도 거리가 있어 구분이 가지 않는 상대방의 얼굴을 좀 자세히 확인하려고 양 미간을 찌푸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경을 가지고 나오는건데.... "야야.. 또 보자마자 인상부터 쓰는 거냐? 그 습관 웬만하면 좀 고쳐라." 남이사 인상을 쓰던 해맑게 웃던 네가 뭔 상관이야. 쓸데 없는 걸로 혼자 기분나빠하는 거하며, 저 삐뚤어진 입매 하며.. 쳇... 신기현이었군.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지금 꼴을 보아하니 나인줄 알고 부른 건 아닌가 본데.. 어디 다치기라도 했냐?" "......" "........ 또 대답 안 하냐? 내 말쯤은 개껌으로 안다 이거지? 아무튼 너란 놈은..." ".......내가 언제." 그럼.. 너같으면 이 상황에서 "길 잃어버렸어." 란 말이 순순히 나오겠냐? 정말이지 눈치 없기론 신기현을 따라갈 자가 없다니까.. 쑥쓰러워서 말 못하는 거랑, 무안줄려고 말 씹는 거랑도 구분 못하니 원.... 짜증스러운 마음에 퉁퉁거리면서 쏘아주니 녀석의 입매가 또 이상하게 뒤틀렸다. 으음.. 남말할 처지는 못되지만, 이 새끼 표정은 정말 적응이 되질 않는단 말이야.. 꼭 비웃는 거 같은게... "뭐.. 더 이상 물어봐 봤자 대답 안 해 줄꺼지?" "어." "어휴.. 생긴건 꼭 뭐 같아가지고 말투 하고는.." "내 얼굴이랑 말투가 어디가 어때서." "됐네요, 됐어. 일단 빨리 일어나기나 해. 얌마, 보기는 좋은데..... 아냐 됐어." "......보기는 좋은데... 그 다음은 뭔데?" "아니라니까.." "뭔데, 왜 말을 하다가 끊고 그래?" ".........너 그렇게 입고 그런 자세로 땅바닥에 앉아있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몰라." "정말 몰라?" "......" 씨발놈아.. 내가 그딴걸 어떻게 알아. 대한민국 헌법에 그렇게 앉아있으면 사형이라고 혹시 써있다거나 하면 모를까... 아무튼 이 새끼 지멋대로 인 것은 정말 알아줘야 한다니까... 물어본 말에나 제대로 대답할 것이지.... 미친 놈 보듯이 녀석의 뺀질뺀질한 면상을 좀 쏘아봐 주자니, 녀석이 좀 무안했는지 한쪽손 을 내밀어 보였다. "그래..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일단 일어나 봐." 녀석의 생략된 말이 무언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데다 차갑기 까지 한 돌바닥에서 한시라도 빨리 일어나는 것이 급선무 였기 때문에 재빨리 일어나서 옷 을 털었다. 에구.. 꽤 오래 앉아있었던 모양이다 여기 저기 욱씬욱씬 한 것을 보면.. "그나저나, 반장하고 나머지 애들은 다 어디가고 너 혼자 이렇게 있어? 오늘 걔네들하고 같이 다니기로 한 거 아니었어?" "좀 전 까지 같이 다녔는데, 헤어졌어." "에에? 어쩌다가?" "......그냥 어떻게 휩쓸리다 보니까.." "그래? 그럼 빨리 찾아봐야 겠네. 여기서 헤어진 거면 아직 멀리는 안 갔겠다." "......" 기현이의 말을 듣고 보니 녀석들을 찾는 일도 걱정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 상황에서 내가 녀석들을 찾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걱정이다. 이제까지 별 소식이 없는 걸 보면 필시 저희들끼리 잘 놀러 다니고 있다는 얘긴데, 내가 찾는답시고 나서서 귀찮게 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같이 놀러다니기로 무슨 특별한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자연스럽게 뭉쳐다 니던 터라 고민은 한 층 더 가중되었다. 어쩌면 녀석들 입장에선 나랑 헤어진게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모르겠다. 막말로 나같이 무뚝뚝한 놈 하고 어울려 다니는게 뭐가 재밌겠어? 퉁 퉁거리면서 투덜대기만 하는데..... 조금이라도 내가 없어진게 저희들한테 아쉬운 감이 있었 다면 아마 진작에 나를 찾았을거다. 여적까지 무소식인 걸 보면 분명 저희끼리 잘됐다고 즐 겁게 돌아다닌다는 얘기지. 뭐..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나 지금 녀석들을 배려해주고 있는게 아니라 굉장히 삐져있는 상태다. 기집애 같다고 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섭섭한건 섭섭한거다. 조금만 기다리면 한 놈이라도 나타날 줄 알았는데. 쳇......나같이 빌어먹게 비뚤어진 성격은 남이 찾아주길 바랬으면 바 랬지 절대로 먼저 찾아나설줄은 모른단 말이야!! 제길...제길!!! 뭐... 녀석들을 찾지 말아야 겠다고 마음속으론 어느정도 결정이 내려지긴 했지만, 여기서 또 고민이 하나 추가다. 소풍날 혼자 다니는게 내키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 물론 내 가 허구언날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것은 딱 질색이라고 떠들고 다닌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 다고 해서 청승떠는 것까지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에라.. 정말 모르겠다. 1시간전까 지만해도 정말 기분 좋았는데... 지금은 이꼴이라니.. 세 녀석 다 핸드폰 있는데.. 그냥 눈 딱 감고 전화라도 한 번 해볼까? "기현아, 혹시 걔네 핸드폰 번호 아는 거 있냐?" ".......아니. 없는데." "......" 이런.. 이쪽으로도 연락이 안돼는군. 이렇게 된 바에야 정말 혼자 다니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운좋아서 만나면 그냥 같이 다 니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어디 벤치 같은데 누워서 낮잠이나 잘까? 찾으려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니지만, 녀석들이 없으면 아쉬운 것 같이 행동하는 것 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속이 꼴린다. 이래뵈도 나도 한 자존심하는 사람인데... 방송에다 대 고 미아찾기 하듯 떠들어봐라.. 어디 앞으로 얼굴이나 제대로 들고 다니겠어? "기현아.. 대체 누구길래 안 오고.... 어? 재성이네? 안녕?" "안녕." "네가 불렀던 거였어? 좀 놀랬다." "맞아. 무슨 일이냐?" "그러고 보니 혼자 있네? 걔네들 다 어디갔어?" ".......그게...." 가뜩이나 심란해 죽겠는데, 갑자기 우르르 몰려온 기현이 패거리들 때문에 더 정신 사나워 죽겠다. 아아.. 진짜.. 그냥 좀 더 기다리던지 아니면 혼자 길을 더 찾아볼 것을.. 이 새끼들 우리반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무리들 중에 하난데 잘 못 걸렸다 싶었다. 여기 말 실수 하면 금새 전교로 소문이 쫘악 퍼질게 정말 빤히 보인다. 사내새끼들이 수다스럽기는... 놀기 잘 놀고, 활발한 것 까지는 좋은데 너무 지나치다 싶은 경향이 있어서 어쩐지 좀 가까 워 질 수 없다고 느껴오던 애들이라 뭐라 무시하고 넘어가기도 껄끄러웠다. 아이씨.. 대체 어떻게 해야 돼는거야!! "지훈이가 급한일이 있다고 먼저 서둘러 가는 바람에 어떻게 다 찢어졌다나봐.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고들 난리냐? 일단 여기부터 나가고 보자." "......" 꽤나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잊으려니까 기현이 놈이 나서서 말을 끊으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뭐야......이 새끼는 내가 언제 그런 소릴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건지... 뭐... 조금은 고맙긴하다. 어쨌든 도움 받은거는 받은거니까... 영 눈치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아이씨.. 눈부셔. 내가 다시는 이런거 타나 봐라. 야, 한 5분이나 제대로 걸렸냐?" "쳇.. 5분이나 걸렸으면 좀 낫게? 자유이용권이니 망정이지, 이런걸 돈내고 타는 놈들도 있 을까?" "야..야.. 우리 이번엔 뭐 타러 갈래? 은하열차 탈까?" "글쎄... 사람 많지 않으려나? " "뭐.. 많아 봤자겠지. 오늘 소풍 온 학교 얼마없어서 엄청 한적한데." "그럼 빨리 가자." 이봐...나는 당신들 이상으로 이 시설에 맺힌 거 많은 사람이야. 나같이 우울한 놈이 교도소 막 나온 죄수마냥 햇살보고 반가워 할 정도면, 얼마나 저기 있 기 싫었는지 다들 알꺼아냐.. 뭐... 기분이 엄청 다운 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 밖에 나오고 보니까 아무려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날씨도 좋겠다. 이것 저것 구경거리도 많겠다, 어디 햇살 좋은데 앉아있 으면 정말 딱이겠는걸? 기현이네 패들은 이제 이동하려는 기세길래 이만 나는 빠져야 겠다 싶어, 아직도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기현이의 팔을 슬쩍 놓았다. 으음... 어느쪽으로 먼저 가볼까.. 오른쪽? 왼쪽? "으아앗..." 애들과 떨어져서 몇걸음이나 걸었을까.... 뭔가에 손목이 채이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기현이 놈이다. 용건있음 말로 하지.. 사람 깜짝 놀라게 시리... "뭔데 그래?" "아니....그게..... 지금 가려고?" "어." "......" 어쭈.. 이 새끼 버벅거리는 꼬라지를 보게나.. 할말 있음 사내자식이 퍼뜩퍼뜩하든지.. 자세를 고쳐 서면서 녀석을 빤히 쳐다보니, 더더욱 어쩔줄 몰라하는게 정말 가관이다. 평상시에는 항상 놀려먹기나하고 막 대하던 놈이 갑자기 이러니까 굉장히 불길하고 불안한 느낌이 엄습한다. 뭐 잘 못 된거라도 있나? "왜 그러는데? 민욱이도 저기서 부르잖아. 할 말있음 하고 빨리 가봐. 말하기 어려운거면 아얘 하질 말던가." "그게.. 뭐... 혹시 혼자다닐 생각이면 우리쪽에 끼는 건 어떠냐..?" "...니네 쪽에?" "응. 혹시 지금 딴 애들 찾으러 가는 길이었냐?" "글쎄... 그런건 아니지만..." "그럼 그냥 같이 다니자. 혼자 다니는 것보다야 낫지 뭐. 우리도 인원이 홀수라서 좀 애매해서 그래." 그렇게 사람 좋게 웃어보이면... 거절하기 곤란한데.... 언듯 듣기에는 꽤나 괜찮은 제안이긴 하지만, 기현이를 빼고는 아까 얘기했듯이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선뜻 그러자는 말이 나가질 않는다. 기현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쟤네 들 입장에서는 내가 불청객일텐데.... 사실, 적당히 알고 지내는 친구만큼 애매하고 불편한 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 관심사도 꽤나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심지어는 복장까지 꽤나 차이나는... 그냥 인사정도 하고 지내는 사이. 뭐.. 서로에 대해 악감정도 없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다른 사람이 자기의 무리에 끼어드는 것을 배척하고 싶은 마음부터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색하게 가서 끼어있느니 거절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기현아!! 얌마! 빨리와!! 뭘 그렇게 꾸물대!!" "우리 먼저가서 줄서 있을테니까 저 위로와!!" "잠깐만 기다려!! 지금 재성이 데리고 갈테니까!!" "아니..난..." "가자.." 뭐...뭐야 이 자식!! 나는 아직 승낙같은 것 한 기억이 없는데.. 어느 새 몸은 이 녀석 손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 뭐라고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이 자식 내쪽으로 고개도 안 돌리고 그저 앞만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버린다. 야!! 가는 것 까진 좋은데 말이야.. 이 손은 좀 놓는게 어때? 그러니까 혼자 가라고!!! 부탁인데, 나도 좀 마음 편히 살아보자!! "어? 재성이도 같이 가는 거야?" "어. 같이 가기로 했어." "그래? 잘 됐네. 사람 수도 안 맞았는데. 그럼 재성이는 나랑 같이 타면 되겠다. 흐흑.. 외로웠어.. 그간 짝도없이 혼자 타느라고.." "어휴.. 쑈를 해요.. 등치도 큰게. 징그러워! 재성이한테 그만 좀 달라붙어!!" "야. 그냥 이 새끼 버리고 가자." "재성아, 놀랐지? 이상한 녀석이 달려들어서..." "......" 준혁이와 정수 녀석이 서로 아웅대면서 장난을 걸어오는 바람에 몸이 이리저리 기우뚱 거린 다. ......의외로 호의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싫은 것은 아니지만, 이래가지고는 같이 안 다닐 꺼란 말은 도저히 못 꺼내겠군. 어휴... 뭐, 잘 된 거라면 또 잘 된건가? 나같이 어두침침한 놈을 환영해 주다니 의외로 성격 좋은 애들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이 녀석들을 섣불리 가까이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좀 끼리끼리 어울리는 부르주아틱한 뭔가 때문이었는데.... 정수 녀석이 짝 생겼다고 좋아하면서 부비대는 걸 보면, 단순한 나의 편견 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으음.. 그다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 역시 귀 티나는 녀석들은 일단 멀리하고 싶어진단 말씀이야.. 뭐.. 하기사.. 귀티나기로 친다면야, 현우나 지훈이나 진욱이가 더하지만 서도... "야야... 그럼 빨리 가서 줄 서자. 흐흐.. 재밌겠다~" "그래.그래." "잠깐.." "뭔데, 기현아?" "재성이는 나랑 같이 탈꺼니까, 민욱이 네가 정수랑 타라. " [.........................................................................................................] 야, 지금 장난해? 기현이 놈이 차갑게 내뱉은 한 마디에 분위기는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좀 자연스럽게 일행에 끼는 건가 하고 안심했는데, 이 새끼는 대체 무슨 잠꼬대를 이렇게 험악하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론 저 녀석 민욱이랑 단짝이었을텐데..... 장난치나 싶어서 녀석을 힐끔 살피니, "나 지금 굉장히 언짢으니 건드리지 말아라." 는 험 악한 표정으로 애들을 노려보고 있다. 신기현... 그렇게 안 봤는데, 이제보니까 너도 한 성 깔하는구나? 기현이의 한 마디에 애들 어느 누구도 한 마디 토를 달지 못하는 걸로 봐서, 이 무리엔 어느정도 서열이 있고, 그중 가장 위가 신기현이란 것을 어렴풋하게 나마 알 수 있었다. 사내자식들은 이런게 안 좋다니까.... 겉으로야 잘 드러나진 않는다지만, 암묵적으 로 '힘'있는 놈 말이 최우선이니... "그... 그래. 그럼 그러지 뭐." 민욱이의 한 마디로 상황은 종료 되었지만, 나는 굉장히 입장이 난처하게 되어버렸다. 아니, 뭐.. 얘네들끼리의 일이니 크게 신경쓸건 없는건가? 내 짐작으론 아무래도 기현이랑 민욱이랑 싸운 모양이다. 그래서 기현이가 굳이 나를 무리 에 끼워넣고 싶어했던 모양이고..... 그래야지 비교적 무난하게 짝을 바꿀 수가 있었을테니 말이다. 충분히 이해는 가는 상황이 지만, 솔직히 기분은 썩 좋지가 않다. 사전에 그러면 이렇다 저렇다 말이 있어야지 사람이 당황을 안 할 것 아닌가.. 지 멋대로 다 해버리니, 꼭 이용당한 것 같은 기분까지도 들고....... 에이씨... 지금 분위기도 엄청 가라 앉았는데, 역시 그냥 거절하고 가버리는게 나았을까? "야.. 이거 재밌겠다. 빨리 줄서자." "...어." 뭐야. 갑자기 바뀌는 표정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또 기현이 녀석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 도저히 적응이 되질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얼굴 딱딱하게 굳히고 성질내던 놈이 갑자기 나긋나긋하게 굴다니.. 이 새끼 말로만 듣던 조울증인가? 으으... 깊이 생각하지 말자. 괜히 성격만 나빠지지 뭐.... ============================================================ "그래? 그래서 그거 얼마주고 샀는데? " "흐흐... 20만원..." "어라? 생각보단 싸게 샀네. 내가 아는 어떤 미친놈은 그 게임 45만원 주고 샀다던데.." "뭐.. 싸게 산 편이긴 하지만 나로써도 출혈이 심한거였어. 그래도 죽이더라..." "다 하면 나도 좀 빌려줘." "안돼! 이게 얼마짜린데.." "쳇... 얌마, 치사하게... 좀 빌려줘." "싫어. 니가 사서해라. 흠집이라도 가면 어떻하냐?" "그래.. 내가 산다.. 사." "재성아, 왜 안 먹어?" "어?" "아얘 입에도 안 댔네. 좀 먹어." "어." 허어... 20만원짜리 게임 CD라.... 불행하게도 나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눈앞의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삼킬 수 있는 능력 의 소유자가 아니라서 말이지.... 사실, 게임같은건 남자애들 사이에서 가장 흔하게 오가는 이야깃거리지만, 지훈이나 현우, 진욱이 중 어느 누구도 그쪽 이야길 즐겨 하는 녀석이 없었기 때문에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뭐.. 만난지 얼마 안 되었을때는 녀석들도 곧잘 이야기 하곤 했었던 것도 같은데... 어느 날인가 부터 인지 모르게 딱 그쳤던 것 같다. 좀 의아하긴 했지만, 내심 좀 안심을 했 던 것도 사실이었다. 대화에 그리 잘 끼는 편은 아니지만, 집에 컴퓨터가 없는 나에겐 녀석 들의 이야기가 생소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러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기현이나, 민욱이, 정수, 세진이도 전부 괜찮은 애들이긴 하지만, 이야기 하는 소재들은 한 결같이 내가 말하기 부담스러운 것 뿐이다. 비싼 메이커 옷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술 마신 이야기, 얼마전의 패싸움 이야기, Play station, 담배, 여자애들.... 이젠 게임 이야기 까 지... 으음... 뭐랄까... 나랑은 뭔가 생각하는 것 부터 다르다고 해야하나? 내가 하는 이야기는 기껏해봤자 얼마후에 있을 실기평가라던가... 농구 시합이라던가... 어떤 펜이 잘써진다던가... 음악이야기, 써클이야기, 요새 매점에선 뭐가 맛있는가 정도인데 비해 이 녀석들 이야기는 좀 더 수준이 있어보인다. 그래서 가능하면 먹는데만 열중을 하려 했지만..... 제길할......불행하게도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지금 눈 앞의 점심 메뉴도 나한테는 부담스 럽기 짝이 없다. 도시락을 싸왔다고 얘기했고, 돈도 얼마 안 가져왔다고 분명히 못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기현이와 나머지 인간들은 저희들이 돈 대주겠다면서 굳이 패스트푸드 점으로 끌고 왔던 것 이다. 사먹을 거면 좀 싼 걸 먹던가... 엄청까진 아니지만, 일반 패스트 푸드 매장보다 한 층 더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매장 분위기에 왠지 자꾸 주눅이 들었다. 이거 치킨을 먹는 건지, 아니면 입안에서 굴리다가 침 이랑 같이 넘기는 건지 구분이 안 간다. 역시 따라오는게 아니었어... "야.. 이제 일어서자. 다 먹은 것 같은데..." "그래. 빨리 나가서 Drop샷 타자. 전부터 그거 한 번 타보고 싶었어." "얌마.. 지금 배가 만선이라서.. 그딴거 탔다가는 정말 구역질 할 것 같애." ".....아이씨.. 한정수.. 이 더러운 새끼..." 구역질 하는 흉내를 내며 가게 안을 소란 스럽게 돌아다니는 민욱이와 정수를 보니 픽, 하 고 웃음이 나왔다. 드롭샷이라면.. 그 무시무시하게 생긴걸 말하는 건가? 흥미가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 기억으론 추가부담 요금이 꽤 쎘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지? "기현아, 난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께. 너희들끼리 먼저가서 타고 있어." "너는 안 타게?" "어." "왜? 그냥 타지..." "별로.. 타고 싶지 않은데.. 그냥 화장실이나 갈래." "그래? 그럼 내가 같이 따라가 줄까?" "......" .......................................................... 화장실 같이 다니는 남자새끼들이 있다더니.... 정말 이었군. 신기현.. 남자망신은 너같은 새끼들이 다 시키는거야!! 같이 갈데가 따로 있지, 미친놈.. 화장실을 같이 가냐... 성질 같아서는 뭐라고 따끔하게 한 마디 쏘아주고 싶지만, 가능 하면 오늘 하루 조용히 보 내자는 다짐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됐어. 혼자 갈테니까.. 가서 그 드롭 샷인지.. 드롭 슛인지나 타." "....아니... 그래도..." 기현이 녀석이 몇 마디 더 하려는 기세길래 재빨리 녀석을 지나쳐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찰거머리 같기는... 화장실 간다면 가게 내버려 두는 거지 뭐 그렇게 토를 달고 난리야.. 화장실이 어디쯤 있나 주변을 쓱 둘러보니 저기 벤치 구석에 한 곳이 보인다. 뭐.. 멀리 가 지 않아서 좋기는 좋다만.... 가능하면 이 핑계로 녀석들하고 오래 떨어져 있으려던 계획에 는 좀 지장이 생길 것 같다. 그 녀석들이 들으면 섭섭하다고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역시 불 편한건 불편한거다. [털컹.....] 어라? 왜 문이 안 열리지? 공중 화장실은 대부분 냄새도 있고 해서 입구 쪽 문은 열려있거나 없는 것이 대부분인데 눈 앞의 철문은 잠겼는지 어쨌는지 꼼짝도 하질 않았다. 화장실이 그렇게 급했던 것은 아니었 지만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 문을 몇 차례 손으로 두들겨 보았다. [쾅..쾅..쾅..] "아무도 안 계.... 으아악..." [벌컥....] "뭐야!!! 어떤 새끼가 문 두드리고 지랄인데!!!!" 어휴.. 깜짝이야. 갑자기 열리는 문에 놀라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니, 빼꼼이 열린 틈으로 매캐한 담배향기가 확 하고 끼쳐왔다. 땅바닥의 나이키 운동화에 고정되어있던 내 시선을 천천히 끌어올리니.. 내 키보다 머리하나 정도 더 올라간 위치에 인상 험악하게 생긴 어떤 아저씨가 내려다 보고 있다. 이 아저씨... 생김새를 보아하니.... 젠장.. 잘 못 걸렸군. 이상하게 말려붙인 머리카락하며, 특수제작한 것 같은 교.복.하며..... 뭐.. 인상이 하도 더러워서 순간 아저씨로 착각하긴 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내 또래의 양 아치 놈인 모양이다. 아니, 또래도 아닌 듯 싶다. 이건 우리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중학교 교복인데? 아무튼 요새 애들은 발육이 빨라서 탈이라니까.... 중학생이란 사실에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되긴 했지만, 솔직히 등빨에서는 내가 엄청 밀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녀석의 호통에는 별다르게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뭐.. 비겁하다고 할 사 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같이 귀찮은 것은 혐오하고, 평화를 신봉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도 당연한 생활의 지혜일 뿐이다. 뭐.. 나도 인상 꽤나 더러운 편이지만, 이정도면 표정도 꽤나 양순하게 지은건데... 이래도 설마 때릴꺼냐? "야, 여자 화장실은 저쪽이야. 기집애가 칠칠치 못하게 이런 것도 구분 못하냐? 내가 여자라서 봐준다. 빨리 가봐." "......" "안 가? 뭐.. 그러고 보니까.... 너 꽤 귀엽게 생겼는데? 한가하면 오빠들하고 잠깐 놀다갈래?.." 하하하하.... 유심히 꼬라보고나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거냐? 여자 화장실? 오빠? 형도 아니고? 지금 나를 여.자.애. 취급한거야? 허허.. 이 것 참... 세상 말세로세... 어린 것이 감히 어따대고... 이 새끼는 '장유유서'가 뭔지도 모르는 모양이지? 학교에선 대체 뭘 배워 처먹은거야!!! [퍼억......] [쿠당탕탕탕......] "아앗... 저 씨발년이!!!" 야이, 씨발놈아..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누굴 여자애 취급하는거야!! 끝까지 년이라고? 어디, 너 한 번 죽어볼래! 내 주먹이 그렇게 세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어쨌든 욱하는 심정으로 내가 그대로 내지 른 주먹에 양아치 놈은 화장실 문과 크게 충돌하면서 나자빠졌다. 이 새끼가 무슨 험한욕을 했을지라도 내가 다 참았을테고, 몇 대 때리는 것도 왠만하면 다 맞아 줬을 테고, 돈 좀 달 라고 하면 순순히 내줬을 테지만.... 불행히도 이놈은 해서는 안될말을 내 앞에서 지껄어 버 렸다. 천하의 무신경 양재성도.. 가끔씩 홱까닥 돌아버릴때가 있단 말이야.... 쳇.. 그나저나 이제는 어떻게 한다? 저 새끼를 더 밟아? 아니면 귀찮은데 그냥 여기서 뜰 까? "아야야야.... 아파.." "태형아, 괜찮냐? 아이씨.. 어디서 저딴게 굴러와가지고.." "야!! 어떤 년이야.. 너 미쳤어? 뭘 믿고 여기서 덤벼드는 건데..." "이리 끌고와." 뭐... 뭐야.... 이런 빌어먹을 상황은..... 이 새끼 혼자 있었던게 아니었나? 하기사, 잠겨있던 문 하며, 아까 그 자욱한 담배연기만해도 여럿이 있다는 증거인데, 내가 너무 성급했군. 활짝 열린 화장실 문안으로 적어도 대여섯 명은 되어보이는 인상 더러운 패거리들이 전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전부 중학교 교복이지만..... 내가 상대할 수 있을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구석에 무릎꿇고 손들고 있는 새끼들도 몇 명 있는 걸로 보아, 아주 오늘 단단히 잘 못 걸렸는지 싶다. 아아... 정말이지 귀찮은 건 딱 질색이란 말이야!! [탁...탁...탁...탁....] "야이 새끼가!! 어딜 도망가!!!!" 내가 도망가긴 어디로 도망가겠어. 니들없는 조용하고 편안한 곳이지... 패거리 중 제일 인상 험악하게 생긴 놈이 내 팔목을 잡으려는 찰나, 있는 힘껏 뿌리 치고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뛰면 깡패놈도 포기하겠지 생각했는데.... 제길.... 녀석은 내 예상과는 달리 끈질기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달리는 것은 딱 질색인데다가 자신도 없었던 터라, 마음은 점점 조급해져 왔다. 진욱이 놈이 거북이라고 놀릴때, 그냥 화내지 말고 연습이라도 좀 해둘 것을.... 아슬아슬 하게 코너를 비껴가고, 화단을 뛰어넘고.... 벌써 몇 명째인지 모를 사람이 나와 어깨를 부딫히곤 짜증스런 신음소리를 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시야가 뒤엉키면서 아찔하게 현기증이 나는 것이, 조금만 더 뛰면 이제 한계일지 싶다. 끊임없이 휘청거리고 숨을 헐떡거리는 나에 비해, 깡패새끼는 꾸준히 지치지도 않고 줄기차게 쫓아온다. 제길.. 이 새끼는 밥 처먹고 뜀박질만 했나.. 대체 왜 이렇게 빠른거야!!! 한 발, 두 발.. 어느덧 녀석의 손이 점점 가까워져 이젠 옷깃에 와닿는다. 사락사락.. 옷깃스치는 소리가 섬뜩했다. 아이썅.. 제발 누가 좀 도와달란 말이야!! [덥썩.....] "잡았다!!!" 젠장...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아까 끌려가서 몇 대 쥐어터지고 돈 좀 뺏기고, 벌 좀 선다음에... 나중에 이 새끼들 학교에 꼰질러서 정학시켜 버리는 건데.... 괜히 힘들게 땀만 뺐잖아. 아이씨... 짜증나. 숨이 너무차서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헉헉대고 있자니, 뭔가가 내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어 휙휙 헝클어 놓았다. 뭐... 뭐지?... 이 황당한 행동은....? 최소한 잡히자 마자 몇 대 두드려 맞을 줄 알았는데.. "헤헤... 양재성.. 생각보다 잘 뛰네?" "......" 어라? 이 새끼가 내 이름까지 알잖아? 거기다 이 목소리 꽤나 낯이 익은 걸? 꼭...... 내가 아는 어떤 양아치 새끼같은게..... "왜? 뭘 그렇게 의심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는데? 너무 반가워서 할 말을 잊었냐?" "......" "체.. 목석같기는... 한참만에 나타난주제에 대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그 표정은 뭐야!!! 이제까지 어디 처박혀 있었던거냐!!! 얼마나 찾아다녔는 줄 알아?" 세상에.... 정말 박진욱 이잖아.....!! 나쁘던 눈이 이젠 아주 맛이 가버린 건가 싶어, 마구 부벼보고.. 너무 숨이 가빠서 혹시 헛게 보이나 싶어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해봤지만, 역시 박진욱이 틀 림없다. 하기사 착각할 걸 착각하지...... 이 새끼 같이 눈에 띄는 놈이 또 어딨다고..... "얌마.. 박진욱.. 어딜 그렇게 갑자기 뛰어가는 거야.. " 어라? 이 목소리는? 내가 알기론 이렇게 싸가지 없는 억양을 가진 놈은 한 사람 밖에 없는데..? 이런 딱딱 부러지는 말투에다, 박진욱이랑 삐까삐가하게 달릴 정도의 놈이라면.. 당연히.. "......... 지금 까지 어디 처박혀있다가 이제사 슬슬 기어나오는 거지?" "......" 이봐, 미쓰리.. 그렇게 분위기 잡는다고 누가 무서워 할 줄 알아? 다 허풍이면서.... [재수 없다] 느니 하며 한 마디 막 쏘아주려는데, 이번에는 세 번째의 낯익은 생물체가 갑 자기 뒤에서 양볼을 잡아늘리는 바람에 입이 막히고 말았다. 아아... 송지훈!!! 내가 제발 뭐든지 말로 좀 하자고 몇 번이나 애기 했잖아!! 넌 말을 코로 말아 먹는 거냐? "우우우우웁!!!" "시끄러! 넌 뭐라 말할 자격도 없는 놈이야!! 손가락이 부러진 것도 아닌데, 왜 전화 한 통 할 줄 모르는거야!!" "우우우우웁!!!" "혹시 또 번호를 몰랐다거나 하는 허튼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나나 진욱이나 현우나 못돼도 각자 대여섯 번은 적어준 것 같은데...." "......" 체... 내가 수첩같은데 전화번호 빼곡히 적어서 챙겨들고 다닐 위인으로 보이냐? 지네들도 안 그러면서... 대꾸할 거리는 계속 꾸역꾸역 치밀어 올랐지만, 더 이상은 차마 목구멍 밖으로 넘어오질 않 았다.. 이 녀석들.... 무뚝뚝하고, 투덜대기만 하는... 내가 생각해도 참 재수 없는 나를.. 꽤나 걱정해 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씨.. 요샌 싸가지 없는 애들도 절라 많던데.. 내 옆에 있는 놈들은 왜 하나같이 생긴 것 답지 않게 남을 챙겨주는 거야!! 체... 정말, 아주아주아주 조금이지만, 미안하단 생각이 들 려고 하잖아!!!! "에이 썅!! 니들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 야!! 니네들 이 기집애랑 아는 사이냐?" "......" "뭐야? 뭘 또 띠껍게들 야리고 지랄인데!!!" 으음... 그 중딩 날라리 새끼는 어딜 갔나 했는데.. 바로 뒤에 있었군. 녀석도 딴에는 꽤나 당황했다가 이제야 좀 정신을 차렸는지, 우리 쪽으로 삿대질을 해가며 쌍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하긴, 나도 놀랐는데, 너라고 별 수 있겠냐.. 바로 눈앞에 있던 표적을 누가 갑자기 채갔으니.... 어휴.. 그나저나 이 상황을 또 이 녀석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가 걱정이다. 등신같이 중학생 깡패를 만나서 기집애 취급 받고 쫓겨다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 꼴이 너무 우습다. 가뜩이나 여자같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비웃어대던 놈들인데... 이번 일로 비웃음거리가 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전교적으로 소문이 쫘 악 퍼지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그냥 튀지 말고, 맞아죽던 어쨌던 덤 비고 보는건데.... 설마 지들이 날 어쩌기야 했겠어? 뭐... 녀석들 덕분에 쪽수로 밀려서 계속 도망가는 상황은 모면했지만, 더이상 폐끼치긴 싫 어서 깡패 녀석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기.집.애?" 어라?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닌데...? 갑자기 뒤쪽에서 튀어나온 목소리에 놀라서 돌아보니, 진욱이 녀석이 입꼬리를 이상하게 뒤 틀면서 웃고 있다. 세상에.... 그 싸가지 만빵에다 거만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표정은 신기 현 전매특허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군. 기현이는 그래도 '야.. 거참 싸가지 없어 보인다...' 정도 였는데.. 진욱이가 그러니까 꼭 어디서 한 가닥 하는 놈처럼 보인다. "뭐... 뭐야.. 너는..." 중학생 놈도 짐짓 놀랐는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기사, 진욱이가 어딜가도 꿀릴만한 놈은 아니지... 첫인상만 딱 봤을땐, 나도 엄청 날리는 양아친 줄 알았는데.... "방금.. 재성이 보고 기.집.애. 라고 한 거냐?" ".....저 기집애 이름이 재선이야? 퉤.... 그래, 그랬다!! 그럼 기집애 보고 기집애라 그러지!! 또 뭐라 그래?? 너 얘 깔이야? 왜 니가 흥분을 하고 지.." [퍼억......] [쿠당탕탕탕....] "기집애? 씨발 새끼야!!! 넌 말이면 단 줄 알아? 그럼... 내가 허구언날 기집애랑 농구시합해서 진단 말이야? 너 오늘 진짜 죽어볼래?" [퍽..퍽..퍽..퍽..] "우욱.. 큭.. 그...그만..." "내가 기집애 앞에서 그렇게 울고 지랄을 떨었다는 소리냐고..... 어?" [퍽..퍽..퍽..퍽..퍽..] "...쿨럭.. 아...아.. 알았어요.. 잘 못 했어요." ".......... 잘 못? 그래.... 잘 못이라.... 그럼 잘 못 한 만큼 맞아야 겠네.." [퍽..퍽..퍽..퍽...] 미..미.. 미친놈... 아까 신기현이 한 성깔하는 것 보고 적잖이 놀랐었는데, 그 때 놀란 거 다 취소다. 지금 박진욱 하는 꼬라지를 보자니, 그 정도는 차라리 애교가 아니었는지 싶다. 평상시엔 물러터진대다가 실실 쪼개기만 하던 놈이 갑자기 눈을 까뒤집으면서 사람을 패는 데, 거의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박진욱 싸움 순위가 어쨌네, 저쨌네 하는 소리를 팽팽거리고 웃으면서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것을 떠올리니, 새삼 소름이 쫘악 끼쳤다. 아차!! 내가 이렇게 멍하니 정신 빼고 있을 때가 아닌데.. "박진욱, 그만해!! 이러다가 정말 무슨 일 나겠어!!" "......" 다급한 마음에 진욱이의 팔을 다짜고짜 붙잡고 늘어지니, 녀석이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내 쪽을 돌아봤다. 일단 나서긴 했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진욱이의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너 무 당황스럽다. 이봐... 너는 그런 표정보다는 실실 웃는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제발 분위기 좀 그만 잡아!! 뭐라고 말이라도 해보란 말이야!!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기만 하는 녀석의 행동에 상당히 무안해지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당장이라도 녀석을 잡고 있는 손을 놓고 싶었지만, 내가 놓으면 당장이라도 달려 들 듯이 녀석의 근육이 단단하게 긴장을 하고 있어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아아.. 양재성.. 생각을 해라..생각을 해라.. 이런 땐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거지? "박진욱, 재성이 말 들어. 이제 그만해라." 꽤나 어색해져 있던 분위기를 현우가 침착한 어조로 깨고 들어왔다. 확실히 우리 중에서 가 장 생각있는 놈이라, 진욱이도 그 말까지는 무시 못하겠는지 주먹을 슬며시 풀었다. 어휴.... 미쓰리가 간만에 마음에 드는 짓 좀 하는군. 아니, 왜 내가 기집애 소리 들은 것 가지고 진욱이 녀석이 이렇게 흥분을 해대는 건지 모르겠다. 평상시에는 재미삼아 지가 놀 려 대더니만...... 씩씩 거리면서 숨을 거칠게 쉬는 꼴이 아무래도 아직 화가 덜 풀린 모양 이다. 행여나 또 날뛸까 싶어 진욱이 놈을 꼬옥 붙잡고 있자니, 현우녀석이 저벅저벅 깡패 녀석에게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짜식.... 냉랭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꽤나 여린 면도 있는 모양이네. 깡패녀석 맞는 것을 막아주는 것도 모자라서, 일으켜 세워 주기까지.... [퍽......] "ㅋ..으윽..." 둔탁한 충격음과 연이은 신음소리에 놀라서 돌아보니, 현우녀석 발길질에 깡패놈이 저만치 나가 떨어져 있다. 나도, 지훈이도, 하다못해 진욱이까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 보고 있으니, 냉랭하게 얼어붙을 것 같은 목소리가 그 얄상한 입매에서 흘러나왔다. "이번엔 내 차례거든..." =================================== "잘한다, 잘 해.... 어디 무시당하고 다닐데가 따로 있지, 바로 옆 중학교 애들한데 걸려서 쫓겨다니냐? 앞으로 너 얼굴은 어떻게 들고 다닐래?" "......" "어휴.. 저 또 입 꾹 다무는 것 좀 봐라. 내가 답답해서 돌아가시겠다." "야, 양재성.. 대답해봐. 잘 못 했어? 안 했어?" "......"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거지...... 부탁인데, 제발 이젠 좀 그만 떼떽 거려라.. 박진욱.. 송지훈.. 아까부터 계속 해대는 니들 잔소리에 이 형님 아주 돌아버리시겠다. 녀석들의 말을 최대한으로 무시하고는 고개를 저편으로 홱 돌리니, 이번에는 현우녀석의 무 시무시한 눈과 마주쳤다. 힉.. 방금전 현우가 깡패 녀석들을 처리하는 광경을 보아버린 터라, 저절로 시선은 땅에 질 질 끌렸다. 다행히도 우리가 우려했던(-_-; 여기서 우리는 나와 지훈이를 말한다.)유혈 사태 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대신에 현우는 쥐어터지던 녀석 뿐만 아니라 나머지 패거리들까지도 잡아다가 명찰과 학생증을 몰수해버렸다. 뭐... 그정도 가지고 얼마나 처벌이 되겠느냐고 할 사람도 있곘지만, 공교롭게도 그 깡패새 끼들이 다니는 중학교가 현우녀석의 모교였다. 깡패놈들을 꿇어 앉혀 놓고는 차갑게 웃으면 서 학생과장 선생님등의 안부를 차례로 묻는 현우의 모습은 '호러' 그 자체였다. 옆에서 지훈이가 현우가 선도부장이었다고 귀뜸해주는 바람에 분위기는 한층 살벌해 졌었 지..아마... "양재성.." "......" 뭐야, 잔소리라면 이미 실컷 들었고, 아직까지도 듣고 있다고!!! 너까지 보태자는 거냐?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빤히 주시하니, 예상외로 현우녀석의 얼굴이 풀어지면서 한숨을 푸욱 내 쉬었다. 체.... 나이도 몇 살 안 먹은 것이 무슨 한 숨이야. "너.. 나한텐 '미쓰리' 라느니 어쩌니 해놓고, 니가 기집애 취급 받고 다니는게 어딨냐?" "......" 그래서..... 지금 그걸 또 따지는 거야? 싫은 소리 들을 것을 생각하니 양미간이 절로 찌푸려 졌다. "너희도 나보고 기집애라고 놀리면서, 뭘 또 새삼스럽게 흥분이야.." 앗싸.. 양재성.. 정말 오랫만에 제대로 한 번 반박해보는구나.. 그간 기껏해야 무안주고, 무시하는게 고작이었는데.... 현우 녀석, 덩달아서 지훈이와 진욱이까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모양새를 보니, 잘 먹혀들어갔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다. "야,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냐? 우리가 놀리는거랑, 그 자식이 떠들어 댄거랑 같아?" "박진욱, 그럼 뭐가 다른데..." "어휴.. 이걸 그냥 확!!" "......확?" "......" 눈을 가늘게 뜨면서 빤히 주시하니, 진욱이 녀석이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체..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네들도 나보기 여자같다고 놀렸으니, 솔직히 이랬다 저 랬다 말할 입장은 아니다. 다르긴 뭐가 달라... 아무튼 우기기는.... 나와 진욱이가 팽팽 콧바람을 일으키면서 대치하고 있으니, 지훈이 녀석이 예의 그 여유로 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진짜로 다리 저는 사람한테는 아무도 절름발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네가 진짜 괜찮은 남잔 줄 아니까 .... 이런 걸로 마음 아파 할 놈이 아니란 거 알고 있으니까 놀렸던거야. 아까 그 녀석들 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얕보는건 절대 아니니까, 너무 기분 상해하지 말아 라."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런 무뚝뚝하고 승질 더러운 새끼가!! 기분 상해하지 말기는... 양재성 저 새끼는 속 좀 끓어봐야 돼. 사람이 감정이란게 아주 새까맣게 메말랐다니까....." "......" "어휴... 또 저 먼산 보는 것 좀 봐요. 내가 속이 터진다니까.." 감정이 메말라? 체.. 내가 언제 먼산을 찾았다고 그래!! 지금 나 지훈이 얘기에 좀 무안해져서 시선처리가 안 되어서 그런다!! 왜!! 뭐.. 좀 녀석 답지 않게 닭살 스럽긴 했지만, 빈말이라도 그 한 마디에 기분이 꽤나 좋아졌 다. '괜찮은 남자' 라는 평가... 남자 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화려한 수식어는 아니지만, 왠지 좀 쑥쓰럽기도 하고 우쭐해지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너 그동안 어디 처박혀 있었길래, 그렇게 방송으로 떠들어대고 미친듯이 찾아도 코빼기도 안 보였던 거냐? 어디가서 뭐했어?" "......" "얌마, 솔직히 흩어진건 우리 탓이 더 컸는데, 너무 그러지 마라. 재성아, 실은 진욱이가 미친개한테 걸려서 같이 끌려가는 바람에 바로 못 찾아 나섰었어. 어휴.. 정말 미친개는 미친개더라, 저 자식 귀 좀 봐." 지훈이 녀석의 말에 재빨리 진욱이 녀석의 귀를 보니, 아침에 하고 왔던 귀걸이는 어디 간 데없고, 하얀 반창고만 두껍게 말려있다. 어쩐지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었는데...... 아니... 잠깐... 그럼 귀걸이 째로 귀를 아주 잡아 뜯겼단 말이야? "뭘 그렇게 빤히 보는데? 아주 고소해 죽겠냐?" "안 아파?" "어???" "......안 아프냐고?" "....어.. 이젠 안 아파." "다행이네." 뭐... 미운 놈이긴 하지만, 일단 상처를 보니 걱정이 되었다. 어떤지 싶어 슬쩍 상처로 손을 가져가니 진욱이 녀석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뭐야... 혹시 답지 않게 쑥스러워 하는거야? "괘...괜찮다니까.. 그나저나.. 흠흠.. 이제까지 정말 어디 있었어?" 하기사, 너같이 눈물 많은 엄살대장이 아팠으면 이러고 얌전히 있겠냐... 아프다고 소리소리치며 난리도 아니겠지... 어느정도 안심을 하고 뒤로 물러서자니, 세 녀석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본 다. 허참... 사소한거 가지고 엄청 목숨거네... 이 넓은 대한민국 땅덩어리에 양재성 하나 있을데가 없었을까봐 이러는거야? "그냥.. 기현이네 만나서 같이 다녔어." "신기현??" "어." "너 걔랑 친해?" "....글쎄...." 진욱이의 얼굴이 살짝 뒤틀어졌다. 아차.. 이 새끼 기현이랑 사이가 안 좋았었지...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로 마주치면 으르렁 거리는 것이 요새 꽤 불안했었다. 뭐.... 니들끼리 싸운건데 나랑 뭔 상관이 있겠냐만은... "그럼 왜 폰으로 연락 안 했어? 기현이가 우리 중 하나 정돈 번호 알텐데.." "모른다던데.." "에에?? 선생님이랑 반장 번호는 한차례 오늘 아침에 다시 돌렸어. 그 자식이 자기 폰에 저장하는 것 까지 봤는데?" "잊었나보지." "잊긴 지가 뭘 잊어!!! 이 자식 어디갔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려는데, 진욱이 놈이 갑자기 갈갈히 뛰며 성질을 내기 시작 했다. 뭐야... 이게 화낼 일인가? 그냥 기억이 안 나서 못 알려줄 수도 있는건데...... 대충 저러다 말겠거니 하고 포효하는 진욱이 놈에게서 아주 등을 돌려버렸다. 시끄러운 건 정말 딱 질색이야. "양재성." "......" 뭐야, 미쓰리.... 넌 또 왜 분위기 잡고 부르는건데...?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물끄러미 쳐다보니 녀석이 미간이 살짝 이그러졌다. "왠만하면 핸드폰 하나 사라. " "싫어." "오늘같은 일 또 있으면 안돼잖아." "......" "그건 현우 말이 맞다. 연락 안 돼는 입장에선 아무래도 걱정하게 되니까..." "......" "그래, 이 기회에 하나 장만해 버려!!" 아아... 정말...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듣는거야.. 이 놈은... 돈이 땅파면 나오는 물건이냐? 함부로 사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 다. 거기에 또 동조하고 나서는 너희들은 또 뭐냐? 어쩌다 또 얘기가 이런 방향으로 나오는건지 원.... "하나 사라니까.." "......" "사." "......" "......" "......" "그런거 필요없어." "사." "싫어." "사." "우리집 형편엔 사고 싶어도 못 사." [............................................................................................................] 현우 녀석의 얼굴에 아차.. 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뭐.. 특별히 그렇게 당황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이야기 해두지 않으 면 정말 끝이 날 것 같지 않으니까..... 이런 얘기하면 비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능하면 거기서 당당해지기로 했다. 가난한 것보다 더 비참한게 그걸 수치로 여긴다는 거니까.... 어휴... 그나저나, 심각해들 하기는.... 현우 녀석들 뿐만 아니라, 나머지 둘도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이다. 뭐.. 집안 사정같은거야 충분히 녀석들의 입장에선 고려하지 못할 수도 있는거니까, 무심코 할 수 있는 이런 얘기들, 솔직히 내 입장에선 그렇게 불쾌하진 않다. 그러니.... 너무 그렇게들 미안해하는 표정 짓지 말라고.... 분위기 정말 어색해 지잖아... [꾸르르르르르르륵.......] "푸큭...." "킥......." "야...얌마!! 웃지들마!!" "푸하하하하!!!!" "푸..푸크큭.. 후.. 저..저..." 한참 심각한 분위기를 흐리는 이상한 굉음(?)에 모두 뒤집어지고 말았다.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진욱이 녀석이 죽일듯이 갈갈히 날뛰긴 하지만, 언제 우리가 그런 거에 주눅든 적 있었냐? 푸후훕.. 바보자식... "우..웃지말라니까!!!" "야야.. 난 무슨 천둥치는 줄 알았다. 역시 멍청이는 뱃 속 구조도 다른 사람하고 틀린가보 지?" "바보." "쿡..." "시..시끄러!!! 이..이게 다 양재성 너 때문이잖아!!! 야!! 그러는 니네는 배 안고파!! 저 새끼 찾느라 아직 점심도 못 먹었는데...." 아아.. 정말이지.... 낄낄거리고 웃는 와중에도 어딘가 가슴 한 구석이 싸아했다. 지금이 벌써 몇신데.... 점심나절은 벌써 훌쩍지나, 좀 이르게 먹는 집이라면 벌써 저녁상 차려질 시간이다. 평상시에 먹고나서 돌아서면 또 주린배를 움켜쥐고 신음하는 것들이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 제까지 굶고 있었던 건지...... 내가 한 두살 짜리 어린애냐? 오늘 헤어져서 혹 못 만났더라도, 내일 아침이면 또 얼굴 볼 것을..... 멍청한 놈들이란 말이 입가에서 뱅뱅 맴돌았지만, 차마 쏘아주질 못했다. 에휴.... 그딴걸 또 고마워하고 있다니.... 인간 양재성 갈데까지 갔군.... "자.... 이거라도 먹어." 아까, 먹지 못한 도시락... 뭐.... 도시락이래봤자, 김밥에 단무지가 전부지만..... 일단은 진욱이 녀석에게 던져줘 버렸 다. 에구.. 줘 놓고 보니까 좀 쑥스럽다. 여기 사먹을 것도 많은데.... 역시 괜한 짓 하는건 가? 놀랐다는 듯이 쳐다보는 진욱이의 시선에 무안해서 머리만 긁적거렸다. "너는 어쩌고?" "난 아까 먹었어." "크흐흐흐흐...!! 후회하기 없기다!! 야앗~~ 잘 먹겠습니다~~" "헛.. 얌마, 나도 좀 줘." "시꺼.. 아까 비웃은게 누구였지?" "그렇다고 치사하게 혼자 먹냐!! 이리 좀 내놔봐!!" "헉.. 이현우.. 넌 언제부터 먹고 있는거야..." "맛있네." "그....그런게 아니잖아!!! 안돼!! 못 줘!! 이건 재성이가 나한테만 준거란 말이야!!!! 그렇지?" "니네끼리 알아서 해. 귀찮게 하지 말고..." "것 봐." "그만 먹어!!! 내꺼란 말이야!!!" 하아아아... 도시락 하나에 달라붙어 티격태격하고 있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한 숨이 푹푹 나왔다. 정말 등치값도 못하는 것들이라니까..... 나이도 적잖은 것들이 유치하게...... 뭐..... 그래도... 심각하고 불편한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지만 말이다. 결국 이 정도가 내 수준인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좀 절망적인 느낌도 들지만.... 에이.. 아무렴 어떻겠어. 일단 편하면 됐고, 더불어 좀 행복하기 까지 하다면 그걸로 된거지 뭐.... Chapter 11. 봄소풍.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9) "야...야...얌마!! 양재성.. 빨리 안 일어나!!" "다리아파. 그냥 앉아 있을래." 아아.. 정말... 한 호들갑 한다니까... 대체 뭐에 그렇게 놀라서 수선인데...? 놀이동산 같은데서 땅바닥에 걸터 앉은 사람이 어디 나뿐이냐? 대체 뭘 본건지..... 진욱이 녀석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얌전히 땅바닥에 앉아 잘 쉬고 있는 나를 갑자기 성가시 게 괴롭히고 지랄이다. 아아... 제발 날 좀 가만히 내버려둬.. "야!! 빨리 안 일어나?" "뭔데.. 무슨 일인데 그래? 재성이가 뭐 잘 못 됐어?" "....그게..." 지훈이 녀석이 물어오자, 진욱이 녀석이 답지 않게 말문을 흐린다. 그래, 내가 더 궁금하다... 대체 뭐야...? "......흠흠... 야... 양재성 저 새끼 하고 있는 꼬라지를 봐라.." [............................................................................................................] 뭐야.. 이런 이상한 침묵은... 잠시 내 쪽을 쳐다보던 세 녀석이 갑자기 얼굴을 확 붉히더니 고개를 저쪽으로 홱 돌려버렸 다. 박진욱이나, 송지훈은 뭐.. 그렇다치더라도, 이현우까지...... 이.....거..... 굉장히 뭔가 불안한 걸? "양재성.. 너 그렇게 입고 그렇게 앉아있으면 어떻게 돼는 줄 알아?" "뭐야.. 기현이 놈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그딴 이상한 질문을 하는건데...." "시..신기현 그 새끼가!! 야!! 그 자식 어딨어!!!" "너 내가 아까도 얘기했지. 이딴 반바지 같은거 입고 다니지 말라고..." 아이씨... 대체 무슨 일인데 이 것들이 이렇게 횡설수설이야? 사람 가지고 지금 장난해? 최대한으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녀석들을 노려보니 방금 큰소리 치던 기세는 어딜 간건 지, 다들 움츠러들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이 없다. "아이씨.... 대체 뭐가 어쨌다는거야. 이러고 앉아있으면 누가 잡아가기라도 한대냐?" "그게 말이야....." 지훈이 녀석이 땅바닥만 힐깃힐깃 보면서 말끝을 흐린다. 정말. 아주. 많이. 불길한걸... 한 마디 더 막 쏘아붙이려는데, 현우 녀석이 한 마디 내뱉으면서 저만치 걸어가 버렸다. "팬티보여." [.............................................................................................................] 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마알!!!!!!!!!!!!!!! Episode 봄소풍.. 그 뒷이야기..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10) "아아악!!! 이건 말도 안돼!!! 분명히 뭔가가 잘 못 된거야!!! " "어이, 박진욱... 이미 지나간 시험인데 그냥 잊어버려!" "크아아악!! 이게 말이 되냔 말이야!!! 그래, 이현우가 1등하는건 정말 당연해.. 그 새끼는 1등하기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틀린 말 아니니까.... 송지훈이 4등한 것도.... 열은 받지만, 이해는 할 수 있어.. 그런데!!! 양재성!!! 저..저..저건 또 뭐냔 말이야!!! 이건 말도 안 돼!!! 저 퍼질러 잠만자는 새끼가 5등??? 에라이.. 드럽고 치사해서 정말 학교 안 다닌다!!!" 체.... 이 정도 간단한 훼이크에 속은 네 녀석이 바보지... 그나저나 중학교 때보단 많이 떨어졌네.... 앞으론 분발 좀 해야 겠군. Episode. 성적표. End================================================ 안녕하세요, epata 입니다. 토란방에 이렇게 후기를 남기는 것은 처음이 아닐지 싶습니다. 이런 유명한 곳에 후기까지 쓰게 되다니.... 정말 다시 한 번 귀영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어줍잖게 후기를 남기는 이유는.. 저번에 감상 주신 분들께 뭐라 한 마디 감사의 표현이라도 남겨야 겠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시일이 너무 늦은 만큼.. 일일이 답장 드리지 못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ㅠ.ㅠ 전부 제가 게으른 탓이겠지요.. 리티님, adel 님, blunight 님, 유에 님... 감상과, 격려.... 너무 감사드립니다. ^-^ 소중하게 보관하고, 때때로 꺼내보며 즐거워 하고 있답니다. 아무쪼록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며... -_-;; 불초작가 epata 이만 물러갑니다. 즐거운 나날 되세요...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2) "푸~른 하~늘 으은하수~.." "지훈아.. 이건 아닌거 같은데..?" "그래? 자... 여기서 손을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고, 박수치고... 한 사람은 손을 위로..." "씨댕.. 안 맞잖아." "아이씨.. 이거 알았는데 기억이 안 나네.." "으아아.. 푸른하늘 은하수 하고 싶다...." 제발!! 제발!! 그만 좀 하란 말이야!!! 대체 왜 그런 쓰잘데기 없는 쎄쎄쎄 같은걸 갑자기 기억해 내서는 아침부터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건지, 내 머리론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런 건 여자애들, 그것도 어린애들이 하는거 아니었어? 나잇살이나 처먹어서 덩치는 남산만한 것들이 계속 나를 사이에 둔채 손을 맞붙잡고 저지랄이라니.... 처박고 있던 고개를 빼꼼 들어보니, 부담의 수준을 넘어서서 꽤나 역겨운 광경이 눈앞에 연출 되고 있었다. 임마, 송지훈... 너는 반장이란 인간이 이래도 되는거야? 박진욱, 네 녀석 유치하고 쪼잔한건 이레적 부터 알았지만, 꼭 이렇게 새삼 드러내야 겠냐? 있는대로 귀를 틀어막고, 머리를 싸매어 보았지만, 그 빌어먹을 노래와 손바닥 부딪치는 소리는 도무지 끊길줄을 몰랐다. 주변 놈들이 말릴 줄 알았는데..... 웬걸..... 반대로 여기저기서 손 붙잡고 난리가 났다. 정말이지, 남고는 이래서 안된다니까.... 제대로 정신 박힌 놈이 없으니...... "정말 모르겠다. 잘 기억이 안나." "에이씨... 누구 이거 확실히 아는 사람 없냐?" 그래, 그나마도 제대로 못해서 빌빌대고들 있는거냐? 잠은 이미 확 달아나 버린터라, 자세를 바로 고쳐 잡고 주변 놈들을 둘러보고 있자니, 한숨이 푹푹 나왔다. 대체 이것들은 아이큐가 몇자린인거야. 이렇게 쉬운 것도 제대로 하는 새끼가 없다니..... 나야.. 뭐.... 인정하긴 싫지만, 이정돈 할 줄 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 녀석들은 못하는 거고, 나는 안 하는 거라는 것.... 하나도 안 맞는 손동작에다가 억지?후렴부분을 끼워맞춰가면 부르고 있는 지훈이 놈을 보고 있자니, 이젠 어의 없음을 넘어서서 피식피식 웃음만 나왔다. "푸른하늘 은하수.." 정확한 명칭은 "반달"이라는 이 노래.. 여자애들이 주로하긴 했지만,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암암리에 꽤나 유행했었었지... 어디까지나 초등학교 때 이야기긴 하지만 말이다.;; 아아... 이봐들.. 우린 고등학생이라고..... "어라? 일어났냐? 어휴.. 이 잠만보.... 중간고사 끝난 이후론 정말 이 자식 눈뜨고 있는 꼴을 못본다니까." "하아아암..." "어이구.. 저 하품하는 꼬라지 좀 보시게... 입이 찢어져요, 찢어져... 얌마, 니가 아저씨냐?" 체.... 떠들거나 말거나.... 무심하게 책상서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다음 시간표가 생각나지 않아, 칠판옆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데, 뒷쪽에서 갑자기 굉장히 불쾌한 인기척이 느껴진다. ... 이번엔 또 뭐야... "재성아, 넌 이거 할 줄 알아?" 흠칫.... 가능하면 태연한 척 하려 했는데.... 부정의 뜻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어느새 진욱이의 눈에서 이상한 안광같은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 잘 못 걸린 듯 싶다. 그렇게 눈물겹도록 유치찬란한 유희에 설마 나를 끼워 넣으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흐흐... 그래? 한 번 해봐라." "......" 분명히 내 기억으로 모른다는 의사표현을 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할 가치가 없는 헛소리였기 때문에 완벽하게 무시하고는 다음 시간 교과서를 챙기기 시작했다. 국어.. 국어.. 국어가 어딨더라..? 사물함에 넣어뒀나? 에이씨.. 사물함은 완전 난장판이라, 뭐 하나 찾으려면 아주 한 번 뒤엎어야 하는데..... 언제 빨았는지 까마득한 체육복을 떠올리니, 더더욱 일어나기가 귀찮아졌다. 지저분한 것도 지저분한 거지만, 냄새가 장난이 아니란 말이지..... 아아.. 귀찮아. 귀찮아. 어째서 교과서 챙겨주는 기계같은 건 없는 걸까? 양같은 거 쓰잘데기 없이 복제할 바엔 나같음 차라리 교과서 챙겨주는 기계를 만들겠다. 아니면.... 으음... 필기 대신해 주는 기계... 귀찮은 거도 귀찮은 거지만 원체 글씨를 못쓰니까 은근히 스트레스다. 체... 이 정도면 그래도 꽤 양호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긴 하지만, 알아보는 놈이 없으니...... [뒤적뒤적뒤적......] 이놈의 교과서는 또 왜 안 보이는 거야... 홧김에 안의 내용물을 전부 쏟아냈지만, 왠걸.... 어디로 증발해버린 건지 정말로 없다. 어? 어? 이럴리가 없는데...... "흐흐.. 재성아, 뭐 찾아?" "어어~~ 정말? 뭐 잊어버렸나보네.. " "......" 뭐야, 그 가식적인 어투는.... 양쪽에서 어깨로 걸쳐오는 두 녀석의 팔을 냅다 내쳐 버렸다. 새꺄... 끈끈해.... 날씨도 더워 죽겠는데, 재수없게 사내새끼들이 왜 치대고 지랄들이야!! 체.. 그 빌어먹을 푸른하늘 은하수나 마저 할 것이지... 다시 쏟아져 있는 물건들로 고개를 돌려 뒤적거리고 있자니, 진욱이와 지훈이의 이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어떻하냐.. 우리 국어 어엄청 깐깐한데..." "그러게 말이야~~ 재성이 이제 큰 일 났다." "......내가 국어책 찾는 줄 니네가 어떻게 알아..." "그을쎄에..." ".......내놔." "흐흐.. 너 하는거 봐서." "내가 뭘." "한 번만 하자." "뭘." "몰라서 물어?" "몰라." 정말이지 상종할 가치도 없는 새끼들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저따위로 지껄이는 거냐.. 최대한으로 험악한 표정으로 노려 보았지만, 쫄기는 커녕 '이번 국어 수행평가는 아마 책검사랬지' 어쩌구 하면서 오히려 큰 소리다. "짜증나게 하지 말고, 빨리 내놔." "싫은데?" "내놔." "없어." "내놔." "그러지 말고 한 번만 하자. 푸른하늘 은하수~" "미친.." "뭐... 후회해도 난 모른다. 사내놈이 째째하게, 그냥 한 번 해주면 될 것을...." "그래, 그냥 한 번 하면 되잖아." "모른댔잖아." "몰라도 해봐. 한 번만.." "싫어. 차라리 책을 안 받고 만다." 체.. 내가 째째한거냐..? 지들이야 말로 사내놈들이 유치하고 쪼잔하게 뭐하는 짓이야. 대체 사람 망가뜨리는 게 뭐 그리 재밌다고 이렇게들 엉겨붙는건지 모르겠다. 뭐.. 책 가져간 것이 좀 성질을 긁기는 하지만, 가만있음 언젠간 돌려줄텐데 괜히 성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에너지 낭비다. 사소한 거에 목숨거느니, 그냥 속 편하게 딴 반에서 빌리고 말지 뭐.... 까짓거 오늘 책에 필기한 거 검사한다그러면, 몇 점 깎여주고... 어차피 글씨가 엉망이라 좋은 점수는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녀석들에게서 떨어져 자리에 돌아왔다. 어디가서 책을 빌릴까.... "어쭈.. 양재성.. 책이 필요가 없다 이거냐? 너 학생 맞아? 이거 아주 글러먹은 놈이네.." "야.. 책없어서 공부 못하는 놈들도 세상에 수두룩 하단 말이야.." 내가 관심 없다는 투로 돌아서니, 두 녀석이 또 놀라서는 호들갑이다. 참나.. 그러는 박진욱.. 너는 왜 교과서 찢어서 종이 비행기 접는건데.... 송지훈.. 넌 책 안 갖고 오는 걸?국어한테 아주 찍힌거 아니었어? 아주.. 둘 다 입만 살아가지고는.... 못 들은 척 가만히 있으니, 저희들끼리 뭔가를 쑥덕쑥덕 거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이 저럴때면 항상 나쁜 일이 일어나곤 했던 터라 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뒷통수가 좀 따가운걸... "양재성!! 국어책 정말 필요 없는 거지? 그럼 창 밖으로 던져버린다!!!!" "야아.. 아깐 비도 왔는데, 밖으로 던져버리면 참 예술이겠다. 안 그래?" "......미친 새끼들.." "그래, 좋아. 이래도 그런 말이 나오냐?" "......!!!" 허...허..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창밖으로 국어책을 내민채 싱글싱글 웃고 있는 지훈이 녀석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얌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로 그러는게 어딨어? 이거 어째 장난이 점차 유치해지고 쪼잔해져가는 것 같다. 나같이 암울한 놈 놀려먹는게 뭐 그렇게 재밌다고 저렇게들 난리인 건지. 너무 어이가 없어 혀를 쯧쯧차며 쳐다봐 주었더니 녀석들이 꼴에 또 정색을 하면서 목청을 높였다. "야아.. 이거 팔이 너무 아픈데? 이러다가 정말 떨어뜨려 버리는건 아닌지 몰라." "헛수작 그만하고, 이리 내놔." "누구 맘대로? 흐흐.. 저 진흙탕에다 던져줄테니 이따 가서 니가 줏어오면 되겠네." "......" "빨리 결정해. 누가 아쉬운 건가. 나같으면 한 번 하고 말겠다. 사내놈이 어디서 내숭이야?" "이게 어디가 내숭인데.." "내숭이지 뭐..." "......" "아이씨.. 말 씹지 말고, 빨리 대답이나 해.. 던져? 아님 말아?" "......" "국어책의 안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이거냐? 뭐.. 그럼 할 수 없네. 일단은 던져 버리는 수..." "잠깐.." 국어책을 잡고 있는 지훈의 놈의 손가락 개수가 2개로 줄어들자, 나도 모르게 저지하는 말이 튀어나가고 말았다. 이래가지고서는 정말 발뺌도 못하잖아..... 아이씨.. 모르겠다. 어차피 요새들어 막나가는 인생, 까짓거 한 번 장단에 맞춰주지 뭐... "알았어. 하면 될꺼 아니야." "크흐흐.. 진작에 그렇게 나올 것이지." "......" 진욱이놈..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입이 헤 벌어져서 난리다. 뭐.. 내가 종종 무시하고, 무안 줘왔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렇게 치사하게까지 나올줄이야. 차라리 좀 수준있는 걸로 사람을 괴롭히던가..... 이건 대체..... "자 손 이리 줘봐." "......" "야.. 손 한 번 이쁘다." "죽고 싶냐?" "알았어.. 쳇.. 그렇다고 노려볼 것 까지는 없잖아." "됐어. 그럼 다 때려치자고.." "헤에... 그게 니 맘대로 되려나? 어이 지훈아? 국어책은 아직 잘 있냐?" "글쎄.. 아직까지는 잘 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라는데?" "......하던거나 빨리 마저해." "것봐. 어차피 하게 될 거면서 앙탈부리기는... 자아.. 쎄쎄쎄.. 푸...른..하아늘...으은 하수.. 하얀.. 얌마! 왜 안해?" "......" 아아.. 정말.. 이 상황에선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거야? 새롭게 진욱이 놈에 의해서 재구성되고 있는 손동작을 보고 있자니, 착찹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정상적으로 이 동작을 해낸다는 것도 그다지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못하고 있 는 상황이 참 어이가 없다. 아까 서투를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마주하고 보니 너무 황당 해서 말이 다 안 나온다. 세상에... 이게 뭐 어려운 거라고 이렇게까지 지어내서 할 수 있는거지? 순 지멋대로인 녀석의 행동에 한숨이 푹푹 새어 나왔다. "왜? 왜 안하냐니까?" "......넌 그게 맞는 거라고 혹시 생각하고 있는거냐?" "그럼 틀려?" "......" "그래? 그럼 새로 좀 가르쳐 줘." "....................................." "지훈아!!" "알았어!! 가르쳐주면 될 거 아니야!!!" "체.. 진작에 그럴 것이지. " "...... 먼저 박수 한 번 치고..." "이렇게?" "....쓸데 없는거 되묻지 말고 따라하기나 해. 젠장.. 내가 대체 이게 무슨 짓을 하는건지..." "그담은.." "이렇게 꺾어서 마주치고..... 아이썅.. 반대 손을 해야지!!!" "아차.." "......" 예전 부터 항상 생각해왔던 거지만, 진욱이 이 놈 귀는 모양으로만 달려있는 것이 틀림 없다. 그러지 않고 서야 말길을 이렇게 못 알아들을 수가 있는 거냐고!!! 한 소절을 겨우 겨우 넘기고 나니, 또 이번 에는 위 아래가 헷갈린다고 난리다. 대체 어린 시절을 뭐하면서 보냈길래,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건지.... 원래 말 하는 것 자체도 그렇게 즐기지 않는데다가 뭔가 설명하거나, 가르쳐주는데는 영 젬병인 나로 써는 상당히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푸......른.. 하.늘... 으은... 하.. " "뭣들 하냐?" 뭔가 어깨에 얹어진다 싶어 뒤돌아보니, 현우 녀석이다. 지금같은 상황에선 별로 도움 될 녀석같이는 보이지 않았기에 그냥 고개를 돌려 무시해 버렸다. 진욱이 놈이 너무 허무하게, 또 지긋지긋하게 틀리니까 이젠 내가 다 헷갈릴려고 한다. "...여기서, 이렇게 하고.." "그래.. 으...은하..." "뭐하냐니까.." 미쓰리.. 그렇게 인상 구겨봐야 하나도 안 무섭다고.. 정말 바빠 죽겠는데 방해하지 좀 말란 말이야.. 한 차례 더 무시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니 뒤에서 엄청나게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 째려봐라, 째려봐. 뭐.. 이현우 하면 처음엔 좀 무섭기도 했었는데... 두 달여 보내고 나니까, 세상에 이런 쪼잔하고 자잘한 놈이 또 있을까 싶다. 생긴 걸로만 봐선, 지 맘에 안 드는 것들은 전부 끔찍하게 조져놓을 것 같지만... 의외로 그 보복이란 수단은 유치하기 짝이없다. 언젠가 진욱이 녀석이 실수로 현우 문제집을 찢어먹었을 때도.. 저렇게 무시무시한 얼굴로 진욱이 녀석을 잔뜩 겁 줘놓고는 기껏해서 한 다는 일이 지우개랑 숙제 안 빌려주기, 진욱이 핸드폰 몰래 가져다가 문자 몇 십개씩 보내고 통화하기 정도였다면 더 얘기할 필요도 없는거지 뭐... 요새들어 느끼는 건데.... 학교짱이라느니, 엄청 날리는 놈이라느니, 장난 아니게 쌀쌀맞고 싸가지 없는 놈이느니, 돈이 엄청많은 집 애라서 수준이 다르다느니 하는 식으로 알려진 놈들도 막상 알고보면 별거 아닌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니, 별거 아니라기보단 소문에 비해 다들 너무 일상적으로 살고, 행동한다는 거다. 뭐.. 좀 미약한 예긴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현우만해도 그렇고.... 덧붙여 보자면 박진욱도 그렇고... 이 자식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려보니 지금 모습과의 엄청난 괴리감이 느껴진다. 쿨럭.. 그땐 나름대로 좀 쫄기도 했었는데..... 하긴, 전교에서 싸움 잘해 짱먹었다고 쳐도.... 걔가 뭐 하루 종일 싸움만 하냐? 급식 밥 맛없다고 투정도 부릴테고, 중간고사 때문에 신경질도 낼테고, 화장실도 갈테고, 나름대로 친구라는 녀석들과 수다도 떨테고... 결국 좀 눈에 뜨이고 안 뜨이고의 차이 뿐이지 기본적인 틀 자체는 사람들 모두가 비슷비슷한 것 같다. 특히나 우리 나이 또래라면 뭐 별 다르겠어? "야!! 양재성, 뭘 그렇게 멍하니 있는거야?" "......아." "빨리 좀 가르쳐 줘.. 나 옛날 부터 이거 디게 해보고 싶었단 말이야." "....... " "어휴.. 또 저 무시하는 거 봐요. 내가 정말 미친다니까... 아.. 맞다.. 현우 넌 이거 할 줄 알아?" "뭐." "에에? 또 그새 삐진 거야? 실망인걸...." "안 삐졌어. 뭔데 그래?" "푸른 하늘 은하수~~" 박진욱... 물어볼 걸 물어봐라. 저 자식한테 그런게 가당키나하냐? 비웃는 다거나 최소한 못되어도 그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기대했던 나에게 다음에 이어진 현우의 행동은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었다. "어. 할줄 알아." "그래?? 그래?? 그럼 한 번 시범 좀 보여봐.." 얌마! 내가 왜 이현우 같은 놈이랑 이런 시시껄렁한 짓을 해야하는 건데!!!! 몇 초만에 이상하게 뒤틀어진 상황에 거부반응을 보이려고 했지만, 어느새 내 손은 현우 녀석의 손에 꽈악 쥐어있는 상태였다. 아아.. 이거 정말 피곤한 놈들이라니까.... 이현우.. 정말 이 짓거리에 동참할 생각이냐? "니가 위에 할꺼야?" "......어." 정말 할 생각인 모양이군... 어휴.. 이렇게 된 바에야 정말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별거 아닌 걸로 빠득빠득 우기면서 고집부리기로 치면, 이현우를 따라올 자가 없으니까...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새에 어느새 손은 리듬을 타고 살며시 흔들리고 있었다. [....탁............탁...........탁...........탁... .............] "뭐...뭐야!! 그만.. 왜 둘 다 노래는 안하는거야!!" "당연히 양재성이 부르는거 아니었어?" "내가 왜?" "그럼 내가 하냐?" "니가 못 할 건 또 뭔데.." "난 이 노래 몰라." "거짓말." "내가 모른다는데 어쩔꺼야? 그럼 너 혼자 계속 진욱이 붙잡고 해볼래? 나야 뭐 그냥 안한다고 하면 그만 이니까.." "......" "자, 그럼 한다." "체.. 안 해. " "진욱아, 재성이가 노래를 안한다는데..?" "그래? 지훈아!! 국어책은 아직 잘 있냐?" "아.직.은!!" "자.. 어떻게 할래?" 어....어쩐지 지금 상황이 굉장히 작위적으로 느껴진다면 착각일까? 평상시엔 지들끼리 안 맞아서 투닥거리면서도 이상하게 이런 일에만은 의견이 딱딱 맞아 떨어진다. 저 녀석들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느낌이 들긴하지만, 어쩌겠어... 평안하고 조용한 학교 생활을 위해서 내가 참아야지.. 정말, 내 성질이 조금만 더 더러웠어도 가만 안 두는 건데.. "그래.. 한다 해." "진작에 그럴 것이지.." 다시 일정한 리듬을 타고 흔들리는 손... 아아.. 정말이지 내가 어쩌다 이 지경에 까지 이른거지? 뭐.. 짧고 유치한 동요라지만, 역시 노래는 자신 없다. 나랑은 인연이 없는 분야라.... 휴우... 심호흡 한 번 하고...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돗 배도 아니 달고, 삿배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하핫.. 끝났다. 마지막으로 손바닥까지 따악 마주치고는 후련한 기분으로 손을 탁탁 터는데..... 뭔가 분위기가 좀 이상한 것 같다. 점심시간인데 왜 이렇게 교실이 조용한 거지? 어디 학생주임이라도 뜬건가? 혹시 교감? 의아한 마음에 휘휘 둘러봤지만, 선생이라곤 그림자도 안 보인다. 그... 근데... 그건 둘째 치더라도..... 느낌 탓인가? 애들이 왜 다 내 쪽을 보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 거기다가... 진욱이랑 현우 녀석 표정은 또 왜 이래? .... 내 목소리가 그렇게 듣기 이상했나....? 다들 얼빠진 표정들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어지간한 나지만 상황이 이리되고 보니 좀 쪽 팔리기도 하고 무안하다. 그러길래 애초에 왜 나같은 놈한테 그딴걸 시켜가지고는 니들은 니들대로 귀를 혹사시키고, 나는 나대로 이미지 구기고.... 대체 남는게 뭐가 있냔 말이다!! 좀 열받는 것 같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해서 머뭇머뭇 있는 지훈이 녀석에게서 책만 냉큼 빼앗아다가 자리로 와버렸다. 에이씨.. 신경질 나는데 잠이나 한 숨 더 자야.... [띠리리리리링...!!!] 제길... 쓰잘데기 없는 걸로 또 시간 다 잡아먹었군. 우리 국어는 무섭진 않아도 깐깐해서 자다가 걸리면 피곤해지는데..... 아이들이 자리에 앉는 소리로 교실이 잠시 떠다갈 듯 왁자해졌다가 다시 고요해졌다. 언제 선생님이 들어오나 싶어 멍하니 턱을 괴고 있는데, 옆에서 현우 놈이 뭔가가 생각난 모양인지 서 랍을 뒤적거리다가 뭔가 둔탁한 물체를 내 앞에 떡하니 내밀어보인다. [탁..] "뭐야?" "저번에 빌려갔었던 니 국어책이야. 잘썼어." .................................................. 내.....국어책? 현우 놈이 헛소리를 하나 싶어 내 앞으로 던져진 책을 살펴보니 '양재성' 이라고 껍데기에 대문짝 만하게 써있는 게, 내 것이 틀림없다. 그...그래 그러고 보니 그때 분명히 현우를 빌려줬었는데.... 그럼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국어책은 뭐야???!! [초절정 섹쉬남 박진욱 꺼!!! 뽀리면 죽는다!!!] 아아악!!!! 내가 이 자식들을 그냥!!!!! Chapter 12. 푸른하늘 은하수.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11) 탕탕탕탕탕....] "얌마... 니들 안 일어나? 이 것들이 건방지게 어디 수업시간에 졸고들 앉아있어. 빨리 기지개라도 켜면서 정신 차려." "선생님... 너무 졸려요!!" "그만해요!!" "아니.... 이 것들이...... 어쭈.. 이 놈봐라 그래도 계속 자네." ".......선생님 저희 4교시 체육한데다가 밥 먹고 와서 너무 졸려 죽겠어요..." "맞아요!!!!" ".....어휴.. 정말, 이 것들을..... 안돼겠다. 이 반에서 제일 노래 잘 하는 사람 누구냐? 애들 잠 좀 깨게 노래나 한 번 불러봐라." "와아아아!!!!!!" "자자.. 딴 반 수업하니까 조용히들 하고.... 빨리 나와, 안 그러면 수업한다." "..................." "뭐야.. 니네 반은 자리를 깔아줘도 못 노는 거냐? 그럼 됐어. 그냥 수업.." "선생님. 양재성이요!!" "우오오오오오!!!!!!" "자... 다들 조용..조용.. 양재성이 누구 였지? 아무튼 빨리 나와라." "선생님...." "뭐.. 부반장.. 왜?" "재성이 지금 세상 모르고 자는데요." [................................................. ................................................... ........] 어느 나른하고 무더운 5교시 수업시간.... 1학년 4반 남학생들은 다시 묵묵히 교과서를 펴들었다. Episode. 국어 수업================================================ ====== 놀라셨나요? -_-; 나름대로는 놀래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간의 공백기간이 너무 길었던 터라 11편을 올리면??참 걱정이 많았었는데... 제 글을 조금이라도 즐겨주시는 분... 그러니까 이 페이지, 이 줄까지 읽어주시는 여러분들이 계셔서 ^-^ 정말 기뻤답니다. (ㅠ.ㅠ 아니 셨다면 어쩌나....) 휴우... 지난번에 10편 감상들에 리플 단다고 큰소리 뻥뻥쳤었는데... 2개월의 공백은 뛰어넘기 너무 힘든 것이었습니다.-_-;;; 11편을 올린뒤라 賈?뒷북치는 이야기만 하게 되는터라, 결국은 최근에 감상주신 분들께 밖에 리플을 달지 못했답니다. ㅠ.ㅠ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허엇.. 후기가 또 두서없이 주절주절 길어지기만 했네요. 그저, 여기까지 읽어주신 것에 감사드리면서.. ^-^ 이만 물러가렵니다. 즐거운 나날 되세요~~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3) "하악..하악..하악......" 젠장할!!!! 또 지각이다...!! 이 놈의 빌어먹을 학교는 웬 놈의 등교시간이 이리도 빠른 건지.... 8시 까지 등교하는 곳도 있던데, 안타깝게도 우리 학교는 거기서 40여분 당겨진 7시 20분이 데드라인이다. 어휴... 나같이 잠 많은 놈들은 1년 내내 벌점카드를 달고 살아야 하는 건가? 이젠 선도부장도 내 면상을 익힌 모양인지, 허겁지겁 뛰어들어가면 반 번호도 묻지 않고 뭔가를 끄적여 가는 터라 한층 더 입맛이 썼다. 내신이 중요하다 어쩐다하는 이런 시점에서 나란들 허구언날 벌점먹는게 달가울리는 없다. 하지만, 어쩌겠나.. 일찍 자도 도저히 일찍 일어나질 못하겠는걸.... 전에도 얘기 했지만, 우리집 취침시간은 9시다. 그나마 요샌 많이 개기고 개겨서 10시. 그 때부터 꼬박 자고 일어나도 항상 피곤은 풀릴 줄을 모른다. 중학교때는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이 빌빌거리고 돌아다녔어도 생전 힘든 줄을 몰랐는데, 고등학교 올라온 뒤로는 하루종일 하는 일 없이 수업만 들어도 몸이 물먹은 솜마냥 축축 늘어지는 느낌이다. 그저께 피곤했던 것, 어저께 피곤 했던 것.. 차츰 차츰 몸에 쌓여만 가는 것 갼? 좀 꺼림직하기도 하고... 뭐... 결국은 그 스트레스라는 놈이 말썽이라는 건가...? 왜 학교는 꼭 그렇게 이른 시간에 시작하는 건지 원.... 가끔가다 보여주는 건전비디오에 나오는 다른 나라애들보면 9시나 10시 쯤 널널하게 아침 운동에 예습까지 하고 학교 가던데...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밥 먹을 시간조차 제대로 없다. 대부분의, 아니 거의 모든 아이들이 너무도 7시 심지어는 6시를 조금 넘긴 시간부터 잠이 가득한 눈을 비비고, 집을 나서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간다. 사실, 그래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새벽부터 정신나가서 공부한게 과연 얼마나 머릿 속에 제대로 저장 될까? 에휴.. 이게 대체 무슨 잡상이냐... 내까짓게 등교시간에 의문을 품고, 저항의식같은거 가져봤자 게으른 놈이란 소리 밖에 더 듣겠어? 일단은 지금 눈앞에 닥친 상황부터 처리해야지.... 과연 오늘은 저 교문이란 놈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일어난지 고작해야 20여분 된 터라, 눈 앞은 어질 어질.. 이거 꼭 꿈 속 같은걸... [콰당탕탕........... 탁.......] "아야야......... 하아..하아.." 아이씨.. 정말 누구냐.. 앞 좀 잘 보고 다니지.... 정신 없이 달리던 내 탓이 필시 더 컸을 테지만, 바쁜 상황이다 보니 일단 짜증스러운 생각부터 들었다. 상대방이 아무래도 한 학년 위인 것 같아 까닥 인사만 하고 가려는데 바닥에 이것 저 것 불그레 한 것들이 널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 옆에 커다란 박스도 같이 구르는 걸로 보아, 부딫히면서 상대방이 쏟아뜨린 모양이다. 무엇인가 싶어 하나 주워 보니........ 어라? 이건.... 꽃이잖아? 투명한 아스테이지에 싸인 예쁜 카네이션 한 송이.... 그....럼 바닥에 잔뜩 떨어진 것들도..... "마음에 드냐?" "네!!! 넷???" 아아.. 또 멍하니 정신을 놓았던 모양이다. 상대의 물음에 또 바보같이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아차... 그러고 보니 이게 다 나 때문에 쏟아진 건데.... 다른 것도 아니고 쏟아진게 꽃이다 보니 어지간한 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뭐.. 비닐로 포장되어있던터라 망가진 것은 없어 보이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빨리 주워드릴께요." "아..아니 괜찮아. 내가 할께." "아닙니다." 다행이다. 화난 것 같지는 않아서... 땅에 떨어진 것을 빨리 주으면서 이름표 색깔을 확인해보니 2학년 선배임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무슨 꽃을 이렇게 잔뜩 들고 등교하는 거지? 그것도 카네이션을.... 오늘이 스승의 날도 아닌.......... 아앗... 그러고 보니 15일...... 정말 스승의 날인가??? "어어.. 빨리도 주웠네. 자, 여기다 담아." "......" "어휴.. 내가 이거 아침부터 무슨 짓인지... 이런거 어차피 형식적인건데 말이야.. 안 그래?" "예? 예..." ".......영차... 다 됐다. 고마워. 이젠 가봐.. 바쁘게 뛰어가던데 이거 내가 미안해지는걸?" "......" 제길... 그러고 보니... 또 시간을 지체해 버렸군. 아무래도 오늘도 그 선도부장 놈 인상쓰는 꼬라지를 봐야 할 것 같다. 체... 암만 이젠 면상을 익혔다지만, 형식상으로라도 이름을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야? 항상 기분나쁘게 쓱 훑어보고 뭔가를 끄적거리는 것이 영 맘에 들지 않던 터라 기분이 불쾌해졌다. 에이.. 모르겠다. 어차피 늦은거....... "어? 빨리 안 가봐도 되는거야? 열심히 뛰던데...." "이미 지각이라..." "아아... 이거 정말 미안한데... 나 때문에.." "아닙니다. 제가 보지도 않고 뛴 탓이죠."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아까 그 꽃 쏟아뜨린 형씨가 쫓아와서 옆에 붙어섰다. 저렇게 꽃보따리를 한 아름 들고가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학생회 임원쯤 되는 성 싶다. 으음... 지각 걱정 안 하는 걸로 봐선 꽤나 그럴 듯한 직책일지도..... 뭐..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알지도 못하는 선배.. 그나저나 정말 시간 한 번 빨리간다.. 입학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스승의 날? 아무래도 남학교다 보니 개개인이 뭔가를 준비하는 것이야 드물겠지만, 치맛바람만큼은 역시 피하기 어려울 성 싶다. 오늘 교무실은 완전 꽃천지겠군..... 그러고 보니.... 난 생전 이런 날 감사한다고 선생님께 꽃 한송이 건네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전혀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아이들이 가져오는 선물이 너무 화려하고 보기 좋아서 아마 내놓지도 못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땐 그게 또 꽤나 가슴에 오래 남았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좀 우습다.... 그땐 왜 몰랐었을까? 스승의 날 선물은 아이들이 아니라 엄마들이 준비한다는 것을.... "원래 이렇게 말 없나봐?" "예?" "어이구.. 그 '예?' 소리 좀 그만 할 수 없어? 설마 한국말 못 알아듣는건 아니겠지?" "죄송합니다." "맙소사.. 넌 할 줄 아는 말이 '예' 랑 '죄송합니다' 뿐이냐? 좀 다른 말도 해보라고.." "......" 할 말이 없어. 상대방이 선배만 아니라면 분명히 저렇게 쏘아줬을 테지만, 다행이도 나에겐 사회생활을 평안하게 해나가자는 신조가 있었기 때문에 그냥 입을 다무는 것으로 끝을 냈다. 가끔씩 이런 식으로 말하기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필요하면 어련히 내가 알아서 말 할텐데... 어색하니까 아무 말이나 아무 말이나 해보라는 억지는 또 뭔지 모르겠다. 아무 말 없는 것이 대체 어디가 어색하다는 건지.... 할 말도 없는데 아무 말이나 하는게 훨씬 나한테는 어색하고 불편하다. 왜 다들 조용한 걸 그렇게 못 견뎌 하는 걸까? "이봐.. 화난거야? 갑자기 그렇게 분위기 잡으면 내가 미안해지잖아." "......화 안 났는데요." "으음... 혹시 주변에서 목석같다는 소리 많이 안 들어?..." "...........가끔요.." ".....그래, 내가 졌다. 두 마디 이상은 절대 안 하는구나. " 선배는 그 이후로 입을 다물기는 했지만, 역시나 계속 껄끄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거리는 등 잠시를 못 견뎌 댔다. 이 사람 정서 불안이 아닌가 모르겠군.... 뭐.. 그래도 선배인데다가 초면인데.... 내가 좀 심했나? 하지만, 이 이상은 정말 해 줄 말이 없다. 원래 성격이 이따위로 생겨먹었는데, 나란들 어쩌겠는가? 정말이지 아침부터 골치 아프게 이런 인간을 만나서는..... 에이구야.. 이제사 교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인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은 잘 하면 학생부에 끌려갈지도 모르겠는걸.. 상습 지각범으로.. 뭐.. 진욱이 놈이야 별의 별 사소한 걸로 다 끌려다니는 터라 학생부따위는 우습게 보는 듯 했지만, 나같은 소시민에게 학생부란 좀 멀리 하고싶은 장소일 따름이다. 왠지 평범하게 잘 살다가도 거기 한 번 갔다오면 내가 마치 무슨 반사회적 인물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굉장히 인생에 회의적이 된다. 애써 태연한 척 하긴 했지만 속으로 꽤 긴장된 마음으로 교문을 들어서는데, 아니나 다를까.. 선도부 그... 부장인가 뭣인가 하는 녀석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묵묵히 펜을 꺼내들었다. 약간은 불쾌한 느낌으로 그 앞을 지나치고 있는데.... "아.. 얘는 나랑 같이 오늘 꽃 심부름 하느라 늦은 거니까, 지각 명단에서 빼라." "개인적인 친분을 이런데 남용하는 건가? 안 돼." "아냐! 오늘 아침에 처음 만났어. 그렇지?" "......" 아아... 정말이지!!! 그냥 편히 살게 좀 내버려 두란 말이야!!!! 꽃 상자나 잘 운반할 것이지, 왜 갑자기 또 이 선배는 끼어드는 건지.... 선도부장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너무도 따갑다. 별로 대답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이런 이상한 선배와 아는 사이라는 오해를 받는 것 역시 절대 사절이었기에 일단은 고개를 몇 번 끄덕여보였다. 그러자 선도부장이 재미있다는 듯이 입매를 살짝 올려보이더니, 꽤나 위압감 있는 목소리로 물어오기 시작한다. "정말 꽃 심부름 도와준거야?" "아니오." "그럼?" "......" 이.....거 일일이 다 설명을 해야 하는건가? 적당히 조리있게 상황 설명하는 것 따윈 정말 자신이 없었기에 망설여졌다. 그러니까.. 침착하게... 그냥.. 부딫혀서 넘어진 게 다라고 이야기 하면 되겠지? 그치만, 내가 그렇게 말하면 도와주려 했던 선배가 완전히 바보 되는건데.... 그 도움이란 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런 귀찮게 일만 벌이긴 했지만, 그래도 매정하게 뿌리치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다. 그럴 듯하게 말하는 능력같은게 왜 나한테는 없는건지.... "지금 선배 말을 무시하는 거냐?" "아니오." "그럼?"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 "그냥 지각에 이름 올리면 안 될까요? 선배님, 도와 주시려고 한 건 감사한데.. 괜찮습니다. " 내가 별안간 꾸벅 인사를 하니, 멍하니 옆에 서 있던 선배가 상자를 들고 당황해선 따라서 고개 숙여 인사를 받았다. 으음.. 역시 정신 없는 사람이군.. "그럼 이만 가봐도 됩니까?" "어." 화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싱겁게 허락이 떨어졌다. 나름대론 한 숨 돌리고 발걸음을 돌리는데, 갑자기 손목을 크게 누군가가 부여잡는 바람에 몸이 한쪽으로 기우뚱 하고 말았다. "잠깐만..." "......"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다행히 선도부장은 아니고 그 꽃 상자 들고 있던 선배다. 대체 이번엔 또 무슨 용건이지? 놀란 마음 반, 귀찮은 마음 반으로 그냥 멍 하니 넋을 놓고 있는데, 귀 근처의 머리카락이 살짝 쓸리는 느낌이 난다. "보니까 아무 것도 오늘 준비 안 한 모양인데... 좋아하는 선생님 가져다 드려.." 에?? 그게 무슨 말? 뭐라고 내가 반문하기도 전에 선배는 선도부장과 투닥 거리면서 저만치 가 버렸다. 뭐... 둘이 친구 사이인 모양이니, 별 탈은 없겠군. 그 사람 참 헛소리도 별나게 하는 구나 싶어 선배의 손이 닿았던 귓가를 쓸어보니 뭔가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이.....이건!!! 미...미친... 누가 꽃같은 거 필요 하댔냐.... 줄려면 곱게나 줄 것이지..... 왜 기집애마냥 귀에다 꽂아주는건데...... Chapter 13. 스승의 날 -(1) ============================================= "어라? 왠 꽃이야?" "누가 줬어." "누가?" "선배." "어느 선배? 요리부?" "아니, 모르는 선배." 진욱이 녀석의 말에 대충 대답을 해주면서 새로 풍선을 꺼내 불었다. 아아.. 정말 이것도 못 할 노릇이다. 입안이 얼얼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젠 배까지 땡기는 것같은 걸. 날이 아무래도 날이다 보니, 오늘 자율학습은 완전히 개판이다. 반마다 이 기회에 한 번 진탕 놀아보자... 라는 피켓 하에 착착 속보이는 스승의 날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만큼은 선생님들도 왠만한 소란은 눈감아 주는 터라, 학교 전체가 들 뜬 분위기 였다. 그래, 뭐 이런거 준비하고 시끌 벅적 한 것도 다 이해 할 수 있기는 한데.... 대체 왜 나까지 이 짓을 하고 앉아있어야 하는 건지 원... 아침에 눈 마주치자 마자, 풍선 한 보따리를 할당해주고 종적을 감춘 지훈이 놈이 그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절대 이런 거 불지 않겠다고 악을 쓰긴 했지만...... 결국은 뭐 언제 내맘대로 되는 적 있었냐? 주변에 발 디딜 틈 없이 널린 색색의 풍선을 보고 있자니, 즐거운 마음보다도 그저 착찹할 따름이었다. 에구... 주변 놈들이 열심히 부는 걸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5개나 남아있다. 이 놈의 송지훈 자식!! 오기만 해봐라!! "양재성!!! 잠깐 좀 이리 나와봐.." "......" 쳇.. 양반은 못 되는군.. 괜히 심통이 더 나서 지훈이 놈을 무시한채 애꿎은 풍선만 꾸역꾸역 엄청난 크기로 불리고 있으니, 뭔가가 뒷통수를 세게 강타했다. [푸루푸루루푸루루......] (-_-;; 풍선 바람빠지는 소리..) "아야.. 또 뭐야?" "사람이 부르면 쳐다라도 봐라. 허구언날 나 몰라라 하고 있냐?" "......" 쳐다는 봤다. 잠깐이었지만.. 쳇... 네 놈 때문에 기 껏 커다랗게 불어 놨던 풍선만 덕분에 다 날렸잖아. 딴에는 기록 세운다고 열심히 불었던 건데, 새삼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해할 거면 시키질 말던가.. "빨리 따라나와. 교무실 가자." ".....내가 왜?" "담임이 일 시킨다고 애들 몇 명 좀 데리고 오래." "......그럼 애들 몇 명 데리고 빨리 가봐." "에이씨.. 빨리 안 따라와?" "꼭 내가 가야 하는 이유 한 가지만 대봐." "담임이 넌 꼭 데려오래." "......" 크아아악.... 제길..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어버렸다. 나는 아무 소리도 못들었어. 안 들린다. 안 들린다. 나를 지명해서는 꼭 데려오란다고? 그럼 더더욱 갈 수 없지... 암.. 그렇고 말고... 지난 번에도 담임 호출이라고 해서 꽤나 긴장하고 갔었더니, 어디서 구질구질한 머그잔을 떡하니 내밀면서 한다는 소리가 '커피 좀 타다 줄래?' 였다. 내가 무슨 다방 레지냐? 갑자기 불러서는 커피 심부름 시키게..... 그리고, 타다 주면 그냥 곱게 처먹을 것이지, 왜 또 옆자리의 국어한테는 또 자랑을 하냔 말이다!! 사내놈이 타다주는 커피가 뭐가 맛있어 보인다고, 그걸 보면서 또 부럽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면서 기어이 나한테 한 번 더 타오게 만든 그 국어 선생까지 다시 생각하고 나니 새삼 이가 버득버득 갈렸다. 그 이후론 교무실의 꼬다리만 봐도 어딘지 오한이 스미는 것이 영 찜찜했었는데.... 내가 미쳤냐? 또 그 놈의 담임이 무슨 짓을 시킬 줄 알고 거길 가냔 말이야!! 재촉하는 지훈이 녀석을 뒤로한채 그대로 책상에 고개를 묻어버렸다. "양재성!! 야!! 안 일어나!!" "......나 죽었어." "아이씨.. 진짜, 빨리 일어낫!!!" "16일 경쯤 깨어날 예정이니까 그 때 보자구.." ".....이게 진짜..." "......" "야!! 지금 바빠 죽겠는데, 계속 시간 끌래?" "......" "좋아, 그런 식으로 나오면 할 수 없지.." 체.... 할 수 없기는 지가 그래봤자지 뭐.... 안 가겠다는데, 설마 억지로 끌고 가기야 하겠..... [끼끼익....... ] "끄아아아!! 야! 이게 무슨 짓이야?" "빨리 가자.." "싫어!!" "현우야, 빨리 갔다 올 테니까 그때까지 니가 좀 알아서 준비 해줘." "어." "야!! 이현우!! 이 자식 좀 말려봐!!" "아무쪼록 몸 조심해." 뭐.....뭐야!! 그런 불길한 소리는!! 순간, 당황해서 망연히 현우놈을 쳐다보고 있자니, 잠깐이었지만 그 얄상한 볼따구니에 보조개가 폭 패였다. 아아악!! 정말 불길해!! 불길해!! 저 자식이 웃었단 말이야!! ========================================= "어머... 재성아.. 고마워. 수고한다..." ".............." "오늘은 친구들이 안 보이네.. 맨날 붙어다니더니..." "........." "에이~ 쑥쓰러워 하는거야?... 아무튼 잘 먹을께.." 빠득빠득 갈리는 이빨을 억지로 앙 다물면서 꾸벅 인사만 하곤 재빨리 1학년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담임이 이 번에 떠넘긴 임무는... "교무실 떡 돌리기..." 커피 심부름보다야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이 선생님 저 선생님 만나고 다니는 것이 영 달갑지만은 않았다. 으음.. 왠지 다들 나를 꼭 음식점 점원 보듯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처음 보는 몇몇 젊은 여선생님들은 붙잡아 놓고, 과자 좀 먹고 가라느니, 음료수가 있다느니 하면서 둘러싸곤 놓아주질 않는 바람에 한 참을 애 먹었다. 다행히 마침 지나가던 국어가 구제해 주 긴 했지만 말이다. 에휴.. 좀 피곤하긴 하지만, 이제 이 짓도 3학년 교무실 한 군데만 돌면 끝이다. 뭐... 어느 학교나 그렇겠지만, 3학년이 담당인 선생님들은 약간 특.수. 한 사람들이 많은 터라 좀 더 긴장이 되었다. 에휴.. 미친개도 3학년 담당이라 여기 교무실 쓰는데... 꼬투리 안 잡히게 조심 해야지.. [똑..똑..] [드르륵....] "저기 떡 가지고 왔는데요.." "어, 그래? 1학년 이냐?" "네." "그래, 수고해라." 어이구야... 여기 정말 예술인데? 저 정도 크기 꽃 바구니면 나도 꾸겨져서 들어가겠는걸? 장미, 백합, 튤립, 프리지아, 카네이션은 기본이고, 어디서 내가 듣도 보도 못한 꽃들이 만발이다... 확실히 요새 '담임 추천' 이니 '교과 담당 추천' 이니 말들이 많더니..... 3 학년 교무실은 유난히 더 꽃 바구니가 화려하고 개수도 배로 많은 것 같다. 뭐... 나야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이지만, 얼마전 얼핏 들은 바로는 엄마들끼리도 무슨 모임이 있어서 서로 정보도 주고 받고, 이런 날에도 꽃 같은거 같이 준비하고들 한다던데..... 자기 자식들 잘 가르쳐 준 것에 학부모가 충분히 보답할 수 있는거고, 능력이 충분히 된다면야 저런 몇 십만원짜리 꽃바구니도 보낼 수 있는 거라고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막상 이 렇게 보고 있자니 입맛이 썼다. 특별히 뇌물입네 어쨌네 저쨌네 거창하게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집은 이럴 능력 안 되는 거니까 저절로 뒤틀려서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집에 애라고는 나 하나 달랑인데다가, 학교 이야기는 내가 집에서 입도 뻥끗 안 하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필시 스승의 날 학부모들이 이렇게 찾아오고 극성이란 사실조차도 모르실 것이다. 그래... 뭐 모르는게 약이지.. 어머니 성격이 이런 거 보면 또 속내로 얼마나 마음아파 하실까.. 뭐.. 한 두해 이래왔던 것도 아니고, 아침부터 내내 봐오던 꽃들인데... 새삼 기분이 축축 쳐지는 기분이다. 어휴.. 이쁜 꽃을 보는데도 기분이 이따위인 걸 보면 참 나란 인간 은 생겨먹기도 제 멋대로 인 듯 싶다. 왠지 더 침체된 기분에 인사도 대충 하는 둥 마는 둥 떡 접시를 돌리고 있는데..... 뭔가 좀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왜 저 자리만 꽃이 하나도 없는거지? 교무실 맨 구석 딱 한자리.... 책상은 물론이거니와 바닥까지 발 디딜 틈 없는 다른 선생님들의 자리와는 너무 나도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내가 눈이 나빠서 단순이 분간을 못하는 것인가 싶어 좀 꼼꼼히 살펴봤지만, 책 몇권이외에는 책상이 말끔하다. 으음... 귀찮아서 치워버린건가? 자리 주인은 어디 나간건지 보이질 않길래,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가서 누구 책상인지 살펴 보았다. 다 낡아빠진 수학 교과서에 딱딱한 필체로 적힌 이름... 이.기.택???? 에에? 이거 미친개 책상이잖아? 미친개가 옆에 있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죄지은 놈마냥 화들짝 뒤로 물러섰다가 재차 미친개가 없음을 확인하곤 다시 다가 섰다. 이번에 애들 몇 패다가 고 3 학부모들한테 단체로 항의 받고 교장실까지 불려갔었다던데.... 아무래도 어머니들이 단체로 짜고 꽃 한송이 안 가져다 주는게 아닐지 싶다. 하기사, 담임도 없지, 애들한테 평판은 바닥이지, 선생들 사이에서도 괴짜로 소문났지.. 그래도 꽃 한송이 없는 건 좀..... 이거... 뭐... 선생들이 애들 차별하고, 애들도 선생 차별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학부모들도 선생차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좀 찜찜하다. 자기 자식들한테 도움이 안 돼면 그냥 싹 입 씻는다 이건가? 나도 미친개한테 특별히 강도 높은 어여쁨 받는 인간들 중 하나지만 왠지 내가 당한 일 마냥 기분이 더럽다. 차라리 큰 소리로 항의할 거면 항의하고, 멱살을 잡던지 뒹굴면 모를까....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 지저분한 짓 아닌가? 미친개가 제 아무리 날고 긴다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태연하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냥... 꽃 한 송이만 있어도... 위로가 되질 않을까?..... 아차차... 훠이.. 훠이.. 내가 또 무슨 말도 안 돼는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양재성이 선생님한테 꽃을 가져다 준다고? 그것도 미친개한테? 하하하... 이거.. 머리 나쁜 사람은 웃지도 못할 하이 코메디다.. 괜히 아침부터 센치해져서는 이게 또 무슨 어줍잖은 동정심이냐... 재빨리 고개를 휘휘 저어 애써 생각을 떨쳐내 버렸다. 정신차려! 양재성!! 미친개가 어디 인간이냐? 진욱이 놈한테 했던 짓이라던가, 이제까지 맞아온 분필 개수를 생각해봐라...! 그냥 쌤통이다... 하고 박수치면서 좋아하란 말이야.. =============================================== "하아아아아아....." 2교시 쉬는 시간... 결국은 다시 와 버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왜 그딴 빈 책상같은게 눈에 들어와가지고는 이 난리냔 말이야!! 한 번 떠올린 생각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상한 내 성격도 맘에 안 들고.... 그 말도 안 돼는 발상을 실행하고픈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내 정신 상태도 못마땅하다. 더더욱 싫은 것은... 그렇게 결심을 하고 교무실 앞까지 와서도... 도저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점... 대체 무슨 횡설수설이냐고? 제길.. 나도 모르겠다. 그냥 2시간 내내 담임하고 애들하고 어울려서 쿵짝쿵짝 어울려 노는 와중에도 머리 싸매고 낑낑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3학년 교무실 앞에 그 징글맞은 선배가 준 카네이션에 편지까지 들고 서 있었다는 것 밖에는.... 그래...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쉽게 생각하자. 미친개한테 주는게 아니라, 단순히 그 책상만 비어있는 꼴이 눈에 거슬려서 꽃을 두고 가는 거다. 이건 불쌍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단순한 내 결벽증이다... 계속해서 암시를 걸어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하곤 있지만, 어떻게 끄적인 편지까지 손에 들고 있다 보 니 또 머릿속이 복잡하다. 뭐... 편지래 봤자 연습장 찢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라고 쓴게 전부지만..... 내용의 성의 있고 없고를 떠나, 내가 미친개한테 고맙다는 생각을 전한다는 것 자체를 스스로도 가증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꽃만 달랑 가져다 놓는 것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것 같아 찝찝하다. 그래서 생각한게 보내는 사람 이름도 없는 수상쩍은 메모쪽지..... "재성아, 여기서 뭐해?" "????!!" 갑자기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정말 뻥 안치고 가슴 한 구석이 철렁 했다. 삐질삐질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제....에....길..... 담임이다.... "어어? 그 꽃 누구 주려고 가져온거야? 이거... 담임인 나는 안 챙겨주면서.... 섭섭한걸?" "...아..아니..그게 아니라...." "하하핫... 아냐.. 그냥 해보는 말이지 뭐.. 아주아주아주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재성인 귀여우니까 용서해주지.... 그래, 어느 선생님 드릴 려고?" 아아아악!! 정말 미치겠다. 애초에 여기 오는게 아니었다. 미친개를 불쌍하게 생각해서도 안돼는 거였고, 더 나아가 그 빌어먹을 빈 책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야 했다.. 이게 다 떡 심부름 때문이야! 솔직히 다소 억지스러운 논리긴 했지만, 담임은 어느 새 지금의 상황의 원인 제공자이자.. 일을 점점 더 크고 곤란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 이걸 어쩐다냐..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이상한 놈 취급 받을 텐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머리에 총맞지 않고서는 누가 미친개한테 꽃 갖다 바칠 생각을 할까... 더구나 나는 유난히 더 많이 당한 케이스 인걸.. 담임이 나를 무슨 매저키스트(-_-;맞죠?) 보듯이 하는 건 아닐지 하는 걱정까지 든다. 아아.. 정말이지...! "어느 선생님?" "......" "얌마, 그렇게 빼지만 말고 선생님 좀 가르쳐 줘라. 대체 나보다 더 좋은 선생님이 누구야?" "......" "나 말 할 때까지 안 놔준다. 체....정말 삐졌어." 뭐...뭐야.. 선생이 꼭 애같이.. 에라이.. 모르겠다. 이젠 다 귀찮아. 어차피 오늘 하루 막나갔는데 그냥 불고 말지 뭐.... ".....이..." "그래.. 이.." "하아... 이기택 선생님이요.." "......" 많이 놀라셨나 보네.. 말씀이 없으신 걸 보면... 완전히 얼어버리신건 아닌가 몰라. 뭐... 대 놓고 웃음거리가 되는 건 아니더라도, 분명히 당황하고 있을 담임을 생각하니 피식 쓴웃음이 나왔다. 그래, 웃긴다. 웃겨.. 남들보기도 민망하게 이게 무슨 짓이냐... "그래.. 역시 재성인 다르구나... 어른스럽네.." "......" 뭐...뭐라고? 기특하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는 담임의 손길에 불쾌함 보다는 놀라움이 먼저 느껴졌다. 놀란 얼굴로 빤히 올려다 보니, 꽤나 호감가게 생긴 얼굴이 퍽이나도 부드러운 선을 그리면서 웃어보인다. 비웃음이나, 폭소가 아닌 어딘지 칭찬해주는 듯한 그 미소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고 하면....... 역시 내가 미친걸까? 어리버리 적응못하고 있자니 등뒤에서 탁 미는 담임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차... 하고 돌아보니 어느새 몸은 교무실 안으로 밀어넣어진 다음이다.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군. "어? 이기택 선생님 지금 안 계시네. 재성아, 이따가 다시 올래?" "......아...아니오. 그냥 여기 두고 갈래요." 정말이지, 우리 담임은 엄청 눈치가 없거나, 나에 버금가는 신경줄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그 '이기택' 한 마디에 3학년 교무실 전체가 다 술렁이는데도 저렇게 당당하고 태연하다니.... 한 뻔뻔하는 나도 사방에서 따가운 시선이 영 버겁다. 뭘들 그렇게 쳐다보는거야? 미친개한테 준다니까 나도 미친 놈으로 보는건가? 정말이지.. 선생들 사이에서도 어지간히 평판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내가 이래서 여기 들어오기 싫었다니까... "가져다 둔거야? " "예." 교무실 끄트머리까지 어떻게 걸어갔다 왔는지도 잘 모르겠다. 비척비척 다시 입구쪽으로 돌아와 보니, 담임이 아직 안 가고서 기다리다가 다시 아는 척을 해준다. 생전 처음 해보는 스승의 날 선물이 이런거라니..... 미친개가 이걸로 기운 내고 안 내고는 이미 머릿 속 저 멀리고.. 그저 여길 벗어나고 싶다. "그냥 이렇게 가도 돼는건지 모르겠네. 선생님이 누가 줬는지 모르시면 어떻게 해?" "......" 그거야, 절대 미친개가 모르게 해야지!! 알면 큰 일나게? 꽃은 어디까지나 돌아가는 상황이 맘에 안 들어서 가져다 둔거지, 난 아직도 미친개란 인간을 싫어한다. 미친개가 내가 줬다는 걸 만약 안다면 아마 창피해서 학교도 못 다닐꺼다. 아차.. 그러고 보니, 담임 입을 막는다면서 깜박 할 뻔 했다. 다른 선생님들이야 뭐... 내가 누군지 설마 알겠어? 내 얼굴이 그렇게 기억에 남게 생긴 것도 아니고... 그냥 금새 잊어버리겠지 뭐.. 하지만 떠벌이인 우리 담임이 또 가서 알짱 대면서 "그거 재성이가 가져다 둔겁니다.." 이딴식으로 말한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지겠지. 담임이 교무실 문을 밀고 나가길래, 행여 놓칠까 싶어 재빨리 따라 나갔다. "...선생님.." "어? 왜?" 내가 먼저 불렀다는 것이 의외라는 듯 담임이 반갑게 대답했다. 그냥 부르는 것 가지고도 이러는데, 아쉬운 소리까지 하면 아주 가관이겠군. 내가 정말 왜 이런 일을 자청해가지고는.. 잠이 부족해서 잠시 정신이 나갔었던 모양이다. "...다른게 아니라, 수학 선생님한테 이 일 비밀로 해주세요." "......으음.... 왜?" "어...그게 저...." "무슨 말 못할 이유라도 있는거야?" "그런건 아닌데요.. 그냥.. 좀.. 제가 불편해서.." "....그으래?" "좀 그렇게 해주세요." "흐흐흐.........." 뭐...뭐야.. 저 음흉한 웃음은... 어쩐지 박진욱과 송지훈, 이현우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순간 소름이 쫘악 끼쳤다. 하기사.. 우리 담임 보기에 허술해서 그렇지 꽤나 영악했었는데... 왠지 굉장히 불길한 느낌이 든다. "맨.입.으.로?" "네에?" "그냥 맨입으로 부탁하는 거냔 말이야.. 아무 댓가가 없는 거면 별로 약속하고 싶지 않은데..." "......" 이...이 인간이!!! 댓가는 무슨 댓가야!!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당연히 물질적인 무언가를 떠올렸기에 나의 얼굴은 단 번에 찌푸려졌다. "전 돈 없는데요." "푸흡.... 누가 너보고 돈 달래냐? 내 말은... 넌 뭘 해줄 수 있느냔 말이지?" "제...가요?" "왠만한 서비스 가지고는 난 만족할 줄 모르는데....." "전...별로 할 줄 아는게 없어서 해 드릴 것도 없는데요." "그으래? 그럼 할 수 없지. 이기택 선생님이 아까 휴게실이 계셨지 아마...." "아앗... 잠깐만요...." "할 마음이 이젠 생긴거야?" 이런 빌어먹을 사이비, 변태, 공갈교사.... 내가 정말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해야 하는거야!! 어휴... 진짜... 내가 왜 이런 일을 자초해 가지고는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정말 이런 말까진 하고 싶지 않단 말이다!! "하아........ 앞으로........계속............ 커피 타드릴께요." "흐흐... 약속한거다." 손을 흔들면서 저만치 가버리는 담임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울고 싶어졌다. 양재성, 넌 미친거야. 그래, 미친게 분명해... Chapter 13. 스승의 날 (2). End ========================================= 예에... 버라이어티 뒷북 쑈였습니다.. 스승의 날 지난지가 언젠데.. 이 이야기냐고 물으신다면... 그저 먼산 보면서 자지러지게 웃는 수 밖에 없네요. -_-;;;;;;; 어쩌겠습니까.... 대충 구성 짜둔거보니까 "스승의 날"이라고 떡하니 써있던데... ㅠ.ㅠ 결국은 제가 쓰는 속도가 느려서 소재가 쫘악쫘악 뒤로 밀렸다는 얘깁니다. ㅠ.ㅠ 이젠 정말 못 할 짓도 많이 하네요... 이 번편... 솔직히 좀 내용이 앞 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다가... -_-;; 야오이 같지도 않아 걱정입니다. 읽으시면서 다들 지루해 하시는 건 아닌지.... 이 줄 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시는 분이 계실지.... ^-^ 헤에.. 님들과는 눈 마주쳤으니까 또 인사나 하고 물러가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나날 되세요~~" Sweet. so sweeeeet!! 감상란에..^^; 에파타님이 주신,감상 리플 올렸으니,감상주신 분들. 보세요,.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12) "씨발새꺄.... 넌 이딴 것도 못 풀어서 어떻게 대학갈래? 어?? 지금 나한테 시비거는거냐? 어쭈? 양재성, 눈 똑바로 안 떠? 미친개의 호령 소리에 재성은 묵묵히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17일... 재성은 17번인 자신이 걸리는 줄 빤히 알면서도 미처 예습을 못했던 것을 그저 속으로만 낮게 한탄했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특별히 반항한다거나, 두려워한다거나 하는 기색은 찾아 볼 수 없었 다. 그저, '언제 끝나나요?' 라고 묻는듯한 멍한 눈동자. 잠시 후, 미친개가 손에 출석부를 오지게 집어들자, 교실 구석에서 누군가 의자끄는 소리를 냈다. 그 누군가가 박진욱 군이란 것은 금새 추측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꼭 뛰쳐나올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다행히 옆의 짝이 충실히 잡아주는 덕에 그의 몸은 다시 자리에 고정되었지만,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매 수학 시간이 그랬지만, 오늘따라 교실은 좀 더 팽팽하게 긴장감 이 감도는 듯 싶었다. 어느 덧, 출석부가 높이 치켜 들어져 재성이의 키를 넘기자, 어디서 조그맣게 한 숨소리와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재성은 그리 겁먹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맞는다는 인식때문인지, 반사적으로 얼굴 을 살짝 찌푸리고 눈을 감았다. 그 표정이 안쓰러워서, 또 저게 그대로 재성의 얼굴에 내다 꼳힐 경 우, 어쩌면 정말 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학생들은 한층 더 숙연해졌다. 이제 드디어 미친개의 팔이 서서히 곡선을 그리며 재성의 머리를 내리친다고 생각한 순간... [톡.........] "아...?" "내일까지 다시 풀어와. 다음, 27번!" 미친개는 태연한 듯 수업을 진행했지만, 교실은 전부 어리둥절한 분위기 였다. 아까 끌려나가서 보다 더 넋이 나간듯한 재성군.... 아마도 재성군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3학년 교무실에 꽤나 알려져 있다는 것과.. 전교에서 자신의 글씨체가 가장 특이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Episode. 수학 시간. End ==============================================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4) "하아아암...." 너무 졸리다. 이거 진짜 뒤집어져서 잘 수도 없고...... 웬만한 방해요소는 가볍게 쌩까고 정신을 놓아버리는 나지만, 이렇게 선배라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있는 상황이 되고 보니 어쩔 수가 없다. 뭐..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지만, 허벅지를 뚫던, 눈을 후비건 간에 정신차리고 앉아있어야지. 저절로 짝짝 벌어지는 입을 억지로 아물리며 저만치서 열심히 뭔가를 냄비에서 건져내고 있는 상수 선배를 잠시 노려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싫다는데 대체 왜 억지로 요리부에 들게한건지....... 그 날 사고친게 어디 나 뿐이던가? 애초에 선배들 PR 씹고 염장 지른건 박진욱이었 고, 거기다대고 주먹질까지 해댄 건 이현우였으며, 유리창 박살낸건 송지훈이었단 말이다!!! 나는 정말 재수 없게 그 자식들 사이에 끼어 앉아있던 죄밖에 없다. 그래, 까짓거 내가 백번 양보해서 내가 잘 못한 바를 몇 만배로 확대해석한다쳐도 '공손한 얼굴로 사건정황을 설명한 죄.' 가 고작이 다. 사람이 부족하네 어쩝네하고 부장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몰여붙여오는 바람에, '허락'한 것도 아니고 '입을 다물어버렸을' 따름인데, 이 따위로 C.A 부서에 내 이름이 떡하니 올려져 있을 줄이야. 나에게 있어 C.A란 도서부나 영화감상부 같은데 적당히 들어서 편안하게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시간 정도의 의미였던 터라 아무래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빌어먹을..... 난데 없이 요리라니...... 생소한것도 생소한 거지만 더 큰 문제는.... "거기, 부추 썰은 거 다 됐냐?" "에에..!! 다 되어간다.." "선배들은 뭐 만들어요? 저희는 부침갠데... " "그러냐? 우린 냉면. 뭐.. 말 안 해도 자진 납부하는거 알지?" "선배야 말로 또 입 싹 씻는거 아니죠?" "내가 언제... 흐흐.. 니네가 재주껏 어디 한 번 가져가봐라.. " "앗뜨뜨..... 아이..씨댕.." "야!! 너 또 디었냐? 아무튼..." "씨발.. 이렇게 디어가지고 내 고운 피부 어디 남아나겠냐?" "........아주 얼굴을 통채로 지져주리?" 하아...... 나란 인간은 도무지 끼워주질 않는다는 거다. 저저번 C.A. 도 그렇고, 저번 C.A 도 그렇고, 이번 C.A 도 그렇고...... C.A 는 그 세 타임이 전부긴 했다지만 그간 나한테는 다들 말 한 마디 걸지 않았다. 그래, 뭐 선배들이야 어차피 요리도 따로하고 하니까 말 붙일 일 없다 치더라도, 같은 학년 녀석들은 대체 뭔가......? 근처로만 다가가도 찬바람이 쌩쌩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놈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심가져주지 않는다고 토라지는 성격은 더더욱 아니지만 상황이 이리 되고 보니까 부담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남들은 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일하는데, 혼자 멀뚱멀뚱..... 솔직히 말해서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온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써클 활동에 기대 비스무리한 것을 나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왕따신세가 되고보니 기운이 쭈욱 빠지는 느낌이다. 이래뵈도 나서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시키는 일은 열심히 한다고 자부하고 있건만, 저 1학년 부장이란 놈은 밉살맞게도 나만 쏙 빼놓고는 일 분담을 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밉보일 짓을 언제 했었나? 뭐 O.T. 도 참가 못하고 해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본적 없는 것 같은데...... 말 실수란 것도 어디 말이란 걸 해야 할 것 아닌가... 어휴... 이거 왕따도 왕따 나름이지, 수업시간도 아니고 다들 즐겁고 왁자한 중에 이러고 앉아있으니까 기분이 참 묘하다. 오죽하면 내가 "뭐 시킬일 없냐.."고 물어볼 생각까지 했을 까.. 결국 실행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하아아암.... 진짜진짜진짜 졸려어어. 고개가 이번에는 뒤로 확 젖혀지길래 턱으로 받히고는 억지로 요리하는 녀석들의 행동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아아... 저거 1학년 부장 녀석이다. 후라이팬에 능숙하게 기름을 두르는 꼴이 꽤나 그럴싸한 게, 장래 꿈이 요리사라는 이야기가 말짱 헛소리는 아닌 것 같다. 아마 조리고등학교 떨어지고 여기로 왔 다지? 내가 웬일로 이렇게 잘 아느냐고? 그야 당연히............................................ ..............................너무 심심해서지.... 하는 일 없이 잠이나 쫓고 앉아있다보니까 녀석들끼리하는 대화가 너무 귀에 쏙쏙 잘 들려온다. 애써 다른데로 고개 돌리고 모르는 척 했지만, 들리는 걸 어쩌겠어.... 결국은 우리 부원들 이름에 반에 특기사항까지 전부 꿰고 앉아있는 신세가 되었다. 으음.. 지훈이 쪽들이 알면야 놀라서 기겁하고 팔짝 뛸일이다... 암.... 치르르르.... 하는 기름소리에 잡상을 뒤로 접고는 다시 눈을 돌렸다. 이번 우리 요리부 1학년은 전부 다섯. 저기 부장인 임동석... 손가락 디인걸로 여적까지 찬물로 식히고 있는 어리버리한 놈이 조한준. 하루 종일 시시콜콜 제일 말많은 두 녀석 정홍기. 권영훈. 마지막으로 열심히 부침개 나르고 있는 녀석이 김민우. 내가 안경까지 찾아써가면서 얼굴도 확인했는데, 저 녀석들이 그런 수고를 알아 줄지 모르겠다. 내 이 름이나 알려나? "....자, 이거 먹어." ".......고마워." 갑자기 나타난 부장의 인영에 잠시 놀라고 있자니, 뜨뜻한 기운이 확 끼치는 접시가 앞에 놓여졌다. 아무래도 내 이름은 모르는 모양이군. 뭐..... 굳이 이 두 시간 동안의 대화라는 것을 찾는다면 지금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아무리 미워도 먹는 것은 같이 먹어야 하니까.... 그나마 잠깐 이야기 하는 것도 저희끼리는 싫었던 모양인지 항상 가져다 주는 녀석이 바뀐다. 눈 앞의 부침개.... 김도 모락모락 나고.... 노릇 노릇 잘 익긴 했지만... 먹기 싫다.......... =================================================== == "이야아!! 얌마, 너 인간 됐다. C.A. 때마다 먹을 것도 가져오고.... 이거 다 니가 만든거야?" "......" "체.. 인간아, 대답 좀 해라. 대답 좀 해. " "냅둬. 언제 저 자식이 말 한 마디 상냥하게 한 적 있었냐.. 주는 거나 먹자." "어엇.. 뭐야.. 부침개 아냐? 나도 좀 줘.." "나도!! 집어간다아!!" "나도!!" "야이!! 저런 미친놈들..!!!" "야!! 일루 안와??!!!" 시끄러워.. 시끄러워.. 먹기는 싫고, 버릴 수도 없고 해서 들고 온 건데 주변으로 인간들이 파리떼 같이 꼬였다. 양이 많은 것은 아니었던 지라, 어느새 기름기 반들반들한 접시만이 달랑 남아있다. 어휴.... 이걸 또 가져다주러 가야 할텐데.... 생각할수록 짜증스럽다. 이게 다 그 빌어먹을 허상수인가 뭔가하는 인간 탓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앞에서 혀라도 깨물어가면서 까무라칠 것을 그랬다. 앞으로 좋던 싫던 탈퇴를 하건 말건 C.A 부서는 바뀌지 않는 것이라는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한층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 같다. 나름대론 곰곰히 무슨 방도가 없을까를 생각해 봐도 뾰족한 수가 나질 않는다. 어디서나 크게 남들 시선을 끈다거나 이쁨 받는 일 같은거랑은 거리가 먼 나지만, 그렇다고해서 특별 히 겉돌거나 했던 기억 역시 없던터라, 어찌 대처를 해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무관심이니 어쩌니 해도, 결국은 나도 '왕따' 같은 건 되고 싶지 않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모 양이다. 하아... 사람이란 건 참 가증스럽기도 하지... 곁에 몰려들면 피하고 싶고, 그렇다고 막상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그건 또 그거대로 미치겠고.... 대체 왜들 그렇게 나를 싫어하는 걸까? "요리부 재밌냐?" "......" 미쓰리.. 정말 퍼펙트 타이밍이다. 한창 그 일로 기분 더러울 때 꼭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겠냐? 괜한 오해를 사기는 싫어 대강 고개를 끄덕여 주니 이 녀석이 왠일인지 한 숨을 푸욱 쉰다. 뭐...뭐야.... 새까맣게 어린 녀석이 어디 형님앞에서.... "왠 한숨이야?" "뭐... 별로..." "........." "그러는 너야 말로 왜 그렇게 얼굴이 죽상이냐? 토요일 오후부터 우울하게...." "......" 역시 이 놈의 면상이 재수 없어 보이는 걸까? 지금 내가 꽤나 예민해져 있는 탓인지는 몰라도 현우가 지나가는 듯이 한 이야기에 잠시 몸이 흠칫했다. 그러고보니...... 나란 인간... 그다지 호감가게 생긴 편은 아닌듯 싶다. 그 동안 내 얼굴보고 특별히 뭐라고 했던 사람은 없었지만 일말의 불안감이 생기는 것 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현우.." "어? 왜..." "내가............" "어.. 니가 뭐..." "인상이 많이 더러운 편인가?" "........." 뭐... 뭐야.... 그 떨떠름한 얼굴은..... 그렇게 어린애 보듯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필요까진 없잖아. 내 딴에는 꽤나 진지하게 물어본 건데.. 기분이 좀 상해서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니, 현우 녀석이 가볍게 어깨를 툭툭친다. "뭐야....?"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누가 너보고 인상이 더럽대?" ".....누가 그렇대? 그냥 물어본거야. 신경꺼." "사실대로 말해 줄까?" "......네 녀석이 하는 말 같은거 안 믿어." "사실............" "..................." "안 믿는 다면서 왜 그렇게 기대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냐?" "내..내가 언제..." "너 인상 디게 더러워." "..........." 아..... 그렇게 대놓고, 그렇게 무뚝뚝한 표정으로, 엄청나게 진지하게 말해버리면...... 나보고 대체 어쩌라는 거냐!!!! 그다지 화가 치민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딱 찝어 내는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렇다. 하기사, 말 실수도 한 적 없겠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눈에 띄는 복장을 한 것도 아니오, 특이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은연중에 미움 받는 중이라면...... 어차피 남는 이유는 결국 가까이 가기 싫게 생겨먹었기 때문이지 뭐..... 설마설마 하면서 애써 부정해오던 사항인데, 현우한테 이렇게 한 소리 들으니 어느 새 반 이상 확신 이 든다. 젠장.. 모르겠다. 그냥 싫어들 하라지 뭐..... 생겨먹은게 맘에 안 든다는거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이게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 "재성아, 뭘 그렇게 힐끔거리냐?" "네? 아.. 아닙니다." 깜짝이야.... 제발 인기척 좀 내면서 움직이란 말이야!!! 바로 앞에서 생글생글 웃는 담임의 면상을 애써 고개를 돌려 무시하면서 하마터면 놀라 둘러박을 뻔한 설탕 그릇을 다시 고쳐 잡았다. 베라먹을 인간.... 니가 이 커피 먹고 얼마나 오래 잘 먹고 잘 사나 보자. 남의 집 귀한 자식한테 허구언날 커피 심부름이라니.... "여어.. 재성아, 나도 한잔만... 늘 타던대로..." ".............예에..." 스푼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제길... 담임이야 어쩔 수 없어서 타준다지만, 맨날 저렇게 옆에서 추가주문하는 국어를 대하 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이가 빠득빠득 갈렸다. 자기들은 정말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우리 국어.... 나이 많은데다 부드럽고 점잖은 학자 타입이라서 담임의 이런 짓거리에 동참하리라곤 생각 안 했는데 오히려 은근히 더 즐기는 눈치다. 딴에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오던 선생님인데 우리 담임하고 늘상 어울리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그다지 정상인은 아니었는 듯 싶다. 아아.. 정말 이 짓을 과연 언제까지 계속 해야 하는 건지.... 이러다가 날 더워지면 냉커피 타다 나르라고 시킬까 걱정이다. [삐이.....] 조그만 포트가 뽀얀 김을 내면서 울기 시작했다. 기다려라... 기다려.... 에이참... 주전자를 조심스럽게 들고 커피와 설탕을 미리 덜어두었던 찻잔 두 개에 뜨거운 물을 적당히 부었다. 여기다가 프림을 덜어서 녹이면 끝. 나야 커피같은 것 마시지 않으니 맛이 제대로 나는건지 어쩐건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두 사람 다 별 불만 없이 먹는 것으로 보아 그럭 저럭 넘길만한 수준은 되는 모양이다. 하긴, 집에서 어머니께 타다드릴 때도 칭찬까진 아니었어도 욕은 안 먹었으니까..... "하하... 그래서 그 녀석을 어떻게 했대요?" "어떻하긴요. 그 여자 쪽에는 다시는 만나지 말라고 하고, 남자애는 아마 교칙대로 교내봉산가 뭔가를 했다죠?" "쯧쯔... 그러게 누가 여대생하고 사귀어.. 사귀길... 얌전히나 다닐 것이지 학교 앞에서 그렇게 쑈를 하고는...." "그러게 말입니다. 하아... 아직 저도 여대생 손 한 번 못 잡아 봤는데.. 어찌 보면 쌤통이죠.." "하하.." "어? 재성아, 다 된거야?" "예.." 으.....음..... 요새 계속 교무실 들락달락 하면서 느낀 건데..... 알면 알 수록 좀 무서워 지는 사람들이다. 우리 담임만 해도 안경쓰고 캐쥬얼한 복장 탓인지 형이나 대학생 이미지고, 아까 말했듯이 우리 국어는 온화한 노신사 분위긴데.... 어째 둘이 대화 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남 안되는 이야기로 즐거워 하는 것들이 많다. 아무래도 저 두 사람 눈 밖에 나는 짓은 않는 편이 좋을 듯 싶다. [탁...] [탁...] 대화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찻잔을 자볍게 내려 놓고는 뒤로 물러 나려는데, 담임이 슬쩍 눈짓으로 부른다. "에에... 재성아, 이왕 가져다주는거... 상냥하게 한 마디 하면 좋잖아." "그래, 그러면 커피가 더 맛있을 것 같은데..." "..........." 내가 저 소리를 하루 이틀 들은 것도 아니고...... 그래... 참자..... 참아..... 우아하게 찻잔을 살짝 들어올리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왜 저 속에다 유해 물질을 진작에 첨가하지 않았는가가 심히 후회 되지만.... 아쉬운 쪽이 우물을 파야지.... 별 도리가 없었다. "맛. 있. 게. 드. 세. 요..." "그래, 잘 먹을께.." "고맙다.. 내일도 부탁해." "...............예에.." 내일도 부탁해라니.... 쳇.... 부득부득 갈리는 이를 힘들여 앙다물면서 뒤로 몇 발짝 물러 섰다. 설거지까지 해야하니.... 할 수 없지 뭐...... 사실 설거지까지 꼬박꼬박 해다 바칠 생각은 없었지만, 저렇게 타주고 그냥 올라가면 필시 먹고난 그 모양 그대로 컵을 처박아 놀 것이 분명한 두 사람이기에 항상 몇 분씩을 더 교무실에서 소비해야 했다. 아무튼 사람들이 지저분하기까지 하다니까........ 가만히 그 위치에서 기다리고 서 있자니, 아까 찔끔찔끔 훔쳐보다가 담임한테 딱 걸려버린 그 물체가 옆으로 살짝 비껴 보였다. 이번에는 좀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싶어, 몇 발짝 게걸음으로 움직였다. 으음... 이거... 딱 정면이긴 한데, 눈이 나빠서 잘 안 보인다. 그렇다고 앞으로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고.... 하는 수 없이 양 미간을 살짝 찌푸려 촛 점을 모았다. "뭐해???" "으아아... 서...선생님.." "짜식, 놀라기는... 거울 보는거야?" ".............." 그렇게 딱 찝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얘기하면 저는 대체 어쩌라는 겁니까!!! 이현우나 담임이나.... 아무튼 사람 난처해하는 건 전혀 생각 안 한다니까... 담임이야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옆에서 웃음을 열심히 참고 있는 국어를 보고 있자니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다. 가뜩이나 국어시간에 맨날 꾸벅꾸벅 졸다가 걸리는데, 이젠 아주 찍혀버린 것 같다. 이거 정말...... 표정 관리 하나는 누구 못지 않게 잘 한다고 생각했었는 데..... 필시 답지않게 빨갛게 달아올라있을 내 면상을 상상하고 있자니 스스로도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다. 우욱.. 닭살이야..... "무슨 거울을 그렇게 숨어서 봐.. 자, 일루와. 여기 앞에 바로 서서 봐야지." "그래.." "아... 아....아닙니다." 이...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남자애가 거울을 힐끔 거리면 당연히 기집애 같이 뭐하는 짓거리냐고 한 마디 하는 것이 일반인의 사 고 아닌가? 나름대로는 완강하게 저항을 했지만, 어느 새 몸은 담임의 손에 질질 끌려가는 중이다. "아.. ㄱ..거..거울 안 봐도 돼요.. 됐습니다..." "뭐.. 볼려고 했던 거 아니면 어때? 그냥 한 번 서 봐. " 담임이 바로 뒤에서 내 양팔을 딱 고정시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거울을 향해 정면으로 서야 했다. 나 혼자 본다면야 별 문제되지않겠지만, 바로 뒤에 꼭 붙어서 내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는 담임의 시선을 생각하니 못내 무안해져 시선은 저절로 땅에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생으로 내보이던 얼굴이지만, 왠지 누군가가 거울을 통해서 내 얼굴을 본다고 생각하니 엄청 민망하다. 뭐..... 그것 보다는 누군가와 같이 내 얼굴을 감상하는 것이 낯설은 것일지도 모르겠 다. 하아.... 정말 내가 지금 무슨 고생을 자처해서 하고 있는 건지...... 그냥 신경 안 쓰고 살기로 해놓고 도 계속 현우의 그 한 마디가 마음에 걸려서는 새삼스럽게 내 얼굴이 궁금해 진 것은 또 무슨 기현상 이며, 거기다가 막상 찾아나서니 눈에 띄이지 않는 거울이란 놈은 또 무어냔 말이냐.. 시커먼 남학교, 그 중에서도 환경미화 성적이 최하위를 달리는 우리반에 거울같은 것이 있을리 만무 했고, 화장실 역시 예전에 누가 깨먹은 뒤로는 흉물스럽게 붙어있던 접착제 자국만 남아있는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발견한 교무실의 전신 거울이 반갑지 않았다면 솔직히 뻥일 것이다. 하지만...... 이딴 걸 바 랬던 건 아니란 말이야!!! 양재성.. 니가 미쳤지.. 미쳤어.. 사내 자식이 갑자기 무슨 거울이라고.. "에에? 그러지 말고 고개 좀 들어봐. 우리 재성이 얼굴 좀 보자.." "....아니...저....." 방금 전 까지 보던 얼굴을 가지고 새삼스럽게 또 왜 그러시냐니까요!!!! 속에서 올라오는 피맺힌 절규를 힘들게 삭히면서 침착하게 양 팔을 꽉 움켜쥐고 있는 담임의 팔을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담임은 재미있다는 듯이 한 번 히죽 웃더니만 오히려 한손으로 내 손목을 틀어쥐는 기행까지 선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아얏...." "어? 아프냐? 미아안.. 그치만 손이 하나 부족해서.. 자아.... 어디 고개를 들어보실까나?" 아.... 이런.... 아차 하는 사이에 담임의 왼손이 내 턱께로 오는가 싶터니만 살살 손끝으로 내 얼굴을 치켜 올렸다. 그리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간지러워서 고개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장난이 좀 심한 것 같다. 다 큰 남학생에게 억지로 거울을 보이려 들다니...... 고개가 이젠 거의 다 들려 졌길래 아주 눈을 감아버릴까 했지만, 그랬다간 정말 추해질 것 같아서 가능하면 태연한 척 위장하며 거울을 주시했다. "..............." 으.....음.... 쌩 난리를 치며 본 것 치고, 내 얼굴 꼬라지는 너무 시시해서 기운 빠질 지경이다. 더벅머리에, 중키에,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사내놈. 오히려 내 칙칙한 면상보다는 담임이 활짝 웃는 시원 시원한 미소가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 순해보일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누가 보고 슬슬 피할 정도 역시 아니지 뭐.... 아무리 설마 설마하는 심정이었다지만, 자기 얼굴을 새삼스럽게 확인해보려고 했던 스스로를 돌이켜 보니 조금은 자조적인 미소가 띄어졌다. 이러니저러니 신경 안쓴다니 어쨌니 했지만 나도 꽤나 조급했었던 모양이다. "선생님... 뭐 좀 여쭤보러왔는데요..." "어... 그래.. 뭔데..." 뒤에서 나는 인기척에 담임은 내 어깨를 감싸쥔채로 돌아섰다. 뭐야... 가뜩이나 날씨도 더워지는 마당에 꼭 붙어서는...... 교무실까지 찾아와서 질문하는 범생이 대체 누군가 싶어 유심히 살펴보니...... 이런...... 요리부 1학년 부장이다... 임동석... 피차 얼굴정도는 익힌 사이인데도 담임한테만 뭔가를 물어보고 내쪽은 생판 모른 척 하는 것이 영 어색해서 내 어깨를 팔걸이로 사용하는 담임을 슬쩍 밀쳐냈다. 그치만 왠걸.... 담임이 도리어 홱 끌어당기는 바람에 완전히 두 사람 사이에 끼어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눈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동석이의 노트와 담임의 손글씨가 어지럽다. "....그래서.. 이렇게 해석이 되는 거야? 알겠어? " "예..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보니 동석이 너도 요리부던가? " "예.. 그런데요.." "어어? 그럼 재성이랑 같은 써클이네.. 얌마, 양재성.. 넌 친구를 보고도 왜 본체 만체냐?" "........." 이게 어디가 내가 무시한 거냐... 저 자식이 무시한 거지.... 뭐라고 내가 말을 하긴 해야 하는 상황인데,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냥 이제와서라도 "안녕.." 이래야 되는건가? 곰곰히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갑자기 양 볼이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이 진짜!!! "아..아..으...아..파..요." "동석아, 니가 마음 고생 많겠다. 이렇게 비협조적인 애를 부원으로 끼고 있자니.." "............." 담임이 저런 식으로 이야기 하면 빈말로라도 뭔가 대꾸가 있어야 할 텐데, 임동석은 입을 꾹 다문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우스꽝스럽게 늘어난 내 얼굴을 바라보는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이 또 갑갑해지는 것 같다. 역시 맘에 안 든다 이건가? ".............양재성.. 상냥하게 좀 굴어라...어? 동석이는 이만 가보고..." "예, 감사합니다." 담임도 분위기가 이상한 줄 어느정도 눈치챘는지 잡고 있던 손을 풀어주었다. 커피잔을 챙겨서 정신없이 교무실을 나서자니 왠지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얼굴이 마구 화끈 거리는 것이 담임이 너무 세게 잡아당긴 모양이다. ==================================================== "어? 양재성, 아직까지 밥 안먹고 뭐했어?" "그러게.... 현우는 어디갔냐?" "방송실..." "그래? 왜 밥도 안 먹고 갔지?" "........." 그러게 말이다...... 사실 현우 녀석을 생각해서 라기 보다는 내가 단순히 먹기 싫어서 먹지 않고 있었던 거지만, 벌써 점심시간이 반이나 지나서 진욱이랑 지훈이도 다 먹고 왔는데 여태 소식이 없으니 약간 걱정이 되었다. 방송실에 할 일이 그렇게 많은가? 현우가 방송반으로 뽑힌 것이 중간 고사가 막 끝나고 난 뒤...... 녀석도 별 말 없었고, 나도 관심이 별로 없었던 터라 솔직히 처음엔 방송반인 줄도 몰랐었다. 나중에 알고... 그냥 8차까지 되는 심사를 과연 어떻게 붙었을지 잠깐 궁금해했던게 내 기억의 전부 다. 새삼 돌이켜보니까, 그 방송반인가 뭔가를 시작한 이후로 현우녀석 얼굴보기가 부쩍 힘들어진 것 같 다. 아침 자습 시간에도 자리에 없고, 쉬는 시간도 수시로 드나들고, 점심시간은 밥 먹기가 무섭게 사 라지고...... 급기야 오늘에는 밥도 안 먹고 그냥 사라져버리다니....... 이거 할 수 없지 뭐.... "어라? 재성아, 어디가?" "방송실.." 체.... 내가 아니면 누가 챙겨주겠냐? 아침부터 대놓고 인상드럽다고 한걸 생각하면 일주일을 굶겨도 속이 시원치 않지만.. 저렇게 주인 없이 덩그라니 남아있는 도시락이 너무 불쌍해서 가져다 주는거 다. 무뚝뚝한 녀석한테 오늘은 꼭 고맙다는 소리를 들어야 겠다고 생각하니 도시락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 [이 것들이 군기가 빠졌어!! 어디 이따위로 한 번 계속 해봐. 선배말이 말 같지 않다 이거지?? ] 어......라.......? 이게 무..무슨 소리다냐... 어쩐지 좀 다가가기 두려운 장소중의 하나인 방송실.... 문짝에도 떡하니 "관계자외 출입금지" 라고 붙어있는 것만해도 들어가는 것이 꺼려지는데 안에서 저 런 고함소리까지 들려오니,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이 도로 떨구어져 나왔다. [ 씨발새끼들.... 아주 잘들 한다. 잘들 해. 청소가 이게 뭐냐? 이래 놓고 다했다고? 거기다가... 제 시간에 제깍제깍 안 오면 어쩌겠다는 거야!! 방송이 장난이야? 그럴꺼면 애초에 여기다가 원서는 왜 넣었어? ] 별로 엿들으려던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면 복도 끝에서도 다 들릴 것 같다. 이게 말로만 듣던 무서운 선배란 건가? 그냥 돌아서서 갈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어차피 그냥 도시락만 전해 주고 갈건데다가 현우 녀석이 남한테 싫은 소리 들을 짓은 안 하는 것을 익히 알기에 살짝 문에 노크를 했다. 이렇게라도 누가 중간에 끊어줘야 설교가 일찍 끝나리라는 짐작도 있었고...... [똑똑....] [드르륵........] "누구세요?" "아......저기....." 노크하자마자 벌컥 열리는 문에 깜짝 놀라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이거 꼭 기다리고 있다가 여는 것 같잖아. 어리둥절해서 서 있자니 키가 훌쩍하니 큰 선배 하나가 앞을 막아섰다. "이....거 전해주러 왔는데요. 점심시간이 끝나가도록 안 오길래.." ".........그래? 1학년인가?" "..예." 별로 험악하게 생긴 선배는 아니었지만, 흐음..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눈매를 보고 있자니 왠지 보통은 아니겠다 싶었다. 어딘지 거만해 보이는 눈빛. 체... 소리르던 것도 필시 이 자식일 것이다. 지가 나이가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그렇게 길길히 날뛰는건지... 왠지 못마땅한 기분에 시선을 피하고 있자니까 거의 명령하는 투로 물어왔다. "누구 찾아왔는데?" "이현우요." ".......그...래? 그럼 안에 들어와서 전해주고 가." "............" 대체 뭐하자는 꿍꿍이야? 분위기 보니까 나같은 외부인이 입장할 때가 아니던데..... 그렇다고 거절할 입장은 못되고 해서 앞으로 나서니 마치 에스코트 하는 사람처럼 우아하게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취해보인다. 느끼하다. 느끼해... 체.... 자기가 멋있는 줄 아는 모양이지? "야, 이현우.. 면회다!" "..........!!" 하.....하..... 이거 정말 기가차서..... 별로 사람같은거 안 째려보는 성격이지만 어느새 내 눈길은 그 빌어먹을 선배란 자식한테로 허옇게 흰자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새끼 사드아니야? 알 수없는 집기들로 가득차 있는 널찍한 방송실안..... 비틀비틀거리면서 엎드려 뻗쳐있는 대열에 끼어있는 현우를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말이 다 안 나왔다. 기합을 주는 것까지면 원래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 치고 넘어간다지만, 그 벌받는 꼴을 친구라고 찾아온 나한테까지 보여주는 것은 대체 무슨 극진한 정성이냐... 아니나 다를까 현우 녀석이 고개를 들어 잠깐 내 쪽을 보는가 싶더니 시선을 아주 피해버렸다. 젠장할. 오지 않을 것을 그랬다. 약한 꼴 보이는 것 못견뎌 하는 녀석인데..... 저래뵈도 저 자식은 소심하고 애같아서 필시 크게 창처받았을 것이다. "이현우..... 니 애인이냐? 도시락까지 챙겨들고... 어? 니 애인이냐고...." ".........." "어쭈? 이거 봐라, 대답도 안 하네. 아직도 기운이 남아돈다 이거야?" ".........." "요새 것들은 아무튼 싹수가 글렀다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연애질이야.. 연애질이..." 이 인간... 정말 보면 볼 수록 저질이네..... 그딴 억지를 지금 시비라고 거는거냐? 유치원생도 너보다는 더 그럴듯한 걸로 걸고넘어가겠다. 지금 어디서 누구랑 누구를 연결시키고 지랄이야.. 이 새끼가... 너는 남자, 여자, 암컷, 수컷도 구분 못하냐? 그 선배인가 뭐신가 하는 빌어먹을 자식이 현우를 향해 발길질을 하려는 찰나 잽싸게 그 앞을 막아서서는 현우의 옷깃을 그러쥐었다. 이어서 들려오는 주변의 신음소리.... 흔히들... 멱살 잡는다고 하던가? 선배자식이 얼마나 괴롭혔는지 몰라도 현우 녀석이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것을 보자니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녀석의 키가 큰 편이라 별로 볼품은 없었지만 아무튼 꼴이 그렇게 되고 보니 그 선배란 작자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어디서 튀어나온 녀석이 갑자기 욱하는 심정에 끼어드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자기 멱살이 아니라 현우 멱살을 잡고 있으니까.... 이보세요, 아저씨... 나도 인생 헛살은거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그렇게 머리 잘 굴리는 편은 아닌가본데... 한 번 구경이나 해보시죠... 황당하단 표정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 그중에서 특히 그 선배를 향해 한 번 해맑게 웃어준 뒤, 그대로 손을 들어 있는 힘껏 현우 녀석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미안하다, 현우야... [짜악......] ".....야.....야....너...!!" 뭘 그렇게 놀라? 지는 여태껏 기합준 주제에.... 현우 녀석은 아픈 것 보다도 당황했는지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후려쳤는데도 신음소리 한 번 없다. 아아.. 이거 너무 세게 쳤나? 내 손이 다 아프네.... "이현우, 잘 들어. 이.딴.데서 겨.우. 이.따.위. 짓거리에 빌빌대는 꼴은 내가 못봐. 설마... 지금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전혀.." 어이구야.. 무섭다.. 무서워.. 눈치없는 녀석은 아닌 터라 대충은 무슨 소린지 알아먹었는지 눈빛이 대번에 바뀌었다. 그래... 모처럼 꼬아놨다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이란건 뻔하지 않냐? [이런 재수없는 새끼가 하는 말도 안돼는 짓거리는 신경도 쓰지 말아라.. 너 정도면 저 새끼 씹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지 않느냐..... ] 으음..... 눈빛이 살아나니까 이제야 좀 이현우 다운 것 같다.... 어이, 거기 선배 양반 잘 듣고 계신가? 당신 머리통이 얼마나 비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올려붙인 따귀가 사실은 당신 몫인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겠지? "어디 한 번 잘 버텨봐라. " ".....물론.." 그래.. 간단해서 좋다. 녀석의 입매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 슬며시 손을 풀었다. 주변은 완전히 정적.... 내 할일은 끝났다 싶어, 완전히 얼어있는 그 빌어먹을 선배쪽으로 꾸벅 인사를 하곤 방송실 문을 나섰 다. 뭐.... 이 일로 현우놈이 그 개자식한테 더 깨져도 할 수 없는 거지만, 그래도 최소한 내 얼굴 보면서 괴로워할 일은 없는거니까... 그냥, 수업이나 끝나면 교무실에서 얼음주머니라도 만들어다줘야겠다. 나도 은근히 쌓인게 많았었던지........ 너무 세게 때린 것 같아... ====================================== 아아아아아아.... 또 다시 돌아온 C.A. 시간.... 배정된 교실문을 여는 손이 오늘따라 더욱 긴장이 되었다. 벌써 다들 와있던 모양인지 안은 시끌 벅적이다. 문이 열리는 찰나 내 쪽으로 향했던 시선이 다시 뿔뿔히 흩어지는 모양을 보고 있자니 어깨가 다소 움츠러드는 것 같았지만....... 그래... 당당해지자.. 당당해져... 내가 무슨 꿀리는 짓을 했다고 눈치보고 기어야 돼? 필시 생긴게 꼬와서 미움받는 것이라 치더라도 그게 어디가 내 잘 못인가? 현우 녀석이 방송반 일 하는 것 보면서.... 나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느낀바가 많았다. 마치 무슨 도움 줄 것처럼 현우 녀석 싸대기까지 올려붙이며 떠벌려놨지만, 정작 진짜 도움을 받은 것은 나다. 말이 좋아 화기애애 즐거운 써클이지... 사실상 마음 먹은대로만 돌아가는 곳이 과연 몇 군데나 있을까? 현우가 8차까지 시험보고 들어간 방송반도 많은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지만, 역시 나름대로의 힘 든 일도 있고, 하기 싫은 일도 있고, 보기 싫은 인간도 있다. 요리부 애들이 모르는 척 받아주지 않는거.... 솔직히 어디서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현우가 그 지랄 맞은 선배한테 별거 아닌 일로 깨지는 거에 비하면 사실 별거 아닌 게 아닐까 싶다. 그동안 안 하던 짓을 앞으로 해볼려니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사나이 양재성.. 이정도에 무너질소냐... 가방에서 준비해온 앞치마를 꺼내 탁탁 털어 허리에 둘러매니, 온갖 시선이 다 내쪽으로 쏠리는 것이 느껴진다. 아아.. 이봐들... 이제 시작이라고... "저기...잠깐만... 이건 내가 하면 안될까?" "......어.... 그..그래.." 오늘의 요리 과제는 볶음밥.. 당근과 감자를 삐뚤빼뚤... 정말 힘겹게 썰고 있던 녀석의 자리에 슬쩍 끼어들었다. 이름이.... 정홍기였지? 휴우... 이거 정말 딱 한 마디 한 건데 얼굴이 마구 화끈 거린다. 정말 못할 짓인걸.. 홍기 녀석한테 허락을 받자마자 좀 덜 무안하려고 바로 수세미로 쓱쓱 문질러 당근의 흙을 벗겨 내고는 부랴부랴 적당한 크기로 잘라 채치기 시작했다. 손목에 리듬이 실리니까.... 꽤 신이 나는 것도 같다. [탁..탁..탁..탁..탁..탁..탁.......] 이봐들 구경났어? 나같은 건 당근 같은거 잘 썰면 안 돼기라도 한다는거야 뭐야... 잠깐 사이에 수북하게 썰린 당근 더미를 거의 넋을 잃고 쳐다보는 홍기의 시선에 괜스레 더 무안해져 슬몃 칼 질의 속도를 늦추었다. 체.... 내가 언제 요리하기 귀찮댔지, 요리 못한다고 했냐? "양재성.." ".....어?" 1학년 부장 녀석이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또 움츠러 들어버렸다. 표정이 차갑기만한게 "그만 꺼져"란 말이 금새라도 그 굳입 입매에서 튀어나올 것 같다. 그냥 하릴없이 쳐다보고만 있으려니까 녀석이 뭔가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슬쩍 내밀어보였다. 에에..... 이건.... "이것도 좀 썰어줘." ".......그래." 잠깐 우리 쪽으로 쏠렸던 시선이 치르르르...하는 기름소리와 함께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왠지 오늘 만드는 볶음밥은 진욱이나 지훈이 녀석한테 못 가져다 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끔은 내가 만든 것 직접 먹어보는 것도 괜찮겠지 뭐.... Chapter 14. 요리부..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13) [으....음..... 역시 칼 질이 낫지 않을까?] [......아냐... 너무 위험해. 손이라도 베면...]. [그럼, 부치고 튀기는 것?] [..........역시.... 불안해.....] [설겆이는.....?] [.....그릇이 깨지기라도 하면......;;] [재료라도 나르게 할까....?....] [...................너무 무겁잖아..] C.A. 를 처음으로 시작하던 어느 토요일 오후.. 요리부 1학년 부장인 임동석군은 아무리 뜯어봐도 도저히 시킬 일 없이 생긴 한 소년을 보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낮잠이나 자게 둬야 겠다.. ] Episode. 임동석 군의 고민.. End.========================================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14) "빌...어...먹...을..." 재성이의 두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꽤나 오래 울고 있었던 모양인지 눈시울이 토끼처럼 붉그스레하다. "재성아, 괜찮냐?" "....뭐... 그냥....."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민우에게 대충 얼버무리듯 대꾸한 재성이의 입가에 다시 각종 쌍소리들이 고이기 시작했다. 꽤나 험악한 그 욕들이 칭하고 있는 대상은 다름아닌... 양파...;;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욕 가운데 간간히 동석군의 이름이 섞여 있는 것으로 봐서.... 아까 한 바구니 동석군이 떠넘기고 간 것이 바로 이 양파 였던 모양이다. 원인 제공자인 동석군... 흘낏 흘낏 재성군 쪽을 넘보는 눈길이 왠지 즐거워 보이는 것은... 그저 착각이겠지?? Episode. 양파.. End.============================================== == 정말로 오랫만에 찾아뵙습니다.. 시험 끝난지 꽤 지났는데, 이제야 14편을 올리네요.. 이젠 전편과의 텀을 세보는 것이 두려워집니다..-_-;; 어떻게 어거지로 한 편 써가지고 오긴 했는데.. ......ㅠ.ㅠ 과연 제대로 쓴건지는 잘..... 항상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좀 잡소리가 많고 횡설수설이랍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므흐흐한 장면도 없고요..-_-;;쿨럭.. 너무 미워하지 않으실꺼죠? 아... 그리고...... 이번에는 제 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하고픈 이야기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메일로 감상을 주신 분들이 계시는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워낙 답장이 늦습니다. 으...음.. 원래 글쓰는 속도가 느리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편지글이 가장 더디거든요..;; 속도는 느려도 편지쓰기는 좋아하기 때문에.. 답장은 언젠간 꼭 갑니다..-_-+ 불굴의 의지로 조금씩만 기다려 주세?.ㅠ.ㅠ 두번째는 소설 메일링과 퍼가시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사실, 제 글이 별로 비싸게 굴만한 수준의 것도 아니고 저도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시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소장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시면, 황송스러울 따름이죠.. 하지만, 메일링은 앞으로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앨슘은 불펌방지 태그가 있어서 제가 일일히 소설을 한 편 쓸때마다 한 번씩 메일로 보내드려야 하는데.... 사실 그 작업 역시 만만치가 않답니다..ㅠ.ㅠ 퍼가시는 문제 역시 같은 이유로 당분간 글이 정리 될 때까지 제한 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퍼가시는 분들은 계속 보내 드릴 거고요..^-^ (-_ㅠ 퍼가신다는 분이 더 계시기나 할지...;;;;;) 어휴... 후기에 너무 딱딱한 이야기만 써버렸네요.. 오늘은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있었더니... 지금 머릿속이 어질어질.. 무슨 말을 쓰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감상 주신 분들, 또 읽어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면서.. 또 몬스터규님의 건강을 빌면서... 불초 epata 이만 물러가렵니다.. (-_-;; 헉.. 너무 길다...;) 모두들 행복한 나날 되시고, 평안하세요~~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5) "야.. 여기 주목 좀 해봐!! 그러니까 이번 체육대회 때..." [웅성웅성웅성...] "우리 반 각 종목 대표랑 응원할 것 준비해야 되는데.. 자원 할 사람이나 의견 있는 사람...은 좀..." "기현아, 우린 농구 나가자.." "농구??" "야!! 여기 5명... 농구 지원이야.." "뭐야? 아직 얘기 다 끝나지도 않았잖아. 새끼들.. 니 멋대로 끝내는게 어딨어?" 지훈아! 여기도 농구 지원.." "씨발.. 선착순으로 하는거지, 뭘 또 나서고 자시고야? 니네가 그렇게 농구를 잘해? 꼭 실력도 안 돼는 것들이 개폼만 잡으면서.." "신기현..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좀 조용히하자!!!" 빌어먹을 놈들.. 이게 무슨 회의야.. 난장판이지. 반장이라고 나선 지훈이 말은 제대로 들어처먹지도 않고 지들끼리 히히덕 대던 것도 모자라서 이젠 싸우기까지 하는 녀석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혀가 끌끌 차였다. 지훈이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고, 칠판에 앞에 서서 판서할 준비하던 현우 녀석은 못 내 짜증스러웠는지 분필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아무리 나 혼자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세상이라지만, 이건 좀 심한듯 싶다. 저희들 딴에는 필시 이런 회의따위 우습다고 무시하고들 있는 모양인데.... 내 눈에는 지지배배 목이터져라 떠뜨는 인간들 꼴이 훨씬 우습다. 이유야 어쨌던 간에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는 집중 못하는 초등학교 저학년과 전혀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거기!! 신기현. 이준형.. 그만 싸우고 주목 좀 해!! 이거 오늘까지는 작성해서 내야 된단 말이야!! 응원 할 것도 빨리 정해야 하는데..." "응원같은거는 그냥 반장이 알아서 하면 되는거 아냐? 어차피 우리가 뭘 만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뭐하러 귀찮고 어수선하게 이렇게까지 해?" "............" 교실 어디선가 튀어나온 불만스런 말에, 지훈이 녀석의 표정이 잠시 딱딱하게 굳는가 싶더니만, 한 숨과 함께 결국 피식 웃어보였다. 아무튼... 저 자식은.... 평상시엔 잘 모르겠는데... 저렇게 나가서 반장 노릇 할 때보면 참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 남한테 싫은 소리 할 바에야 혼자 총대 매고, 뭐든지 열심히,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하긴... 저런 자식이 반장을 해야 뭔가 학급 일이 굴러가든 기어가든 진전이 있지, 중학교 때 애들보다 더 성질내고, 떠들고, 거만하게 굴던 반장 놈은 소풍가선 딴학교랑 패싸움까지 조장할 정도 끔찍한 새끼였다. 체.. 그 자식... 맨날 나만보면 시비걸고 찝쩍대곤 했었는데.....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어. "이봐들.. 그 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우리가 하기 싫다고 안 해도 되는 일이면 모를까..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인데 최대한 즐기면서 하는게 좋잖아. 내년이면 2학년이고, 또 후년이면 3학년인데...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합법적으로 모여서 놀 기회가 얼마나 있겠냐? 니들한테 많이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조금만 협조해줘." "............" 다소 뻔하고 유치한 발언이었지만, 어쨌든 지훈이의 타이르는 듯한 한 마디에 교실 분위기는 꽤 차분해졌다. 리더쉽이란게... 뭐 저런거구나.. 그런 기분이든다. 똑같은 말이라도 어딘지 설득력있어보이고, 부탁하는 어투를 쓰면서도 당당하게.... 본인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몰라.... 좀 멋있어 보였다는거.. 얘기해 주지 말아야지. "체... 웃기고 있네.. 반장이라고 나서기는..." 바로 옆분단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나가있는 지훈이나 교실 전체에 들릴 만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나나 진욱이.. 주변의 아이들 귀에는 충분히 들릴정도의 비아냥 거리는 억양..... 글쎄.... 뭐 대놓고 이런 녀석들을 질타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거슬리는 종족들이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론 반의 단합이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저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녀석들 때문이었다. 사실 반 애들을 쭉 훑어 보면 나와 마찬가지로 나서서까지는 아니지만 시키면 열심히 하는애들이 대부분이다. 결국은 단합이 돼고, 안돼고는 분위기를 잘 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렸는데..... 그 분위기란 것을 꼭 적절한 타이밍에 저 따위로 흐리는 녀석들 덕에 하루면 끝날 일이 이틀걸리고, 일주일 걸리고, 결국은 해결 못하고....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어디 한 두번이랴.. "새꺄..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야?" 이런.... 내 뒷자리 청년은 이런 놈들한테 대놓고 뭐라고 하는 타입이었지.... 박진욱도 필시 저 소릴 들었을텐데 깜박했구만.... 아무래도 일이 커질 것 같기에 진욱이를 말릴 생각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하지만 그.. 비협조적인 부류의 인간... 그러니까 신기현도 박진욱 못지않게 막나가는 녀석이었던터라 내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저편에서 의자끄는 소리가 났다. "그래... 말이라고 했다. 내 입가지고 내가 말 하는데.... 니가 어쩔꺼야!!" "터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줏어서 막하는 거야? 하는 일도 없는 새끼가 뭘 잘 한다고 난척이야!! 씨발, 너는 그나마도 나서기나 해봤어? 어디서 겉멋든 짓 아니면 쳐다도 안보는게....... 정말 웃기지도 않아." "진욱아... 그만해! 교실에서 무슨 소란이야.. " "야...빨리 말려봐.. 말려.." "박진욱!!! 너야말로 어디서 역겹게 범생인척이야!!! 씨발!! 공부도 못하는게......!!!!" [쿠당탕탕...] "야!!! 니들 그만 안해!!!" 교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지훈이 녀석이 심상찮은 분위기를 짐짓 눈치채고 끼어들었지만 어느새 두 녀석 다 주먹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거 놔!!! 내가 저 새끼 처음 볼 때부터 맘에 안 들었어!! 오늘 누가 죽는지 어디 해보자.." "누가 할 소릴... 십새끼야.. 너야 말로 재수 없었어." "그만해... 야.. 기현아.. 니가 참아." "내가 참긴 뭘 참아...!!" 민욱이와 준혁이.... 그리고 그밖에 기현이 패거리들이 달려들어 기현이를 저지했다. 나? 당연히 혼자서 진욱이 녀석한테 간신히 매달려있지.. 아악!! 이현우!! 송지훈!! 보지만 말고 와서 같이 좀 잡아달란 말이야!!! "양재성.. 놔." "싫어." "놔!! 저 새끼 하는 소리 못 들었어? 내가 저번에 너 한테 그따위로 굴었을 때 아주 죽여놨어야 됐어.. 얼른 놔." "싫어." "너..... 그냥 밀쳐 버린다..." "맘대로 해." 야만인... 너는 니 맘에 안들면 그렇게 주먹부터 올려붙이냐? 나한테 신기현이 뭘 어쨌다고, 헛소리인건지.... 아무튼 지 멋대로인건 알아줘야 된다니까..... 녀석의 팔이 또 거세게 들리는 통에 하는 수 없이 두팔로 꽈악 끌어 안아야 했다. 저번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내놈들 끼리 징그럽게 부둥켜안고 아침부터 이게 대체 무슨 진땀빼는 짓인지 모르渼? 뭐..... 다행히 내가 필사적으로 잡으니까 마음약한 박진욱은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움직임을 점차 누그러뜨렸다. 휴.... 한숨 돌렸네.... 아무튼 생긴 것 답지않게 마음은 여리다니까..... "야!!! 박진욱!!! 너 안 떨어져!!!!! 당장 그 손 못 치워!!!" 그런데.... 신기현 저 새끼는 뭘 보고 갈 수록 발광이다냐...... 떨어지긴 뭘 떨어지라는거야.. 갑자기 게거품까지 물고 지랄이네.. 아무튼 제 멋대로 생겨먹어가지고는....... ======================================== "어휴... 그러면... 일단 학급비에서 쓰고, 모자라는 것은 나중에 조금 더 걷던지 하자." "학급비로 될까? 얼마 안 남았을텐데..." "일단은 내가 메꾸지 뭐... " "뭐.... 정 그러면 나도 많이는 아니지만 보태줄께." "고맙다. " "됐어.. 나중에 다시 받을 돈인데 뭐..." 하아.. 임원이란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눈 앞에서 정신없이 돈계산을 하고 있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머리가 어질어질 해지는 것 같다. 뭐가 이렇게 챙길 것이 많은거야? 피켓, 풍선, 색지, 음료수.... ....에? 술???? "뭘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봐?" ".........." 그럼 안 놀라냐? 학교 체육대회때 술이라니... 나이도 몇 살 안 처먹은 것들이 무슨 낮술이야!!! 반 애들이 46명인데.. 무슨 수로 그 인간들한테 다 술을 먹이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자니, 현우가 반듯한 글씨로 그 옆에 뭐라고 적어내려갔다. [술 - 양재성] "............뭐지.. 그 연관성 없어보이는 메모는?" "으음.... 뭐 다수를 위한 소수의 숭고한 희생이라고나 할까... 너 하나만 고생하면 우리 모두 기쁨의 나날을 보낼 수 있단다. 재성아.." "........송지훈.. 괜히 뻔지르르하게 돌려얘기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 무슨 짓이야??" "그을쎄........." 체... 꼭 아저씨같이 느물거리기는..... 설마.... 나더러 술을 사오라는 건가? 아니면 숨겨서...? 하기사... 돈만 넘겨주면 술 쯤이야 간단히 사올 수 있기는 한데....... 여러가지 추측가능한 사항에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현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노트 여백에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뭐야? 저건? 저것도 그림이라고 그리는 거야? 저 뼈다귀가 혹시 사람인 건 아니겠지? 손에 든 저 털뭉치 같은 건 또 뭐야? 미친놈 보는 듯한 눈초리로 내가 쳐다봐주니까 현우녀석이 불길하게 씨익 마주 웃어보였다. 그러고는 옆에다 그림과는 대조적인 깔끔한 글씨로 또박또박 한 마디 적어내려 갔다. [치어리더 양재성..] .................................................. .......... 아아아아악!!!! 이런 베라먹을 새끼들... 이 술이란게 유독성 알콜 음료가 아니라.. 기집애들이 들고 흔드는 그 털뭉치란 말이야???? 그딴걸 나보고 들고 설치라고?? 서...설마..... "......내가 사오기만 하면 너희들이 알아서 한다는 의미지?" "아니. 우리가 제공해주면 니가 알아서 한다는 의미야." ".................." 미친.....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었기에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무시해 버렸다. 어디 사람을 매도 할게 따로 있지.... 치어리더가 다 뭐냐? 그래... 뭐 남녀평등사회니까 남자가 할 수 있다고 치자. 그렇지만, 왜 내 이름이 거기에 들어가는 건지는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막말로 내가 생글생글 잘 웃기를 해. 아니면 수다스럽게 말이 많기를 해,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기를 해..... 이현우.. 일전에 니가 나한테 인상드럽다고 한 것, 아직까지 안 잊어먹고 있는데.. 아쉬울 때 되니까 싹 입씻는거냐? 아무튼 내가 너 처음 볼때부터 치사하고 쫀쫀한 인간이란거 다 알아봤어!!! 우리반 이번 응원테마가 엽기, 호러.... 이딴게 아닐지 심히 걱정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떤 놈이 맨정신으로 나같이 우울한 인간을 그런데다 내세우려 하겠느냔 말이다. "그러면.. 치어리더 해결됐고... 나머지 응원은 내가 나서든지 어쩌든지 해서 대충 해보지 뭐... 솔직히 자신은 없다." "너 정도면 잘 할꺼야. 누가 방해만 않는다면 말이지.." "난 빼." "어휴.. 또 앙탈이냐? 어차피 하게 될텐데.. 뭐..." "............무슨 수로?" 자신만만한 송지훈의 어투에 기분이 좀 언잖아져, 일부러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지훈이 이 자식 오히려 여유만만하게 웃어보이는 것이 아닌가... "비.밀. 이야.." "............." 굉장히 불길하다.. 저렇게 느끼한 표정, 느끼한 말투..... 송지훈이 저런 식으로 나온다는 건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건데.... 내가 무슨 뜻인지 고민하며 또 다시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사이, 두 녀석 다 어느 새 심각해져서 다음 안건을 놓고 계속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지금 모집할 것이... 계주 4명, 농구 5명, 축구 12명, 피구 40명, 씨름 2명.... 뭐... 이정도인가?" "피구는 그 날가서 아픈애들이나, 다른 경기 중복되는 애들 빼면 되는거고.. 솔직히 종목별로 인원수 메꾸는건 어렵지 않은데..... 하겠다는 애들이 많아서....." "으음... 당장 모레부터 예선전에 들어가야 되는데..." "농구쪽으로는 특히나 애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제비뽑기를 하던지 해야될 것 같다." "글쎄.. 그치만 그렇게 되면 안 친하던 애들끼리도 무작위로 들어갈텐데?" "방법이 없잖아.." "흐으.. 이거 정말 머리아픈데....." 으음.... 농구라.... 솔직히 나가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 두 녀석 가뜩이나 골치썩는데 거기다 대고 나도 어쩌니 얘기하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도움은 못되니 방해라도 말아야지. 하기사.. 막말로 누가 나같은 걸 반대표랍시고 내세우겠어? 키가 큰 것도 아니요, 체격이 좋은 것도 아니요... 특별히 비리비리한 것 역시 아니지만, 아무래도 운동에 탁월한 재능있는 놈같진 않지. 그래... 솔직히 실력도 지훈이나 진욱이 보다 조금 나은 거지 별다르게 내세울 정도도 아닌데 뭐.... 애초에 나란 인간이 어디 나선다는 것 자체도 적응 안 되고 하니 그냥 구경이나 해야할지 싶다. "그러면 애들 의견 한 번 더 들어보고, 정 수가 안 나거든 제비를 뽑든지 어쩌든지 하자." "어디 말을 들어먹어야 말이지. 이래가지곤 정말 끝이 없어." "....에휴......... 뭐 할 수 없는 거잖냐. " "욕 안 먹고, 딴 소리 안 나오게 하려면 제비뽑기가 적격인데... 그러다가 정말 아니다 싶은 인간끼리 붙어서 더 큰 난리 나는건 아닐지 모르겠다." "하기사.... 나도 박진욱이랑 신기현이랑 붙여놓게 되는 상황은... 생각하기 싫은데..." 박진욱, 신기현... 요새 우리반에서 알아주는 앙숙이긴 하지. 그런데... 대체 왜 두 녀석이 그렇게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걸까? 진욱이 녀석은 성격이 워낙 단순하고 시원시원해서 아는 놈 모르는 놈 할 것 없이 늘상 부대끼고 장난치는데, 유독 기현이 앞에서만은 찬바람이 쌩쌩이다. 어쩔때는 도끼눈까지 뜨고.... 뭐.... 신기현네가 엄청 잘 산다더라.. 그래서 친구도 골라가며 사귄다더라.... 그런 소문을 얼핏 나도 듣기는 들었지만,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 나같이 빈티나고 사교성없는 인간 한테 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호의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나쁜 애는 아닌 듯 싶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긴 하지만서도.... 둘 다 옷도 잘 입겠다, 멋도 잘 내겠다, 노는 것도 잘 놀겠다... 보통 그런애들끼리는 파장이 맞는 것 같던데, 뭘 그리 왕왕 대면서 유난인건지.. "걔네 둘은 왜 그렇게 사이가 나쁜거래?" [.................................................. .................................................] 뭐야.... 이 두 녀석 왜 갑자기 대판 분위기 잡고 그런다냐... 고개를 푹 숙인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좀체 대답이 없다. 나 없을때 진욱이랑 기현이랑 크게 싸우기라도 했나? "양재성, 너 정말 그 이유를 몰라서 묻는거야?" "그럼, 내가 알면서도 실없이 물어보겠냐?" "..............세상에.... 현우야, 양재성이 모른단다. 그 이유를....." "....나도 들었어. 새삼 박진욱이 불쌍하군.." "무슨 잡소리들을 하는 거야?" "....ㅋ..ㅋㅋ...크큭..흐흐.." "푸흡..." "푸하하하하하하..." 이것들이 초여름 더위에 벌써부터 맛이갔나... 왜 저렇게들 웃고 지랄이야. 열심히 띠껍다는 표정으로 미친놈 대하듯이 쳐다봐 주었지만.... 개뿔도 안 먹히는 것 같다. 아이씨... 됐어. 내가 언제부터 이런 놈들 일일이 상대하고 있었다고... ========================================== "자, 그럼 지훈이는 이따가 점심시간까지 특기적성 신청서 걷어오고....... 나머지들.... 덥다고 너무 짜증만 내지말고, 기운 좀 내라. 나도 수업할 맛이 안 나잖냐... 자. 오늘 조회 이상." "차려. 경례." "감사합니다.." 대충 고개만 수그리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교실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정말이지 매일 보면서도 뭐들 그렇게 할 말들이 많은건지...... 가만히 앉아서 노트를 뒤적거리고 있자니 지훈이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봐들!! 빨리 특기적성 신청서 내라. 오늘이 마감일이야!!!" "야.. 안 가져왔는데... 어떻게 해?" "그럼 일단은 하나 그려서라도 내. 여기 하나 줄테니까.." "나도 안 가져왔어." "그럼 같이 보고 그려." "여기.. 전달... " "이거 이름 안 썼잖아. 누구꺼냐?" "모르지." "..............야!! 낼 때 이름하고, 반, 번호, 싸인해서 내!!" "......................" 그거들 좀... 신경써서 내주면 좋을텐데..... 내는 사람이야 그냥 가서 건네주면 되는 일이지만, 걷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경쓰이는 작업이다. 대부분이 필시 안 가져왔을테고, 어떤 애들은 귀찮다고 그냥 가방에 꿍쳐두고 있을테고....... 하는 품세를 봐서는 지훈이 녀석 오늘 하루 종일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야 할 것이 뻔하다. 내가 해야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왠지 짜증스러웠다. 그러게 저 녀석은 왜 저런 고생을 자처해가지고는.... "야!! 얼른들 내라!!!" ".................." 남들 다 쉬는 시간에 저게 하고 있을 짓이냐.. 항상 무심결에 지나치고 넘겨서 그렇지, 지훈이는 늘 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저렇게 걷어가는 프린트물만해도 거의 매일 한 건씩은 기본으로 있는 것 같고.... 그렇게 일하면서 어디 칭찬이나 한 번 제대로 저 녀석이 들은 적이 있었던가, 그나마 욕이나 안 얻어먹으면 다행이지. 뭐가 좋은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싱글싱글 거리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참 대단하단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답답한 기분도 드는 것 같다. 힘들면 좀 도와달라고 할 줄도 알아야지, 현우나 진욱이도 막무가내지만 은근히 저 녀석도 고집이 있어서 절대로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할 줄 모른다. 바로 뒤에서 내가 이렇게 빈둥빈둥 놀고 있는건 보이지도 않는다는거야 뭐야? 나서서 도와준다고 하기는 입이 찢어져도 싫고...... 쳇.... 그래 나도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는건 딱 질색이야.. 약간은 심통부릴 생각으로 일부러 신청서에 이름을 삐뚤빼뚤 적어서 지훈이 놈 책상에 던져주곤 밖으로 나와 버렸다. 니가 그 글씨를 어디 알아보나 보자.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 쳇... 불만은 무슨 불만.... '답답' 이라고 머리에 써붙인 것 같은 녀석을 아침나절 보고 있을 생각을 하니까 짜증났을 뿐이라고..... 그것보다 박진욱, 한 번만 더 이렇게 끈끈하게 달라 붙으면 가만 안 둔다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어깨에 올려진 녀석의 팔을 좀 신경질 적으로 뿌리쳤는데도 삐죽머리 녀석은 뭐가 좋은지 바보마냥 실실 웃어보였다. 어휴.... 넌 속도 없냐? "뭐... 가끔은 솔직해지는 것도 나쁘진 않을텐데.... 안 그래? " ".............." 뭐...뭐... 뭐라고? 뜬금없는 소리에 잠시 놀라 벙쪄있다가 무슨 헛소린지 되물으려 돌아보니 녀석은 벌써 저만치 떨어져서는 다른 놈들과 희희락락 대느라 정신이 없다. 손에 뭔가 묵직해서 쳐다보니 바나나 우유 한개만 덜렁덜렁. 어휴.. 저건 꼭 사와도 내가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사온다니까..... 말귀도 잘 못 알아 듣는 주제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노인네 말투는 또 뭐냐? 생각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교실 창문너머로 지훈이 대신일 것이 분명한 신청서 몇장을 집어 든 진욱이를 보고 있자니, 왠지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 [웅성웅성웅성........] "어디 봐봐.. 많이 다친거야?" "으윽.. 야.. 상처가 푹 들어갔어." "저거 부러진거 아니야.." "아악!! 마..만지지마. 아파.." 어휴.... 그러게 조심 좀 하지.. 농구 골대의 망을 제대로 한 답시고 골대에 기어올라갔던 수혁이 녀석이 굴러 떨어지면서 꽤 심하게 다친 모양이다. 주변으로는 우리반 아이들이 왁자하게 몰려들었다. 이거 정말, 체육 선생이라고 하나 있는건 맨날 어디로 날르고 자유체육이니....... 꼭 필요할 때 보면 눈에 띄이지도 않는다. 축구공 하나 뻥차주면서 저기 가서 놀아라. 아니면 농구공 몇 개 던져주거나, 매트 깔아주거나 하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코빼기도 안 비치는 것이다. 수혁이 녀석 표정이나 하는 양을 보니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닌가 싶어 다소 걱정이 되었다. "자... 다들 좀 비켜봐." "...어.. 지훈아?" "좀 조용히들 해봐. 부러졌느니 어쨌느니 하니까 얘가 더 겁을 먹잖아. 수혁아 일어설 수는 있겠냐?" "......잘 모르겠어." "일단은 한 번 일어나 보자. 별거 아니니까 겁먹지 말고... 아무나 와서 좀 같이 부축해줘." "어.. 알았어. 야, 빨리 부축 하자." 지훈이 녀석이 달려드니 어수선하게 웅성거리던 아이들이 정리 되었다. 하기사, 지훈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다. 얼마 안 아프더라도 옆에서 누가 부러진 것 같으네, 찢어진 것 같으네 하면 갑자기 곧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뭐... 아픈 것은 여전한 듯 싶었지만 수혁이도 일단은 진정한 모양인지 애들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절룩 거리면서라도 걸을 수 있겠어?" "어.... 그..그럭저럭..." "그럼 된거야. 뼈가 부러진거면 제대로 일어서 있지도 못해. 그냥 어디 접질린 거겠지. 크게 다친거 아니니까 안심하고 이대로 양호실 가자. 현우야, 나머지 뒷정리 좀 해줘. 선생님께도 알리고.." "어." "진욱아, 같이 부축 좀.. " "그래.. 간다." 지훈이가 수혁이를 데리고 양호실로 사라지자 소동은 거의 가라 앉았지만, 아무래도 아이들 역시 다시 공차고 놀 기분은 안 났는지 뿔뿔히 스탠드로 흩어졌다. 그간은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쨍쨍 쬐는 햇볕이 못 내 따끔거린다. 사람들 틈에 끼어있던 탓인지 옷도 땀으로 범벅.... 스탠드 가장 깊숙한 그늘을 찾아 들어가 털썩 주저 앉았다. 아직은 초여름이라서 그런지, 볕이 나는 곳은 타는 듯이 뜨거워도 그늘은 기분 좋을 만치 서늘하다. 가만히 고개를 무릎에 묻고 있자니 머릿 속이 멍.. 한 것이 텅 비어버리는 느낌이들었다. "왜 혼자 앉아 청승이야?" "................" 청승? 뭐... 이러고 혼자 앉아있으면 그게 청승떠는 것 처럼 보이던가? 누구인가 싶어 고개만 살짝 소리나는 쪽으로 돌리니 기현이가 내 옆자리에 털썩 앉는 것이 보였다. 사람이 다가오면 끼쳐나오는 후끈한 열기에 몸을 슬쩍 옆으로 뺏더니 그만큼을 또 내 쪽으로 이 녀석이 다가와 앉았다. 체... 넌 덥지도 않냐? "....더....워... " "그래?" 좀 떨어져 앉으라고 한 소리였는데 이 녀석 대답만 하곤 무슨 전단지 같은 것을 주워 꼬깃꼬깃 접기 시작했다. 뭐 하는거야? 하는 작태를 고개만 계속 보고 있자니 녀석이 열심히 접던 것으로 얼굴을 살살 부쳐주기 시작한다. 혹시 부채를 접고 있었던 건가? 아무튼... 참... 황당한 놈이라니까... 평상시 같으면 유치하다느니 어쩌느니 한 마디 쏘아줬을 테지만 얼굴에 살랑살랑 나부끼는 부채바람이 싫지만은 않아서 잠자코 있었다. 아아.... 이거... 슬슬 졸린데..... 시원하고.... 나른하고...... [덥썩........] "으아아아..." "뭐..뭐야?" 막 잠이 들려는데 뒤에서 누가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어 번쩍 일으키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신기현도 놀랐는지 아랫쪽에서 올려다보는 얼빵한 시선이 느껴진다. "가자." "..........놀랐잖아. 말로 해." 현우 녀석을 다소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니 녀석이 갑자기 생글 웃으면서 입을 달싹였다. 아아.. 저놈의 보조개... "나도 박진욱 만큼이나 참을성 없는 인간이라.." ".........." 뭐야.... 그 헛소리는 또.... 그리고 나한테 하는 말이면 날 쳐다보고 할 것이지.... 왜 눈은 신기현을 잔뜩 야리고 있냐? 현우 녀석도 신기현하고 사이가 나빴던가? 잠시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현우가 갑자기 팔을 잡아 끌고 성큼 성큼 걷기 시작했다. 좀 천천히, 천천히 가자. 지금 졸려 죽겠단 말이다. ================================================ "특기 적성 신청서 내라!!! 아직 열명이나 안냈어!!!!" "..............." 저거 천하장사 아냐? 자율 시간 내내 악 써가면서 애들 조용히 시키고, 쉬는 시간마다 자리 지키고 서서는 애들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신청서 걷고 있고, 체육시간에는 그 덩치 큰 수혁이를 싣어다 날랐지, 담임한테 알린 답시고 여기저기 찾으러 뛰어다녔지, 미친개한테 잘 못걸려 수학시간 내내 연습문제 풀이를 혼자 다했지....... 그 것 말고도 틈틈이는 현우와 앉아서 체육대회 참가자 의논하고...... 체육이 1교시 였는데, 점심시간인 지금까지 계속 땀에 절은 체육복 차림이다. 필시 갈아입을 시간도 없었을 테지. 뭐. 특별히 사람 관찰하는 취미는 없지만 어쩌다 보니 오늘 하루 지훈이 녀석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까 짐작은 했어도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잖아... 차라리 그냥 넘어가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한 편으론 무관심 했던 스스로가 좀 싫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솔직히 나도 저런 일 안 해본건 아닌데...... 아까 얘기했던 그 재수없는 중학교 때 반장 놈.... 실은 그 빌어먹을 새끼 밑에서 부반장이란 정신나간 짓거리를 하던 인간이 바로 나였다. 내 생각에는 애초에 그 반장 선거부터가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반장 하면 간식이니 뭐니 다 빵빵하게 돌려줄께." 그 한 마디로 과반수 이상의 표를 쓸어버리다니...... 그런 말로도 반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만 너무 놀랐던 터라 내가 왜 부반장이 되었는지는 나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대충 구색을 끼워 맞추다보니 어디 끼워놔도 별로 눈에 안 뜨이는 나같은 놈이 그 사이에 들어가게 된 거겠지. 하아...... 차라리 내 쪽으로 책임이 일임되는 것이면 모를까.... 모든 일은 그 자식 손에 머물러 있다가 해결 못하고 최종적으로 전날이나 당일에야 내 쪽으로 통보가 되는 터라 1년간 정말 성질 죽이느라 미치는 줄 알았다. 아마 졸업하던 날 그렇게 폭발하지만 않았으면 부처가 되어 하늘로 승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멘...;;) 학급 임원일이란게 고된 것도 고된 것이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모든 것이 제자리 걸음이라는 사실이 나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반 아이들의 냉담한 반응. 조금만이라도 호응해주었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텐데..... 불행하게도 나는 지훈이 만큼의 열정이나 책임감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해서 그 중학교 반장 놈처럼 나 몰라라 손 놓을 만큼 이기적이지도 못한 미적지근한 인간이었다. 졸업식 날 그 막 나가는 새끼를 그렇게 조져 놓지 않았다면 아마 홧병났을지도 모르겠다. 으음....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어린애한테 너무 큰 충격을 준건 아닌가 싶네.... 귀하게 자란 도련님이라 막상 대하고 보니 물러터졌던데..... 아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어쩌다가 여기까지 생각이 흘러든건지.... 나란 인간도 은근히 잡다한 것 같다. 지금이... 점심시간.... 이니까... 아차.. 교무실 가야 하는데.... =============================== [챙그랑...챙그랑......] 유리잔에 부딫치는 얼음소리가 듣기에도 못내 시원했다. 쟁반에 받쳐서 바로 앞에 살며시 놓아두니 역시나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의 얼굴이 밝게 확 펴졌다. 체.... 냉커피 많이 마시면 설사한댔는데... 이거 먹고 장염에나 걸려버려라!! "맛있게 드세요." "아... 고마워." "이거 시원한게 아주 맛있겠는데..." "..............." 나도 참 갈데까지 갔지... 이제 냉커피까지 타다 나르고 있으니.... 원래는 막무가내로 된 냉커피를 타서 인간들에게 충격을 준뒤 이 터무니 없는 심부름에서 벗어난다....가 나의 최초 각본이었지만 요리부 기장놈이 직접와서 타는 법을 알려주고 가는 바람에 전부 허사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담임이 가르쳐주라고 했다지만, 꼭 그래야만 했던거냐? 아무튼 인간이 너무 성실해도 남한테 피해를 준다니까..... "요새 애들이 생각보다 잠잠한 것 같아요. 보통 날씨가 더워지면 분위기가 묘해지는데...." "그러게요.. 작년 이 맘때쯤에는 무슨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는데 말이에요." "3학년들한테는 올해 에어콘을 달아줘서 그러나? 너무 조용하니까 오히려 허전한데요.." "하하... 그러게요. 전에 있던 학교 애들은 막 데모도 하고 그러던데..... 뭔가 하나 크게 터져도 심심하지 않고 괜찮을 것 같네요." "유리창도 몇 개 깨부수고..." "이왕이면 칠판도 어떻게 좀 해줬으면 좋을텐데..... 너무 낡아서 글씨가 잘 안 써져요." "........으음... 그게 부숴질라나?" ......저....저게 나른한 여름 날 오후 밝은 햇살아래 앉아 냉커피를 유유히 마시면서 한없이 인자롭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교사들이 해야할 이야기가 맞는걸까....... 정말이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지난 번에는 여자 화장실 훔쳐보다 걸린 녀석이 화젯거리였는데 두 사람의 의견은 사진도 남지기 않고 혼자만 재미 본 놈은 용서 할 수 없다. 자신이라면 좀 더 지능적인 방법을 썼을 것이다.... 라면서 여자 화장실을 공략하기 위한 갖가지 의견들을 교환했다. 저 두선생 보고 분위기 있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수군대던 여선생들이 들으면 정말 까무라쳤을지도...........;; 연이어지는 살벌한 대화에 구석에 움찔 거리고 서있으려니 저만치서 낯익은 인영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어...... 송지훈? "선생님, 특기적성 신청서 다 걷어왔는데요." "어.. 그래. 수고했다." 담임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잠시 내려놓고는 지훈이가 내미는 것을 받아 한쪽으로 쌓아두었다. 보아하니 필요는 하되, 중요하지 않은 서류인 모양이다. 오늘 하루 종일 소리 빽빽 질러댄 댓가가 고작 '수고했다' 한 마디라니..... 아까 잡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땀냄새 풀풀 나는 체육복을 입은 등신새끼가 조금 안쓰러워 질려고 그런다. 아아... 정말 마음 약해지면 안되는데......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담임과 지훈이가 뭔가를 의논하는 사이에 시원한 생수에 얼음을 넣고 있는 나 역시 약간은 멋대로 생겨먹은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 그럼 그렇게 애들한테 전달하면 되는건가요?" "어.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 지훈이가 체육대회 때문에 일이 많네." "아녜요.. 제가 뭐 별거 한다고.." 체..... 그게 참 별 것 아니기도 하겠다. 애써 안 힘든 척하며 웃어보이는 녀석의 꼬라지 하며, 필시 지훈이한테 또 일거리를 떠 넘겼을 담임의 면상을 보고 있자니 웬지 심술이 나서 대화 중간에 얼음든 물 컵을 불쑥 내밀었다. 두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옆에있던 국어 선생님까지 내가 갑자기 끼어드니 놀란 표정이다. 뭘들 그렇게 봐? "더운데... 물이나 마시라고..." ".....어.......고..고맙다." "............." 뭐야... 이 녀석 답지 않게 왜 또 더듬고 그러냐? 어쭈? 컵은 또 두 손으로 받아? .................누가 보면 정말 오해하겠다. 내가 맨날 너 괴롭히는 나쁜 놈인줄로.... "이야.... 이거 정말 누가 보면 오해 하겠네." "하하.. 국어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 "............아..아니 선생님.... 그게....." "............." 이 사람들 정말 귀신이네... 사람 속마음 찌르는데는 뭐 있다니까.... 허겁지겁 다시 말을 더듬어 가며 옆에서 물컵을 들고 어쩔줄 몰라하는 지훈이 놈이 안쓰러워서 다시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하기사, 나같은 인간한테 쫄아붙는건 니가 생각해도 망신 이겠지. "저 지훈이 겁준적 없어요. 괜히 오해하지 마세요." "............." "............푸흡..." "...하하하... 그래... 그렇겠지..." 갑자기 웃어 제끼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다시 엄청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아... 정말... 송지훈.. 너라도 뭐라고 한 마디 해봐? 아까는 그렇게 소리도 잘 질러대더니 입이 붙었냐? 그렇게 쭈빗뚜빗 서있기나 하고... 내가 진짜..... Chapter 15. 반장. End =================================== 아.하.하.... 텀을 조금 줄였습니다..-_-;;; 주....줄인 거죠? (오랫만이라는 인사를 애써 회피하는...;;) 사실은 체육대회가 상당부분 이어지기 때문에 이어서 올릴 생각이었는데 그러려면 또 월간 연재 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잘랐습니다.. 덕분에 내용이 허...허술...쿨럭..(기침으로 무마..;;)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상 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리고요.. 귀영님.. 오늘 생일 축하드립니다. ^-^ (저.. 약속지킨거지요?) 선물은 못 드리지만 엄청나게 특별한 행운이 있으시길 빌어드릴께요. 그럼... epata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나날 되세요~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15) 커피잔을 들고 지훈이와 함께 교무실을 나서던 재성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왜...얼음은 안 먹어?" 아까 물 한 컵 건네면서 얼마 없는 얼음 선심쓰고 넣어준 것인데 지훈이가 물만 꼴랑 마시고 얼음은 먹지 않으니 재성이의 딴에는 그 것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가 많이 안 좋아서 못 먹는가 보다.' '얼음 먹다 배탈이라도 난 걸까?' '아니면 좀 녹여서 먹으려나?' 등의 잡생각에 벌써 사로 잡혀 버린 듯 표정은 어느새 멍하니 백지 상태로 변해버렸다. "이건 따로 쓸데가 있어서....." "쓸데?" 지훈이를 살짝 올려다보며 반응을 보인 얼굴은 금새 돌아서면서 다시 공상.... 하지만 잠시 후, 뭔가가 등골을 차갑게 훑는 느낌에 재성은 몸을 빳빳히 굳혔다. "으아악!!! 바...박진욱!! 너..!! 너!! 어디다가 얼음을!!!!" "하하.. 물 잘 얻어마셨다. 나 먼저 가볼께..." "........저...저걸....." 지훈이가 와이셔츠 속으로 흘려보낸 얼음조각을 열심히 찾아보려던 재성은 그새 귀찮아 졌는지 그냥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언젠가는 다 녹겠지 뭐......" 참 대단한 성격이다. 그러니 주변 인간들이 그렇게 속터지지....;;; Episode. 얼음. End=============================================== =======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6) [쾅!!!!!!!!] "시끄러!! 다들 입 닥쳐. 이래도 싫다. 저래도 싫다. 그럼 나 보고 어쩌란 거야? 그래, 그 놈의 실력 누가 더 나은지가 지금 니들 관건인 모양인데..... 너희들 뜻대로 해줄테니까 니들 맘대로 해. 끝나고 한 명도 빠짐없이 운동장으로 나와. 어디 어느 새끼가 제일 잘 하나 두고 보자고.." [................................................. ................................................... ................] 미쓰리 현재 폭주중... 아아... 세상에...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으면, 다들 조용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함지르고 서로 뒤엉켜 싸우는 짓은 관뒀어야지. 현우 녀석, 아까 방송실에 갔다가 얼굴에는 시뻘건 손자국에 입술은 터져가지고 돌아와서는 박진욱이 시비를 걸어도 줄창 분위기만 잡고 있더니, 결국엔 저렇게 다마가 나가버렸다. 궁시렁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긴 하지만, 어느 놈 하나 선뜻 크게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은.......... 아마 풩躍??죽여버린다 라고 외치고 있는 저 표정 탓이겠지. 옆에 서 있던 지훈이는 크게 동요하는 것 없이 한 숨만 한 번 푹 쉬더니 다시 회의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뭐... 사실 말이 회의지, 거의 진척 사항은 없다. 한 쪽에서 자는 애 따로, 노는 애 따로, 떠드는 애 따로..... 의견 하나 나오면 줄창 딴 짓하다가 끼어들어서는 딴지 걸고, 그게 좀 심해지면 한 판 붙고. 당장 내일이 농구 예선인데, 6교시에 선생님께 양해를 얻어 하는 긴급회의에서 조차도 계속 상황은 이 지랄이다. "이봐들.. 방금 거는 그냥 현우가 흥분해서 그런거니까 그냥 잊고...." "오늘 방과 후에 안 남고 튀는 새끼들은 내가 다 조져버릴 줄 알아." "이현우..." "농담 아니야. 다 남아." 빌어먹을 새끼... 화가 나면 그냥 난거지. 소름끼치게 씨익 웃기는 또 왜 웃냐? 잘 생긴 얼굴이 아깝다 아까워. 그 얼굴 달고 고작 써먹는데가 위협용이냐?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 자리에 엎드리니, 교실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와 함께 조용하던 교실이 약간 소란스러워졌다. 시간 준다고 나갔던 과학선생님이 다시 들어온 모양이다. [드륵...... 덜컹...] 이런... 저 괴물딱지가 내 짝이었지? 옆에서 들리는 의자 끄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저런 살기를 근처에서 받고 있으면 몸에 크게 해롭지 않을라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신경쓰이긴 했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박진욱처럼 화난 녀 석 더 찔러보는 어리석은 취미는 없기에 엎드린 그대로 가만히 있으니 누가 등을 툭툭 치는 느낌이 났 다. 진욱이 새끼가 또 시비거는가 싶어서 꼼짝 않고 있으니 집요하게 툭툭 쳐댄다. "뭐야?" "어? 뭐...." 짜증스럽게 돌아보니 진욱이 녀석은 제 짝이랑 뭔가를 끄적대면서 막 열을 올리는 중이다. 혹시나 제가 그래놓고 시치미 떼는 것은 아닌가 싶어 슬쩍 노려보니, 표정이 뻐엉 한게 정말로 아닌 듯 싶다. 장난 친 거 였으면 지금쯤이면 낄낄 거리면서 뒤집어질 타이밍인데... 이상하다 싶어 자세를 돌려 앉으니 옆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청년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아아... 깜박 잊었었다. 이 녀석 보기보다 심약했었지... "........잘했어." "....................." "...넌 잘 못한거 없어. 잘 한거야." "....................." 귀엽지 않은 놈 같으니라고... 위로받고 싶으면 그렇다고 말을 할 것이지, 시위하는거냐 뭐냐? 더 이상 할 말도 없고해서, 좀 어색한 감이 있기는 했지만 손을 들어 녀석의 머리를 헝클어주었다. 그제서야 꼿꼿하던 녀석이 좀 풀어지는 느낌이다. 하기사, 요새 제 딴에도 생각이 많았을거다. 반장만큼은 아니라지만 학급 운영이란게 그렇게 만만하게 뵐 것만은 아니고, 방송실 일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장난이 아닌 듯 싶고...... 이제까지 겪어본 바로는 성깔있어보이고, 대가 센 놈들은 정작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한 마디도 못하는 바보 천치가 대부분이었다. 아파 죽을 것 같아도 끝까지 버티고, 힘들어도 애써 안 힘든 척하는 왕바보. 현우 이 놈, 필시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절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안 해줄테지만 말이다. 글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공감은 할 수 없는 성격이라고 해야하나? 나와 현우 모두 무뚝뚝하다는 점은 비슷한 듯 싶지만, 그 속내는 전혀 다른 것 같다. 나는 정말로 아무 느낌이 안들어서,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어 버리는 반면에, 현우 저 녀석은 할 말이 있는데도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느낌이 강하다. 인생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 한편으론 나와는 생판 다른 성향이라 그런지 약간은 대단하다 싶기도 하다. 저렇게 일일히 뭐든지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고집하며.... 어쩌면 저렇게 복잡한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정도로 컨트롤이 되는가 싶은지 하며... 멍하니 앉아서 머리만 계속 뒤적뒤적 거리고 있자니, 갑자기 녀석이 책상에 고개를 묻었다. 덕분에 팔 아파서 그만 두려했던 동작을 한동안 계속해야 했다. 이거 뭐야.. 계속해 주세요.. 도 아니고... 손가락 사이로 사륵사륵 매끄럽게 잘도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의 느낌이 과히 싫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계속 진행하기엔 민망한 동작이었기에 잠시 더 하다가 손가락을 빼냈다. 내가 의도했던 것은 진욱이나 지훈이처럼 잠시 쓱쓱 장난삼아 헝클어뜨리는 것이었는데... 어째 내가 하고 보니 점차 머리카락을 빗겨주는 꼴이 되어가고 있다. 으음... 왜 난 뭘 해도 어설퍼보이는 걸까? 주춤주춤 힘겹게 손을 떼네니... 단박에 현우 녀석이 내쪽을 올려다 보면서 눈을 치켜뜬다. 체...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건데... 나보고 더 이상 뭘 어쩌란 거냐? 약간은 항의조로 어정쩡하게 손을 들고 잠시 쳐다보고 있으니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롭던 눈매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가늘어졌다. 어라라라... 이 새끼 또 웃네? 똑같은 표정인데도 아까와는 분위기부터가 다른 웃음.. 보기 좋기는 한데, 대체 어떻게 반응해줘야 될지 잘 모르겠다. 보통은 이렇게 하면 마주 웃어주지만, 내 웃는 얼굴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은 정말 최저였는걸.. 다들 얼굴 시뻘겋게 붉히거나 딱딱하게 굳히고.... 쳇..... 모르겠다. 내가 특별히 기분이 좋아서 웃어주시겠다는데 지가 어쩔꺼야?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보이려 노력하면서 입꼬리를 치켜올리니, 젠장..... 실실 쪼개던 기집애같은 면상이 갑자기 팍 일그러진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마. 아까 너 웃는 얼굴도 충분히 재수 없었어. "어디가서 그렇게 웃음 팔고 다니지마. " "............." 그래, 충고 아주 고맙다. 대놓고 인상 더럽다는 놈인데, 애초에 좋은 말을 기대한 내가 쳐죽일 놈이지. 이만하면 그래도 인간답게 생겼구만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모르겠다. 이런 모진 녀석 뭐가 이쁘다고 위로씩이나 해주려고 한건지.... 나도 성격이 물러서 탈이라니까... 무안한 기분에 다시 자리에 픽 엎어져 버리니, 다시 등을 툭툭 치는 느낌이 난다. 쳇... 내가 너같은 놈 다시는 상대해 주나 봐라. 어림도 없지. =================================== "야!!! 양재성!!! 너 어딜 도망가!!!!" "......시끄러. 남의 멀쩡한 귀가길을 도망친다고 함부로 매도하지마." "너!! 거기 안 서?" [탁.탁.탁.탁...] "야!! 야!! 너 열 셀때까지 이리 안 오면 정말 안 봐준다!!!" 그래, 앞으로 안 쳐다봐 준다는데 나야 고맙지 뭐.. 뒤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박진욱의 고함소리를 애써 무시하면서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건전한 청소년의 이른 귀가를 왜 저런 양아치 새끼한테 방해받아야 되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우가 남으라고 한건 남으라고 한거고, 내가 집에 가는건 가는거지. 굳이 나까지 끌고 들어가는 박진욱 저 녀석은 또 뭐냐? 내가 농구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뒤숭숭한 분위기에 끼는 것은 절대적으로 사양이다. 경기에 참가 안 할 사람은 그냥 집에 가도 되는거 아니냐고..... 부반장이 모두 모이라고 했으니 가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진욱이 녀석의 고지식함에 속으로 혀를 끌끌차며 지친 다리에 좀 더 박차를 가했다. 처음에 간격을 멀리 벌려 놓긴 했지만, 저 자식 뛰는 꼴을 보면 인간이 아닌 것 같으니까 뛸 수 있을 때 가능하면 멀리 떨어지는 편이 좋다. [덥썩......] "으아아...." "어딜 그렇게 뛰어가냐.." "......하악..하악......" 뭐야..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팔빠질 뻔 했잖아... 그렇게 갑자기 손목을 잡아채면 나보곤 대체 어쩌라는 거냐? 가빠오는 숨에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헥헥대고 있자니, 기현이 놈이 씨익 기분나쁘게 웃으면서 내 앞을 두팔로 가로 막았다. 뭐야... 하는 기분으로 밀치고 지나가려 했지만, 주제에 움직이는 건 꽤 잽싸서 어느 새 앞이 떡 하니 막혀있다. "........비켜." "어디 가냐니까.." "집. " "......그래?...... 혹시..... 오늘 시간있냐?" "............." ".......시간 있으면 우리집에 같이 안 갈래? "........싫어." 뭐야.. 썰렁한 새끼.. 내가 볼일도 없는데 니네 집엘 왜 가? 지나가는 인간 아무나 잡고 그렇게 물어봐라, 열에 아홉은 나처럼 대답 할 껄? 그러니까 제발 그 따위 불만에 찬 표정으로 좀 쳐다보지 말란 말이야!! 이 손도 좀 놓고!! "양재성!!!! 너....너... 이리 안 와?? 그 손 놓고 빨리 안 오면 정말 아작내버린다!!!" 으아아악!! 젠장할.. 벌써 여기까지 쫓아온거냐? 그렇게 잘 뛰면 이리저리 치여서 요새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우리 학교 육상부나 구제해 줄 것이지, 왜 나같이 평범한 학생을 괴롭히는데 악용하려는 건지. 정말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일단은 다급한 마음에 재빨리 신기현을 밀쳐내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장기전으로 가면 내가 불리한데...... "재성아!! 어디가!!!!" "너..... 일루 안와??" "박진욱.. 넌 또 뭐야? 왜 가만히 있는 애를 쫓아가고 지랄인데....." "시끄러... 양재성 잡고 나면, 네 녀석도 가만 안 둘줄 알아."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될까?" [탁.탁.탁.탁.탁....] 정말이지!!! 신기현!!! 넌 또 왜 쫓아오는건데!!!! 박진욱 하나 따돌리는 것도 버겁단 말이다.. 뒤에서 누군가가 쫓아온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만 조급해져 좀체로 속력이 나질 않았다. 자꾸 뒤만 돌아보면서, 가빠오는 숨을 감당 못하고 있자니.... 어질..하는 느낌과 함께 양 손목에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젠장.... 잡혔구나. "하악..하악........." "....너.. 한 번만 더 도망가면 그 땐..." ".......하..아...ㄱ... 그... 땐?" "재성아, 이런 자식 얘기 들을 필요 없어. 나랑 빨리 가자." "으아아!!" 그렇게 양쪽에서 잡아당기면 나보고 죽으라는 거냐, 뭐냐? 언제부터 지가 나한테 관심가지고 살갑게 굴었다고 갑자기 저렇게 편들어주는 신기현놈도 수상하고, 신기현과 사이가 나쁘다지만 오늘 따라 유독 더 지랄 맞게 구는 진욱이 녀석도 맘에 안 든다. 난 정말 집에 가고 싶단 말이야!! [턱....] "아....?" "..........." "..........." 양 손목이 허전하다고 느낀 순간, 누군가 뒷덜미를 잡고 끌고가는 통에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 했다. 이번엔 대체 누구인지, 그렇게 득달같이 덤벼들던 두 녀석이 갑자기 벙쪄진채 말이 없다. "...서...선생님?" "재성이는 내가 빌려간다." "..........." 아악!!! 담임이잖아!!! 남들이 들으면 다정하고 온화한 목소리라고 할테지만, 듣는 순간 몸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저런 목소리로 얼마나 엽기적인 얘기만 하는건지, 들어보지 않은 자들은 정말 상상도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이상한 국어선생까지!! 오늘 점심시간에 커피 심부름을 빼먹은 것 까지 떠올리고 나니, 나도 모르게 손을 뻗쳐 진욱이의 옷소매를 움켜잡았다. 진욱이는 잠시 놀라는 듯 하면서도 다행히 내 손을 뿌리치려 하지는 않는다. "....엇... 지금 교사에게 반항하는거냐? 어여 가자. 국어 선생님이 계속 재성이, 재성이 찾으셨단 말이야." "..........." "왜? 지금 바쁘냐?" "..........ㄴ..농구.. 농구 선수 선발 가봐야 돼요."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뭐. 야, 박진욱. 맡겨둘테니까 잘 보관해라. 알았지?" "...재성이가 물건이에요? 맡기고 보관하게?" 어라? 선생말이라면 껌벅 죽는 녀석이 왠일로 볼멘소리라냐? 그 딴식으로 편들어주는거 하나도 안 고마우니까, 제발 사람 좀 귀찮게나 하지 말란 말이다. 체... 괜히 생각해 주는 척 하기는.... "니네 둘이 방금 물건 다루듯이 했잖아. " "제가 언제요!!" "진욱이 저 새끼가 괜히 막 나서는 거에요!!!" "뭐야?" 그래, 싸워라. 싸워. 다들 싸우면서 크는 거지. '선생님, 누구누구가 어떻게 했어요!!!'.......................내년이면 민증나온다는 것들이....쯧쯔... 그건 그렇다 치고..... 내 입으로 농구 선수 선발 간다고 했으니..... 이젠 정말 발 뺄 수 없게 되어 버린 듯 싶다. 어휴... 할 수 없지 뭐... 그냥 구경이나 하다 오는 수 밖에.... ===================================== "분명히 아까 난 전부 모이라고 얘기했었다. 지금 안 나온 놈들 중에서 농구 어쩌고 하면서 토다는 인간들은 바로 나랑 한 판 뜨는 줄로 알아." 절반 정도 모인 반 아이들을 쭉 둘러보며 현우 녀석이 냉랭하게 한 마디 내뱉고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책상께로 가서 앉았다. 무슨 공책 하나에 볼펜까지 챙겨든 걸 보니, 뭔가를 기록하려는 모양이다. 으음.. 한 판 뜬다라.. 현우가 싸움을? 이래저래해서 끌려오기는 했다만, 별로 참가하고픈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스탠드 구석에 가 쪼그리고 앉았다. 부반장 말따위는 무시하고 그냥 가버릴 기세였던 기현이 놈까지 따라온 것이 약간은 신경쓰이지만..... 뭐.. 아무렴 어떻겠어. "아까 현우가 조금 흥분하는 바람에 그렇게 얘기해버려서 그렇지. 사실은 오늘 안에 선수 선발 결정 안 나면 이 방법을 쓰려고 했었어. 그러니까 다들 너무 갑자기 멋대로 정한거 아니냐고 비난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방법은 그냥 자유투로 결정했다. 농구가 물론 자유투로만 결정되는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선은 둬야겠다 싶어서...... 일단은 10개씩 던져보는 걸로 할께. 시간 없으니까 가능하면 지체하지 말고..." "어떻게 자유투만 가지고 선수를 뽑냐....? "맞어.. 수비 잘하고 각자 다 틀린 건데...." "그렇다기 보다는 한 차례 걸러내야 한다는 걸로 봐야지. 1개도 못 넣는 사람을 수비 잘 한다고 내보낼 순 없는 거잖아. 우승하면 상품도 쎄다니까, 우리 한 번 잘 좀 해보자. 지원할 사람들 번호 순서대로 나와. " 한 차례 지훈이 녀석의 설명이 있고 나서, 아이들이 하나 둘씩 골대 앞에 섰다. 한 사람 앞에 열개씩으로 치면, 우와.. 꽤 오래 걸리겠는걸. 기현이를 제외한 그 녀석 패거리들은 이미 집에 가버렸다지만, 아무래도 종목이 종목이다보니 아직도 지원자는 많은 모양이다. 솔직히 같이 농구해본 녀석은 지훈이, 진욱이, 현우.. 이렇게 셋이 전부였기 때문에 다른 녀석들은 얼마나 잘 하려나 꽤 기대가 되었다. 으음... 그리고 보니, 학교에선 농구공 잡아본 기억이 별로 없는 듯 싶다. 우리학교는 농구골대는 수가 적어 점심시간이나 체육 시간엔 대부분 선배들만 사용하곤 하니까.... 억울하다고는 생각하지만, 특별히가서 항의하고 싶다는 생각 역시 들지 않는다. 내년이면 또 우리가 신입생들 사용하지 못하게 텃새부릴 것이 뻔하지....뭐..... " 이준형 6개.. 다음.." 텅텅.. 볼 튀기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말 기분이 좋다. 튀기는 소리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발 소리도 너무 좋고..... 내가 농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다양한 소리들 때문이다. 꼭 바스켓에 공이 들어가야만 맛이 아니라, 링에 맞고 튕겨져 나올때도, 땅에 바운드 될 때도, 딱 딱 맞아떨어지는 패스에서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소리가 난다. 리드미컬한 그 소리들을 듣고 있자면 움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란 인간도 왠지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기분에 휩싸이고 마는 것이다. 몇 시간이고, 몇 년이고 죽어라 죽어라 여기에만 매달릴 수 있을 것같은... 아....방금.... 자세가 참 좋았다. 분명히.... 들어......간...다! 하하... 들어갔다.. 썰렁하게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비난하는 이상한 인간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에겐 자유투도 꽤 재미있는 볼거리다. 자세 하나만 봐도 들어갈지 어쩔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으니까.... 누구는 자세가 어떻고, 저렇고, 이렇게만 하면 더 잘 던지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예상이 틀리면 뭐 어떤가.... 누가 뭐래는 것도 아니고.. 왠지 즐거워져서, 간만에 좀 열중해 볼 생각으로 가방을 뒤적여 안경까지 꺼내썼다. 핑글 도는 느낌과 함께 사물들이 뚜렷하게 자리를 찾아간다. 아아... 저거 우리 반 영어 반장이로군. 보기보다 꽤 운동 신경이 있는 모양이다. 자세도 좋고, 무엇보다도 자신감 있어보인다. 가만히 앉아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자니, 나는 저 안에서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꽤 그럴듯한 폼이 잡혀있을까? 아니면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놈인양 흐느적 거릴까? 그래도 지훈이나, 진욱이, 현우 녀석이랑 상대할 정도면 그리 나빠보이진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상당히 엉뚱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은 내가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단순히 거울보면 보이는 얼굴이 아니라, 밥을 먹는 모습이라던가, 어떤 자세로 걷는지, 책읽을 때는 고개를 어떻게 하는지, 뛰는 폼은 어떤지...등등..... 전신 거울 놓고 그 앞에서 밥 먹고, 공차고, 뛰어버라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으음.. 유감스럽게도 난 왕자병이 아니다.... 거울 앞에서 연기하는 듯한 그런 내 모습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남들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이 어떤지가 궁금할 뿐이다.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비추어지는지를 확실히 알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뭐.....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나, 비디오를 보면서 '내가 아닌 것 같다' 며 어색함을 느끼지 않던지.... 나만해도 중학교 졸업앨범 사진을 보고는 갈갈히 찢어버리고픈 욕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나 같지 않았단 말이다..... "거기 조심...!!!!" [탕.......] "재성아!! 괜찮아??" 어휴.... 십 년 감수 했네. 안경까지 쓰고 있는데, 이 공이란 놈이 바로 면상으로 날아오다니..... 그대로 직격했으면 더럽다는 인상, 아주 싸그리 청소해줄 뻔 했다. 아슬아슬하게 잡은 공을 잡고 일어서니, 지훈이 녀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어휴... 다행이다. 잡았구나." "............" [휙..........] 가볍게 스냅으로 공을 넘겨주니 지훈이 녀석이 얼떨결에 공을 잡고는 잠시 머뭇 거렸다. 어쩐지 얼굴이 좀 따가운 것 같아 주변을 휘이... 둘러보니 무슨 구경이라도 난 건지 다들 힐끔힐끔 내 쪽으로 시선 집중. 뭐야.. 볼꺼면 당당히라도 볼 것이지. 수근수근 대는 것들은 ........ 잠시 마주쳤다 곧 피해버리는 눈동자들이 웬지 부담스러워 안경을 벗어서 호주머니 속에 대충 우겨넣 었다. 그러곤 다시 휘적휘적 자리에 돌아가 막 앉으려니 갑자기 뒤에서 지훈이 녀석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으음.... 저 녀석이 아쉬운 듯이 부를 때는 놀려먹을 일이 있거나 무슨 시킬 일 있을 때 뿐인 데... "뭔데........" "와서 볼보이 좀 해라." "....................." "덥고, 귀찮아." "좀 봐줘라. " "싫어.... 딴 애 시켜. 사람 많잖아." "......지금..... 여기있는 애들은 다 참가하려고 남은 애들이라..... 힘빼는 일은 안 하려고 해서...... 헤유.. 뭐 니가 정 싫다면 할 수 없는 거고...." 이거 진짜.....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싱긋 웃는 지훈이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슬쩍 또 마음이 약해진 다. 저 새끼 나중에 커서 할 일 없으면 사기꾼 노릇 시켜도 괜찮을 성 싶다. 뼛 속부터 성실, 신뢰, 이 사람 말은 한 번 들어볼만 합니다...라고 쓰여있는 것 같으니까... "어...? 어디가냐?" "볼보이 하라며..... 그럼, 스탠드에서 공이 여기까지 튀나 안튀나 구경하고 있을까?" "......고맙다..." "......................" 미안하단 기색이 역력한 지훈이 녀석을 뒤로하곤 골대 뒤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가까이로 오니까 이 번엔 애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대충은 귀에 걸리는 것 같기도하다... 으.............음...... 왠지 내 이름이 간간히 그 속에 섞여있는 것 같다면 착각일까? 별로 남의 입에 오르내릴 짓은 한 적이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괜히 멋적어져 괜한 머리만 자꾸 긁적거렸다. 골대 뒤에 대충 자리잡고 섰더니, 갑자기 꽤나 크고 거슬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봐.. 졸라 어설프게 서있잖아. 설마.. 저런 녀석이......" "그럴까?" "......................" 그거 혹시 내 얘기는 아니겠지? 어설프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혹시 다른 서있는 놈들이 있나 싶어 둘러보니, 애석하게도 나 하나 뿐이다. 어설퍼? 어설퍼? 아니, 두 다리로 정확하고 멀쩡하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대체 무어이 어설프단 말이냐.... 따지고 들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아쉽게도 내 성질이란 놈은 잠시 욱 했다가 사그라드는 줏대없는 것이라서 그냥 자세를 약간 고쳐보는 선에 그쳤다. 으음.... 이 것도 어설프려나..? 에휴.... 그나저나... 다음 차례 녀석인가보다. 저 자식은 진욱이 짝꿍.. 진욱이랑 늘상 둘이 짜고 내 지우개 빌려가서 칼로 야릇한 문양 새겨 놓는 이상한 놈이다. 한 번인가는 열받아서 지우개를 하나 사줬더니...... 이상하게도 그 지우개는 안 쓰고 그새 또 잃어버렸다면서 다시 내 지우개를 빼앗아갔다. 엇.... 던진다. [휘...익...] [탱....탁.....] 하하하... 잡았다. 꽤 이상한 각도로 튄 것이었는데, 손에 쏙 들어오니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공 잡고 있자니, 진짜 농구하고 싶어진다. 오늘 한 판뜨자고 진욱이랑, 지훈이한테 말해볼까? 잡은 공을 몇 번 튀기다가 다시 던져주니, 녀석이 정신이 나간건지 어쩐건지 받을 생각을 안하고 옆으로 흘려버린다. 으음... 저 실력으론 뽑히기 힘들성 싶은데..... 왠지 주변이 다시 한 번 술렁거리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 뭐... 별 일 아니겠지... =================================== "하아..하아...." 확확 달아오르는 얼굴을 손부채로나마 살살 식혀봤지만, 별로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여름이라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막힐 듯이 뜨겁다. 뭔 놈의 학교가 체육관이라고 하나 있는 거... 늘상 그렇게 비싸게 구는 건지. 방과후나 평상시에는 거의 개방을 안 한다. 그 안은 시원까지는 아니라도 햇빛은 안 쬘 것 아니냐!!! 뜨거운 햇살에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요소 하나 더 추가... 아까부터 인간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빈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것 같다. 처음에야 그냥 볼보이라고 나서니까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놈의 이목이란 것이 자꾸 집중되니까.. 어지간한 나지만 쑥스럽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더욱 답답한 노릇은 대체 왜! 쳐다보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래... 봐라. 봐.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이젠 거의 포기 상태다. [탁.......] 가볍게 점프해서 캐치.. 에휴.. 이 짓도 처음엔 재밌었는데... 자꾸 하니까 힘이 든다. 눈 앞에 막 어질어질 현기증도 나는게..... 이제 한 명 남았었지 아마.... 그나마 그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자세를 다시 고쳐 잡았다. 고쳐잡은 자세래봐야, 아까 어떤 놈들이 지껄여주셨다시피 어설프게 서 있는 거지만... 그래도 마음의 준비란 것은 나름대로 있단 말이다! 마지막 번호는 우리반에서 키가 큰 편에 속하는 이주영. 흐음... 큰 키가 기대된다만은... 왠만한 실력가지고는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다. 현재 멤버는 거의 결정된거나 마찬가지인 상태. 아마 현우랑 지훈이 녀석 머릿 속으로 엄청나게 머리 굴려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후후... 이제까지의 베스트가 신기현, 박진욱... 각각 9개 였으니까... 사실 진욱이가 자유투에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닌데, 갑자기 기현이가 9개 넣는 꼴을 보더니, 신이 내 린 건지, 단순히 맛이 간건지.... 첫 번째를 실패하곤 내리 9개를 성공하는 기적같은 장면을 연출해보 였다. 나야 신기한거 봐서 그저 기분 좋았다지만, 한 골 들어갈때마다 노골적으로 인상 찌푸리는 현우와, 한숨 쉬는 지훈이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탕........] 마지막 볼을 캐치 하면서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4개.. 아무래도 이 친구는 들어가기 힘들지 싶다. 일단 웃기는 했다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최악의 콤비는 최악의 콤비다. 각각 다른 팀으로 갈라놓고 한 판 뜨면 말그대로 만화 슬램덩크를 무색케하는 플레이가 연출될테지 만.... 저.....둘이.... 한 편이라..... 왠지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기도..... 농구대회가 싸움판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냥 곱게 예선에서 떨어져야 할텐데....... 아니나 다를까.. 지훈이랑 현우랑 둘이 붙어서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상의 중이다. 이왕이면 좋은 방향으로 얘기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 더 풀렀다.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닌데도 땀이 차서 견딜 수가 없다. 이젠 좀 쉴 수 있겠다 싶어서 흐느적 흐느적 스탠드쪽으로 움직이니 진욱이 녀석이 실실 웃으면서 아는 척을 한다. 뭐라 대꾸해줄 기운도 없어서 그냥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후후후.. 이 몸이 뽑혔다는 거 아니겠냐. 뭐해? 빨리 축하 안 하고...." ".......축하는 얼어죽을....." "체... 좀 귀엽게 대답하면 어디가 덧나냐? ....." "........................" "어쭈? 이게 또 말을 씹네?" ".........................졸려.. 말 시키지 마." "야..임마!!! 자지마!!! 한 번 쓰러지면 다시는 안 일어나는 새끼가 자버리면 어쩌겠다는거야!!! 너 현우랑 지훈이가 버스에 쓰러져 있는거 업어온게 벌써 두 번째인거 알기나 해???" "기억 안나." "안 돼. 안 돼. 자면 여기다 묻어버리고 갈꺼야!! 얼른 눈 떠. " "싫어." 억지로 일으키는 것을 애써 반항해 보려했지만, 기운이 축 늘어진 나한테는 그저 역부족일 따름이었다.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뜨려고 노력하면서 아까 누군가 얘기했듯이 굉장히 어설픈 자세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젠 그냥 집에 가야지... 하면서 진욱이 손도 뿌리치고 휘적휘적 걸어가는데...... [휘익.......] [탕.!!!!] "재성아!! 괜찮아??? 야.. 임마!! 이현우!! 너 지금 무슨 짓이야?" 그래.. 박진욱.. 너 간만에 말 한 번 잘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미칠 듯이 몰려오는 잠이 한 순간에 확깨는 느낌이다. 아직도 내가 볼보이로 보이는 모양이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가는 사람한테 농구공을 던져??? 내가 잡았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맞았으면 어쩔뻔 했냐? 이현우!! 맘에 안 들면 제발 말로 하란 말이다. 말로!!!! 가뜩이나 덥고 졸려 죽을 지경인데 시비 걸어오는 것을 도저히 그냥 받아 넘길 수가 없어서 진욱이를 냅다 뿌리치고는 씩씩 거리면서 현우 녀석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오늘만큼은 내가 한 소리한다. 해. "너...지금........." [덥썩........] 몸이 확 끌어당겨지는 느낌에 한 순간 눈앞이 어질 했다. 이 황당한 새끼가 이 번엔 또 뭔 짓을 하려나 하고 쳐다보니...... 세상에나..... 단추를 채워주고 계신다..... 너무 황당한 짓을 하니까.. 어이가 없어서 순간 확 올라오던 화가 그냥 사그라 들어버렸다. 아래서 부터 하나 하나... 꼼꼼하게..... 뭐.... 뭐냐? 맨 윗 단추까지 잠궈주는 것은.....? 숨이 탁 막힐 것 같은 느낌에 숨을 흡 들이키니, 예의 그 싸가지 없는 목소리로 한 마디 지껄인다. "너.. 노출증 환자냐?" "......................내가 노출증 환자면 송지훈은 뭐냐? " "....말 돌리지 말고.." "..........이게 왜 말을 돌리는거야? 눈 앞에 웃통 벗은 놈은 가만히 놔두고... 단추 몇 개 끌른 나한테는 왜 또 시비냐? 이거 놔. 집에 갈꺼야." "너랑 걔랑 같아?" "......다른건 또 뭐지?" "어휴.. 십년 감수 했네.. 야!! 재성이 부르랬더니 왜 공은 던지고 난리야! " "안 다쳤잖아. 이리 왔고." "...됐어. 너랑은 말을 말아야지. 저기.... 재성아, 너 농구 할 생각 없냐? 현우랑 나랑 아까부터 계속 얘기를 해봤는데 아무래도 네가 들어가는게 좋을 것 같다. 기현이랑, 진욱이가 잘 하기는 하는데, 너도 알다시피 걔네 둘은 붙여놓으면 너무 불안하잖냐...." 내.....가....? 남들 다 하고 싶어하는 농구팀에 넣어준다..... 외견상으론 그리 듣기 나쁜 제안은 아니다만,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보고 그 두 녀석 뒷치닥 거리를 하라는 뜻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끼어서 괜히 안 받아도 되는 스트레스 받고, 안 먹어도 되는 욕 바가지로 먹고.... 내가 머리에 총 맞은 것도 아닌데, 그 일을 자청할 리가 있겠어? 그리고, 내가 홱까닥 맛이 가서 갑자기 하고 싶어한다고 치더라도, 어디까지나 나도 다른 놈들 처럼 자유투를 던져서 많이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지, 이건 완전히 자기들끼리 맘대로 우기는 꼴 아닌 가...... 별로 대답할 필요를 못 느꼈기에 그냥 앞서서 자리를 빠져나왔다. 몇 발짝이나 갔을까.... 앞을 가로 막는 인영에 고개를 들어보니, 이 두 녀석이 어느새 쫓아와 앞을 막 아선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해줘라. 제발 부탁이다." "................." "양재성.. 네가 잘 하는 건 우리도 다 알고 하는 소리니까, 빼지 말고 그냥 해." "싫어. 볼보이가 무슨..... 그러는 니네가 들어가지 그러냐.." "우린 임원이라서 안 돼잖냐. 너 만큼 잘 할 자신도 없고.." "너같이 화려한 볼보이가 어딨다고 그래. 그냥 하라면 순순히 '네' 하고 해." "웃기고들 있네..." 체... 괜히 아쉬우니까 추켜세우는 것들 좀 보게나.... 코웃음을 치면서 돌아서려는데, 또 보지 말아야 할 것이 눈에 들어왔다. 두 녀석 다 갑자기 또 왜 그렇게 피곤하고 불쌍한 표정인거야!!! 힘없이 웃고는 있지만, 축 쳐진 지훈이의 어깨하며, 애꿎은 머리만 자꾸 쓸어올리는 현우 하며....... 반 아이들도 왠지 이 쪽을 자꾸 주목하는것 같아, 마음 약해지기 전에 어서 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붙잡을 인간은 이제 없겠지....하고 이번엔 코트를 꽤 벗어나서 멀리 떨어져서 걸어가고 있는 데, 이번엔 또 웬 놈이 앞을 막아선다. "네 몸 하나 귀찮고 힘들다고 꼭 이렇게 해야겠냐? " "....난 농구 못해." "시덥잖은 핑계 그만대고....!!! 넌 왜 항상 도망만 치냐? 대체 뭐가 그렇게 자신이 없는 건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난 막무가내고, 생각도 없고, 뭐 하나 그럴싸하게 할 줄 모르는 놈이지만, 그래도 친구라는 저 녀석들은 욕먹는 한이 있어도 꼭 도와주고 싶다. 지금 현우하고 지훈이가 나 때문에 걱정하는 모양인데.... 난 진짜 이번엔 신기현 하고 다툴 생각 없어. 그냥 우승이란 거 한 번 해서.... 나도 기분 좋고, 저 앞뒤 꽉꽉 막힌 반장이랑 부반장 놈도 좀 치켜세워 줄려고 나온거야.. 그러니까...... 너도 그냥 같이 해 줘라. 신기현이 어떻게 나오던지, 정말 성질 죽이고.. 열심히 할께." "........................." "........................" "........................" 아아... 정말 미쳐 버리겠다. 미쳐버리겠어. 양재성이 박진욱한테 설득이란걸 당하고 있는 중이라니..... 그것도 모자라 다 하잘데기 없고 앞 뒤 안 맞는 얘기라고 생각하면서도.... 거의 넘어가는 중이라니...... '도망친다...' 는 진욱이의 표현에 선뜻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인식한 뒤에는 거의 상 황은 종료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ㅈ..정말...." "뭐?? 재성아.. 뭐라고???" "정말... 신기현하고 안 싸우는 거다..." "어..!! 어...!! 정말 안 싸울께.. 그러니까 제발 좀 같이 나가자..." "......................." 이거, 정말.... 매달리는 녀석이 한 둘이어야 말이지.... 심각하고 진지해 보이던 얼굴에서 곧 평상시의 헤벌레한 얼굴로 돌아와 찡찡 대며 매달리는 진욱이 녀석을 애써 뿌리치고는..... 다시 농구 코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저 바보 새끼 말... 틀린 것 하나 없다. 나 같이 이리 저리 힘든 일에서 어떻게든 발빼려고 하고 합리화 시키는 놈 보다는 훨씬 괜찮은 남자지..... 친구가 도와달라고 저렇게 필요하다고 붙잡아 주는데... 생각할 게 무어이 있고, 또 따져튪'bc게 뭐가 있냐.. 한 번 쯤은 그냥 가서 시키는 대로 굴러먹는 것도 괜찮겠지. 뭐.... ..................체.... 그 놈의 자유투... 그래, 내가 던져 준다. 던져 줘. ==================================================== = 네네.. 즐거운 월요일 입니다. 이 번에는 지은 죄가 너무 많아, 면목 없어서 고개도 못 들겠네요.. 먼저.. redish님, 레이븐님, 그리고 suzanna님.. 약속 못 지켜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 주말 까지 올리기로 약속했는데, 벌써 월요일 저녁이네요...ㅠ_- 그저 원래 저런 애려니 하고, 용서해 주세요... 저번에 감상 주셨던 챠무님, 네코켓님, Rudo님, pinkone님, 리티님, 카프타님, 히키83님, ani님, 엘리시움님, 블레이드님, 구름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부터는 리플 바로바로 달아드릴께요. -_ㅠ 이 메일 주신 분들.. 답장 언젠가는 꼭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_ㅠ 하아... 원래가 게으른 인간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좀 심하다 싶습니다. 어찌어찌 이것 저것 겹치다보니, 답장도 제대로 못드리고 텀은 또 길어져 버렸네요. 많은 분들이 재성군의 치어리더 복장을 기대해주셨는데.... -_-;; 또 잘렸습니다.. 체육대회... 과연 끝날 수는 있을런지.... -_ㅠ 모든 돌... 몸으로 받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것 너무 감사드리고요... ^-^ 행복하고, 건강하게 여름 보내세요. 불초 epata 이만 물러갑니다...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16) "얄미운 놈..." [쭈우욱.......] "우음....." "현우야!! 꼬집지 마!! 애 깨겠다." "흐흐....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렇게 안 한다고 뻐팅기던 놈이 어떻게 10개를 다 집어넣냐.. 얼굴은 요래가지고는.........." [쭈우우우욱....] "우우움..." [뒤척...] "박진욱!!!!!" "이야.. 이거 재밌다. 잘 늘어나네..." "어. 말랑 말랑 해." "니네 둘 다!! 진짜!!!" 계속 옆에서 찝적 대는 두 사람을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는지 어지간한 지훈이도 버럭 화를 냈다. 잠시 움찔 하는가 싶던 현우와 진욱.. 하지만 곧 현우는 예의 그 무뚝뚝한 얼굴로, 진욱이는 싱글 거리는 얼굴로 돌아가서는 한 마디씩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는 너나 제대로 업어. 애 떨어지겠다." "떨어뜨리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저 둘은... 과연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10개 째의 자유투를 던지곤 그대로 꿈나라로 가버린 양재성군을 다시 고쳐업는 지훈군은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 쉬었다. Episode. 귀가길..End. =================================================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7)-1 "선생니임!! 한 번만 봐주세요!!!!" "다른 반도 다 나갔단 말이에요!!!!" "조용히들 안해???" "나.가.요! 나.가.요! 나.가.요! 나.가.요! 나.가.요!" [쿵,쿵,쿵,쿵,쿵,쿵,쿵.....] "체육대회 끝나고 나서 부터는 열심히 할께요!!!" "시끄러.. 니네 반이 지금 제일 진도 늦어. 조용히 하고 책들 펴." "우어어어어어어어!!!!" "아이씨.. 뭐야.. 다 나갔는데 우리 반만..." "한 번만 봐주세요." "지금 수업해봤자 어차피 하나도 집중 안 되잖아요!!" 체육 대회를 이틀 앞 둔 오늘.... 학교는 아주 아수라장이다. 예선전이다, 연습이다, 시합하는 것 구경해야 한다, 야외수업하자.. 어쩌자.. 해서 아마 전교생의 절반 이상은 체육관과 운동장으로 나른 상태. 하긴, 일주일 전부터 회의해야 한다고 잡아먹은 수업시간만 해도 꽤 될테지 뭐....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리 나가다 보니 다들 어떻게 하면 수업을 띵기고 나갈 수 있을까해서, 매 수업시간 마다 약간은 협박조의 데모(?) 광경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뭐... 나야 나가면 좋고, 안 나가면 마는.... 그런 심정이지만, 뒷 자리의 진욱이만 해도 거의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중이다. 겉으로 좀 노는 놈처럼 보여서 그렇지, 수업 태도도 좋고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미친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귀㈎?받는 놈이라 선생님들의 반응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패턴은 애들이 대충 분위기를 띄워 놓으면, 반장인 지훈이가 이리 저리 사정을 설명해가며 불쌍한 척 등등을 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는데.... 꽤 고지식한데가 있는 우리 국어... 역시나 허락을 내주지 않고 있다. 이제까지 계속 안 나갔으면 모를까, 계속 놀다가 수업한다니 다들 엄청 억울한 모양이다. 전부 불만스런 표정으로 책 조차 꺼내려 들지 않고, 몇 차례의 점잖은 호통도 거의 먹혀들지 않는 중. 이런게 군중 심리란 건가?? 하아아암.... 졸린데, 이틈타서 잠깐 잠이나 자둬야겠다. 대충 내가 머리 굴려본 바로는 아무래도 이 번시간은 나가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그간 몇 차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겉으론 저렇게 만만해보여도 우리 국어 선생님... 보통이 아닌 사람이거든. 아마 지금만 해도 표정관리 해가면서 속으로는 온 갖 요상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 거다. 어휴우....정말 모르는게 약 일 때도 있다니까... "자... 103 페이지, 빨리 펴라.." "우우우우우.... " "나.가.요! 나.가.요!" 이거 기집애들도 아니고, 사내새끼들이 내지르는 소리는 정말 못 들어줄 지경이다. 니네가 무슨 괴물이냐...? 그런 괴성을 지르게.... 아까보다는 다소 누그러 들긴 했지만, 여전히 웅성웅성 분위기는 가라앉을 줄 모른다. 잠자기엔 아무래도 너무 시끄러운듯 해서 턱을 받히고 잠시 멍하니 있자니....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침착하게 급반전 되었다. 어..... ?? 방금 박진욱이 일어나서 뭐라고 말한 것 같 은데.... 뭐...라...고 그랬지? "양재성, 잘 해봐라..." 잘하긴 뭘 잘해?? 내가???? 진욱이 녀석이 억지로 잡아 일으키길래 어째 일어는 났지만, 어안이 벙벙 했다. 나보고 뭘 어쩌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잠시 서 있자니, 거의 짐승모드인 같은 반 인간들의 시선이 따갑게 몰려들었다. 뭐 냐... 그 기대감 넘치는 표정들은..... ???????????????????? 그...러...니까...??. 나 보고 지금 국어를 설득하라고? ...에이...........설마....... "재성아, 니가 드릴 말씀 있다면서.. 빨리 얘기해.." "...내가..언...!!" "선생님, 얘가 원래 숫기가 없어서 이러네요. 왜 또 빼냐? 할 얘기 있댔잖아." "그래... 얼른 얘기해.." "빨리 해버려." "......................" 나...참.. 어이가 없으면 말이 안 나온다더니.... 지금 내가 딱 그짝 난 것 같다. 이....거.... 반 전체가 나를 희생양으로 내세우겠다는 거냐.... 그래도 짝궁 놈은 덜하겠지 해서, 나름대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현우를 쳐다봤지만, 기분 나쁘게 싱글싱글 웃기만 할 뿐 도저히 편 들어줄 기색은 안 보인다. 아니... 대체 이런 건 반장이나 부반장, 정 안되면 말빨 센 박진욱이 나서야지... 왜, 대체, 하필, 나란 말이냐? 막말로 내가 무슨 말만하면 '귀엽지 않다..' 느니.. '좀 더 상냥하게..' 하라느니.. 하는 쓸데없는 소리들만 지껄이는 것들이.... 성질 같아서는 그냥 자리에 앉아버리고 싶었지만, 현재 엄청나게 달아오른 분위기를 보니, 자칫하단 맞아죽지 않을까 싶었다. 어지간한 나지만, 학교 7대 불가사의-몬스터로 변신한 학우들에게 맞아죽은 남학생 귀신-에는 그다 지 추가되고 싶지 않기에 쭈빗쭈빗 고개를 드니, 국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다. 정말 마주하기 싫은 사람 중 하나였는데..... 말을 해야 하는건가..... "재성군, 뭔가? " 다정한 목소리와 온화한 미소.... 껍데기는 지적인 노신사의 전형이라지만..... 속은 능구렁이로 가득찬 저!!!사람이 나 따위의 어줍잖은 설득에 넘어올리가 있겠느냔 말이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뭔가 말은 해야 하는데, 워낙에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보니 입 조차 잘 떨어 지질 않았다. 뭐냐... 정말 추하게.... "다....다른게 아니라..." 젠장.. 바보같이 더듬어 버렸다. 교실이 조용하니 망정이지, 완전히 목소리 크기도 개미소리.. 난 정말 이런 거랑은 안 맞는단 말이다!!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고 목이 꽉 죄어오는 느낌에 앞이 어질어질 했다. 박진욱... 송지훈.... 그리고, 아까부터 얼굴 가리고 이상한 소리내는 이현우!!! 니네 셋다 정말 죽여버릴꺼야.. 셔츠깃을 손가락을 몇 번 늘린 다음에 마른 침을 억지로 삼켰다. 사방 천지 쳐다보는 통에 얼굴에 구멍이 날 지경이다. 그래!! 말 하면 될꺼 아니냐!! "이..번 시간에 꼭 나가봐야 되거든요.. 이따가 오후에 예선인데... 아... 그러니까 농구 시합 예선이요.. 아.아..아직 아무 것도 연습을 못해서... 그리고.. 다른 반 시합하는 것을 봐야 서..서..선수도.. 정할 수 있고요.. 또...." "쿠....쿠극......." "ㅋ..........." 웃지마!! 웃지마!!! 정말 죽여버린다니까!!! 책상에 엎어져서 끅끅 거리는 세 녀석을... 정말 총이 있다면 쏴버리고 싶은 충동이 마구 들었다. 인 간 양재성.. 정말 무너지나 보다. 나 혼자 외진데로 학교를 왔기에 망정이지, 중학교때 놈들이 이 광경 을 봤으면 아마 거품을 물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양재성 입에서 저런 사근사근한 말투가 나올줄 대체 누가 알았겠어.. "아아.. 그래서요? 꼭 나가고 싶어요?" "...........네...." 뭐야? 꼭 유치원생 대하는 것 같은 그 말투는....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울고 싶다는 생각 안 했던 난데.... 비비꼬는 듯한 국어의 말을 듣고 있자니,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 것 같다. 주변은 여전히 정적.... 미안하다, 얘들아. 내가 워낙 말 주변이 없어서, 개뿔도 안 먹혀들어간 것 같구나.. "......꼭 나가야 겠나?" "......예." 몇 번을 확인 사살 하는 거야? 정말 울 것 같은 얼굴로 거푸 대답하니, 온화하고 평온하기만 하던 국어의 얼굴에 순간 장난의 빛이 떠올랐다. 그래, 우습기도 하시겠죠. 기껏 애들이 추켜 세웠다는 놈이 한다는 소리가 횡설수설에 근 거 없고,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더듬기까지 하다니.... 그냥 빨리 안된다고 하시..... ".....어휴... 그럼 할 수 없는 거네. 꼭 나가야 하는거면 나가야지." "우와아아아아아!!!!!" "나가자!!!!!" "야!! 체육관에 몇 반 경기냐?" "..... 1, 2 반 예선..!! 빨리 뛰어!!!" [덜컹... 우당탕탕탕.... 쿠당탕탕.....드륵..드륵.........] "재성아, 아주 잘했어..." [쓰윽..쓰윽...] 머리를 마구 헝클어 놓는 진욱이의 손이 닿고 나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뭐야...? 혹시 저.... 엉뚱한 국어 선생이 허락해 버린 거야?? 미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자니, 팔이 질질 끌리는 느낌이 났다. "선수로 나간다는 놈이 이렇게 넋을 빼고 있으면 어떻게 해? 빨리 가자."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뭐로가든 서울로만 가면 된댔다고.... 잘됐으면 그걸로 끝인 거지.. 뭐.. 어딘지 좀 이상스럽긴 했지만, 정신 없이 잡아끄는 현우의 손길에 머릿 속이 도무지 정리가 되질 않았 다. ============================ "우와아!! 화이팅 1반!!!" "야!! 2반 잘해라!! " "니네 여기서 지는 팀이 꼴인거 알지!!!!!" "김~정호!!!!" "어이!!!!" "박~정수!!!!" "어이!!!!" "이~우영!!!!" "어이!!!!" "박~상현!!!" "어이!!!!" "정~세영!!!!" "어이!!!!" "최!강!! 1반!! " "최!강! 1반!!!" 미..... 미친 놈들....!!! 지금이 체육대회냐?? 말이 예선전이지..... 1반 응원석에서 목이 터져라 선창 외치는 놈이랑, 거의 괴성에 가깝게 맞받아치 는 나머지 인간들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2 반은 2 반 나름대로 응원 진행중.....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지만, 너무 뜨거운 열기에 나까지 조금은 흥분 되는 것 같았다. 대충 지은 체육관인 관계로 얼마없는 관중석은 2학년 선배들까지 몰려들어서 꽉 차있는 상태다. 5명 씩 딱 채워져서 all 코트로 하는 경기는 오랫만이어서 그런지... 왠지 매일 보는 시합과는 스케일 부터가 달라보였다. 응원이 막강해서 그런지 몰라도, 플레이 하는 놈들 동작이 장난이 아니다. 저...저런 현란한 페인트 모션이라니..... 고등학생이면 아무래도 3 점보다는 레이업이나 중거리가 대부분인데.... 벌써 내가 본 것 만도 3 점슛이 2개는 들어간 것 같다. 농구 예선은 오늘이 처음이라, 시합 역시 처음 구경하는 건데, 정말 나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 다. 이거... 너무 재밌잖아..!! "재성아, 저리가서 앉자." ".............." 글쎄... 뭐.. 기분이 업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 세 녀석들이 전부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신경써주는 척 하는 지훈이 녀석이 왠지 밉살 스러워 잡은 팔을 탁 뿌리쳐버렸다. 남이 곤란해하는 걸 보고, 아까 그렇게들 좋아하다니..... 니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우와아아아아아!!!!" "방금 그거 봤냐? 야... 진짜 잘한다.." ".............." 아악!! 딴 생각 하느라고 못 봤잖아!!! 정말이지 도움이 안 된다니까.... 잠시 열받았단 표정으로 세 녀석을 열심히 노려봐주었지만, 이 것들은 코로도 들은 척을 안하고는 저희끼리 경기 설명하느라 난리다. "쟤 잘한다. 지금 막 패스 넘긴 애." "박상현?? 쟤 원래 유명해. 중학교 땐 몇 번 붙기도 했는데... 고등학교 와서 경기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네. 더 많이 는 거 같다." "이름이 박상현이야? 아무튼.. 공은 다 쟤가 몰고 가는 걸로 봐야겠네." 박...상..현... 잘 하는 구나. 잠시 넋을 놓고 뻐엉 하니 보고 있자니, 옆에서 키득 거리는 소리가 난다. 뭔지 싶어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세 녀석이 뭔가 수근수근 대면서 킬킬 대느라 정신이 없다. "이 번엔 또 뭔데....." "크극.. 아니.. 그냥... 뭐.." "재성아, 궁금한게 있으면 그렇게 눈 동그랗게 뜨고 너무 코트만 노려보지 말고.. 그냥 우리한테 물어봐. " "얼굴에 '궁.금.해.요.' 라고 써있다. 써있어. 아무튼 고집은...." 한 글자 한 글자 내 이마를 꾹꾹 찍으면서 밉살스럽게 말하는 현우 녀석을 냅다 뿌리쳐버렸다. 이상하 게 오늘따라 이 녀석들이 나를 가만 못 둬서 안달인 것 같다. 이래뵈도.... 오늘 오후면 이 녀석들 같이 예선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꽤 부담스러운데... 대체 그걸 아는건지 모르는 건지... 박진욱... 너는 같이 나가면서 너무 태평한 거 아니냐?? "재성아.. 니가 저 박상현인지 뭔지 보다 훨씬 잘하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말아라.." "그래.. 뭘 또 그렇게 얼어가지고 있냐? 답지 않게.." "..............." 그래도 양심들은 있는 모양이군.... 딴에는 위로랍시고들 해주는 걸 보니... "너무 추켜 세우지마. 진짜로 지가 잘 하는 줄 알고 방심하면 어떻게 해. 이 자식은 보기보다 고지식해서 고분고분 다 믿는 단 말이야." "그런가? " "미안하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니가 박상현보단 쫌 딸리는 것 같기도 한데...." 이.....이 것들이..... 신경써주는 척 하면서 결국은 염장 지르는거냐??? 울컥하는 기분도 적잖아 들었지만, 이 정도에 바락바락 악 쓰고 대들었으면 진작에 기력이 쇠진해서 세상을 떴을 꺼다. 결국은 애꿎은 바닥만 발로 차다가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 다. ================================================ "....그럼 나랑 현우랑, 애들 몇 더 데리고 와서.... 연습 경기 삼아 한 번 해보자. 아무래도 얼마나 맞는지 정도는 해봐야 될테니까...." "그럼, 난 반에가서 지원한다는 애들 불러올께." "그래. 우린 우리끼리 얘기 좀 해보자고...." 지금은 점심시간.... 3교시에 있었던 1반과 2반의 예선은 약간은 큰 차이로 1반이 승리했다. 뭐... 2반도 꽤 잘하긴 했지만, 후보진이 약했던 모양인지 후반에는 교체할 선수가 없어 쩔쩔매는 꼴 이 역력했다. 하기사, 후보래봐야 달랑 2명까지만 허용되니까 어차피 풀로 뛸 사람은 풀로 뛰어야 한 다는 이야기다. 그건 그렇다 치고, 막상 연습이라고 닥치고 보니 참 착잡하다. 진욱이 녀석, 시합 때는 물론이고.... 그냥 시비를 걸어도 안 싸우겠다고 다짐에 또 다짐을 했지만, 표 정까지는 어쩔 수 없었는지 두 녀석다 완전 냉기류다. 저래가지고 패스나 제대로 오갈 수 있을 런지. 나머지 두 명은 승혁이와, 태윤이... 솔직히 두 사람하곤 한 번도 시합해본 적이 없어서 실력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겠다. 어휴.. 다른 녀석들 한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 심정 같아서는 차라리 깔끔하게 예선에서 떨어 졌으면 하는 생각 마저 든다. 이 기분으로 대체 무슨 농구를 하겠다고... 혼자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한숨만 푹푹 쉬고 있자니, 진욱이 녀석이 슬쩍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현우 왔다." "..................." ".................." "정말 안 싸우고 잘 할꺼지?" "...남아일언 중천금이야. 내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냐?" 아까부터 딱딱하게 분위기 잡고 있던 얼굴이 풀어지면서 싱글싱글 웃어보였다. 내가 보는게 맨날 네 녀석 거짓말 하는 건데..... 아..주..많..이.. 믿음이 안 가는 걸... 아니나 다를까, 그 놈의 밥맛없는 웃는 얼굴도 신기현과 마주하니 그대로 싸악 굳어버린다. 그래.. 믿음직스럽다. 믿음직스러워. "뭐... 더 의견 낼 것 있는 사람...?" "별로..." "그냥 시작하자." 으음.. 다른 팀들은 화이팅 어쩌구 하면서 연습할때도 뻑적지근 하게 시작하던데.....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우리는 그런 것도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어째 좀 썰렁한 것 같은데.... 발목을 이리 저리 돌려서 대충 풀어주면서 골대 밑으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갔다.. 그나마 우리가 오늘은 일찍 나와서 2개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거지, 딴 때 같으면 1개 쓰는 것도 어림 없 다. "양재성..." "..............." "너... 정말 농구 할 줄 알기는 아는거냐?" "..............." 뭐야.. 그럼 내가 할 줄도 모르면서 여기 들어와있다는 거야? 갑자기 튀어나온 뜬금 없는 질문에, 약간은 얼굴을 찌푸리고 기현이 놈을 살짝 노려봐 주었다. 그랬더 니, 녀석 답지않게 안절부절이다. "아니... 자유투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기서 이렇게 하는 건 위험하단 말이야. 애들이 다 너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아...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닌데...." "..............." 참... 걱정도 팔자다. 내가 애기냐? 누가 들으면 아직 걸음마도 못 떼는 줄 알겠다. 특별히 내가 잘 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 녀석 말을 듣고 있자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가뜩이나 신경도 예민해져있는데 별 같지도 않은 걸로 시비거는 녀석이 왠지 밉살스러워서 한 마디 쏘아주려는데.... "너 재성이랑 한 번도 농구 안 해봤지...?" "....그런데?" 뭐냐..... 박진욱... 넌 또 왜 끼어드는거야!!! 신기현... 그러는 너도 그냥 물어보면 대답이나 할 것이지 그렇게 정색을 할 것 까지는 없잖아!!!! [피식......] "뭐야? 비웃은거야? 지금??" "아니... 그냥 니가 재성이랑은 한.번.도 안 해봤다니까.... 저래뵈도 저 자식 꽤 잘 하거든." "..................." 왠지 진욱이 말투가 자랑하는 것 처럼 들렸다면 내 귀가 썩은 건가? 내가 볼 땐 별로 새삼스러울 것 없는 소린데도 굉장히 약올라하는 기현이 녀석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 숨이 푹푹 나왔다. 안 싸운다더니......에휴..... "야.. 다들 위치로... 점프볼 누가 할꺼야?" 그거야 당연히 진욱.......이..가................................. ....가... 아닌가? 동시에 앞으로 나서는 신기현과 박진욱.. 하기사, 둘이 키도 비슷하지 뭐.. 그간 진욱이와만 시합을 해서인지 은연중에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 던 모양이다. 이거 처음부터 무슨 싸움이나 나지 않을까 싶어, 조마조마한 심정에 어떻게든 중재를 해 보려고 나서니, 진욱이 녀석이 정말 놀랍게도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니가 해. 대신 제대로.." "...................." 헉........ 저...저런 답지않은 행동은 저 녀석이 할 줄이야. 순식간에 떠밀린 기현이 녀석도 황당해서 까무라치겠다는 표정이다. 양보..양보.. 양보라...... 왠지 출발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뚝뚝한 표정이 그리 달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진욱이 녀석... 꽤 기특해보인다. "자.... 시작!!" [텅.......] 호각도 없이 어설픈 구령으로 점프볼... 확실히 기현이도 작은 키는 아니었던터라 공을 쉽게 우리편으로 넘겨올 수 있었다. 짜식.. 좀 살살 넘기지... 이러다가 넘어가면 어쩌려고.... 있는 힘껏 공을 향해 달려. 아슬아슬하게 움켜잡았다. [탕...탕...탕...탕....] 하하.. 느낌 좋고.. 이 좋은걸 그러고보니 한 동안 못 했던 것 같네... 천천히 한 발 한 발 땅에 디디면서 상대 진영으로 다가갔다. 진욱이랑, 신기현.. 둘 다 골대 밑에.. 승혁이가 오른 쪽, 태윤이가 왼 쪽.... 가만있어봐라.. 현우가 저기있으니까... "태윤아!!" [탕.....] 재빨리 앞을 막아서는 지훈이를 슬쩍제끼고는 태윤이 쪽으로 공을 넘겼다. 수비는 현우만 피하면 아마 별 문제 없을 듯 싶다. 제끼려고 마음 먹는 다면야, 못 제낄 것 없지 만...... 너무 집요해서 한 번 상대하다간 정말 진이 다 빠져 나가는 것 같다. 패스는 어느 덧 진욱이로... 확실히 키도 되고 등빨도 있는 놈이라서 나처럼 잔재주 안 부리고도 수비를 거뜬이 넘겨버린다. 현우 가 밀리고 있는 꼴이니 뭐.... 아무튼 무식한게 힘만 세다니까..... 어느 덧 수비가 한 사람 더 붙길래 가만히 있어선 안 돼겠다 싶어, 안 쪽으로 다가가니 바로 패스가 넘어왔다. [휙........] [출렁......] [탁....] 가볍게 착지. 평상시엔 별로 표정변화 없는 인간인 나지만, 이 순간만큼은 얼굴이 확 피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이야!! 나이스 슛!!" 저편에서 진욱이 녀석이 손을 흔들면서 활짝 웃길래 마주 따라 웃어주었다. 수비하려고 우리 골대 쪽으로 뛰어가는데 갑자기 기현이 녀석의 험악한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뭐..야? 뭐가 잘 못 됐나? 신경이 좀 쓰이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재빠르게 밀고 들어오는 현우 녀석을 막아서야 했다. 같은 편이면 정말 편리한 놈인데..... 에이씨..... 팔을 벌려서 열심히 가로막아봤지만, 얄밉게도 슬쩍 돌아서는채 하면서 유유히 빠져나가 버린다. 그 나마 뒷편에 진욱이가 있으니까 다행이긴한데...... 에에에??? 저 위치에서 바로 슛?? 어휴.... 저런 꼴통 새끼.... 연습상대면 좀 살살해줘도 되는거 아니냐... 놀라서 빨리 달려가니 다행히 링에 맞고 튀어오른 볼에 진욱이 녀석이 달라붙고 있는 중이다. 그런 데... [탁.....] [쿠당탕탕...... 쾅...] "진욱아!!!!" 뛰어오르는 타이밍과 동시에 신기현과 몸이 뒤엉킨다 싶더니만, 이내 뽀얀 흙먼지와 함께 진욱이 녀 석이 땅에 굴렀다. 떨어지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황급히 달려가보니 머리까지 감싸쥔 것이 정말 오지게도 부딛혔는지 싶다. "야... 너 괜찮은거야?" "아야야......" "움직일 순 있어? 머리는 괜찮아??" "................." "임마!! 괜찮냐니까??" "..............쿨럭.... 으으... 약간 띵하긴 한데.. 그럭저럭 멀쩡한 것 같다. 헤헤.... 참 별일이네. 양재성이 내 걱정을 다해주고.... " 바보..... 이게 웃을 일이냐? 시합하던 지훈이 하며 나머지 애들도 전부 몰려들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냥 맨 바닥에 쾅 하고 떨어져버린 것이라서 그런지 이 놈이 태연한척 헤헤 웃으면서도 좀체 몸을 못 일으킨다. 보다못한 현우가 잡아서 일으키니 그나마 비척비척 일어는 서 있는 것 같지만..... 어휴..... 얄밉던 놈인데, 막상 이렇게 넘어져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좀 묘했다. 흙투성이가 된 체육복을 안쓰러운 마음에 몇 번 털어주니 이 녀석이 되려 내 옷 더러워 진다면서 정색 을 한다. 그래... 말귀 못 알아 먹고, 실실 사람 놀리는 통에 요새 까먹긴 했는데, 알고보면 너도 꽤 착 한 놈이었지. "이거 좆나 병신이네.........." [.................................................. .................................................... ...............] 괜찮냐느니, 괜찮다느니 하면서 완화되어있던 분위기를 깨는.... 이죽거리는 목소리 하나. 실실 웃던 진욱이도, 다른 아이들도... 기현이의 그 한 마디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건 또 무슨 개소리라냐 하는 생각과 동시에 방금전의 상황을 돌이켜보니, 왠지 슬슬 열이 오르는 것 같다. 애써 내가 잘 못 본 것 내지는, 오해한 것이라고 생각하려 했는데, 저 딴식으로 말하면 정말 좋게 못 봐주는거 아니겠어? 진욱이가 잡으려고 뛰었고, 잡을 수 있었는데 신기현이 따라뛴 것. 좀 안 좋게 본다면, 일부러..... 밀. 치. 려. 고. 했던 것 같았단 말이다. "니 입으로도 괜찮다고 해놓고 뭘 그렇게 자빠져서 지랄이냐?" "......................" 허허.... 이건 완전히 시비거는 말투 잖아..... 화나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니 기현이 녀석의 입술 끝이 묘하게 말려올라가 있다. 글쎄.... 힘든 일에서 그냥 쓱 하고 발빼는 요령이나 좀 있는 놈인줄 알았는데, 어쩐지 평소 내가 보던 모습과는 확 달라보인다. 이거... 나같은 천 것은 어디 말이라도 못 걸만큼 거만하고 쌀쌀맞은 도련님 분위기..... 아니, 대체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들어서 시합한지 5분만에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건지.. 설혹 맘에 안 드는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자기 편을 저렇게 고의적으로 걸고 넘어지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냐? 잠시 넋 놓고 있자니, 기현이 녀석이 저벅저벅 진욱이 쪽으로 걸어와 서는 어깨를 홱 밀치고 저만치 가버렸다. 진욱이가 순간적으로 휘청하니, 옆에서 붙잡고 있던 현우 녀 석이 도저히 못 참겠던지 신기현을 불러세운다. "신기현..." "뭐야???"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뭐가? 저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설치다가 저렇게 병신됐는데, 더 이상 여기서 뭘 어떻게 하냐? 이거..... 정말 수준 안 맞아서 같이 못해먹겠네.... 연습은 무슨 연습이야? 나중에 시합때나 되면 불러. 내가 한 번 정돈 뛰어줄테니...." "일부러 걸고 넘어진게 누구였지? 정말 한 번 해보자 이거냐?" "....자신 있으면 해보던지... " 그대로 저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기현이를 향해 현우 녀석이 다짜고짜 덤벼들 기세였다. 현우 녀석의 손이 기현이의 멱살을 막 잡아채려는 순간, 놀랍게도 진욱이 녀석이 갑자기 그 앞을 막아 섰다. "이거 안 놔? 평소 성질 다 어디갔냐? 넌 저런 소리 듣고도 배알이 안 꼴려? 이거 놔. 나라도 한 대 안 패주면 속터져서 못 견딜 것 같으니까.." "..................." "손 놓으랬다...." ".........약속했잖아. 너도 싸우지 마." ".........뭐?" "재성이랑 약속했잖아. 그리고, 약속이 아니더라도 나 정말 싸울 생각 없으니까 너도 그냥 넘어가라. " "................그냥 넘어갈 게 따로 있지. 이게 저 자식 기 살려 주는 것 밖에 더되냐? 너 진짜 병신이야?" ".......싸우지 마. 나는 무식하고 머리도 나빠서 다른 건 잘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 말한 건 끝까지 지켜.. 나 정말 괜찮으니까 그냥 참아..." "....................." "....................." 어휴... 그러다가 니네 둘이 싸우겠다. 급히 다가가 머뭇머뭇 옷깃을 잡으니, 그제야 현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꼭 진욱이랑 현우가 바뀐 것 같아 기분이 좀 이상하다. 원래 같았으면 진욱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덤벼들고, 현우가 차분하게 말렸을 텐데...... 하아..... 약속....... 약속........ 약속이라...... 진짜... 저 밥팅이 새끼.... 언제부터 니가 내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그 딴 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뭐 별거라고.... 그래... 다시 생각해보니 애초에 그 '싸우지 않는다..' 라는 약속 자체가 정말 터무니 없는 소리였던 것 같다. 둘 다 그 약속을 했다면 모를까, 여전히 신기현은 진욱이만 보면 어찌 시비를 못 걸어서 안달 인데, 결국은 진욱이 녀석이 무슨 일이 있든지 꾹꾹 참아야 한다는 얘기가 되버렸잖아. 이제 와서 그냥 한 대 패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어휴.... 이거 화를 낼 수도, 미안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태.. 아무튼 지금 기분이 아주아주 더럽다. 신기현 그 자식은 한 동안 괜찮더니 갑자기 또 왜 그렇게 지랄인건지.. 애초에 저딴식으로 나올꺼면 대체 농구는 왜 한다고 한거냐? 일부러 우리 가지고 놀려고 쑈하는거야 뭐야..... 특별히 누구를 미워하고 어쩌고 하는 것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못 한 나지만 왠지 속에서 뭔가 욱욱 거 리는 것 같았다. "가자....." ".....연습은??" "...지금이 연습할 상황이냐??" 나의 한숨 섞인 한마디에 현우도, 진욱이도, 지훈이도....... 맥이 탁 풀려버려 그냥 터덜터덜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데굴데굴 따라 굴러가는 농구공이 처량맞다. 이거 진짜....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냐.. ======================================= "재성아,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 ".... 연습... 안 할꺼야?" 연습이고 뭐고 어디 인간이 있어야 하지... 신 뭐시긴가 하는 놈은 연습은 커녕 시합도 안 나올 기세던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뭣하러 그런데다 가 기운 빼냐? 아까 점심 시간에 한 바탕 틀어진 뒤로 기분은 아주아주 밑바닥 까지 가라앉아, 지훈이 녀석의 간단 한 질문조차도 대답해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나마 오늘 있기로 했던 예선이 취소되고, 우리반은 부전승으로 체육대회 당일 시합으로 미뤄진 것 이 다행스럽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궁여지책일 뿐이다. 전교생 보는 앞에서 오늘같이 팀끼리 패스도 안 가는 우스운 꼴 보이느니 차라리 오늘 예선에서 기권 해버리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와아아아아!!!! 화이팅!!!" "야...!! 거기 패스해!!!!" 어휴.. 다들 신 났구만... 담임을 졸라서 이 번 교시도 영어수업을 제끼고 2학년 경기보러 나온건데, 열광하는 다른 녀석들과 는 달리 우리 네 명은 추욱 늘어져서 무기력증과 의욕상실증 환자의 보편적인 증상을 보이고 있는 중 이다. 아침엔 그렇게 재밌게 봤던 멋진 플레이도, 떠나갈듯한 함성도, 넋나간 듯한 진욱이 녀석 표정 도, 한 껏 인상찌푸린 현우의 면상도, 힘없이 웃는 지훈이 녀석도.... 다 귀찮고 짜증 스럽다. 이 대로 멍하니 앉아 구경해봤자 괜히 머리만 복잡해지는 것 같아서 슬쩍 자 리에서 빠져나와 체육관 구석 매트 더미로 갔다. 꾸질꾸질한 매트 한 구석에 대충 자리를 잡고 구석 에 누워 눈을 가만히 감고 있자니....... 함성소리도, 인기척도, 서서히 멀어진다. 기분좋은 나른함에 막 잠이 들려는데, 갑자기 매트 한 구석이 푹 꺼지는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털썩......] 짜식... 살살이나 앉지... 먼지나게... 누군지 확인하는 것도, 아는 척 하는 것도 귀찮았기에 그냥 우리 반 놈들 중 하나려니 하고, 대충 손을 더듬거려 다리를 찾아내서 베고 누웠다. 뭐.... 설마 밀쳐내기야 하겠어.. 이래뵈도 크게 어디가서 원한 산 적은 없는데.... 좀 딱딱하고, 징그럽긴 하지만.... 어쨌든 베개가 생기니 목도 편안한 것이, 정말 천국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이왕이면 귀여운 여자애의 무릎베게라면 좋았을텐데... 흐흐... 어쩌다 내가 이런 컴컴한 남학교에 왔는지.... 순간이지만 후회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여길 왜 지원했더라? 커트라인도 꽤 높아서 약간은 부담됐었었는데.... 아.. 맞다. 버스 한 번만 타면 된다고 해서... 그래서 왔던 것 같다. 우리 집이 특별히 오지인 것은 아니지만, 근처에 다닐만한 고등학교가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니까... 어 이구야.... 또 이 생각 저 생각하다보니 어느 새 절로 잡다해져 버렸군. 그래... 뭐 이게 내 최대의 강점 아니겠냐... 무엇이든 별 것 아닌 것으로 뭉뚱그려버리는 것. 조금은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조그맣게 한숨을 내 쉬니, 갑자기 인간베게가 들썩하는 바람에 귀가 조 금 짜부라 졌다. 에이... 뭐야.. 좀 가만히 있지. 부비적 거리면서 다시 자리를 잡으니, 이번에는 꽤나 큰 면적의 손이 머리카락을 살살 빗겨준다. 평 소 같으면 자지러지는 소리를 하면서 일어날 테지만 지금의 안락함을 그다지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에 고개만 살짝 옆으로 돌렸다. "......참 나..... 너 내가 누군지나 알고 이렇게 비비적 대는 거냐?" 흠..... 박진욱 이었구나..... 어째 유난히 딱딱하더니만... 무시한채 그냥 눈을 감고 있자니 녀석의 "허허.." 하는 어이없다는 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가지가지 한다니까...... 어휴.... 이걸 정신 차릴 때까지 쥐어박을 수도 없고......" 머리를 쓰다듬던 손놀림이 다소 거칠어져서 눈가가 저절로 찡그려졌다. 아니.....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어쨌다고....... 그거 좀 베고 있어서 무겁고 힘들다 이거냐? 쳇.... 그 놈의 다리 쓸데없이 달리는데만 힘빼는 것 보다는 피곤한 친구 머리통 받혀주는 편이 훨씬 영양가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은 전연 안 든다 이거지? 더럽고 치사스러워서 녀석의 손을 떼내고는 머리를 무릎에서 치워주었다. "뭐야.... 왜 또 그리로 처박히는데..... 이리 와.." ".................." 너야말로 뭐냐? 지금 장난하냐? 싫은 소리 할때는 언제고 억지로 다시 내 머리를 끌어다가 다시 자기 무릎에 얹어 놓는 건 대체 뭐하 자는 짓거리 인지.... 약간은 부아가 치밀어서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끔벅끔벅 떠보였다. 그랬더니 양아치 놈의 꽤나 반듯한 상판떼기가 눈 앞에 크게 클로즈 업 되어 보인다. 뭐.... 좀 생기기는 했다만, 아무래도 이렇게 가까이 두고 보니 민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 ".......내가 언제.......?" "......그럼 고개 좀 돌려." "싫은데?" 쳇.... 이 새끼 느물거리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까짓거 니가 얼굴 안 치우면, 내가 치우면 되는 거지 뭐..... 울컥하는 마음에 고개를 홱 돌려 누우니 이 녀석이 이번엔 머리를 콱 쥐어 박았다. "아야... 뭐야..?" "얄미워서...." "내가 뭘....." "전부 다..." 그래... 헛소리가 네 놈 특기 였지... 멀쩡한 껍데기에 또 속아서, 잠깐 잊고 있었다. 더 이상 상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시간낭비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녀석의 다리를 한 번 세게 꼬집 어 주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잠 좀 자볼까 했는데, 도무지 도움이 안된다니까....... [덜컹...쾅!!!] "얌마!! 이 새끼들아!!! 공부는 안 하고 여기 기어나와서 뭣들 하는 거야!!! 어?? 빨리 안 들어가???" [웅성웅성웅성.....] 허어.... 이거 진짜 미치겠네. 이제 좀 조용해졌나 싶었는데, 이번엔 체육관 문이 벌컥 열리면서 교감 등장이다. 열광하던 아이들의 무리는 순식간에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고, 시합도 저절로 중단 되었다. "학생이면 조용히 앉아서 공부나 할 것이지, 이렇게 기어나와서들 뭣들하는거야!!! 니들 이래서 대학 문턱에나 가겠어?? 내가 이래서 애초에 이 따위 것 못하게 하쟀건만....... 다 빨리 들어가!!!!" "........뭐야.... 갑자기 와서는.... 다 허락 받고 나온건데.." "씨발, 좆나 재수없어. 저 대머리...." "이제와서 이게 뭐하자는 거야.... 진짜 드러워서....." "....언제부터 우리가 공부만 했다고 지금와서 지랄이냐..." "아씨... 한참 재밌는데....." 아이들이 원망의 소리만 높아갈뿐 도체 말을 들어먹지 않자, 교감이 머리끝까지 새빨개 져서는 손에 든 몽둥이로 주변의 아무놈이나 쫓아가면서 패기 시작했다. 몇 놈이 맞는 것을 보더니 아이들도 분위 기가 이게 아니었구나 싶었는지 하나 둘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입으로는 씨팔씨팔 하면서도 대충은 아이들이 수긍을 하니 교감은 그제야 분이 좀 풀렸는지 별로 올 도 없는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문 옆에 팔짱을 끼고 섰다. "저... 선생님. 저희 전부 교과 담당 선생님께 허락 받으러 나온 것입니다. 체육대회 끝나면 어차피 시험기간이니, 다들 공부하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들 잘 할 겁니다. 이왕 이렇게 모이고 수업도 이제 15분 밖에 안 남았는데 이 시합만 마저 응원하면 안 될까요?" ".........뭐야... 너는!!" "1학년 5반 송지훈입니다. 소란 피우지 않고 조용히 보다 갈테니 이 번 한 번만 봐주시면.." [퍼억.....] 아아....이런 세상에.... 몽둥이 소리에 저절로 눈을 감고 말았다. 정말 뼈라도 부러진 것 아니야? 놀란 마음에 벌떡 일어나서 달려가보니, 지훈이 이 녀석 지가 뭐 그리 대단한 놈이랍시고, 퍼붇는 몽 둥이 찜질은 그대로 당하고있다. 저런 미친..... 나이가 그만치 들었으면 점잖게 좀 행동할 것이지.... 무슨 애를 저렇게 무식하게 패냐?? 앞에가서 당장이라도 막아서고픈 마음이 굴뚝 같기는 하지만, 이 놈의 몸은 대체 어떤 구조로 이루어 진 것인지 앞에 나서는 일이라치면 뻣뻣히 굳어버리고 만다. 등신... 등신... 여기서 내 한 몸 아껴서 뭐하겠다는 거냐... 안타까운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자니, 현우 녀석의 싸늘하게 굳은 얼굴과 진욱이 녀석의 폭발 일 보 직전의 험악한 표정이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아아... 이거 정말 위험해 보인다. 이 녀석 둘 다 한 번 뒤틀리면 정말 장난 아닌데.... 한층 더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하고 있자니, 다행히 저 편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담임 목소리가 이렇게 반갑게 들릴 줄이야 어디 상상이나 했겠어? 헐레벌떡 달려와서 숨조절도 잘 못하는 담임의 저 얼굴이 이렇게 믿음직스러워 보일 줄이야... 담임 도 도움이 되긴 되는구나... "아니!! 차선생!! 무슨 일은 차선생이 벌여놓은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무단 이탈이라니요.. 거기다.... 말버릇은 대체 이게 뭡니까?? 15분 밖에 안 남았다느니, 체육대회니 봐달라느 니.... 참. 나.... 살다살다 정말 어이가 없어서....이런 싸가지 없는 애새끼 부모가 누군지......" "...................." ...............담임이 온다고 전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군... 생각해보니까 우리 담임 올해가 겨우 2년차, 서열을 쭈욱 매겨본다면 저기 뒤 꽁다리에서 간당간당이 다. 교감이야 하는 일은 없지만 어쨌든 꽤나 힘있다는 직책이고........ 어휴... 이거 괜히 또 골치 아프게 됐네.... 엄한 담임만 시말서 쓰는거 아닌가? 어쨌든 지훈이 맞는 것은 중단되어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매질이 그치니 녀석이 축 늘어져 있던 고개를 그제야 설핏 드는데 우리랑 눈이 맞자마자 씨익 웃어보 이는 것이.. .............................어휴........ 등신이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도 우리가 믿어줄 거 같아? "아니 애들 교육을 대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이러니까 학부모들한테서 그렇게 항의가 들어오는거 아니에요!! 젊다고는 하지만 학생이나 선생이나 대체 이게 뭐하는 짓거리인지...." ".................." 교감 말을 듣고 있자니 왠지 내가 다 민망해 지는 것 같았다. 저거 상식이 있는거야.. 어쩐거야... 아무리 잘 못되었기로 서니, 애들앞에서 저렇게 선생을 내 놓고 몰아붙이는 것은 또 뭐냐? 담임은 고개를 푹 숙인채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이 없다. 이렇게 보고 있자니, 담임과 교감 둘 다 선생님 같다기보다는... 아직 한 참 젊은 우리 담임은 입학한지 얼마 안 되는 대학생 같고, 교감은 한 참 위에서 내려다보는 교 수 같은 느낌이다. 내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니까... 세상에 의욕만 가지고 일이 풀리면 얼마나 좋게... 뭐... 솔직 히 그리 담임을 맘에 들어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소의 당당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풀이 죽어 있는 것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싸해왔다. 좋든 나쁘든 그래도 우리반 챙겨주는 사람은 결국 담임밖에 없는건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아이들이 모두 숨 죽이고 있으니 담임의 입에서 나직히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당연한 소리를!! 당장 애들 들여보내고 저 녀석 따끔하게 혼 좀.." "...........................아니.. 그게 아니라.. 지훈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요..." "네... 그렇지요.........아..!! .아니 지금...!!!" "다시 한 번 말씀 드릴까요?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지훈이가 선생님께 그.렇.게.까.지 줘 맞을 정도의 행동은 하지 않은 것 같군요." "차..차선생!!!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교감 선생님 앞에서는 말씀도 제대로 하면 안되는 겁니까? " "......아...아니....저...저저저...저런... 경우 없는...." "지금 경우 따지실만한 행동을 하신 것 같진 않은데요.." 다....다...담임이 드디어 미친 건가..? 너무 흥분하고 놀라서 말 조차 못 잇는 교감과, 완전히 굳어버린 아이들과는 대조적으로 담임의 표정은 너무도 담담했다. '어휴.. 간만에 너무 열심히 뛰었더니 이거 숨이 차서 못 살겠네..' 하 는 식으로 중얼거리며 스웨터 소매를 휘휘 걷는가 싶더니... 머리 꼭대기까지 새빨개져 버린 교감을 뒤로 하고는 아이들을 인솔하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이봐들...... 뭘 그렇게 답지 않게 쫄아들 있냐?? 거기 6반, 7반 니네 시합 안 할꺼야? 뭐... 어차피 우승은 우리반이 할 꺼니까 누가 이기든 상관은 없지만 관객이 이렇게 많은데 서비스 해줘야지. 얌마.. 니들은 또 뭐야? 기껏 적진을 정탐하라고 이렇게 내보내 줬더니..!! 빨리 응원하는 척 하면서 약점 캐내란 말이야. 다들 앉아!!" [웅성웅성웅성웅성....] 아이들이 슬금슬금 눈치만 볼 뿐 좀 체 움직이지 않으니까, 담임은 잠시 한숨을 푹 쉬는가 싶더니 애 들 몇 몇을 끌어앉힌 뒤, 심판 보는 선배 하나를 불러 들였다. 교감..... 아직까지 말을 못 잇고 있는 상태다.. 옆에서 보는 우리도 어안이 벙벙한데 당사자야 어떻겠 는가... 허어... 얼굴이 새빨갛다 못해 시퍼래지는 것이 혈압이라도 올라 쓰러질까 싶어 못내 걱정스럽 기까지 하다. 한참을 수군수군 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더니 몇 몇 아이들이 한 참 열올리고 있는 담임에 게 가서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희 그냥 들어갈께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시합 해도 엉망일 것 같아요. " "아니 그래도......." 그래, 이런 분위기에서 대체 뭘 할 수 있겠냐고.... 담임의 노력이 가상하긴 하지만, 아이들도 나름대로 눈치는 있는터라 슬슬 발을 빼기 시작했다. 담임 이 너무 겁없이 나오니까 오히려 보는 우리가 불안해서 못 견딜 지경이다. 요새 선생님 따르고, 존경 한다는 애들이 몇이나 있겠냐만은 이렇게 우리쪽을 감싸주는 입장이 되었다가 피해보는 것을 달가워 할 정도로 막 되먹지는 않았다. 하나 둘씩 꾸벅 인사하고 체육관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씁쓸한 미소 로 쳐다보는 담임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마음이 안됐구나 싶다. 아이들이 전부 나가고 마지막으로, 시합하던 6,7 반 애들만이 눈치를 슬슬 보고 있는 터라 나도 진욱이와 현우를 잡아 끌고 체육관 문을 나섰다. 지훈이 녀석.... 아무래도 저렇게 붙들려 있는 꼴이 같이 데려가기는 틀린지 싶어 발걸음이 무겁기만하다. 어둡고 칙칙한 체육관 복도를 몇 발짝 앞 서 걷고 있자니 저기 뒷편에서 어느정도 진정한 교감의 두고 보자는 듯한 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크흠.. 차 선생... 나 좀 봅시다. 학생도 좀 따라 오고...." 빌어먹을 놈의 체육대회....... 진짜 일이 커지는 것은 아닐지 못 내 걱정이다. ========================================= Sweet. so sweeeeet!! 아아..(17)-1편이 한편인데..하나로 올리니까. 잘라서, A,B두부분으로 나눠 올립니다. =============================================================== "별일이야 없겠지?? " ".....기껏해야 몇 마디 좀 듣겠지...... 정 안되면 우리라도 운영위원회에 찔러버리면 그만이니까....." 진욱이 녀석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현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지만, 영 표정이 무거운 것이 그 다지 믿을만한 소리는 아닌지 싶다. 내일이 체육대회고 보니 복도고 어디고 청소하는 대걸레니 뭐니 해서 어수선하다. 교실로 올라가는 길이 오늘따라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 건지... 짜증스러운 마음에 가던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 "야!! 양재성.. 어디가!!" "................" "......화장실.." 진욱이와 현우 녀석이 쫓아올기세길래 그대로 냅다 뛰어버렸다. 물칠이 된 복도 바닥을 한 참 뛰다보니 찝찌름한 냄새가 나는게 화장실 앞이다. 다짜고짜 물부터 틀고 세수를 했다. 하아..... 정말 하기 싫었던 농구도 결국은 하게됐지... 신기현 새끼는 뭘 잘 못 처먹었는지 어쨌는지 열 댓살씩이나 처먹은게 유치하게 쌩쇼하지. 덕분에 진욱이랑 현우녀석 둘다 신경줄이 팽팽해져서 난리지. 지훈이는 또 반장이랍시고 지 몸 하나 간수도 제대로 못하지. 담임은 잘났다고 나섰다가 바가지 쓰지. 교감이란게 또 나서서 지랄이지. 아아... 진짜 스트레스 받아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다. 이제까지 이렇게 한 꺼번에 과열 되었던 적은 없었다고.... 난 아무짓도 안 했는데, 주변이 요새 왜 이리 엉망진창인건지 모르겠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니까 감당하기 너무 힘들다. 차가운 물에 얼굴을 몇 번이나 부벼대니 그나마 몽롱했던 눈앞은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손바닥으로 뺨을 몇 번 탁탁 치고는 수도꼭지를 쥐어잠그고 축축한 물기를 체육복으로 대강 닦으며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래.... 신경끄자. 신경꺼. 요새 나답지 않게 너무 많이 나서고, 많이 생각했던 모양이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그냥 되는대로 내버려두자. 다 자기들이 알아서 하라 그래. 걸으면서 차분히 생각을 하고 있자니 심란했던 마음은 꽤나 가라앉아서, 교실문 앞에 다다를 쯤에는 평상시 못지 않은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단은 집에 가서 한 숨 푹 자야 겠다는 생각으로 교실문 을 여는데........ [.................................................... ..................................]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아이들이 모두 입을 꾹 다물고 한 곳만을 집중하고 있다. 그 새 또 무슨일이 난건지 어쩐건지.... 불안한 마음으로 시선이 집중되어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정말 미안하게 됐다. 마시다가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게 하필이면 니자리로 다 쏟아지더라고....." "...................." "....쿡.... 안 싸운다면서.... 설마 그새 마음이 변한건 아니겠지??" "..........신기현... 이 개새끼가!!!!" "..그래. 이현우.. 꼴에 의리는 있다고 대신 나서는 거냐? 범생인척 그간 얌전히 잘 있더니 슬슬 본색이 드러나네...? 그 뺀질뺀질한 면상으로 니가 얼마나 잘 싸우나 어디 한 번 보자고... 나도 싸움 같은거 안 무섭다 이거야..." [우당탕탕탕탕....] 의자가 바닥에 구르면서 동시에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이 편 저 편에서 서로 현우와 기현이를 떼어 놓느라 난리 법석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휭 둘러보니...... 음료수 캔으로 아주 엉망이 되어버린 진욱이 책상이 보였다. 흥건하게 고인 것들이 서랍 안 까지 들어 가서 안의 교과서들이 엉망이 된 것이 언듯봐도 확실했다. 허허허허.... 신기현 이 새끼 정말 치사하고 유치하게 나오네...... 진욱이 녀석은 굳은 표정으로 현우 녀석만 뜯어 말리고 있을 뿐 이번에도 별 말이 없다. 신경 안 쓰기로 다짐한게 몇 초나 됐다고.... 어휴우..... 내가 미친다 미쳐.... 지금 심정 같아서는 저 책상 모서리에 그냥 내 머리를 갖다 박아버리고 싶다. ".......좀 비켜봐." "...저 새끼 저거!! 내가 뭐랬어!! 아까 왜 참았냐 이 등신아!!!" ".....어휴.. 좀 가만히 있어봐..!!" "야!! 막상 덤비라니까 무섭냐?? 말려주길 기다리는 거야 뭐야??" "기현아!! 그만 좀 해!!!" "야... 누가 좀 뜯어 말려...." ".....저기...잠깐만 비켜...주.." 아수라장 한 복판에서 내 목소리 같은게 먹힐리가 없지...... 내가 이거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어휴.....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푹푹 쉬며 어떻게 수습을 좀 해볼 요량으로 체육복 상의를 훌렁 벗어 제꼈다.. 이거... 땀이차서 소매가 잘 안 빠진다.... "...야..양재성.... 너...." [..................................................... .....................................] 뭐야? 어디 교감이라도 또 뜬거야? 다들 왜 이렇게 또 쥐죽은 듯이 조용해? 왠지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드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쳐다 볼 구석이 어디있다고 저러겠어.... 그냥 착각이려니 생각하고 체육복을 대강 개켜 음료수로 흥건한 진욱이의 책상을 한 번 훑어냈다. 이 그... 이거 별로 좋은 면이 아니라서 물이 걷돌기만하고 흡수가 잘 안된다. "헉..............." "....얌마!! 너 지금 체육복으로 뭐하는 짓이야?? 그만해!!!" "미쳤냐?? 뭐라도 빨리 입어!! 그거 이리 내려놓고...!!" "재성아, 그러지 마." "야... 완전 옷이 엉망 됐다." "어디 다른 걸레 같은거 없냐? 누구 좀 찾아와봐." ".... 내가 옆반 한 번 가볼께...." 뭐래.... 다들 또 이번엔 왠 호들갑이야? 정색을 하고 달려드는 인간들 덕에 질식할 지경이다. 대충 무시를 하고 서랍속의 진욱이 책들을 꺼내 한 권 한 권 대충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있으니 현우 와 진욱이 녀석 둘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안절부절이다. 다른 놈들도 그렇고..... 그 기세높던 신기현까지 입을 꾹 다물다니........ 대체 뭔일이래? "됐어. 뭐 이까짓거가지고.... " "걸레 찾아다 줄테니까... 당장 그만둬!!" "우리반에 걸레가 어딨냐? 음료수같은건 잘 지워지니까 괜찮아." "그럼 옷 이라도 좀 입어!!" "이거만 다 닦고...." "........................" 이게 뭐 별일이라고..... 다들 여기에 목숨을 매는 거야? '이걸 어떻게 손 델 수도 없고... ' 어쩌구 하면서 궁시렁 거리는 폼이 싸우던 것은 벌써 애저녁에 잊은 모양이다. 아무튼 정말 알 수 없는 놈들이란 생각에 한 숨이 푹푹 나 왔다. 그 건 그렇다 치고... 음료수가 생각보다 책을 많이 안 적셔서 다행이다. 이제 좀 있으면 기말인 데......책이 망가지면 큰일이지...... 서랍 안도 한 번 훑고 대충 다 닦인 것 같아 완전히 끈끈해진 체육복을 내려놓고 셔츠를 꿰어 입었다. 옷 매무새를 대충 바로 잡고 있으니까 대충 반 분위기도 원상 회복인 듯 싶다. 뭐....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라도 해결이 되니.... 어휴.. 이제야 숨이 트이는 것 같 다. 나름대로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워 하고 있는데 진욱이와 현우 놈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아까부 터 시작된 근거없는 꼬투리를 자꾸 걸고 넘어지느라 정신 없다. "......왜 니가 이러고 앉아서 이걸 닦고 있냐?" "그럼 음료수가 엎질러져 있는데 그 것부터 닦아야지... 그 옆에서 싸움부터 하고 있냐? 아무튼 인간들이 상식이 없다니까...." "근데 체육복은 또 벗고 난리야!!!" "........그럼 뭘로 닦아..? .. 니네 둘이야말로 왜 번갈아 가며 승질인데..." ".....니가 우리 염장을 지르잖아!! 체육복이나 이리 줘. 나 때문에 그런거니까 빨아다 줄께...." 아.... 체육복...... 그나마 다행인게 사이다 같은 거였는지 끈적거리기는 해도 얼룩은 안 남을지 싶다.... "아냐. 니가 안 빨아다 줘도..." "빨아다 준다니까...." ".................됐다니..." "이리내.." "재성아, 그냥 진욱이 줘라... 그래야 진욱이도.." "....................야... 신기현.. 이거 니가 가서 빨아와." 두 놈 등쌀에 축축한 체육복을 기현이 놈 쪽으로 휙 내밀었더니..... 시끄럽던 두 녀석이 조용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ㅡ 이런....... 반 분위기 다시 썰렁해 진다. .......다들 사람 무안하게 이럴 것 까지는 없잖아. 내가 못 할 짓 시킨 것도 아닌데..... 입도 다물지 못하고 기현이 놈이 넋이 나가서 쳐다보길래, 나름대로는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해주었다. "네가 네 돈 주고 산 음료수, 네 손으로 여기 엎지른 거..... 당연히 네 손으로 빨아야 되는거 아니냐?" "..................." "..................." ".......그...저....." "....빨아와라...." "저..저....." 나름대로는 냉정하게 웃는다고 생글 거리면서 축축한 체육복을 손에 쥐어주니 이 기현이 녀석 얼굴이 열이라도 받은 듯 순간 벌개진다. 쯧쯔.... 말까지 더듬는게... 엄청 화나는 모양이구나... 그대로 참았다가 이따가 딴 놈한테 곱게 풀어라.... 나는 손이나 씻으러 가볼란다. 터덜터덜 교실문을 열고 나서는데.... 아까보단 좀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박진욱... 등신새끼... 내가 언제 싸우지 말랬지, 괴롭히지 말랬냐? ==================================================== "뭐...?? " "야!! 이제 와서 그런 얘기가 어딨어!!!!........이제와서 응원도구우???" ".....그럼, 난 이만..." 한 쪽 눈썹을 묘하게 끌어올리는 현우 녀석과, 바락 바락 악을 쓰는 진욱이.... 그리고 머리를 감싸쥐고 어쩔줄 몰라하는 지훈이를 뒤로하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송지훈.... 아무튼 일 내는데는 선수라니까..... 교장실에 끌려갔다와서는 내일 응원 도구 준비를 애들한테 미처 못했네 어쨌네... 그전부터 당부는 해뒀지만 기억하는 애들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네 어쩌네..... 하는... 순 사람 속 긁는 얘기 소리만 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아아.. 더 이상은 정말 사절이다. 오늘은 정말 나 답지 않게 많이 나섰던 거라고!! 나는 아주 이기적이고 귀찮은 일에는 손 안대는 인간이라서 너희들이 설득해봤자 소용없다니까!!! 속으로 발악을 하면서 미친 듯이 사람 없이 텅 빈 복도를 달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뒷쪽에서 서늘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이... [탁....] 제길.... 잡혔다. 이 것들은 지네가 무슨 체육 특기생이라고... 대체 왜 이렇게들 빠른 거야. 그래... 잡은 건 잡았다고 치자 그런데..... "이야아~ 내가 먼저 잡았다." "웃기지마. 네가 잡은 것 옷이고, 내가 잡은 건 손목이잖아." "옷이나 손목이나 그게 그거지.." "너 옷을 토막내는 거랑, 손목을 토막내는 거랑 같다고 생각하냐?" 잡고나서 누가 먼저 잡았는가 싸우는 것은 대체 뭐하자는 짓거리 인지..... 니네 둘 다 유치한거 예전에 깨닫기는 했다만 꼭 이런식으로 다시 자각 시켜줘야 겠냐? 조목조목 하나하나 따져드는 현우와 진욱이를 보고 있자니 다시 기운이 쭈욱 빠지는 것 같았다. "어?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빨리 잡아온 것 같다." 얄미운 새끼.... 싱글싱글 웃으면서 반기는 지훈이를 보고 있자니 마구마구 살기가 일었다. 그 점에서는 진욱이와 현우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다행이네... 그래도 정말 간만에 내 편이 생겨서.... "송지훈.. 응원도구.. 그거 꼭 필요한거냐?" "대충 아무거로나 때우면 안 돼? 그래도 혹시 가져오는 애들 있을지도 모르잖아." "으음.... 아무래도 없으면 하루 종일 애들 넋 놓고 있어야 하잖아. 그리고, 당장 니네만 해도 내가 누누히 페트병 하나씩 가져오라고 얘기했는데도 하나도 기억 못하는데... 다른 놈들은 오죽하겠냐... 니네 중에 내일 그거 챙겨야 겠다고 생각한 놈 있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 그건 그렇네. 안 가져오면 패죽인다고 해도 분명히 대 여섯은 안 가져올텐데..... 제대로 통보도 안된 지금에야 정말 할 말도 없는거지. 저걸 진짜 죽여버릴 수도 없고, 안 도와 줄 수도 없고.... 셋이서 열심히 야려보지만 그래봤자 저 뺀질이 지훈이 놈이 눈하나 꿈쩍할리 만무하다. 어휴...... 지금이라도 그냥 책상 모서리에 머리 박아버릴까? "그래서..... 지금 페트병 몇개가 필요한 건데...." 현우 녀석의 정곡을 찌르는 듯한 질문에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지훈이에게로 향했다. 따갑게 쳐다보는데도 싱글싱글 웃기만 하는 것이....... ....................어....엄청나게 불길해 진다. 어이..어이..... "그냥... 반 인원대로... 40개...." "..................." "...................." ".......에다가..... 곱하기 2배 해서.... 80개." "..................." "...........아하하... 거기서 우리들꺼 8개 제외하면 72개네...." "..............................나 진짜로 간다." [턱.......] "양재성.. 자꾸 도망 칠래? 얼마 가지도 못하는게..." "................" 그래... 얼마 못 가서 미안하다. 한숨을 푹푹 쉬면서 마지못해 자리에 앉아있자니 정말 집 생각이 간절하다. 무슨 놈의 하루가 이렇게 징그럽게 기냐..... 지금부턴 또 페트병 모으러 뛰어다녀야 된다는 거야?? "어디서 모으지?? 재활용 함이라도 뒤져야 하나?" "글쎄... 요즘엔 날짜 정해놓고 그날 그날 분리수거 하니까 그 것도 여의치 않을 걸..." "그럼 아무집이나 돌아다니면서 하나씩...." "........바보냐?" "교무실 같은데도 한 번 물어볼까? 혹시 좀 있냐고?" "........ 선생님들이 마시면 얼마나 마신다고.... 그리고 이제 다들 퇴근시간인데......" "......으아아아아... 이거 미치겠네.... 그냥 그럼 이 근방 돌면서 대충 보이는데로 모으자. 어쩔 수 없겠네." "...................." 하아..... 이 것들 목 위에 달린 것들은 어째 이렇게 답답 스럽기만 하냐... 지금 저걸 의견들이라고 내놓은거야? 박진욱이야 워낙 막나가는 놈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반장이랑 부반장 맡아하는 놈들 사고력이 고작 저거냐... 다짜 고짜 그냥 나갈 기세 길래. 아무래도 좀 설득하는 편이 집에 빨리 갈 수 있겠다 싶어 녀석들을 불러 세웠다. "....이봐....." "왜?" "..........움직이기 전에 좀 진지하게 생각 좀 하는게 어때?" "..별로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안 나잖아." "......................" "........그러는 너는 무슨 방법이라도 있냐?" 어휴우우우우우.. 이 등신들.. 방법 자시고 할 게 있냐? 그냥 상식 선에서 생각을 하란 말이다. 아침 저녁으로 돌만 삶아먹나... 이제 열 일곱 먹은 새끼들 생각이 이 형님보다 유연하지 못해서야.. ".......페트병이 어디 가면 많겠냐?" ".........글쎄..." "...재활용품 통.." "몰라." "...............음료수가 페트병에 들어있지?" "그렇지." "...음료수는 어디서 많이 마시냐?" ".............." ".......어휴... 슬러시 파는데나, 치킨 집이나, 그것도 아니면 음료수 파는데 많잖아." "....아...." "...간만에 머리 좀 썼네.. 양재성..." "...... 함부로 머리 만지지 마라.." 쳇... 기껏 사람이 생각해서 이야기했더니 비비 꼬기나 하고, 머리나 헝클어 놓고.... 왠지 욱 하는 느낌에 이갈린 소리를 내면서 노려봐 주었더니 셋 다 뭐이 그렇게 좋은지 지들끼리 키 득 대면서 난리다. 가증스럽게.......... 대체 뭐가 재밌다는 거야.... "자... 그럼 나가 봐야지.." 실실 웃으면서 가방을 잽싸게 챙겨드는 지훈이를 따라 같이 가방을 들춰맸다. 오늘 집에는 과연 갈 수 있을런지 걱정이다.. ============================================= "고맙습니다, 누나. " "헤헤.... 앞으로 꼭 여기서 사먹을게요." "어머... 뭘... 더운데 수고들 한다. 자.. 이거 서비스니까 한 잔 씩 먹어.." "아니,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냐.. 괜찮아. 빨리 받어." "감사합니다..." 허허.. 이것들 아주 선수네. 선수야. 꼭 여기서만 사먹기는... 내가 벌써 그 얘기만 4번 들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든지... 원래 보통 아닌 놈들인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 못 했다. 느끼할 정도로 매너 챙기는 송지훈이며.. 실실 눈웃음 쳐가며 사람 홀리는 박진욱, 무엇보다.... 평상시의 그 무뚝뚝한 표정은 대체 어디로 간건지 연신 '누나, 누나.' 하며 생글거리는 이현우.... 저 자식 입에서 '누나' 소리가 나올줄 과연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가자." 딱 돌아서자 마자 싸악 하고 굳어버리는 현우 녀석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무슨 가면극 감상 하는 것 같아 소름이 쫘악 끼쳤다. 어휴... 진짜 내가 이런 요물들하고 왜 같이 다녀야 하냐고.... 계속 꾸역꾸역 올라오는 말들을 억지로 삼키며 녀석들이 얻어온 페트병을 집어 넣고 다시 푸대자루를 둘러맸다. 나야 말주변도 없고, 그렇다고 얼굴이 되는 것도 아니니 단순 노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진해 서 푸대를 끌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페트병이 무거운 것은 아니지만 좀 쪽팔리긴 한다. 시내 한 복판에서 교복입고 커다란 푸대자루 끄는 남학생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눈에 띄는 꼴이 아닌가... 시내까지는 나오기 싫어서 근방으로 가자고 나름대로는 강력히 주장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몇 마디 해보지도 못하고 묵살되고 말았다. 하기사, 시내나 좀 나와야지 길가에 슬러시 파는 가게도 많고, 카페도 있고 구할데가 많기는 하다. 세 녀석들이 선전해준 덕에 생각보다 페트병이 빨리 모여서 조금만 더 다니면 대강 개수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것도 그나마 다행이고... 뭐... 좀 민망하긴 조금만 더 참으면 되니까 그냥 입 다무는 편이 나 을 것 같다. "크하하하... 역시 이 몸이 나서면 안 돼는 일이 없다니까.... 이거봐.. 다 내 덕에 모은 거잖아." "그게 어떻게 다 니 덕이냐?" "아무튼... 진욱이 저 새끼 왕자병을 알아줘야 한다니까..." "얌마... 딱 까놓고 얘기해서 내가 모자란데가 어딨냐? 너무 완벽해서 탈이지... 얼굴 좋지, 성격 좋지... 친구를 그렇게 시기하는 것도 못 쓰는 거야...인정할 건 좀 인정을 하라고..." "거만쟁이." ".........양재성.!!! 내가 말 딱딱 끊어서 그렇게 싸가지 없이 말하지 말랬지.... 내가 어디가 거만쟁이야!!!" "전부." "어휴!!! 진짜 내가 이걸...!!!!" "...............이걸?" "너 꼬박꼬박 말꼬리 잡고 늘어질래?" "야.. 참아, 참아. 넌 어떻게 된게 아직도 재성이를 상대로 말싸움 할 생각을 다 하냐.. 다 씹힐거면서...." "말 자체가 웃기잖아. '거만쟁이'가 다 뭐냐? 어린애도 아니고..." "후후... 어울리네 뭐..." "한 번만 더 그렇게 재수없게 웃으면 현우 너도 재미없을 줄 알아." "별로 안 무서워." 또 다시 왁자하게 투닥대는 세 녀석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한숨을 초월해서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시내 한 복판을 소란스럽게 걸어가는 것도 뭐...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닌 것 같다. 간만에 나 와서 그런지 몰라도, 평상시 같으면 번잡하다고 했을 시내 분위기가 오늘따라 꽤 살가운 것도 같은 것 이....... 흐음.... 주변을 휘이 둘러보니 볼 것도 참 많다. 아기자기.. 여자애들이 좋아할만한 악세사리 를 모아놓은 가게, 오락실, CD가게, 우동집, 떡볶기집, 카페, 노래방, 노점의 아이스크림가게, 호떡가 게..... 한 동안 왁자한 골목을 좀 도는 가 싶더니 현우 녀석이 외곽 쪽의 4층정도 되는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그럼 여기 들어가 볼까? 이 건물 2층 카페. 전에 몇 번 왔던 데라서 주인 얼굴도 좀 낯에 익고..." "그러냐? 그럼 한 번 올라가 보지 뭐...." "........허허.. 이런 카페에 과연 누구랑 왔을 까나... 남자는 아니었을 테고.." ".....박진욱..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면 죽인다." "아니.. 나는 그냥 뭐..." 현우 녀석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자, 진욱이 녀석은 짐짓 딴청을 피우고 지훈이 녀석만이 의미심 장하게 씨익 웃어보였다. 이현우.. 너도 참... 잘 둘러댈 자신이 없으면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그렇게 정색을 하면 또 의심스럽잖냐. "그럼.. 우리 셋이 올라갔다가 올테니까 재성이는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 "......임마, 대답 좀 하고 살자." 세 녀석이 빤질나게 쳐다보길래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니, 그냥 아무말 없으면 그러려니 하고 니들끼리 올라가면 되는 거지, 뭘 꼭 그걸 확인사살까지 하 는거냐... 불만스런 마음에 푸대자루를 구석에 삐딱하게 기대 놓고 옆에 털썩 앉아버렸다. 어휴.... 평일인데도... 사람 참 많기도 하지.... 청승 맞게 앉아서 길거리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새삼 신기해 보인 다. 얼굴형, 눈, 코, 입은 물론이거니와 머리모양, 손톱모양까지 전부다 어쩌면 저렇게들 제각각일 까? ..... 뭐 하기사... 허구언날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내는 물건도 한참을 쓰다보면 주인에 따라서... 관리하는 것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모양이 되어버리는데.... 사람이야 오죽하겠어? 이리저리 눈에 밟히는 대로 이 사람 저 사람 쳐다보고 있자니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심심하진 않아 서 좋은 것 같다. "이봐, 꼬마야. 이런데서 뭐하고 있니?" "...................." 어디 어린애가 있나? 귀에 너무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여서 호기심에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꼬마는 아무리 둘러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 저기 멀리 엄마 등에 업혀가는 아가가 하나.... 아직 2살이나 되었으려나? 귀엽다... "어이야?" "................." 멍하니 옹알거리는 아기를 보면서 정신을 놓고 있는데, 이번엔 좀 강력한 인기척이 코 앞에서 느껴졌 다. 시선을 돌려 위를 올려다 보니 왠 사람이 떡 하니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뭐.... 의도 했던 바는 아니지만, 이런 구도... 그다지 기분 좋지는 않군. 이 사람이 꼬마 어쩌고 한 건가? 별로 관심 가질 만한 대상은 아닌 듯 해서 다시 고개를 휘익 떨구니 이 번엔 꼭 나한테 하는 것인양 눈 앞의 사람이 한 마디 더 내뱉었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두리번 거리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하냐? 이런데 쪼그리고 앉아서는........ 혹시.............너 갈데 없어?" "................." "그렇다고 이런데 앉아서 푸대자루로 길을 막고 있으면 어떻게 해." "................." 잠깐 머릿 속이 진공 상태가 된 것 같은 느낌 뒤에 든 생각은.......... 지....지금 나보고 꼬마라고 그런거야?? 나?? 정말 나???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긴 했지만, 정황을 미루어 보건데 아무래도 틀림없지않은가 싶다. 저 정체 모를 사람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것도, 푸대자루를 든 것도, 나 하나 뿐이니까..... 참나..... 내 키가 작은 것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얼굴이 동안인 것도 아닌데.... 더군다나 고등학교 교복까지 입었구만 대체 어딜 봐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상대가 행여 나이 많은 어른인가 싶어 흘낏 쳐다봤지만, 기껏해야 스무살 안 팎으로 밖에 안 보인다. 쳇... 그럼 나랑 차이도 안 나네 뭐.... 엄청 열불도 치밀거니와, 따지고 들자면 정말 할 말 많았지만, 상대하느니 차라리 무시하는 것이 훨 씬 속 편하다는 진리를 이미 터득했던 나였기에, 묵묵히 푸대를 끌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긴 앞치마 매고 어쩌고 한 것이 여기 지하 술집 아르바이트생 같다. "..................." ".......너........." "................???" 뭐야... 자리를 비켜주자 재빨리 나를 비껴서서는 계단을 쿵쾅쿵쾅 내려가더니만, 갑자기 뭔가 생각 난 듯이 뒷걸음질 친다. 턱을 괴고 이리 저리 나를 쳐다보는 것이 뭔가 할 말이 있어보여서 대충 흘려 듣는 것 정도는 해줄 생각으로 물끄러미 쳐다봐 주었다. 그랬더니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푸대자루를 가르키며 한다는 소리가.... ".....그게 뭐냐?" "....................." 한 황당 하는 인간이네.... 사람이 부잡스럽기는..... 어이가 없어서 잠시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꼴 같지 않게 이번엔 재촉을 해온다. 귀찮아지기 전에 그냥 보여주고 끝낼려고 대충 자루를 헤쳐서 안에 든 페트병들을 보여 주었 다. 그랬더니 묘하게도 감동 받은 듯한 표정이다. "......우와... 많다.... 이거 모으러 다니는 거야? 이거 모아서 뭐하게? 팔게??" "......................" 진짜... 부잡스럽고 호기심 많은 인간이네... 언제부터 날 알았다고 저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건지.... 팔긴 그걸 어디다가 파냐? 최대한 기분 나쁜 표정으로 물끄러미 쳐다봐 주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잘은 안 먹히는 것 같다. 내 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너 생긴건 그렇게 안 생겼는데... 진짜 장난 아니게 무뚝뚝 하다. 이제까지 한 마디도 안 한거 알아? ......혹시.. 말..............못해?" "......................" "....앗.....미안...미안... 난 네가 여기 이러고 있는게 안 되보였어서 좀 도와줄려고 그런건데... 특별히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없었어. 진짜 말 못하느.." 이런..... 그건 또 대체 무슨 헛소리야... 비약이 심해감과 동시에 갑자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상대방을 그냥 두면 안되겠다 싶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말 하는데요." ".....야!!.....어휴.. 임마. 놀랬잖냐!!!" 엄청 친한 척이네.... 손사래 까지 쳐대면서...................또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부잡이다. 대충 무시를 하면서 포대를 다시 오므려 손에 쥐고 다시 쪼그려 앉았다. 가던길이나 갈 것이지 왜 갑자기 말은 걸고 쓸데 없는 거 물어보면서 혼자 의미심장하게 고개는 끄덕 끄덕 하는건지 원..... "저기...... 꼬마야. 그 페트병 지금 많이 필요한거야?" "......................" 이거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해... 꼬마라니까.... 다시 기분이 확 나쁘긴 하지만, 왠지...... 말 하는 투를 보니까 좀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엄한 포대자루만 배배꼬면서 자꾸 고민하고 있으려니까ㅡ 잠깐만 기다려봐... 어쩌고 하면서 계단을 우당탕탕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텅...텅그르르르...] "으아... 이거 막 떨어진다. 와서 좀 받아라..." 뭐..뭐...뭐야.... 저렇게나 많이? 양손도 모자라 팔에 한 아름 페트병을 안고 온......-아직 이름도 모르는- 인간의 꼴을 보고 있자니 자 초지종이야 어찌되었든 일단은 고마웠다. 하나, 둘, 셋, 넷................ 어라? 이정도면 지훈이네가 가져온거랑 합치면 가득 채우겠는데....? 솔직히 좀 황당스러운 것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기쁜 것은 기쁜 것이고 감사한 것은 감사한 것이었기 에 페트병을 받아들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냥 얼굴 계속 굳히고 있자니 좀 미안 스럽기도 해서 어 색하게나마 입을 벌려 웃어보였더니........................... 쩝..... 그렇게 표정 굳힐 것 까지는 없잖수..... 앞으론 좀 더 유의해가면서 웃어야지 원.... ".....내가 줄 게 이 것 밖에 없어서...... 이거라도 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 "보아하니 많이 어려워서 이렇게 나온 모양인데, 앞으로도 힘들면 가끔 찾아오고.... 그럼 난 일해야 하니까 이만 갈께... 힘내라!!" "....................." ..... 뭐.....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만.... 저거 미친 놈 아니야? 아까부터 무슨 횡설수설이 저렇게 심하다냐... 말도 안 되는 소리나 자꾸 늘어놓고... 아무튼 그 정체 모를 사람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한 바탕 계단 울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가 싶더니 지훈이네 녀석들이 윗 층에서 우르르 몰려왔다. "어휴.. 죽는 줄 알았네... 무슨 여자가 그렇게 말이 많냐? 잡아 놓고 놔주질 않으니.... 세상에 이 놈의 인기는...." "시끄러워. 아름다우시네 어쩌네 하면서 계속 아부하던 놈이..." ".....그거야...." "이현우.. 박진욱.. 제발 ...부탁인데 .둘 다 좀 그만 싸워라... 내가.. 아까부터 진짜 돌아버리겠다.. 재성아, 오래 기다렸지? .......어라? 그 페트병은 또 뭐냐? 갑자기 확 많아졌네?" 제길, 제길, 부잡에 이어 난잡..... 오늘은 그냥 집에 가는대로 만사 다 제쳐 놓고 잠부터 퍼질러 자야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머리가 폭발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혹시 너 혼자 이거 얻으려 다녔어?" 어이구야... 이현우.. 또 쓸데 없는 걸로 심각하게 폼잡기는.... 하나도 안 무서워.. 페트병이 늘어났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되는거지.. 갑자기 셋 다 표정이 왜 저러냐? "누가 너보고 이런거 얻으러 다니래.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앉아나 있을 것이지.." "현우야, 됐어. 재성이가 뭐 도와주려고 그랬겠지." "아냐, 지훈아. 현우 말도 틀린 거 아니야. 우리가 분.명.히. 가만 있.으.랬.잖.아!!! 어휴... 이 사고뭉치..." "우우웁..." 아악!! 제발 사람 말을 듣고 추궁을 하던지.... 얼굴을 잡아늘리던지 하란 말이다!!! 박진욱!! 이 손 못 놔?? 있는 힘껏 진욱이 녀석을 뿌리 치고는 얼얼한 볼을 부여 잡았다. 아무튼.. 무식한게 진짜 힘만 세요. 내가 어디가서 얻어오면 안 돼는 거냐? 대체 왜들 그렇게 정색인데..... "......가만히 있는데 누가 주고 간거란 말이야. " 짜증스럽게 한 마디 해주니 잠시 세 녀석의 표정이 풀리는가 싶더니 다시 의혹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내가 얻어온 것도 아니고 누가 준 것도 잘 못됐다 이거냐? "누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 주는걸 받았단 말이야?? 모르는 사람이 너한테 왜 이런걸 줘??" 별로 대답할 가치도 없는 사항이었지만, 아무래도 이야기 해주는 편이 앞으로의 신상에 이로울 것 같아서 대충의 상황ㅡ그냥 여기 이러고 앉아 있었는데,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갑자기 갈 데가 없냐는 둥, 이거 모으는 거냐는 둥 헛소리만 늘어놓더니 페트병을 주고 다시 사라졌다는...ㅡ 을 이야기 해줬더니 저희들끼리 또 수군수군 거리기 시작한다. ".......................너....... 여기서 어떻게 하고 있었는데....." "야야... 빨리 상황 재연..." "..................." 거의 명령조인 현우 놈과, 꽥꽥 거리는 진욱이 녀석의 보채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짜증이 났다. 지금 이 것들이 미친거야.. 아니면 내가 이상한거야... 대체.... 설명을 하란 말이다!! 설명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거의 신경질 적으로 푸대를 구석으로 끌고가서 아까 전대로 그냥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됐냐? " ".............이러고 있었다고?" "............." ".........그래." 녀석들을 올려다보면서 짜증스럽게 내뱉어주니, 이 것들이 설명은 안 하고 어디서 또 쓸데 없는 소리 만 지껄인다.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뭐야? "그러고 있으면 나라도 도와주고 싶겠다. 니가 난민이냐? 왜 그러고 사냐..... 아무리 니가 남 눈치 안 보고 사는 철면피라지만, 이미지 관리라는게 있지, 이게 뭐야? 완전히 가출소년이잖아..." "쯧쯔.... 남자가 남자한테 적선이나 받고.... 아무튼 가지가지 한다니까...." "야.. 푸대 이리내. 그거 계속 끌다가는 어디 잡혀가겠다." 젠장... 계속해서 이어지는 잔소리에 귀가 다 멍멍하다. 그래, 결국 요지는 지금 내가 불쌍해보인 탓에 적선 받아버린 거라는거지? 그게 대체 뭐 어쨌다는거냐... 어차피 잘 알지도 못하고, 앞으로 볼 일도 없는 사람인데..... 대충 귓등으로 녀석들의 헛소리를 흘려들으면서 머리를 몇 번 긁적거렸더니 세 녀석이 동시에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면서 한숨을 푸욱 쉰다. "어쩌다 이런걸 만나가지고 서는...." "그러게 말이다." "야... 빨리 일어나....." 진짜.. 엄청 구박하네.. 아까 재연하라느니 할땐 언제고.... 진욱이 녀석이 발로 툭툭 치면서 재촉을 해대길래 대충 옷 매무새를 고치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 것들 이 알 수 없는 행동을 해댄 것도 아니니.... 내가 참아야지... 나야말로 어쩌다가 너희들 같은 것을 만났는지, 정말 한스럽다. "에구..... 뭐... 어쨌든....페트병도 다 모으고 한 것 같으니까.. 뭐라도 먹으러 가자." "어? 송지훈.. 니가 사는거냐?" "......특별히 수고 했으니까... 떡볶기 정도는......" "야!! 특별히 수고? 지금 해가 다 저물었구만, 이게 어디서 거만한 척이야!!" "싫음 됐고..." "아..아니.. 뭐 싫다는 거 보다는.. 야... 친구 좋다는게 어디냐..? 응?" "박진욱... 추하다. 비굴해보여." "야.. 현우 넌 도움이 안 되면 좀 빠져라도 있어." "니넨 또 싸우냐..? 아까부터 진짜 지긋지긋하다, 지긋지긋해.. 아무튼 일단 가자.. 가.....가.. 자, 재성이도 얼른 오고....." 지훈이의 푸념섞인 이끌림에 넷이서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둑어둑해져서 화려한 간판이 반짝거리는 시내를 걷고 있자니 이제야 오늘이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푸욱 새어 나온다. 뭐.... 좀 이해할 수 없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지만, 어쨌든 페트병도 다 모았고... 빵빵하게 차 있는 그것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다 후련해지는 기분이 든다. 에이구야..... 솔직히 내일 체육대회..... 지훈이 고생할 것도 걱정되고, 기현이랑 진욱이도 걱정되고, 농구시합도 걱정되고.....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저 막연히 잘 될 것 같다는 기분 역시 드는 건 또 왜인지.... 에이.... 모르겠다.. 모르겠어.. ============================== -_ㅜ 재미없어도... 할 수 없지요.. (먼산..) 그냥 쓰면서 자기만족하기로 했습니다...;; (ㅠ_ㅠ 죽여주시오소서...)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17)-2 "..........자, 재성아.. 이거 입어. 체육복은 어제 다 버렸잖아." "....................." 체육대회 날 아침.. 지훈이 녀석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옷 보따리 하나를 내밀었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 아침에야 그 생각이 나서 어떻게 해야 하나 좀 고민이었었는데.... 의외로 세세한데까지 신경써주는 녀석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면서 옷을 받아들었다. 대충 동복 체육 복 바지와 흰티를 챙겨오긴 했지만, 날씨도 이렇게 더운데다가 이따가는 시합도 나가야 하는데 역시 긴 바지는 좀 무리 일지 싶다. 우리 학교 하복 체육복은 흰색 티에 남색 반바지. 아무래도 흔한 색이고 보니 교복사 같은데서 나온 것을 쓰기보다는 대다수가 개인적으로 구입한 것들 이다. 지훈이가 색깔도 잘 맞춰가지고 왔으니 대충 무난하게 넘어가겠군... 셔츠를 벗어 윗도리를 갈아입고, 바지 구멍에 다리를 끼워서 추켜 올리는데........ 이거.... 옷이.... 어째 좀..... "바지 길이가 너무 짧아." "....................." 현우야.... 그건 내가 할 소리라고....!! 뭐..... 내가 기집애도 아니고, 야하다느니 어쩌다느니 할 정도는 못 되지만... 바지아래로 횡하니 드러나 있는 내 다리를 보고 있자니 꽤 낯 부끄럽기도 한 것이 민망스럽기 짝이 없 었다. 히익... 이거..이거... 길이가 진짜 장난이 아니잖아... 송지훈... 이 자식... 가져올려면 좀 제대로 된 걸 가져오지.. 대체 이게 뭐냐? 다시 갈아입을까 어쩔까 하면서 쭈빗쭈빗 바지길이를 늘리면서 버벅거리다가 고개를 힐끔 드니, 현 우 자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는 유심히 내 다리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뭘 봐?" "다리." "................" 저렇게 단호하고 뻔뻔하게 나오면 정말 할 말 없지 뭐.... 그래, 뭐 보던거나 마저봐라.. 남자 다리 뭐 볼거 있다고.... 현우 자식을 상대론 별로 따질 기분도 나지 않아 그냥 한숨만 푹 쉬곤 다시 긴 팔 체육복을 챙겨 들었 다. 역시 이런 옷 따위는 별로 입고 싶지 않다. "어? 재성아, 갈아입을려고? 왜??" ".......... 그걸 지금 몰라서 묻는 거냐? 너같음 이런 바지 입을 수 있겠어?" ".아니.......허리가 안 맞아.." "..................." 지금 허리가 문제냐? 길이가 문제지.... 약간 항의조로 지훈이 자식을 노려보고 있자니 녀석이 특유의 싱글 거리는 얼굴로 구렁이 담넘어가 는 듯한 화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봐봐..... 으음... 괜찮은데? 딱 보기 좋잖아." ".......너무 짧아." "아냐... 진짜 이게 적정길이야.. 평소에 니가 체육복을 너무 크게 사는 바람에 맨날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다가 이걸 입어서 좀 허전해서 그런거야.. 자, 지형아.. 너도 와서 좀 봐봐라... 괜찮지?" "....어, 보기 좋아." "..................." "..................것 봐.. 보기 좋다잖아.." "........진짜야?" "............어. 저거봐, 네가 괜히 유난떠는 거야.. 애들거도 다 비슷비슷해.." "..................." 어쩐지 좀 속고있다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자꾸 보다보니 그럭저럭 익숙해지?것 같기도 하고..... 한 참 어찌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허벅지 쪽이 스물스물한게 소름끼치는 느낌이 났다... "으아아!!! 뭐..뭐야..!!!" "이야.... 다리 죽인다... " ".........죽고 싶냐??" 나름대로는 살벌하게 말한다고 말한 건데.... 박진욱 새끼는 느물거리면서 웃기만 할 뿐 별다른 타격을 못 받는 것 같다. 어휴.... 이걸 진짜 죽여버릴 수도 없고... 만지길 어딜 만지는 거야!!! 히죽히죽 웃으면서 다리를 힐끔 거리는 진욱이 녀석을 보고 있자니, 온몸에 소름이 쫙쫙 돋아서 미칠 지경이다.. 이 자식은 정말 민망한 것도 모르나... "헤헤....." "....보지마.... 진짜 죽인다." "...뭐.. 보는거 가지고 그래? 현우도 보잖아." "................" 이현우.... 너... 아직까지 보고 있었냐? 여전히 심각한 표정인 현우까지 마주 대하고 있자니 왠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면서 현기증이 나 는 듯 해서 그냥 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현우랑 너랑 같냐?.." "....그럼 뭐가 틀린데? 야, 임마.. 이현우.. 너도 재성이 다리 예뻐서 쳐다보는거잖아." 설마 그럴까...하는 심정으로 현우 녀석을 쳐다보니,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녀석이 단호하게 대꾸한다. "어." "................." "................" "................." 제길...... 그래, 갈아입는다. 갈아입어.. 바지에 쪄죽던, 휘감겨 죽던... 내가 이 것들하고 상대를 말아야지.... 반바지를 벗어버리고는 동복 체육복 바지에 마악 한 쪽다리를 끼우려는데, 갑자기 홱 채는 듯한 느낌이 나면서 손이 허전하다. "박진욱.. 내놔라." "이 날씨에 무슨 동복이야? 이거 입어.." ".........싫어." 완강한 거부의사를 표명했지만, 진욱이 녀석은 내 동복바지는 현우 녀석에게 건네주고 좀 전에 내가 내팽겨친 요상한 반바지를 주워다가 불쑥 내밀었다. 남이사, 긴바지를 입던 말던 대체 뭔 상관인건지.... "왜 싫어? 오늘 덥단 말이야." ".........너같음 입겠냐?" ".......으음.... 나도 허리가 안 맞아." 그 놈의 허리 타령!!! 물이라도 먹어서 뱃살이라도 늘리던지 해야지, 이 자식들 말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열이 차받힌다. 니 들 눈에는 허리 밖에 안 보이냐? 길이를 보란 말이다. 길이.... 어디 좀 말이 통하는 녀석이 없을까 해서 둘러보니 현우 녀석이 얌전히 책상에 걸터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아... 그래. 아까 저 녀석도 분명히 바지가 짧다고 했었지? 일전에 소풍 갔을 때는 반바지도 입지 말라도 했던 놈이니까 오늘만큼은 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현우, 니가 한 번 봐봐... 이 바지 길이가 정상이냐?" "아니. 짧아." 아아... 드디어 내 편이 하나 생기는 구나. 이 말도 안되는 실갱이를 빨리 끝내고픈 마슴?재차 현우를 다그쳐 물었다. "이거 입느니, 차라리 동복이 훨씬 낫지? " "아니.. 그 반바지 입는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짧다면서!!" "어." "..............왜? " "오늘 응원상 받아야 되거든.. 사기의 증진을 위해서.." "..................." 내가 반바지를 입는 것과 응원상과 과연 무슨 상관 관계가 있다는 말이냐..... 어휴... 오늘은 왠일로 일이 쉽게 풀리나 했어. 너무 황당한 소리를 해대니까 별로 대꾸하고 싶은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시끄러워... 무슨 말인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빨리 내 긴바지나 내놔." "없어." "아까 진욱이가 너한테 줬잖아." "................" 꽤 싸늘하게 한 마디 몰아붙이니, 현우 녀석이 뚱한 표정으로 내 뒷편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저기... 내 사물함 안에 넣어뒀는데..." ".............." 빨리 챙겨입어야 겠다는 생각에 녀석이 가르키는 곳을 쳐다보니..... 떡하니 달린 번호식 자물쇠가 보였다. "번호....." "...............18번." ".......................네 번호 말고, 비밀번호........" "글쎄...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이현우...." "정말 생각 안 나." 이걸.... 진짜..... 두들겨 팰 수도 없고.... 눈 하나 깜박 하지 않고 저런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현우 놈을 보고 있자니 화나는 것을 초월해서 한숨이 푹푹 나왔다. 하릴 없이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 앉으니 진욱이 녀석이 이죽거리면서 반바지를 내민다. "그러게, 뭐하러 그렇게 힘빼냐? 그냥 입을 것이지." "시끄러.." 녀석이 왠지 더 얄미워져서 옷을 확 나꾸어챘다. 아아... 진짜 욕먹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옷이 이꼴이라니..... ========================================== "야.... 여기 자리가 왜 이 모양이야? 완전 구석이잖아..." "햇빛도 정면이다, 정면.... 교실하고도 너무 멀잖아... 이래가지고 의자를 어느세월에 다 옮겨?" 허허.. 나도 동감이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체육복 같은데 신경쓸 겨를은 없을 것 같군. 방송으로 지시해준 위치로 소자재와 의자를 들고 이동하는데 아무리 봐도 자리가 너무하지 싶다. 다 른 학년, 아니.. 같은 학년의 다른반들도 다 스탠드 안에 자리가 있는데 어째서 우리반만 운동장 구석 축구골대 뒤냔 말이다.. 응원상은 아무래도 한 물 가버린 것 같군.. 어휴...... 요새들어 느는 건 한숨 뿐인 것 같다. 안그래도, 체육대회란 것 자체가 애초에 좀 짜증스러운 행사인데.......... 하루종일 땡볕에 앉아서 쓸 데없이 개회사니 폐회사니 조회시간만 긴데다가 특별히 경기 참가가 없으면 그냥 멀뚱히 앉아있 고........ 우리반 분위기가 요새 그닥 좋은 편도 아닌데 아무래도 극심한 암울모드가 되지 않을까 싶 다. 작년만해도 여자애들이 있으니까 매스게임같은 것도 중간중간 들어가는데다가 응원도 꽤 착실히 들 준비해서 그럭저럭 지루하진 않았었는데..... "뭐야... 고작 자리가 여기야? 담임은 대체 뭐했대? 짜증난다, 짜증나.. 능력도 없나봐." "그냥 제끼고 튈까?" "계속 인원점검 하잖아..." "담임이 뭘 어쩌기야 하겠냐? 자리도 지랄같은데, 차라리 교실에 처박혀서 낮잠이나 자는게 낫겠다. 또 시덥잖은 응원같은거 시킬거 아니야.." "그런가?" 쳇... 그렇게 불만이면 너네가 가서 교장한테 따지지 그러냐... 자리가 안 좋은거면 안 좋은거지, 왜 또 담임은 걸고 넘어지는 건지.. 내가 대놓고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거니와, 그럴 생각도 없지만 저런 녀석들을 보고 있자면 짜증이 치 밀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체 나이가 몇 살인데 거푸 어린애같은 투정이나 부리고 남 탓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지금 저희들만 땡볕아래 서 있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사회생활도 그 딴식으로들 할 작정인 모양이지? 시덥잖은 응원...... 그거 준비한다고 어제 늦게까지 돌아다닌 등신같은 인간이 여기 넷이나 있단 말 이다. 나야 그렇다치더라도 며칠 전부터 준비하던 지훈이랑 현우놈 앞에서 눈치 없이 지껄여서 보기 보다 마음 약한 녀석들 괜히 기운만 빼놓는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출발부터 그다지 순탄치 않은 것이, 오늘도 파란 만장한 하루가 되겠군.. "야, 우리반 머리띠 나왔으니까 다들 받아가라... 이걸로 반별 구분되는거니까 꼭 해야 된대." 대충 응원도구니 뭐니 정리하고 있자니, 지훈이 녀석이 웬 상자하나를 들고와서 애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요샌 청군, 백군.. 이렇게 나눠서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반대항이라서 그런지 학교 측에서 일괄적으로 저렇게 머리띠를 지급하는 모양이다. 옆에 있는 놈이 하나 건네주길래 대충 받아서 들고 있자니 몇몇 녀석들이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씨.. 이거 색깔이 왜 이래? 유치하게 빨간색이 뭐냐? 우리가 무슨 공산당도 아니고, 데모하는 것도 아니고... 야, 반장. 이거 딴걸로 바꾸면 안 돼?" "이미 지정된 거라 바꾸는건 안 돼는데.." "야야.. 뭐 그냥 안 하면 되는거지, 물어보고 그래. " 빨간게 뭐 어때서...!! 방금 꼭 하고 다니란 얘기는 코로 씹어먹었냐? 무슨 사내새끼들이 입만 싸가지고는, 주면 주는대로 하는거지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꿍얼꿍얼인지 모 르겠다.. 여자애들 앵앵거리는 소리는 그나마 좀 귀엽기라도 하지.... 주제에 목청들만 커가지고 는..... 뭐라고 한 마디 쏘아주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참으며 내 몫으로 할당된 머리끈을 대강 동여 맸다. 뒷 통수에서 리본을 매려니 약간 헷갈리기는 했지만 생각보다는 모양새가 제대로 잡힌 것 같아서 꽤 흡 족스러웠다. 최소한 생긴거랑은 생판 다르게 운동화끈 하나도 제대로 못 매는 이모군 보다는 내가 훨 씬 손재주가 있는 편이지..... "어....? 재성아...." 복장은 더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대충 의자를 정리하다가 아까 궁시렁 거리던 녀석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아.. 도서부장 한민수.. 뭐.. 아주 나쁜 놈은 아니지만 이 녀석도 뒷말과 불평의 일인자다. 녀석의 주머니에 대충 우겨들어가서 빼죽 나와있는 머리띠를 보고 있자니 그닥 기 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쳇.. 기현이네 패거리들도 그렇고, 이 녀석들도 그렇고... 평상시 같이 놀고 떠들고 할 때는 말도 꽤나 살갑게 하면서 무슨 일이나 행사만하면 왜 표정을 확 바 꾸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는 불렀으니 대충 응답은 해야 겠다는 생각에 하던일을 멈추고 민수녀석 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이 녀석이 답답하게 힐끔힐끔 눈치만 보면서 말을 에데데 거린다. ".........왜? 불렀으면 말해." "...........그게 저..... 머리띠..." "............??" 머리띠? 삐뚤어졌나? 표정을 보아하니 좀 추하게 삐뚤어졌나해서 리본을 홱 풀러제끼니 민수녀석이 도리어 얼굴색을 바꾸 며 정색을 해보였다. "아니.. 왜 클르고 그래? 잘 어울리는데.." "................" "................머리띠 잘 어울려서 그냥 그런거야... 하는게 훨씬 이쁘다.." "..............." 본래는 바로 클렀던 것을 고쳐맬 생각이었는데 민수녀석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조금 골탕먹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빨간색은 공산당 같으니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저는 안 한 주제에 나한테는 또 잘 어울린다고 다시 하라는건 또 무슨 심술인지 모르겠다. 이쁘다니... 뭐냐..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내 살면서 박진욱이나 이현우나 송지훈 같은 별별 이상한 것들을 다 봐왔지만 운동회 머리띠 한게 이 쁘다는 놈은 또 처음이다. "민수야...." "어?" "잠깐만 고개 좀 숙여봐.." ".......왜??" "잠깐만..." 그러고 그냥 가버렸으면 모를까, 녀석이 계속 내가 다시 머리띠를 매는 것을 옆에서 기다리는 투였으 니 할 수 없지 뭐... 예정대로 놀려주는 수 밖에..... 일부러 가식적으로 사근사근 이야기 했더니 민수 녀석은 떨떠름해하면서도 순순히 머리를 숙여보였 다. "조금만 더 가까이..." "......더...?" 꾸적대는 폼이 이래가지곤 끝이 안 날 것 같아서 머리를 홱 잡아당겼더니 무슨 죄라도 졌는지 녀석 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절부절 정신이 없어보이길래 이때다 하고 녀석의 머리 에 머리띠를 홱 돌려묶어버렸다. "으...으아아!! 뭐.. 뭐하는거야!!!" ".......가만있어.. 리본 풀리잖아.." ".......그..그.그만해..!!!............" 의외로 순순하네... 소리는 꽥꽥 지르면서도 내가 매달려 있는것을 뿌리쳐 내지는 않았다. "자... 다 됐어." "...뭐... 뭐한거야?" "아아... 이쁘다. 잘 어울려.." 최대한 진심 어린 목소리로 제 녀석이 해준 말을 고대로 곱씹어주니 민수 녀석의 얼굴이 더욱 확 달 아올랐다. 어...라? 이상하네.... 난 내가 이렇게 묶어주면 당장에 성질 내면서 풀러버릴 꺼라고 생각했는데, 얼굴만 씩씩 거리고 붉히 면서 머리띠는 해준대로 잠자코 하고 있다. "...장난치지마...." "..............." 어레레? 개미소리만하게 저리 한 마디만 하고 민수 녀석이 제 패거리 있는 곳으로 후다닥 뛰어가 버렸다. 민 수 녀석이 가니까 근처에 있던 녀석들이 환호하고 박수치고 난리도 아니다... 이거.....장난이 먹힌거야, 안 먹힌거야.... 에휴.... 모르겠다, 모르겠어.. 어이된 일인지 나란 인간은 무슨 일만하면 이리 어설퍼지는지 모르겠 다. 그냥 하던 일이나 해야겠다 싶어 의자를 대강 정리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바로 코 앞에서 강한 인 기척이 느껴졌다. "넌 또 뭔데....." "................." "묶어줘." ..................................... 이현우.. 아무튼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건 타고 났다니까... 머리끈을 불쑥 내밀면서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다시 피로감이 몰려왔다. 생 각 같아서는 네 손목 위에 달린 것들을 사용해서 재주껏 해보라고 쏘아주고 싶었지만, 분명히 몇 십분 을 혼자 어버버 거리면서 사람 속을 태울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일단은 순순히 머리띠를 잡아 들었다. 아까 언급했던 '생긴 것과 다르게 운동화 끈 하나도 제대로 못 매는 이모군'이란 두말 할 것 없이 현 우녀석이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생전 뭘 잊어버리는 일도 없고, 글씨도 또박또박 잘 쓰고, 꼼꼼한 녀석이 묘하게도 손재주가 조금이라도 필요한 일은 젬병인 것이다. 덕분에 현우 녀석의 타이 는 특별히 걸이가 달린 모양이고, 운동화끈은 늘상 진욱이가 묶어주는 형편이며, 가위나 칼을 쓰는 일 은 나와 지훈이가 뜯어 말려가며 대신해준다. 뭐... 잘 못오리거나, 망치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하는 족족 꼭 제 손을 잘라먹으니 말이다. "자... 됐어.." 어쩐지 조금은 심술이 나기도 해서, 매듭을 짓고를 머리를 툭 하고 밀어버렸다. 의자 배열하는 일을 다시 하고 있자니 현우 녀석이 부스럭 거리면서 의자를 한 가득 날라온다. 뭐...... 도와주는 건가? 솔직히 자청해서 하고 있는 일이지만, 혼자서는 꽤나 버거웠는데....... 어쩐지 녀석이 일부러 알고 와 준건 아닌가 해서 조금은 고마웠다. 의자정리란게 여러사람이 잠깐만 신경쓰면 뚝딱인 건데, 다들 미루기만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씁쓸하기도하고 아무튼 기분이 좀 그렇다. 에휴... 아쉬운 놈이 우물을 파야지... 안 하겠다는 놈들을 어쩌겠냐... 나 혼자 하는 수 밖에..... 아, 이젠 1명 추가인가? "몇 개나 더 날라야 돼?" "일곱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우녀석이 의자 7개를 한 꺼번에 짊어지고 나타났다. 으음.... 현우는 보기보다 힘이 센 것 같다. 말이 7개지 무게가 장난이 아닐텐데...... 그럼에도 표정은 별반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조금은 괴기스럽기도 하고..... "이제 다 한거야?" ".....응.." 하하... 누가 정리했는지는 몰라도, 참 잘했지.. 줄 맞춰서 이쁘게 배열되어있는 의자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보람과 뿌듯함을 만끽하고 있는데 갑자기 현우 녀석이 팔을 질질 잡아끌어당겼다. "뭐....뭐야..." "넌 따로 할 일이 있어." ".... 뭐............가......" " 따라와보면 알아." ".................." 슬몃 뒤돌아 보는 현우 녀석의 뺨에 보조개가 패였다.. 이거................ 도망쳐야 하나... ================================= "야... 양재성.. 너 똑바로 안해? 오늘 가뜩이나 자리도 안 좋은데, 너까지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정말 힘들어진다." "......................" "어쭈? 자꾸 그렇게 흐느적 거릴꺼야? 좀 더 귀엽게 해보란 말이야.. 얼굴은 맨날 그게 뭐냐..... 부탁이니까 좀 웃어라. 웃어..." "....................." "여기서는 팔을 이렇게 하.... 악!! 야.. 너... 지금 나한테 던졌어??" "...................." 그래, 던졌다. 어쩔래? 아무래도 진욱이 녀석이 따라올기세 길래, 재빨리 나머지 술까지 던져버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 아... 제발 누가 박진욱 저 자식 좀 어떻게 해달란 말이다.. !! 귀엽게? 발랄? 웃기고 있네..... 내가 미쳤는줄 아냐? 아까 현우에게 질질 끌려와서 지금까지 이른 경로를 생각하니 새삼 치가 떨린다. 처음에 세 녀석들이 빙 둘러싸고, 노란 술을 하나 툭 던져줄 때만해도 이것들이 약간 정신이 나가서 별 해괴한 장난을 다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대충 무시하면서 자리로 돌 아가려는데, 갑자기 지훈이 녀석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면서 불쌍한 척을 해대고, 현우 녀석은 예의 험악한 얼굴로 밀어부치고, 진욱이 녀석은 느물느물 헛소리를 해대는 것이 아닌가..... '절대 눈에 뜨이는 짓이 아니다.' '대충 서서만 있으면 된다.' '나도 옆에서 같이 해주겠다.' 등의 회유로 시작해서 '조금 있다가 담임이 어쩌구....' '사물함에 넣어둔 체육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냐면서....저쩌구..' 하는 협박에다가 마지막 결정타로 지훈이 녀석의 "그래, 정 하기 싫으면 할 수 없는거지. 신경쓰지마. 뭐.... 이따가 응 원 진행도 해야하고, 기록 점검도 해야하고, 애들 정리에, 간식까지 챙겨야 하지만.... 어차피 내 일인 데.. 힘들어도 할 수 없지. 괜히 귀찮게 해서 미안하게 됐다." 는 한숨섞인 이야기까지 듣고 보니, 내 신경줄이 아무리 철사줄이라 한들 꿈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동작이라도 맞춰보겠다고 선 것이 몇 분전, 웬만하면 모르는 척 하고 시키는 대로 해 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진욱이 녀석이 말도 안 돼는 요구를 자꾸 해오니 나도 정말 별 수가 없다. 막말로 내가 춰본 춤이라고는 유치원 때 깡깡총체조가 고작인데, 진욱이 녀석은 고난이도의, 그 것 도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내녀석이라면 절대하지 않을 발랄한 동작들을 계속 시키는 것이다. 이봐.. 이래뵈도 민증나온데다가, 조금만 있으면 국방의 의무를 다할 사람한테 치어리더가 어디 가당키나 하 냐고..!! "양재서엉!!! 얼른 안 와??? 어휴... 저게 눈치만 빨라져서는!!!" "................" 뒤에서 고래고래 악을 쓰는 진욱이 녀석을 보고 있자니, 순간이지만 소름이 쫘악 끼쳤다. 내가 그런다고 돌아갈 것 같냐... 이래뵈도 니들 밑에서 눈치밥만 몇 달을 먹었는데.......... 어느정도 도망치는데는 이골이 나서 요새는 요령까지 조금씩 생기려는 참이다. .. 나같이 게으른 인간이 이 경지에까지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추격전과 괴롭힘이 있었는지 다들 말 안 해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거야 말로 인간 승리 아니냐... 지난 기억을 되살리며 회상모드로 들어가는 것도 잠시, 갑자기 팔목이 묵직해지면서 몸이 휘청 기울 었다. "..............잘도 도망갔겠다.." "................" 이봐.. 미쓰리... 그렇게 험악하게 목소리 깔 것까진 없잖아. 어찌된게 너는 전력질주를 해도 표정에 변화가 없냐..... 짐짓 쫄아서 쳐다보고 있자니, 어느새 몸이 질질 끌려가고 있는 중이다. 쳇.... 내가 그런다고 순순히 넘어 갈 것 같아? 정말 죽었으면 죽는거고, 딴 학교에서 여자애를 납치해왔음 납치해왔지, 절대 그 짓만은 나도 못 하겠다!!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내가면서 버티고 있자니, 그래도 조금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현우 녀석이 끌어당기던 것을 멈추고는 양 미간을 잠시 찌푸려보였다. ....그런데............................얼굴은 왜 빨개지냐? ..............그거..... 너.... 어째... 우스워 죽겠는 걸 억지로 참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 내 까짓거 발버둥쳐봤자 우습다 이거지.... 기분이 확 나빠져서 잡힌 팔을 홱 뿌리렸지만, 또 몸만 휘청 기울고 도무지 요지부동이다. "타협하자." "...................." 헤? 타협? 현우가 불쑥 내뱉은 말을 듣고 있자니 어지간한 나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한테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이 있을때나 타협 어쩌고 하는 거지.... 필시 저네들 마음대로 다 할거면서 타협은 무슨 얼어죽을 타협이냐.. "싫어. 이거 놔. 난 그런거 못해." ".........그러니까 타협하자고..." "...........싫어!!!! 싫댔잖아!!!" ... 순간이지만 말이 확 짜증스럽게 나가버렸다. 덕분에 현우 녀석이 조금은 당황한 모양이다. 쳇......... 그럼 내가 가짜로 싫어서 그러는 줄 알았냐?.. 나도 싫은건 싫은거고, 못하는 건 못하는 거란 말이야! 한사코 그렇게 우겨대기만 하면, 나 역시 기분 나빠지는건 마찬가지란 말이다. ......................으음..................그래도 역시 짜증내는건 너무 심했던 걸까.... 둘 다 아무말 없이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이거... 어찌하나 잠시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데 팔이 다시 홱 끌리는 느낌이 났다. "................가자." "....아.... 저..저기...." 가긴 뭘가!!! 나 아직 화났단 말이야!!! 어차피 이럴거면서 타협이란 말은 애초에 왜 꺼냈냐? 속으로는 말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어차피 전부 늦어버린 뒤였다. =================================== "하.하.하. 재성아.... 진짜 반갑다... 그치?" ".................." "어휴.... 지인짜... 이쁘기도 하지... 날 아까 그렇게 깜찍하게 치고 도망갔던거야?" "...................." "어디 한 번만 더 그래 봐라..... 그땐 정말 쪽팔려서 학교도 못다니게 만들어줄테니까....." "....................."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손가락 관절을 뚝뚝 꺾어가며 이야기하는 진욱이를 대하고 있자니 한숨이 절 로 나왔다. 이거 뭐냐.... 또 끌려와서는.... 결국 아까랑 다를 바 하나 없잖아!! 좀전에 현우 녀석이 나를 끌고 온 곳은 다름아닌 우리반 응원석.. 어디선가 큼지막한 책상을 끌고 오더니.... 난데 없이 "올라가."란다. 이렇게 사람 많은데서 그렇게 높은데 올라가 있으면 엄청 쪽팔리고 눈에 띄이는데, 내가 맨 정신으로 순순하게 올라설리는 절대 없다. 발버둥치면서 반항해봤지만... 아까와 똑같은 패턴, 그러니까... 회유-협박-푸념 순의 세뇌 시스템에 의해 결국은 크나큰 한숨만 한 번 쉬고 꾸역꾸역 위로 기어올라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에 주어진 일이란 것이 아까전의 율동보다는 한결 나은 것이란 거다. 노래나, 간단한 동작이 적힌 플랫카드를 들고 애들이 잘 볼 수 있 게 해주는게 전부니까..... 그래도..... 어쩐지 주변의 시선이 따끔따끔 한 것만은 어쩔 수 없다. 그래, 다들 보라지 뭐.... 그닥 보여줄 것도 없는데.... "양재성... 또 정신 놓고 흐느적거리지 말고, 똑바로 서 있어... 알았어?" "..................." "...그래도 높이가 꽤 있어서 떨어지면 다친단 말이야. 내려올때는 꼭 나한테 내려달라고 하고... " "...................." "임마, 너 내 말 듣고 있는거냐?" "..................." "아아악!!! 차라리 벽에다 대고 얘길하고 말지... 내가 아주 속 터진다. 속터져. 부탁인데, 대답 좀 하란말이야!!!. 대답 좀..." 진욱이 녀석.... 혼자서 쓸데 없는 걱정을 해가며 꿍얼거리다가 결국엔 제 풀에 못 이겨 악을 써대기 시작했다. 쳇..... 걱정할 걸 걱정해라. 겨우 책상에 올려 세워놓고 떨어져 죽을까 염려하고 있는거냐? 이정도는 초등학 생도 우습게 뛰어넘는단 말이다... 내가 바보 천치도 아니고... 다들 나를 뭘로 보고 저러는 건지.... 녀석들이 나에게 한 괘씸한 일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한 댓시간 쯤 입 꾹 다물고 진욱이를 깔짝깔짝 약 올려보는 것도 괜찮을 성 싶지만... 뭐... 그래봤자 결과적으로 속타는 것은 내쪽이 될 듯 싶어 대충 맞 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알았어. 나는 그냥 네가 이야기 한 대로만 들면 되는거지?" ".....목소리 한 번 듣기 진짜 힘드네.. 너무 비싸게 구는거 아니야?" "....................."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연습이나 한 번 해보자.. '소양강 처녀' 들어봐." "....이렇게?" "으음.. 좀 낮춰도 될 것 같다. 팔 아프잖아." "괜찮은데..." "오래 들고 있으면 힘들어. 조금만 내려봐.... 어.. 그렇게... 그정도면 괜찮겠네." "그냥 들고만 있으면 되는거지?" "당연히 노래도 해야지... 한 번 불러볼래? " ".........................." ".........................." "나 안해. 내려갈래." "허허.. 누구 맘대로. 넌 오늘 여기서 절대 못 내려가. 밥도 여기서 먹어.." "........................." "......................." "이현우..." "현우 안 와." "지후.." "지훈이 불러도 소용없다니까...." 이것들이!!! 아까랑은 얘기가 다르잖아!!! 분명히 현우랑 지훈이는 그냥 얌전히 피켓이나 들고 서 있으라고 했단 말이다!!! 최대한 얼굴을 구겨가며 진욱이에게 불만을 피력했지만, 녀석은 언제나 그랬듯이 들은 체 만체다. 쳇... 그래, 뭐.. 안 봐도 뻔하지..... 분명히 그 두녀석이 나한테는 그냥 들고만 있으라고 이야기해 놓 고, 진욱이에게는 이 것 저 것 부려먹으라고 따로 지시를 내렸을거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카스트 제 도가 아니면 뭐냔 말이다. 지훈이는 겉으론 인자해보이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조종하는 브라만, 현우 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크샤트리아, 진욱이는 무식하게 갈구고 보는 바이샤, 나는 이래저래 치여서 이 용만 당하는 수드라.. 승려-귀족-상인-노예.... 너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니까 서글픈 기분마저든다. 어쩌다가 나같은 민주시민이 이런 전근대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건지... "....... 아무튼 내려갈꺼야." "혼자?" 그럼 나 혼자 올라와 있는데 혼자 내려가지 둘이 뛰어내리냐? 마치 어린애 보듯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진욱이를 보고 있자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까 올라갈때도 쓸데 없이 걱정하더니만은... 이게 어디가 높은거냔 말이야!!! 조금쯤은 과시하고도 싶고, 녀석의 하잘 데기 없는 생각을 바꿔놓으려는 의도로 일부러 평소보다 과 장되게 책상에서 발을 떼었다.. 그런데.... [휘청...] "으아아아..." [털썩...] 제길.. 양재성. 이 바보. 등신. 천치. 머저리.. 발이 미끄러지면서 몸의 균형이 흐트러진다고 느낀 순간은 이미 늦어서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는 이 미 진욱이 녀석 팔에 답짝 안겨 있는 꼴이 된 뒤였다.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을... 그것도 나같이 묵직 한 사내녀석을 척. 하고 받아낸 진욱이 녀석의 재주야 신기하고, 놀랍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보다는..... 진짜.. 쪽팔려서 죽을 것 같았다... 쓸데없는 걱정이니 어쩌니 해놓고, 어떻게 재수없게 거기서 또 미끄러지냐... 필시 꼴좋다면서 낄낄댈 진욱이 녀석에게 뭐라고 쏘아주나.. 생각하니 가슴 이 턱 하니 답답스럽다.. "임마, 양재성.. 괜찮아? 어디 다친데는 없어?" "................" "야!!! 괜찮냐니까? 어디 보자...." "......... 괜찮아....." "그러게 나한테 내려달라고 하면 되는데, 왜 고집을 부리고 그래...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잖아.." 분명히 비웃을 줄로만 알았는데.... 갑자기 무섭게 다그치는 진욱이를 보고 있자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해서 나 도 모르게 퉁명스레 팔을 홱 뿌리쳐버렸다.... 아아악!!!... 바보같이 또 이건 무슨 짓이냐.. 이러면 상대편이 더 무안하잖아!!!... .. 진욱이가 장난을 좋아하긴 해도, 남 안 좋은일을 웃어넘길리가 없는 녀석인 것 아는데..... 게다가 덕분에 다칠 뻔한 것을 무사히 넘겼으면서도 고맙다는 소리는 커녕 쭈빗쭈빗 퉁퉁 부어있는 스스로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들어지려는 참이다. 대체 이 놈의 성격은 어떤 식으로 생겨먹었기에 '고맙 다' 한 마디 하기가 이리도 힘든 건지...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이걸 어쩐다.. 어쩐다.. [1,2 학년 각 반 학생들은 지금 즉시 조회대 앞으로 정렬해주기 바람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1,2학년..] "가자, 재성아..." 불쑥 튀어나온 진욱이의 한 마디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왠지 무안해서 입으로만 어물어물 거리고 있자니, 머리를 툭 치면서 환하게 씨 익 마주 웃어보인다. 뭐야... 전부 알고 있다는 것 같은 그 건방진 표정은.... ============================================= Sweet. so sweeeeet!! "사십 일, 사십 이......... 사....십.. 삼. " "하아....." "양재성, 엉덩이 빼지마. 겨우 이정도 하고 비실거리는 거냐?" "하아.. 하악.. 시끄러. 숫자나 제대로 세." "사십 육." "어디가 사십 육이야..." [삐익!!!!!] "자, 1분 지났다!! 다들 와서 상대방 기록 체크하고가!!" 지훈이 녀석의 고함소리와 동시에 몸이 매트에 털썩 떨어졌다. 어휴... 뱃가죽이야... 나도 이제 갈데까지 간 모양이다. 안하던 윗몸일으키를 하려니까 뱃가죽은 물론이거니와, 몸 전체가 덜렁덜렁하는 것 같다. 쳇.. 그래도 작년에는 50개는 채웠는데, 올해는 진욱이가 '허리가 이렇게 부실해서 쓰겠냐..'는 둥, 신 음소리가 어떻다는둥, 저떻다는 둥.. 사람 심란하게 교란하는 것도 모잘라서, 계속 숫자도 띄엄띄엄 세는 덕에 괜히 기운만 쭉 빼버렸다. 어휴.... 징그러운 자식... 겨우겨우 몸을 추슬러서 앉아있으려니까 웬수같은 녀석이 기록 체크를 마치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걸 어오고 있다. 그닥 반갑지 않구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70개만 할테니까.. 똑바로 잘 세라." "................" 뭐야,.. 그 거만한 말투는.... 오자마자 냅다 자리에 털썩 누워버리더니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거냐? 아까는 더도말고 덜도 말고 10개씩만 해서 반 평균 10개 만들자고 떠벌리고 다니더니... 대체 뭘 보고 왔길래, 순식간에 일곱 배도 불어났다냐.... 말이 70개지.. 쳇...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거면 세상에 윗몸일으키기 못하는 사람이 없게.? 내심 비웃으면서, 진욱이 발등에 단단히 걸터앉았다. "야.!! 다들 자리 잡아. 시간 잰다.." "잠깐만 기다려!!!" "아이씨.. 뭐야.. 빨리 해.." "아.. 알았어. 알았어. 이제 준비 됐어!!" "자....... 준비..... 시..작!!!" [삐익!!!] "으아아아..." 뭐...뭐냐... 시작 호각소리가 울리자마자 몸이 들썩들썩 움직이는 덕에 정신 놓고 앉아있다가 하마터면 뒤로 넘어 질 뻔했다. 허허... 이 녀석... 70개 하겠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체 이 괴물같은 빠르 기는 뭐냔 말이야.... 눈으로 숫자 헤아리기조차 버거울 지경이니 원.... [.................................................. .................................................... ........................ ....... ..................................................... ...................................................... ..................... ....... ....................................................... ........................................................ ................. ....... ......................................................... .......................................................... ............. ....... ........................................................... ............................................................ ......... ....... .............................육십 일, 육십 이, 육십 삼, 육십 사..... 육십 오, 육십 육,...육십 칠...육십 팔, 육십 구.....칠십..] "하아.... 다했다..." "이봐.. 아직 시간 남았어." "딱 70개만 한다고 했잖아." 그렇다고 진짜 70개를 하냐? 기껏해야 60개 넘기겠거니 생각을 했는데, 우습게 70개를 채우곤 디굴렁 거리는 진욱이를 보고 있자 니 조금은 얄미운 생각이 들었다. 나한텐 못하게 실컷 방해해 놓고는.... "야... 재성아, 너 살 좀 쪄야겠다. 가벼우니까 이렇게만해도 번쩍 들리잖아." "으아... 하지마... " "어라? 진짜 들리네... 하하.. 이참에 내가 비행기 태워줄까? 진욱이 오빠~ 한 번만 하면 내가 1시간은 태워줄 수 있는데....." "미친놈." 오빠 좋아하시네... 한참 형님한테 이 자식이 버르장머리 없이.... 기록 체크하러 가는 김에 녀석의 배를 몇 차례 즈려밟아줬더니, 꽤나 괴기스러운 비명소리가 났다. 저 렇게 남는 힘 주체 못해서 쓸데없이 탕진하고 다니는 녀석은 허리를 한 번 삐끗해서 몇 달 고생을 좀 해봐야지 정신을 차리지.. 그나저나... 기록 테이블이 어디있나 해서 두리번 거리고 있자니, 저만치 책상에서 뭔가를 받아적고 있는 현우가 눈에 들어왔다. "40번...... 박진욱 70개." "...................." 별 생각 없이 말한 건데.... 한참 잘 적어내려가던 현우 녀석의 볼펜이 주륵 미끄러졌다. 입을 틀어막고 어쩌고 하는 폼이 우스워 서 죽겠는 모양이다. 대체 이번엔 또 뭔일이래... 아니꼽다는 투로 잠시 노려보고 있자니, 볼펜의 뒷부분으로 기록부 한쪽을 가르켜보인다. [신기현 68개...] 뭐가 어쩄다는 걸까? 기현이는 아까 내 옆에서 나랑 같이 했는데.....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어서, 멀뚱히 서 있자니, 이번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딱딱히 굳혀보인 다. "네 눈에 들려면 70개는 더 넘겨야 된단 말이지..." "...............무슨 소리야?" "모르면 됐어." "......................" 모르면 됐다는데.... 별 수 없는거지.... 아무래도 기록체크는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성 싶어서, 먼저 혼자 반 응원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나마 윗몸일으키기 하는 곳은 그늘이 좀 졌었는데, 여기는 정말로 태양이 작.열, 하는 중이다. 여기서 몇 시간을 더 보낼 생각을 하니 저절로 입에 쌍소리가 걸려왔다. 예상은 했었지만.................이번 체육대회는 역시나 지루하기 짝이없군. 기나긴 조회로 오전 시간 내내를 잡아 먹는가 싶더니, 오후 나절부터는 체력장과 다른 경기들을 함께 실시하는 덕에 정신없이 돌아다녀야 했다. 아니... 대체 어떤 학교가 체력장을 체육대회 날 한단 말이냐... 덕분에 반 별로 줄 서서 이 종목 저 종 목 찾아 돌아다니기가 바빠 사실상 실제 참여하는 종목..-피구, 축구, 농구 기타 등등-은 되려 뒷전이 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망가는 녀석들이 없다는 것 정도 일까.... 이렇게 단체로 할 때 해두지 않으면, 나중 체육시간 때 간단하지만 고통스러운 기합 몇가지와 함께 따 로 외롭게 실시해야 하니말이다... 하지만, 이탈하는 녀석이 없다고는 하더라도, 역시 여러사람 다루 기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 오늘도 지훈이 녀석은 땀으로 범벅이다. 담임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통솔 하기 훨씬 수월할텐데 정말로 교감한테 찍혀버린 모양인지 아침나절부터 어디론가 끌려가서는 도통 소식이 없고......... 어휴... 모르겠다. 이딴 거 나같은게 걱정해봐야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뭐.... 이따가 있을 농구경기나 걱정해야지.... 아무래도 의자에 그냥 앉아있다가는 타죽어버릴 것 같아서, 그나마 약간 그늘이 지는 의자 뒷편 화단 에 걸터 앉았다. 화단 안의 그늘을 만끽하는 것도 꽤나 유혹적인 제안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닥 담이 센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만족해야만 헀다. 무슨 이야기 인고 하니.... 다름이 아니라, 이 화단은 우리 학교 미술 교사 이미영씨의 성역이라는 것. 뭐... 미술가르치는 여 선생이 뭐가 무섭냐고 반문해 올 사람도 있겠지만... .....미영씨는 남자다. 그것도 아주아주아주 많이 지나치게 건장한. 일설에 따르면 특공대 출신이라는 얘기도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육사를 나왔다는데.. 첫 미술 시간 이후부터는 나 역시 그 둘 중 하나는 뻥이 아닐 것이다.. 라는 막연한 확신이 생기기 시 작했다. 세상에... 미영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의 그 엄청난 덩치에... 엄청난 얼굴이라니.... 한 손에는 정신봉을, 다른 한 손에는 양철 물뿌리개를 들고, [꽃을 밟는 무식하고 반 사회적인 새끼는 밟힌 꽃만큼 똑같이 조져주겠다] 고 외치는 그의 모습 은..... 보는 이로 하여금 [꽃을 꼭 사랑해야겠다]는 결심을 서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 역시 마 찬가지고...;; 에이구야... 날씨 한 번 더럽게도 찌는구나.... 손으로 티셔츠 목부분을 늘려가면서 화단가를 보고 있자니, 빨갛고 탐스럽게 꽃을 피운 봉선화가 보 였다. 봉선화야.. 너는 참 좋겠구나. 그늘에 눌러 앉았겠다. 미영씨가 금이야 옥이야 보호해주겠다. 덕 분에 귀찮게 구는 녀석들도 없고... 내 신세는 이게 뭐냐.. 땡볕에 서 있는 것도 모자라서 사방천지에 나 못 괴롭혀서 안달인 녀석들 밖에 없단다. 이래뵈도 만물의 영장인데 꽃 한송이만도 못하다니... 어쩐지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고 해서 애꿎은 꽃잎만 만지작 만지작 하고 있는데, 손목이 끌어올려지 면서 서늘한 느낌이 전해왔다. "아....." "왜 이런데 이러고 있어.. 빨리 나와. 응원하게.." "......더워.." "빨리..." 현우구나. 어떻게 하냐.. 지금 이몸이 너무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도저히 저 책상에는 못 올라가겠는데.... 저기 올라가 있으면 정말로 어질어질 현기증 난단말이다!! 완강한 거부의 표현으로 손을 홱 뿌리쳤지만, 수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붙잡힌 꼴이 되고 말았다. "놔..." "봉숭아물은 나중에 예쁘게 들여줄테니까... 지금은 와서 시키는 거나 해.." 뭐... 뭐...뭐... 봉숭아물?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꽃에서 손을 떼어냈다. 어떻게 여기서 그딴 말이 나오냔 말이야!!! 내가 애냐? 아님 여자냐? 항의조의 얼굴로 쳐다보는 것도 잠시...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손에 결국은 항복해야만 헀다. 그래..까짓거.. 하라는데 내가 별 수 있냐.. ===================================== "5반 화이팅!! " "자자..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쉬고 하나, 둘, 셋, 넷!!" "해~ 저문.. 소양강에..." 분위기를 어떻게든 고조시켜보려고 진욱이와 지훈이가 바락바락 악을 썼지만, 아이들의 동조도 잠시, 몇 마디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금새 사그라들고 말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라도 열심히 따라불러봤지만, 그닥 소용은 없는지 싶다. 하긴... 이런 날씨에 누가 응원따윌 하고 싶겠냐... 얼마 되지 않는 책상 높이에서도 앞이 아른 아른 한 것이 현기증이 났다. 힘이 든 것도 힘이 든거지만, 생각보다 계속 흘깃 흘깃 쳐다보는 녀석들이 아까부터 많아서 기운이 더 욱 쭉 빠지는 기분이다. 아니... 눈이 마주치면 마주치는 거지.... 왜 시선을 아래로 쭉 훑기는 훑냔 말 이다!! 사람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푸하하하..!!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대냐? 낚였대?" "씨발.. 그렇댄다. " "야.. 그 자식 보기에는 부실했는데..." 아아.... 저것들... 진짜 신경 거슬린다. 안 그래도 더워죽겠는데... 언제부터인지 나타나서 기현이네 놈들과 크게 웃고 떠들어대는 다른 반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머리까 지 스팀이 확 오르는 기분이다. 할 말이 있으면 따로 지들끼리 나가서 하던지, 아니면 조용조용 말하 던지... 대체 왜 별 같잖은 내용들을 엄청난 욕과 함께 그렇게 큰 소리로 다들 뱉어내고 있는거냐.. 지 금 바로 눈앞에서 응원지휘하는건 보이지도 않는다 이거지.? 엉뚱한 녀석들이 대열 안으로 함부로 난입한 덕분에 안 그래도 어수선한 반 분위기가 더욱 더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삐딱하게 의자에 기대거나 다른의자에 다리를 걸치고는 공간도 지들 멋대로다. 상대 가 기현이네 패거리고 보니까 주변 애들도 별 말 없이 넘어가는 듯 한데..... 그래... 뭐...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반 자리도 안 좋은데 응원하는게 싫 었을 수도 있고, 동조 안 한다고 해서 내가 뭐라 할 입장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대화 중간중간에 송지훈이 어쨌느니, 이현우..박진욱이 어쨌느니 하는 소리가 몇가지 쌍소 리와 함께 섞여 들린 이후부터는 묘하게 그 자식들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대놓고 하는 것도 아니고, 숨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이 따위로 건방지게 욕하는 새끼들은 대체 뭐냐? "....... 기현아!! 먹을 거 가져왔어. 빨리 먹자.." "..................." "아.. 새끼.. 왜 이제 오냐? 사러가서 죽었는 줄 알았다." "먹자, 먹자.. " 허허.. 이젠 아주 먹자판이다 이거냐? 음료수에 피자에, 치킨에 빙수까지.... 어이가 없어지려고 한다.. 먹어? 이 상황에서 돼지처럼 처먹고 있단 말이지.... 허허 참... 아무리 경우가 없다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냐? 신기현..... 돈도 많다면서 반 전체에 돌리지, 어째 소심하게 네 친구 놈들한테만 퍼주고 있냐.. 다시 한 번 열이 올라서 녀석을 쏘아봤지만, 제 친구들과는 달리 아까부터 수상쩍으리만치 말이 없다. 속에 서 뭔가 꾸물꺼리는 것을 애써 누르면서 더더욱 응원가를 크게 불러 제꼈다. "아... 씨발.... 우리반 자리 정말 짜증나지 않냐? 어떻게 된게 하루 온종일 땡볕이다.. 담탱이가 대체 뭘 어쩐건지..." "아씨.. 근데 그걸 왜 나한테 짜증이야!!" "니네 반은 안 이렇잖아.." "그게 내 탓이야??" "썅.. 열받네..." 신경끄자.. 신경끄자.. 양재성. 너랑 어차피 상관없고, 일생가봐야 몇 번 얼굴볼지도 모르는 것들인데.... 저런 어린애 같은 투정을 몇 십번 씩 반복하면서 심기를 거슬러대더라도.. 귀찮으니까 참자... 오늘은 오로지 응원에나 열중하자.. 응원. 더욱 기운을 내보려고 했지만, 자꾸만 피켓을 든 손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대체 왜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는 거냐... 제발 부탁이니까 내 귀에만 안 들리게 좀 해라.. "그래도 니네 반엔 볼거리가 있잖냐... 킥....킥... " "그래. 전교 어딜가봐라, 어디 이런 구경거리가 있나.. 저 얼굴하며... 다리 봐라. 다리.. 진짜 죽인다.." "왠만한 여자애들보다 훨씬 이쁘지 않냐?" "..........다들 입 못다물어?" "왜 그래.. 기현아.. 사실은 사실이잖아." "하하... 괜히 티내지마라. 니꺼다 이거야?" 뭐냐... 저 말도 안되고 앞 뒤 안 맞는 대화는.... 어쩐지 저 녀석들과 눈이 마주쳐버린 것 같아, 잠시 흠칫하긴 헀지만, 별 상관 없겠지 싶어 그냥 고개 를 돌려버렸다. 그런데.... 현우랑, 진욱이, 지훈이 얼굴이 확 일그러진게 뭔가 심상치 않다 싶다. 뭐....지? "야.. 이쁜아..!! 거기 더운데서 힘들게 그러지말고, 이리 와서 노래나 해봐라... 여기 맛있는거 많아." "....크하하... 그래.. 이리 와서 핑클꺼나 한 번 불러봐." "난 S.E.S.가 더 좋은데...." "씨발놈.. 그럼 그건 니가 시키면 되잖아." "...................." 이젠 헛 것들이 보이나... 왜 저 지랄들이래.... 어디서 핑클에 에쓰이에쓰를 찾고 있어.... 땡볕에 아주 돌아버렸구나 싶어서 속으로 혀를 쯧쯧차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다음 응원곡은....'남행열차...' "으아아...." 열심히 페이지를 힘겹게 넘기고 있는데, 홱 몸이 당겨지면서 책상위에 주저 앉고 말았다. 뭐야!! 하마터면 떨어질 뻔 했잖아!! 어떤 가당찮은 놈의 소행인가 싶어 앞을 눈여겨보니, 방금 떠들던 놈들 중 하나가 내 팔목을 억세게 부여잡고 있다. ... 가뜩이나 빡돌아 미치겠는데.... 제발 놔라. 순순히 놓으면 내가 마지막으로 한 번은 봐줄테니.... "왜 모른척이야.. 이리와서 우리랑 놀자니까...." "....................." "하하... 잘한다!! 얼른 데리고 와라!!!" "...이거 놔.." "어라? 이것봐라.. 앙탈도 부리네.." 현우와 진욱이가 다급히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잠깐의 공백과 함께 천천히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아... 그랬던 모양이다. 아까 볼거리라느니, 기집애 같다느니 어쩌고 한 것도.. 와서 핑클 어쩌고 하면서 노래나 하라고 한 것도.. 다 내 얘기였구나... 그랬구나.. 지나치리만큼 이해가 확실히 되었던 탓에 잡힌 손을 뿌리치고 다시 책상위에 똑바로 설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가 분명히 경고 했었지... 마지막이라고... "이 개 자식...!! 지금 어디다 대..." [휘익....] [퍽!!!] "으아악!!!" 악을 쓰면서 다짜고짜 내 앞의 녀석에게 달려들던 진욱이 녀석의 얼굴이 황망히 굳어버리는 것이 보 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먼저 그 자식을 피켓으로 후려쳐버렸거든.. 책상에서 뛰어내린 반동을 이용한데다가 힘을 좀 실어서 쳤더니만, 이 녀석이 비실비실 하면서 좀체 로 다시 못 일어난다. .. 잠시 한 팔로 피켓을 비스듬히 짚고 서서 녀석이 일어서는 것을 구경했다. "젠장... 너... 너.. 뭐야!!!" "양재성." "누가 니 이름 궁금하...." [퍽!!!!] "악!!! 이 씨발 새끼가!!!! 좆만한게 지금 어디서 까불고 지랄이야!!!!.." [퍽!!!!] ".............야... 너 그만 안 해.. 정말 죽을려고 환자..." [퍽!!] "악!!!!" [퍽!!] [퍽!!] [퍽!!] "그....그...그만해!! 야.. 정신차려!! 그만하란 말이야!!!!" "씨발... 그 입 좀 닥쳐...." [퍽!!!] [퍽!!!] [퍽!!!] "재성아!! 그만해!!!!" 뒤에서 거칠게 잡아채는 손이 느껴졌다. 몸이 구속 당하자, 속에서 뭔가가 꿈틀하면서 다시 끓어오르 는 것 같았다. 있는 힘껏 뿌리쳐내자, 이번엔 팔로 꽉 끌어안아서 옴짝 달짝 할 수가 없다. "송지훈.. 이거 안 놔?" "재성아, 진정해.. 이러다 정말 사람 하나 잡겠어.." "놔." "..............재성아..!!" "젠장..!!!. 놓으라니까..!!! 지금 저 새끼들 장난하는 거야.. 뭐야..!!! 내가... 니들한테 언제 뭐 티끌만큼이라도 잘 못한거 있어...?? 허구언날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니까 다 병신같이 보이디? 그래, 니들 말마따라 이 얼굴이 그렇게 우습냐? 씨발.. 사람 하는 거 마다 사사건건 시비걸고 넘어가고.... 남의 속은 새까맣게 타는 줄도 모르고 저희끼리 히히락락 잘들 논다. 잘들 놀아. 송지훈.. 이거 놔...! 아까 같잖게 니들 씹을 때부터,.. . 아니, 애초에 신기현 저 개자식이 진욱이 자 꾸 속상하게 할 때부터 다 조져놔야 됐어.!!!!." [............................................................ .............................................................. .... ....... ...] 거의 발작적으로 지훈이의 팔을 뿌리쳤다. 몸을 구속하고 있던 것이 한순간 없어지니까,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힌다. 가쁜 숨을 고르면서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곤 스스로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렇게 한꺼번에 말을 토해낸 것이 얼마만인지.. 목이 터져라 악을 써본 것이 얼마만인지.. 땅이 한 순간 뱅글 돌며 현기증이 난다 싶더니만, 나도 모르게 몸이 크게 휘청였다. 뒤에서 누군가 급히 받혀주는 느낌이 나긴 했지만, 홱 뿌리치고는 다시 자세를 고치고 바로 섰다. 아 주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응원석과 뿌옇게 날리는 모래먼지, 사방에 뱅 둘러써인 아이들.. 얼굴이 따 끔따끔 할 정도의 시선과 이상하리 만치의 정적. 입안이 까끌해지는 것 같아서 억지로 마른침을 삼켰 다. 그래.... 이게 다 내가 벌인거란 말이지..... 짜증스럽게 피켓을 다시 내치치려는 자세로 치켜들었 다가 바닥에 내팽겨치곤 그냥 돌아섰다. 제길.. 모르겠다. 모르겠어. 뒤에서 크게 부르는 소리가 났지만,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도망치듯 뛰고 있었다. =============================================== "하악... 하아...하아......." 계단의 끝에 닿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누가 쫓아와줄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기분만은 한창 쫓기는 듯 했던 모양인지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생전 와본적도 없는 옥상으로 향하는 층계 위였다. 차가운 옥상철문에 기대있으니 그나마 후끈거리던 열기가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옥상문이 열리면 답답하지 않아 좋을테지만, 별 기대없이 돌려본 문 손잡이는 역시나 움직이지 않았 다. 그럭저럭 서늘은 한 것 같은데 통로로 쓰는 좁은 계단이라 대낮인데도 어두침침했다. 뭐... 아무 렴 어떻겠어. 사실 도망친거나 마찬가진데, 밝은데 있는 것보다는 훨씬 그럴듯 하네... "킥...." 생각을 하다보니 또 웃음이 나왔다. 간만에 한 번 또 일을 크게 벌이는 구나.... 인간 양재성, 기어이 갈 데 까지 가는군.. 그러게 어쩌자고 그런 정직하고 착실한 놈들하고 어울려버렸냐... 덕분에 잔뜩 물들어버렸잖아. 제길... 친구는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가 여기서 또 한 번 증명이 되는군. 내가 미쳤지. 미쳤어. 이미 벌여 버린 일에 대해 특별히 암울한 분위기 속에 후회한다거나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은 성격상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뭔가가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엉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녀석들의 괘씸한 행동을 생각하면 아직도 발로 짓이겨버리고픈 충동이 아직도 절로 일지만, 한 편 으론 꽤나 무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후련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답답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계속 거기 머물러 있다가는 스스로가 더욱 통제가 될 것 같지 않아 어찌어찌 도망은 치고 봤 는데 그 것 마저 여의치 않고.... 폭주 뒤의 감정이란게 원래 이렇게 수습하기 어려운건가? 뭐가 이렇게 어렵냐... 아아.... 난 정말 이런 일은 익숙하지 않단 말이다!!!! 결국은 오늘 적이란 것도 만들어버렸다는 건데...... 다행히 나는 특별히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 싶어하는 성격 좋은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 싫다는 놈에게 사정사정하는 마음 착한 인물 역시 되지 못하지만,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 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 자식들... 적어도 일 년 동안은 나만 보면 못 씹어먹어서 안달일텐데.... 제길.. 몰라. 씹어먹던지, 갈아먹던지.... 나도 못 참는건 못 참는거라고... 그나저나, 그냥 뛰쳐나오긴 했는데, 앞으론 어쩐다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내려가기엔 아직은 속이 너무 부글거린다. 이래뵈도 한 번 열받으면 끝까지 안 보는 편인지라.... 또 얼굴 마주보면 아까처럼 일단 덤벼들고 볼 것이 뻔하지... 교실로 가 볼까 생각은 해봤지만 분명히 잠겨있을 것 같아서 일단은 여기 주저 앉기로 했다. 쩝... 잠 이나 잘까? "양재성!!!!!" 더위 먹었나? 왜 갑자기 환청이 들리지? 마악 담벼락에 기대 앉아 자세를 잡는데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울렸다. 아아.. 벌써 꿈인가? "양재성!!! 야, 임마.. 너 어딨는거야!!!" "재성아!!!" "현우야, 넌 저 쪽으로 가봐. 난 이리로 갈테니까..." "어..." 으음.. 쫓기는 꿈이라니... 악몽이군.. 얼결에 떠오른 거라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 터무니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하하.. 이런 바보들.. 여기까지 왜 쫓아오고 난리냐... 들켜봤자 괜히 피곤해질 것 같아서 그냥 숨어있기로 마음을 먹곤 잠자코 숨을 죽였다. 하지만, 잠시후 이쪽 계단으로 올라오는 듯한 인기척에 바짝 긴장해야했다.. 누구냐 대체... 눈치만 디지게 빨라가지고는.... 쳇.... 기분이 꼭 범죄자 같잖아. [뚜벅. 뚜벅. 뚜벅.] 히익.... 진짜 이리로 오네.. 왠지 다급한 기분이 되어서는 도망칠 생각으로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안타깝게도 한 발 늦은 듯 싶었다. 아아... 그냥 아까 순순히 내려갈걸.. 깜짝 놀라는 바람에 꼴사납게 잠긴 옥상문 을 계속 두드리는 추태까지 보여버렸잖냐. "가자." "............." 아무 말 없이 서 있자니, 현우 녀석이 팔을 잡아 끌었다. 나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거지만, 그렇게 분위기 잡고 얘기하면 상대방은 상당히 두렵단 말 이다... 아아... 제발, 내가 애냐? 질질 끌고가는 건 좀 그만 둬라.. "안 갈래. " "안 가면 어쩔건데..." "여기 있을래." 별로 나쁜 감정을 싣어 한 말은 아니었지만, 나나 현우 둘 다 말을 뚝뚝 끊어하는 편이라 그런지 금 새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아래 상황이 좀 수습될 때 까지 여기서 정리를 해보겠다 는 건데..... 차근차근 어찌 설명을 하나 고민하고 있자니 다시 팔이 세게 끌리는 느낌이 났다. "네가 뭘 잘 못했다고 여기서 청승이야. 빨리 가자."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데...." "................." 하아... 다시 정리를 하자.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내려갈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려가 있으라고 하면 되는거지? 막 말을 꺼내려는데, 어느샌가 몸이 확 잡아당겨지면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현우야, 나는 그냥..." "조용히 하고, 따라와." "그게 그러니까..." "조용히 좀 하라니까.." "..................." 이게 어디가 따라가는 거냐.. 끌려가는 거지. 그리고, 난 분명히 조용히 얘기했단 말이다. 내가 말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 그렇게 면박을 주냐... 힘 으로 밀어부치니까 어찌저찌 현우가 하자는 대로 하고는 있지만, 도저히 이대로 내려가서 아까 그 자 식들 면상보는 것은 내키지 않아서 조심조심 말을 꺼냈다. "저기... 나는 위에 올라가서 잠시만 있을......" [읍...] 몇 마디 내뱉지도 못하고, 뭔가가 입을 막아오는턱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마구 발버둥을 쳤다. 대 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현우 녀석이 내 입을 틀어막고는 허둥지둥 어디론 가 끌고 가는 중이다. 커다란 손이 얼굴을 반이나 덮어서 숨쉬기도 버겁다. 뭐냐... 뭐냐... 대체 무슨 일인데 입도 뻥긋 못하게 하는 거야? 저 편에서 뭔가 인기척같은게 난 것을 빼면 그닥 이상할 것도 없 었는데.. 있는 힘껏 현우의 손을 뿌리치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나 밖에 안 나간다니까!!!" "알았으니까, 제발 잠깐만 입 좀 다물어봐. 누가 밖으로 나간대?" "그러면..." 현우 녀석이 낯설은 문을 벌컥연다 싶어서 보니 낡아빠진 팻말이 보였다. [방 송 실] 아.... 여기로 데려오려고 했구나.. 그런데 왜? 대체 뭐하는 짓이냐는 불만이 어린표정을 지어보였지만.... 현우 녀석은 본체 만체하곤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어휴... 어쩔 수 없는거지...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으면서 내키지 않는 걸음을 대딛었다. 저번에 한 번 들어온 적은 있었지만, 그 땐 워낙 경황이 없었던 터라 기분이 더 새로웠다. 신기한 기계들에 사방에 빼곡한 비디오 테입들... "이리와 앉아." "................." 현우가 부르는 쪽으로 가보니 낡은 선풍기를 끌어다가 틀어주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곳만 꼭 딴 세상 같았다. 아아.. 정말 극락이 따로 없구나. 이현우.. 니가 왠 일이냐? 이렇게 안 하던 이쁜 짓도 다 하고... 가만히 턱을 괴고 앉아서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있자니 간질간질 한 것이 기분이 좋아져서 나 도 모르게 바보같이 히죽거리고 말았다. 쳇... 여기서 딱 눈이 마주치는건 또 뭐냐... 제길.. 민망하 게... "열 뻗친건 좀 내렸냐?" "피식...." 평소와는 다른 조금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오는 현우를 보고 있자니 다시 한 번 헛웃음이 나왔 다. 그래... 임마.. 생각해줘서 고맙다. 고마워. "그래도 너 오늘은 정말 사람같이 보인다...." 현우 녀석의 뜬금 없는 말에 선풍기에 바짝 대고 있던 고개를 조금 들었다. 무슨 말이냐.. 갑자기... 그럼 내가 무슨 괴물이라도 된다는거야? "...............무슨 뜻이야..?" "그냥 좋은 뜻." "..........................???" "너는 생각하는 걸 입밖으로 잘 안 내뱉으니까... 과연 속으론 무슨 꿍꿍이가 있나 가끔 궁금했는데...." "...................." 뭐냐... 이현우.... 너 그렇게 할 일 없는 놈이었냐?? 어쩐지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어 애꿎은 선풍기만 만지작 거렸다. "..... 막상 말하는걸 보니까 너무 너 다워서 그냥 맥이 탁 풀린다. " "무슨말이 하고 싶은거야.. 갑자기..." "오늘 멋있었다고..." "내 까짓게 그래봤자지..." "글쎄.... 너 가고나니까, 신기현 꼭 울 것 같던데...? 다들 겁먹고 말이야.." "???" 무슨 말인가 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니, 현우 녀석이 수상쩍게 실실 웃으면서 입을 다물어버 린다. 목석같던 놈이 왜 갑자기 이렇게 살갑게 군다냐... 어쩐지 평소보단 현우와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오늘 내가 바락바락 성질내는 것 보고, 온갖 정이 다 떨어지진 않았을까 조금은 걱정도 했는데.... 진지하게 저렇게 이야기 해주는 걸 보니까... 조금은 고맙다. 빈말이든, 농담이든, 지나가는 말이든... 어쨌는 천하의 싸가지 미쓰리가 양재성한테 지금 멋있다고 했단 말이지... 아... 감동 먹을 것 같네.. "아.. 전화해야지.." "전화??" "어. 너 찾았다고..." 현우 녀석이 핸드폰을 꺼내들고 잠시 뭐라 말하는 것이 보였다... [뭐!!! 너 거기 어디야!!!!] 라는 외침이 나한테 까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진욱이한테 건 모양이다. 뭐....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안 가르쳐 줘." 따위의 유치한 말장난으로 받아치는 현우 너는 또 뭐냐... 결국은 잠시 실랑이를 하는가 싶더니 수초 지나지 않아 방송실 문이 벌컥 열렸다. "재성아!!!!" "..어디 갔었어. 걱정했잖아.. 괜찮은거지?" 다짜고짜 덤벼들어서 매달리는 진욱이 녀석을 꽤 힘을 들여 떼어놓았다. 지훈이 녀석도 표정을 보아하니 걱정했다는 말이 농담은 아닌 모양이다. 뭐냐... 이산가족 상봉도 아니고, 기껏해야 한 십여분 못 본건데..... 더워죽겠는데 다시 부둥켜안고 선풍기 바람을 막는 진욱이 녀석을 다시 한 번 힘들게 떼어냈다. 아무 튼 덩치만 컸지, 아직 덜 자랐다니까.... "아... 지금 몇 시지?" "2시 10분." "그럼 한 10분만 더 있다가 가면 되겠다." "그럴까?" ".......무슨 말이야...?" 이 녀석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싶어 물어보니 저희들끼리 낄낄대면서 한동안 말이 없다. 쳇... 사람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아아... 그게... 사실은 담임하고 국어 선생님이 너한테 현상금을 걸었거든.." ".......뭐???" "일종의 내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 10분 이내로 찾아오면 국어가 2만원주는거고.. 10분 이후에 찾아오면 담임이 2만원 주는거야. " "..............그래서...?" "아무래도 국어를 벗겨먹는건 심하다 싶어서, 조금만 있다가 가려고..." "그럼 아까 조용히하라고 한 것도..!!" "지금 우리반 애들이 다 너 찾으러 나섰어... 현우 말이 네 성격에 분명 조용하고 음침한데로 갔을거라고 해서 우리야 교실쪽으로 왔지만, 운동장 쪽은 난리도 아니다.. 기껏 찾았는데 시끄럽게 했다가 뺏기기라도 하면 안돼잖아." "...................." "2만원으로 뭐하지? "이따 끝나고 돈 좀 더 보태서 피자 먹으러 갈래?" "그럴까?" "재성아, 뭐 먹고 싶은거 없냐?" "..............." 후후후... 그래... 그 고약한 두 사람이 또 날 가지고 장난을 쳤단 말이지... 현상금이라.... 그거 참 재밌네... 그런 연유로 나를 방송실까지 끌고왔던 거겠지? 필시 시원한 나무그늘 같은 곳에 앉아서 우아하게 담소를 나누며 이런 말도 안되는 내기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두 사람을 생각하니 저절로 이가 갈렸다. 송지훈, 박진욱... 그리고 특히 이현우.. 아니, 담임은 그렇다치더라도 니네는 또 뭐냐.. 막 좋게 봐주려는 참이었는데... 암만 내가 만만하고 같잖은 인간이라지만, 그래도 나름대론 열받아서 뛰쳐나온거 뻔히 알면서 그딴 장난질에 동참을 하고 있어?? 내가 물건이냐? 뺏기고 자시고 하게... 사람을 2만원짜리취급하다니.... 뭐 먹을까 어쩔까 하는 녀석들을 뒤로 하곤 살금살금 방송실을 빠져나와 버렸다. 어디 한번 니들도 실컷 골탕 먹어봐라.. "야!! 양재성!!!! 너 또 어디가!!! " "애들한테 들키기 전에 빨리 잡아.."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일단은 정신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눈치하난 끝내준다니까..... 니들 손에 그 2만원이 어디 순순히 들어가게 내가 내버려 둘 줄 아냐.. 아아.. 정말 빌어먹을 체육대회.. 발발거리고 뛰면서 응원하고, 사람 패가면서 성질내고, 정신나간 놈처럼 뛰어다녔는데도.. 왜 하루는 끝날줄을 모르는거냐...!! ==================================================== ㅠ_ㅠ 아아.. 쓸데없이 지리하게 깁니다. 끝은 흐지부지하고 엉성하기 짝이없고...; 목표는 슬럼프 극복..일단 올려놓고 보렵니다..;; -_-;; 언젠가는 수정볼 날도 오겠지만.. 당분간은 체육대회편 제목만 봐도 헛구역질이 날 것 같네요.. 붙잡고 있어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것도 글이라고, 기다려주신 분들이 노여워하실까 심히 걱정됩니다.. (ㅜ_ㅜ 이따위 것을 기다린게 아냣!!!) 많은 돌, 기타등등의 질타.. -_ㅜ 피할 생각 없으니 많이들 던져주세요. 전 좀 맞아야 제 기능을 할 것 같네요.. 그냥 수험생의 마지막 발악이려니 하고, 조금만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악!! 나가 죽어라!! 죽어!!) Sweet. so sweeeeet!! 어느 평범한 남학생의 일상. (Episode 17) "야, 야... 그 얘기 들었냐?" "뭐?" 평상시와 같은 등교길, 10번 마을 버스 안. 잠이 덜깨서 손잡이에 매달리다시피 한 자세로 눈을 비비고 있는 한석에게 성철이 호들갑을 떨며 물 어왔다. 순간 버스가 휘청하는 바람에 둘 다 몸이 갸우뚱 하면서 말 할 타이밍이 잠시 끊긴 듯 싶었지 만, 성철은 곧 다시 조잘대기 시작했다. "어제 5반 말이야.. 장난 아니었잖냐.. 응원상에다, 농구 우승하고, 전체 우승..." "......아아.. 시야 가린다고 축구골대 들어서 옮기던 미친놈들? 걔네가 왜...?" "근데... 그 반에 진짜 장난 아닌 애가 하나 있나봐.. 어제 상현인가? 그 1반에.." "넌 대체 정확히 아는게 뭐냐.. 박상현. 1반에 그 농구천재." "아.. 그래. 맞아. 박상현... 아무튼 걔가 5반하고 시합하다가 실수로 어쩌다가 어떤 놈을 밀쳤는데.. 그 반 애들이 다 들고 일어나서 말도 아니었데.." "그 반 짱인가?" "그런 모양이야. 신기....선인가? 아무튼 걔랑.." "신기현이겠지...." "나도 알아..... 그리고, 원래 그 반에 또 날리던 녀석 있었잖냐.." "박진욱?" "어.. 맞아. 걔. 신기현이랑 박진욱도 같이 농구 뛰었는데, 걔네 둘이 빡돌아서 날뛰는 바람에 하마터면 코트 다 뒤집어 엎을 뻔 했다던데..?." "장난 아닌가보네... 걔네 記?맘대로 부려먹을 정도면... 대체 누구냐? 5반에서 주먹 좀 쓰는 놈 하면 박진욱 밖에 몰랐는데...." "글쎄... 이름이.... 재... 어쩌구 했던 것 같은데..." "니가 그러면 그렇지..." "아아... 이름 알았었는데...." 안타까운 듯 계속 궁시렁 거리는 성철의 바로 뒷 편에서 다소 허스키한 목소??짧막하게 내뱉었다. "양재성." "아... 그래, 맞다. 너 그 양재성인가 뭔가랑 아는 사이야? ... 그러니까 그 양재성이....." "서....성철아...." "왜? " "저...저기....." "힉...!" 조잘 거리던 성철의 표정이 한 순간에 싹 얼어붙었다. 반사적으로 돌아본 곳에서 눈에 띄인 것?자신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친구 한석 과, 오늘 등교길 잡담의 주 화제였던 박진욱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학교 짱이라느니 싸움 잘하는 녀석이라느니 하는 것이 그닥 대단 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고, 사실상 겁먹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어쨌는 본인을 앞에 두고, 실컷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떠벌려 벌였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저기 미안.." "어? 뭐가?" 생각보다 훨씬 훤칠한 키에 단단해보이는 진욱을 보고, 순간 겁먹어서 성철은 저도 모르는 새 사과 를 하고 말았지만, 막상 본인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반문해보였다. 두 사람이 황당해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인지 만 것인지.. 진욱은 되려 얼굴 가득 특유의 시원한 웃음까 지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저기... 나 좀 잠깐 도와줄래.?. 저 녀석 업고 가야 돼서..." "저....녀석??" "아니...쟤는.. 여자애..!!!!...............가 아니구나..." 진욱이 가르킨 창가쪽 의자에 앉아 정신 없이 자고 있는 남학생. 어처구니 없는 오해를 할 뻔한 두 사람은 진욱을 도와 그 이름모를 남학생을 수습했다. "사내놈 치곤, 정말 어처구니 없게 생겼네..." "속눈썹 좀 봐.. 신기하다." "이봐. 너무 그렇게 뚫어져라 보지마. 닳는단 말이야..." 어쩐지 진욱의 말투가 방금과는 다르게 장난이 아닌 것 같아서, 긴장을 풀고 조잘대던 두 사람은 다 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느덧 버스가 정류장에 서고, 한 무더기의 학생들에 한석과 성철도 진욱을 도와가며 섞여내렸다. "웃차.... 오늘 고마웠다. 다음에 보자.." "그래.. 잘가라.." 체력이 남아도는 것인지 어쩐 것인지, 사람을 하나 들쳐업고도 무난하게 뛰어가고 있는 진욱을 보고 한석과 성철은 나즈막히 한숨을 쉬었다. 어딘지 모를 안도감이 드는 모양이었다. "양재성은 저 자식보다 훨씬 더 키도 크고 멋있겠지?" "끔찍할 정도의 괴물이 아닐까? 덩치도 산 만하고...." "웬지 굉장히 무서운 녀석일 것 같다. " "그렇겠지?" 어딘지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 한석과 성철의 등교길 대화였다... Episode. Bus-2. End ================================================== Sweet. so sweeeeet!!